고3 최 세라입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 가까이 사시는 친할머니께서 저랑 동생을 돌봐주셨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나 부모님을 보고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고 할머니는 미숙아로 태어난 동생을 더욱 예뻐하시고 동생이 잘못을 해도 제가 잘못을 해도 모두 제 탓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제가 받을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에 대한 스트레스로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엄마께서는 방문교사 일을 하셨는데 그만두시면서 할머니 댁에서 나와 이사를 하고 전학을 가면서 친구들과 멀어지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또 생겼고 그 짜증을 엄마에게 풀 때는 아빠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술, 담배를 시작하고 가출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사를 가자고 하셨고 또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 때문에 전학을 가라고한 엄마를 많이 탓했습니다. 힘들 때는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이 유일한 힘이 되었고 그렇게 지내다가 한번은 경찰서에도 갔습니다. 그날 밤 엄마가 혼자 거실에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하나님 저를 언제 데려가세요. 하며 우시는 걸 들었습니다. 방황하는 저를 붙잡고 일요일에 교회 가는 것만큼은 지켜달라고 엄마 소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동생과 함께 우리들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배나 수련회 때 가면 늘 잠을 잤고 수련회장을 이탈해서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혼자 울고 있는 날이면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뿐 술, 담배, 친구관계를 끊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나 혼자의 힘으로 정리되지 않는 친구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둘씩 정리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흡연으로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다니기도 하고 학교에서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선생님께 대들어서 교내봉사, 특별교육, 등교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자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 큐티에 떼 부리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보게 되었고 엄마는 매일 아침 오늘 하루도 잘 버티자, 딸! 잘하고 있어, 이 또한 다 지나가고 웃는 날이 올 거야. 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도피처를 찾다가 2학년 때는 장기위탁 대안학교를 다녔습니다. 일 년 동안 학교가 끝나면 거의 매일 알바를 하면서 조리나 서비스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요리를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3학년 때는 요리학원에 학교처럼 나가는 위탁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학교에 다닌 건 1학년 1년 동안 뿐이라서 공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던 저였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돌아서 왔기에 더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두 개 땄지만 제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하는 데 있어서 공부도 필요하게 되자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중학교 졸업을,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 졸업을 못할 줄 알았던 제가 대입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기적 같습니다. 면접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교회 선생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면접 보러 가는 길에 목사님께서 결과에 상관없이 넌 성공하고 승리했다고 말씀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 까지 하나님은 항상 제가 잘못을 할 때 단 하나도 숨겨주지 않으시고 모두 다 들어나게 해주셨고, 공동체에 붙어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목사님, 선생님들이 저를 위해 수고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제사장이 되어주셔서 제가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고난들이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모두 저에게 꼭 필요했던 사건들 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오픈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놀랐고 제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서 제가 간증을 해도 될까 망설였습니다. 저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가 약재료로 쓰였으면 좋겠고 졸업 후에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싶습니다. 이제 수시 1차를 모두 마치고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로 기다리며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또 저를 통해 아빠도 다시 교회에 나오실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