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정명은입니다.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는 하와이에 유학을 가셔서 제가 태어나고 몇 년 후에 입국하셨고, 어머니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터라 저와 제 쌍둥이는 외가에 맡겨졌기 때문에 부모님보다 외가 친척들이랑 더 많이 정이 들었습니다. 유치원에 가면서 부모님이 있는 서울로 왔는데, 당시 큰 호텔 식음료부에서 일하시고 계시던 아빠 덕분에 가족들도 호텔에 자주 드나들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호텔안의 바를 빌려서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외여행도 가고, 사립학교에도 다니게 되면서 물질적으로 부유한 환경이었지만 아빠는 일요일마다 골프를 치러 나가거나 영어다큐채널을 틀어놓고 잠들어버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사건이 왔는데,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거실에 나가니 외삼촌과 외숙모들이 계셨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날부터 점점 흰색 서류뭉치들이 쌓이고 엄마는 회사에 가지 않고 은행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집에서 서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꽤 오래 있던 회사의 재정이 안 좋아지자 엄마와 외가 친척들의 돈을 모아 빌려주었는데, 돈이 오고간 기록을 명확히 정리해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가 돈을 갚지 않겠다고 해서 기나긴 소송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소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좁은 집으로 이사하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아빠만 서울에 남고 저희는 할아버지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니 할아버지께서 엄마가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전화는 안 받아도 제가 하면 가끔 받아서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들으라고 하시며 끊고는 했습니다. 나중에 아빠께서 공중전화 번호를 추적한 끝에 엄마의 위치를 알아내서 찾았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놓였지만 엄마는 그대로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고, 할머니는 저를 걱정하셨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그렇게 엄마 없이도 잘 지내던 와중에 집으로 도착한 편지를 읽던 중 엄마가 청주에 있는 여자교도소에 입소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저는 크게 놀라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약 4년간의 긴 싸움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매주 토요일마다 일이 끝나면 청주로 내려가 엄마를 보고 다시 수원으로 와서 저희를 보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저는 아빠가 오는 걸 불편해하고 말을 걸어도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하고는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오면서 아빠의 의견으로 서울로 올라와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매 수련회에도 빠짐없이 갔습니다. 2010년 5월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5년 만에 모든 가족이 제자리를 찾으며 교회에도 다 같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엄마는 부목자로 아빠는 청소년부와 목자로 섬기고 계시고, 저도 제 안에 있는 관심중독과 인정중독과 착한병이라는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떠올려 보면 어떻게 헤쳐 왔을까 하며 아찔하기도 하지만 이 사건 가운데 아빠를 견고하게 세워주시고, 저에게 때에 맞는 최고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붙여주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제 고난을 자랑하거나, 연민하는게 아니라 재료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