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권재희(고등부)
고등학교 1학년 권재희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때 교회는 저의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니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니던 교회라 아는 사람도 많아서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지내면서 오빠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저의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와 오빠의 다툼 이후에 오빠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장난감은 저였고, 그 상황에 가운데 싸움을 하다보면 또 다시 부모님과 오빠의 싸움으로 번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고난이라곤 오빠 밖에 모르고 지내던 2007년 10월 14일, 저에게 큰 고난이 왔습니다. 그 날은 오빠와 제가 우리들 교회에 등록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빠 때문에 6학년이었던 저는 엉거주춤 중고등부 예배를 엄마, 오빠와 같이 드려야 했습니다. 엄마가 나도 같이 등록하라고 했지만 전 초등부에 등록하고 싶지 여긴 아니라며 떼를 쓰고 결국 오빠만 등록을 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마지막 새 친구 소개 시간에 오빠는 심실부정맥으로 쓰러졌고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뇌에 산소공급이 안됐고 후에 서울의료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가는 동안 오빠의 심장은 두 번 멈췄었고 병원으로 후송되고도 수차례의 전기충격으로 겨우 다시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이런 상황에 응급 처지법을 학교에서 배웠었습니다. 하지만 오빠에게 해 주지 못한 제 자신을 보며 너무 한심스럽고 내가 했었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텐데 란 죄책감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빠가 병원에 입원하니 당연히 부모님의 관심은 오빠한테 쏠렸고 제가 중학교 입학을 해도 사실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기는 힘드셨습니다. 그러니 저를 잡아 줄 사람도,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고삐 풀린 소처럼 중학교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당연히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못 잡아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와르르 무너져 내릴뻔한 제 인생을 잡아 준건 우리들교회 수련회였습니다. 항상 작은 교회를 다녀 수련회는 노는 곳이었지 예배드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교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정말 힘들게 하나님을 찾았고 마음의 평안도 받았습니다. 이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비록 목사님의 폭풍 설교에 힘들고 지칠 타이밍에 목사님의 주옥같은 말씀에 다시 살았고 같이 열심히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줄 때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 뿐, 평소엔 큐티도 잘 안하고 비록 오빠가 의식은 없지만 퇴원 후 집으로 들어오면서 부모님은 다시 조금씩 정신을 차리셨고 그러면서 저와의 갈등은 심해졌습니다. 엄마는 저의 죄를 못 본다고 잘못된 점을 찔러주면 그게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나도 엄마의 죄만 찔러 대고 갈등은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여러 번의 수련회를 걸치고 큐티를 하며 깊은 나눔 끝에 내 죄를 볼 수 있고 엄마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착한병에 걸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하며 인정받으려고만 악한 모습이 있습니다. 밖에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집에서는 늘어지는 저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더 화를 내셨고 저와의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제게 오빠 고난이 제 고난의 전부 인 줄 알았지만 저에겐 엄마, 공부 고난이 더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reset 수련회를 기점으로 큐티도 규칙적으로 하게 되고 친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신감 까지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공부가 힘들고, 성공하고 싶은 세상적 가치관에 흔들려 자존감만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이 들고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지만 공동체 속에서 굳건히 잘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