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스텝 한송미입니다.
저는 매년 5번 이상 제사를 드리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6살 때쯤 부모님은 서로 합의 하에 이혼하셨는데, 엄마의 경제 관념 부족과 사치스러움, 아빠의 외도로 이혼하게 되었다는 걸, 청소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아빠는 엄마와 정반대인 자린고비 같은 새엄마와 재혼하셨고 두 분 사이에서 여동생과 남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친엄마를 따로 만날 때에는 외동딸로, 아빠와 새엄마와 할머니와 있을 때는 맏딸로 살아야 하는 게 혼란스러웠습니다. 친엄마는 새엄마와 동생들의 존재를 강력히 부정하며, ‘너희 아빠가 바람피워서 이렇게 된거다’ 라는 말씀을 청소년시기 내내 주입시켰습니다. 아빠는 늘 저를 아픈 손가락, 눈에 넣어도 안아픈 내 딸이라며 사랑을 쏟아부으셨기에 한 켠에는 그런 아빠에 대한 사랑이 있었지만, 한 켠으로는 아빠 때문에 이혼가정, 재혼가정이 되었다는 생각에 분노와 증오가 있었습니다. 제가 중2가 되던 해에 연락만 하면 늘 만날 수 있었던 친엄마가 갑자기 빚을 지고 도망을 가게 된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학교로 모르는 아저씨들이 찾아왔고, 집에까지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고2 때까지 엄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아빠, 가장 중요한 청소년 시기 때 사라진 엄마, 제사 때만 보는 새엄마와 동생들.. 이런 가정 환경이었지만, 늘 지극 정성으로 저를 보살펴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청소년 시기를 밝고 명랑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돌아온 친엄마와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는데, 아껴쓰며 살겠다는 엄마의 자숙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철없던 저 또한 엄마와 함께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며 백화점에서 화장품과 옷을 고르며 데이트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엄마는 함께 해주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늘 비싼 음식에 비싼 화장품과 옷을 사주는 것으로 엄마의 마음을 표현했고, 저는 처음에는 엄마가 또 저렇게 돈을 쓰다가 도망가버릴까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점차 불안함은 사라지고 값비싼 선물들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그런 선물로 채워지질 않았고, 남자친구에게 애정을 쏟으며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우려 애썼습니다. 그러던 중 집의 경제사정이 많이 나아져서, 아빠는 한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며, 판교에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살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벽증이 있고 돈 한 푼 못쓰게 하는 새엄마와 살기를 꺼려하셨고, 결국 저만 판교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사 때만 보던 새엄마와 두 동생들, 그리고 늘 내편인 아빠와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성격이라 늘 나를 남처럼 여기는 것 같은 새엄마, 여우같이 느껴지는 여동생, 바보 같은 남동생과 한 지붕 아래 있는 것이 늘 괴로워 방 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과 선배언니를 통해 대학생선교단체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영접기도문을 읽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찾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사랑방이라는 곳을 도피처로 삼아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가정이 나에게 딱 맞는 세팅이라는 말씀을 그 때는 몰랐기에, 나오는 것만이 살 길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줄로 재어주신 환경 안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아무리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있다고 해도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늘 엄마처럼 되기 싫다 하였지만 결국 엄마처럼 대출을 받고 빚을 내어 사치를 부리고, 지칠 줄 모르는 자기 열심으로 이공계 수업과 연극영화과 수업을 병행하며 똑똑한 연기자가 되겠다는 저만의 꿈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결과는 음주운전으로 인도길 추돌사고, 면허정지, 다이어트약 중독, 성형, 저체중과 탈모, 2000만원의 빚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자기열심의 끝으로 동국대학원 연극영화과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만원의 빚이 있는 것을 대학원 등록 마감일 바로 전 날에 아빠에게 들키게 되어 모든 신뢰가 무너지고 온갖 거짓말이 들통 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를 통해 우리들교회로 인도 받았지만, 죄짓는 것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무덤에 갈 때까지 그 어떤 것도 오픈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진정한 회개 없이 위로만 받는 젖먹이 신앙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목자언니들의 사랑의 언어와 처방이 저의 마음을 열게 해주었고, 하나님께도 저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며 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과 목장의 처방에 따라, 우상같았던 연극영화과 대학원 진학의 꿈을 내려놓고, 아빠가 가라고 하신 충청의 호서대학원 바이오융합학과에서 2년 동안 제약과 화장품 관련 연구를 하며 지냈습니다. 교회에 붙어만 있고 입을 떼는 것 밖엔 한 것이 없는 지질이일뿐인데, 지금은 그리 좋아하던 화장품을 사재기할 필요가 없이 화장품과 의약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제약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할 수 있게 해주셨고, 또한 다이어트약도 끊게 되어 2년 동안 꾸준히 10kg의 살도 찌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연구하며 교제하게 된 남자친구가 우리들교회에 나와 목장 등반까지 하는 은혜도 누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몇 년 전 친엄마는 또 돈문제로 인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고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와 아빠, 새엄마, 동생들이 코 앞에 교회를 두고도 여전히 제사를 하며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며 2000만원의 빚을 진 것 때문입니다. 예전에 큐티를 하면서 예수님이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죽게 한 말씀을 보았는데 그 무화과 나무가 저인 것만 같아 큰 찔림이 있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사치 부리고 싶은 마음을 목장에 나누고 가족들에게 삶으로 보여주는, 열매 맺어가는 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