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김지현입니다. 저는 불신결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신 작은이모의 권유로 제가 여섯 살 때 저와 오빠를 데리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에 다니시는 엄마와 다니지 않으시는 아빠 간의 묘한 신경전이 지속되었고, 저는 멋모르고 중2때까지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대책없이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런 제 안일한 삶이 무너진 것은 엄마의 자궁에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했습니다. 자궁에 있던 혹이 커지면서 엄마의 짜증이 늘었고, 저와 오빠는 그 짜증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때는 오빠의 사춘기의 막바지에 다다르던 시점이었기에 엄마와 오빠는 사사건건 싸웠고,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난 뒤에는 그 화풀이들을 대부분 제가 당해야 했기에 그저 조용히만 지내야 했습니다. 결국, 엄마는 자궁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셨고, 엄마의 짜증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오빠는 엄마의 수술로 인해 철이 들어서인지, 엄마를 이해하며 받아들여주었으나, 철도 덜 들고 눈치도 없는 저는 그 짜증들을 그저 몸으로만 받아쳐야 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함께 일하시던 삼촌들이 뒷담을 듣고 관계가 틀어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당시 상황이 꽤나 심각했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좋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으며, 안 그래도 수술로 몸이 안 좋았던 엄마는 매일 밤마다 울면서 아빠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게다가 한번은 엄마가 외삼촌께 얼굴을 맞고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큰 이모께서 엄마에게 우리들 교회를 권유하셨고, 수요예배를 한번 다녀온 엄마가 저희 둘도 우리들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굉장히 큰 교회를 다니던 저희는 상가건물에 작게 위치한 분당성전이 어색했고 그 작은 청소년부실에서 소리치며 설교하시는 김형민 목사님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회를 다니면서 엄마가 변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시고 아빠를 욕한 삼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 안타까운 사람들로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전 우리들 교회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생기고, 2013년 겨울 수련회에서 처음으로 울면서 기도한 후에는 이러한 사정들을 모두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저는 고1에 올라갈 때 저희 집의 새로운 고난으로 떠올랐습니다. 여태 속으로 숨겨온 울분이 터지면서 점점 못되지는 것이었습니다. 17이란 늦은 나이에 사춘기가 시작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장남인 오빠편애가 눈에 보이면서 짜증과 반항심이 물이 올랐습니다. 게다가 그즈음에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저를 낙태하라고 했단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항심은 배가 되었습니다. 공부는 거의 손에 놓다 시피 하여 입학 때보다 거의 7~80등 이상 떨어졌고, 생전 보지도 못한 점수도 받아보았지만 지금당장 공부하기 싫은 것이 먼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 나를 돌아볼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제훈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제게 하나님께서 아빠가 교회에 가끔씩 나오는 은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 문제로 엄마아빠가 서로 신경전을 하는 일이 늘어났지만 부부목장도 아주 가끔하고 수요예배도 아주 가끔이라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아빠도 어서 우리들교회에 정착하셔서 힘든 것과 아픈 것들을 나누실 수 있도록 중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