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조건희입니다.
저는 어릴 때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좋은 집에서 살며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7살 때쯤부터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그 때 어머니는 차라리 죽겠다며 옷장에 머리를 박으시기도 하시고, 너무 힘든 나머지 술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결국에 이혼을 하셨고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는 생활비를 한 푼도 주지 않으시고 연락을 끊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위해 직장에 다니셨고 교회도 다니게 되셨습니다.
이사도 많이 다니며 힘든 생활을 계속한 가운데 어머니께서는 메신저를 통해 한 아저씨를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는 이분의 집인 인천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아저씨와 할머니와 누나 이렇게 세 명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종교도 기독교로 같아서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심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여동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집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자주 갈등을 일으키셨고, 저는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 보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삶은 계속 되었고 초3 겨울쯤에는 결국 그 집을 나와 외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저는 여기서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한밤중에 보일러 끄거나 온 집안일 시키기는 등 정말 최악의 생활을 하였고, 심지어는 이모가 오시더니 어머니에게 외할머니께 폐끼치지 말고 나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분한 마음에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 댁을 나왔고 안산의 한 동네에 월세 집을 얻었는데, 저는 이 상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여동생의 아버지께 한 달에 60만원이라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아서 우리 가정을 다시 일으키셨고, 중1때는 초3때 잠시 다녔던 우리들교회를 다시 나가면서 가정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2때부터 저는 어머니께 반항도 하고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가정을 잘 이끌어주셔서 다행히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중3 여름 수련회에서였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성령이 불타는 둘째 날 저녁을 맞이하였고, 이 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께서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하자고 하셨는데, 마침 수련회를 가기 전에 어머니는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와 엄마를 위한 기도를 하고 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며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척을 하였습니다. 머쓱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저도 모르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나의 죄를 돌아보게 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수련회 이후부터 저는 수련회라면 그저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주일마다 말씀이 귀에 들렸고 목사님의 열정도 차츰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청년부가 되면 저의 작은 재능이나마 주님을 위해 쓰고 싶고,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부 스태프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습니다.
비록 여전히 공부는 못하지만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섬기며 외할머니와 아버지를 말씀대로 용서하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