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진효재입니다.
저희 아빠는 직업 특성상 국내외 출장이 많아 집을 자주 비우셨고 엄마는 간호사로 3교대를 하셨기에 저와 동생은 할머니께서 주로 키우셨습니다. 때문에 엄마 아빠와의 어릴 적 추억이 없습니다. 제가 4살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동생은 태어난 지 1달 후부터 막내고모가 키우셨기에 엄마의 얼굴 조차 모릅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저희 가족은 강릉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하였고 고모들과 가까이 살면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빠는 한 아주머니를 집에 데려왔고 약 1년 정도 같이 살다가 나가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아주머니가 왜 살다가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아빠의 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은 완전 비상이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막내고모가 사는 용인으로 이사를 했고 고모를 따라서 동네교회를 다녔는데 연세도 많고 몸이 편찮으셨던 할머니는 주일날 동생과 제가 교회에 간 사이 아빠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장례식장이 있던 병원에 엄마가 간호사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고모가 저를 엄마와 만나게 해주었지만 엄마는 재혼을 해서 딸이 있다고 하시면서 커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냉정하게 가버리셨습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저는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안쓰러운 것은 동생이 엄마의 얼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화를 더 많이 내기 시작했고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은 저와 동생에게 지옥 같았습니다. 집안 청소상태나 가방을 뒤져서 맘에 안들면 피멍이 들도록 맞았습니다. 막내고모가 우릴 보살폈지만 집에는 저희 형제를 케어해줄 어른이 아무도 없었고 하고싶은 것은 다 했습니다.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밖으로 놀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했고 집안 살림은 거의 저와 동생이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일이 제대로 안되어있으면 욕을 하시며 우리를 때리는 아빠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혼나지 않기 위해 점점 거짓말이 늘고 그것이 들통나면 또 맞고 혼나는 그런 반복적인 생활이 너무 싫었고 그것을 풀거나 말할 곳이 없습니다. 동생은 막내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고모한테 위로를 받았지만 저는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막내고모와 함께 우리들 교회를 나오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믿기도 싫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담배를 피고 밤 늦게 까지 밖에서 놀며 지냈고 그 생활을 아빠가 알게되면 혼났지만 끊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중 막내고모와 교회를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가는 동생을 보고 아빠와 저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무슨 이유인지 바로 세례를 받고 양육을 받으며 아주 조금씩 바뀌어졌고 억지로 끌려나가던 저는 VIP캠프를 가서 정말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진구들을 보고 그래도 나는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환경에 있으면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나눔을 들으며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이해안되는것도 아빠도 저만큼 상처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예배와 간증을 통해 저희 가정이 사랑으로 말씀으로 하나되는 가정되길 기도부탁드립니다. 아빠도 저도 각자의 상처와 사연이 많은데 이것을 서로에게 풀지 않고 말씀과 공동체안에서 해석되어져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