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이찬형입니다.
불신가정 속에서 태어났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 속은 달랐습니다. 화만 내고 욕을 쉴 새 없이 하시는 아빠가 미웠었고, 내가 저지르는 일을 아빠에게 일러바치는 엄마도 미웠습니다. 저의 최대의 고난은 엄마의 암 사건이었습니다. 아빠 하시는 일도 힘들어지고, 엄마의 암 사건까지 오니 힘든 6학년을 보냈습니다.
집에 큰 사건이 와도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는 가족이 되지 못하니 내 마음을 위로 받고 싶어서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힘들 때 엄마가 아는 분을 통해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두부를 만들어 파시는 아파가 일이 잘 안 되어 힘들 때 엄마는 교회에 다니면서 저와 제 동생의 얘기를 들어주시게 됐고, 아빠가 계시지 않을 때 저와 동생 앞에서 아빠 욕하던 모습이 점점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엄마를 좇아 교회에 오기는 했지만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고 게임이 좋아서 교회에 오는 도중에 사라져 게임을 하러 PC방에 하루 종일 가 있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일도 많았습니다.
부드러운 말투로 설교하시는 전도사님 말씀이 들렸었기에 김형민 목사님으로 바뀐다는 소식에 슬펐고, 큰 목소리로 설교를 하실 때 화를 내시는 것인가 라고 생각 됐었지만 릴레이 캠프를 가게 되면서 재미있으시고 체휼해주시는 목사님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나에게 어떤 고난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고, 간증을 하라고 하셔서 쓰기는 했지만 저는 제가 쓴 글도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싶어 하는 성격이기에 간증문을 쓰고 읽는 것 자체가 순종이라는 말씀을 듣고 이 얘기 저 얘기 드러낼 수 있게 됐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게임에 빠져 있으니 툭하면 아빠에게 맞았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아빠에게 맞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는데, 엄마를 좇아 우리들 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내가 아빠에게 맞는 것이 결국 내가 잘못한 것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고, 제가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면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도 됐습니다.
저를 때리시는 아빠를 보면서 화가 났었지만 아빠를 통해 아빠의 청소년기 시절을 듣게 됐고, 아빠도 어느 누구에게 위로 받기보다 조그만 일에도 혼부터 나고 야단맞는 일이 익숙해져 있음을 알게 되니 아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좋은 것은 엄마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아빠 계시지 않을 때 아빠 욕하던 말투가 사라진 것에 더해 저를 때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엄마가 변하면서 아빠에게 교회를 함께 다니자 했지만 아빠는 잘 안되시는 장사 때문에 힘들어하시며 교회 다니는 엄마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빠가 교회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스스로 원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외할머니께서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이혼하라 하셨기에 교회에 나온다는 말씀에 외할머니께도 실망을 하고 강제로 교회에 나오라 하는 전도도 싫어지는 마음이 생긴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받아야 할 시험이라는 것이 믿어지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가 믿음이 생겨서 교회를 다니시게 되고, 엄마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받아야할 고난을 잘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