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김경연입니다. 제게는 지적장애 동생과 중학교 때부터 지속된 아빠의 외도라는 고난이 있습니다. 저희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인데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독실한 불교집안 출신인 아빠와 만나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엄마를 너무 사랑하셔서 동생이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건을 주셨지만 엄마는 돌이키지 못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동생을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생은 쓴 돈과 노력에 비해 나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빠의 외도 사건은 제가 중학생 때 엄마가 혹으로 인한 자궁적출수술을 받게 될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빠는 수술 후 엄마의 아픔에 공감해 주기는커녕 병원비만 탓하면서 엄마를 무시했습니다. 상처받은 엄마는 병원에서 마태복음 중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 뒤 저와 동생을 데리고 동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외도를 들키고도 여전히 내연녀와 몰래 카톡을 하는 아빠를 보며 항상 분노에 차있었습니다. 아빠의 외도 사건 이후 저를 너무 의지하면서 내연녀를 추적하는 일에 도움을 청하고 매일 아빠를 정죄하면서 슬퍼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아침, 저녁으로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며 학교와 집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동생까지 겹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내면의 인정중독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괜찮은 척 했으며 제 이야기를 들어줄 마땅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상처를 삭히면서 끝없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의 병이 무기력으로 나타나며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은따’ 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중학생 때 모든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최고로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예배와 기도를 통해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공동체와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서 정식으로 우리들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생기면서 저는 매주 울며 저희 집 이야기를 오픈했고, 다른 친구들의 간증과 나눔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상처가 치유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해석되지 않았던 지적장애 동생과 아빠의 외도사건이 엄마와 저의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되면서 그저 분노의 대상이었던 아빠의 구원에 대해 애통한 마음도 들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면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00%죄인인 저는 주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의심이 생겼고,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유튜브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성경 관련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로 의심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큐티 본문의 말씀이 제 이야기에 적용이 되면서 고등학생 내내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저였지만 구원의 확신이 생긴 이후,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 하면서 제자훈련을 받고 시험기간에도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면서 성적을 우상으로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음이 교회로 향하고 예배에 집중할 때 더욱 성적이 잘 나온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2학년이 될 무렵에는 김형민 목사님의 ‘고난을 약재료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자’라는 설교 말씀을 듣고, 목표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꿈을 찾으려고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의 조언을 통해서 북한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저의 사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하나님의 세팅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의심했었던 저였지만 그 무렵 천국에 대한 꿈을 꾸고 그날 본문에 천국복음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보면서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꿈의 방향이 정해진 저는 공부에 명확한 목표가 생기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목장 나눔을 통해서 발견한 ‘공감능력’ 이라는 저의 장점을 살려서 상담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고, 여러 교내글짓기 대회에서 진솔하게 간증을 썼던 경험을 기반으로 상을 타면서 저만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만들어 갔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 이러한 경험들과 간증을 소재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그 결과 현재 지원한 학교 중 아직 1단계에서 떨어진 학교가 없고, 한 대학교는 최종합격을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능과 재수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과 일주일 전에 제가 왜 대학교에 합격하고 잘되어 가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숨겨진 세팅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빠의 눈을 피해 다니지도 않는 영어 학원을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몰래 교회를 다녔지만 수능이 다가오면서 교회에 대해서 밝혀야만 했습니다. 직면하라는 목사님과 선생님의 조언과 기도에 힘입어 아빠에게 날을 잡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대학합격소식에 기뻐하셨었던 아빠는 하나님이 제 삶의 역사하신 과정이 함축되어있는 자기소개서와 제 이야기를 듣고 교회를 결코 반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4년 만에 아빠의 허락을 맡고 교회에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고, 예전에 저 혼자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던 아빠의 구원에 한발자국 다가간 느낌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오픈하고 제 삶을 간증한 것을 대학 합격소식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요즘에 말씀을 보면 저의 구원에는 새벽마다 가족을 위한 외할머니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대학이 끝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기 위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공부해서 외할머니처럼 쓰임 받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만큼 성장하도록 챙겨주셨던 든든한 교회 선생님들과 목사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내내 브살렐과 오홀리압처럼 구체적인 직업을 알려주시고 앞으로도 저를 책임져주신다고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