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박창빈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가출하시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어떤 여자와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아빠에게 간신히 생활비를 받으셨는데 항상 혈기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빠는 외도사실이 직장에 알려지면 쫓겨날까봐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생활비를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아빠가 6년 만에 갑작스레 집에 잠시 들리셨는데, 전혀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없으셨고 오히려 평온한 얼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진심으로 힘든 상황을 얘기하고 도움을 구하는 말까지 정말 어렵게 꺼내는데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표정하나 바뀌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며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아빠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서 용서가 되지 않았고 그때부터 아빠를 증오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 달 뒤에 아빠와의 연락이 완전히 단절되면서 그와 동시에 생활비도 끊어졌는데, 그때부터 엄마의 건강은 더 많이 나빠지셨고 형은 심한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저희 집이 경매에 팔렸으니 나가라는 통보서를 우편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 가족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매일 힘든 일을 하시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게 아빠가 한 일임을 알게 되었는데, 잠수를 탄 채 자기 자식이 두 명이나 살고 있는 집을 팔았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도 안 되고 열만 치솟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처음으로 아빠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꼼짝없이 길바닥에 내앉을 판이었는데, 우리들교회 어느 변호사님의 도움을 얻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고 저소득층에게 주는 대출금을 받아 낙후된 동네의 빌라 반지하로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집이 좁아지니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게다가 집안에는 곰팡이 투성이에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스며들어와 신발이 둥둥 떠다녀 새벽에 일어나 물을 퍼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집이라도 주신 것에 대해 지금까지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고난이 시작되었는데 평소 걸어가던 학교를 아침 일찍 매일 버스로 통학해야 했고 거리가 너무 멀어 친구들과 만나지 못해서 우울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했습니다. 가장 최악이었을 때는 고1 추석에 장마가 오면서 집이 정전이 되었고 베란다 하수구 물이 역류해서 온 집안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온갖 썩은 내가 나는 물을 퍼낼 때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물을 다 퍼냈지만 집안은 이미 엉망진창이었고 막 일을 갔다 오신 엄마도 이 광경을 보시고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동사무소에서 수재민 피해금으로 1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고난의 사건들이 올 때마다 공동체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저희 가족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확고해졌고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제훈도 받고 공동체와 목장에 붙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을 너무 사랑하시기에 아무나 못 받는 큰 훈련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저희 가정형편은 나아진 것도 하나 없고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고난들과 훈련들이 있고 저희 가정은 세상적으로 여전히 찌질하겠지만 영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강건한 그릇으로서 성장해서 주님이 준비해두신 모든 사랑과 영광을 담길 원합니다. 영원토록 저와 가족들과 함께 하실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