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사에 화내고 큰소리를 치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자주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떨었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말과 행동을 조심하곤 했습니다. 고1 때 뒤늦게 수두를 앓았던 저는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외과 수술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꿰맨 실을 제거하는 날짜를 잊어버리시는 바람에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 흉터로 인해 저는 수영장과 목욕탕 가는 것, 심지어는 학교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반 친구로부터 별명으로 놀림을 받게 되니 우울 증세까지 나타나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눈물로 혼자 보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제 안의 열등감은 외모우상과 인정중독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급기야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분노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대학교수에, 사업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유능한 직원이 아버지와의 불화와 회사 부적응을 이유로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잘 지내리라 믿었던 맏아들이 반 분위기를 해친다며 학교에서 빈번히 연락이 왔으며, 부재중인 아내에게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니, 도무지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들 앞에서 고등학교 이후 발길을 끊었던 교회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예배당에서 드린 첫 예배에서 그동안 제가 지었던 교만과 음란의 죄들이 기억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연약한 믿음이었기에 나의 열심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 교회 봉사를 하였고, 결국은 나를 배려해줄 것만 같은 교회의 외간 여자를 만나는 음란의 죄를 몰래 지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드러난 저의 외도는 아내를 따라 오게 된 우리들교회에서도 5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고등학생이 된 맏아들은 ADD로 치료를 받으며 게임중독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2학년을 유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친구들과 재미거리를 찾아 밖을 배회하니 저희 부부가 학교에 불려가는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목장에 붙어있게 하시고 양육과정과 중등부교사로 불러주셔서, 다른 가정의 사건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하시며 그 가운데에서 저의 죄를 보게 하셨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중등부 심방을 통해서는 오랜 시간 제 성품으로 자리 잡고 있던 남을 위한 배려가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게 하셨고, 제가 인본주의적 가치관으로 그동안 아내와 자녀를 힘들게 한 죄인이라고 회개하며, 목장에서 아내에게 눈물의 사과를 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7년 만에 화해한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며 여행을 다녀온 후 그동안 따로 쓰던 방을 정리해 합방도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요즘 결혼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처럼 한 방에서 교회, 목원들, 중등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밤 12시를 넘겨 잠자리에 듭니다. 반말로 대화하며 웃으며 스킨십도 하는 편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안방 문을 살짝 열며 이야기 소리가 들려서 와 봤다고 하는 둘째 아들이 다정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마음의 평안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 받아 온 자녀들의 모습은 아직은 변한 것이 없고 여전히 선도위원회와 학교폭력위원회에 불려가고 있는 저희 부모이지만, 언젠가 자녀들의 입을 통해 삶으로 보여준 부모, 하나님을 사랑했던 부모라는 고백이 흘러나오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여전한 방식의 생활예배를 잘 드리는 부모 되기를 오롯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희 가정으로 회복되기까지 언제나 기도와 헌신으로 도와주신 김형민목사님, 최도원전도사님과 정상호 부장집사님, 오은옥 집사님, 그리고 많은 중등부 선생님과 스탭분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중등부교사로서 앞으로도 저의 고난을 약재료로 나누고 힘들어 하는 가정을 살리는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받은 은혜를 갚아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