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대째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꾸준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몇번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서도 말이죠,
저희집의 아버지는 서울 아산병원의 의사십니다.
또한 어머니는 이화 여자 대학교의 석사 과정을 마치신분입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돈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중 어느한분이 바람을 피우는것도 아니고 6살 차이나는 언니가 저를 때리는것도 아닙니다.
것보기로는 그저 평화로울지 모르지만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못한다는말이 있듯이 저는 지나치게 평화로운 저희 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저와 한살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습니다.
저와 사촌동생이 친하게 지냈던 이유는
이모가 저희 집에 자주 놀러온 이유도 있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착한누나'였기때문에 사촌동생이 저와 놀기를 좋아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착하지않습니다.
그 누구에게 친절해 보인다면 그건 위선입니다. 제가 사촌동생에게 '착한 누나'였던 이유는
'다나는 성격이 좋으니까 착한누나지? 착한누나는 동생한테 양보도 많이 하고 동생잘돌보는거야.알았지?'라는 이모의 말과 그에 동의하는 어르신들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였다면 갑갑하여 밖으로 뛰쳐 나갔을 테지만, 그 당시의 저는 아직 세상의 손길이 타지않은, 즉 소위 말하는'순수하고 때타지 않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촌동생과 저 모두 어린아이였는데 모두 태어날때부터 죄인인, 자기 워나는대로 하면 짜증부터내고,떼쓰는 입장이었는데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잠시 감추었고 어른, 그리고 사촌동생 앞에서는 언제나 '착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천사'의 모습으로 언제나 주변 사람을 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정신연령도,나이도 어렸던저는, "짜증나, 싫어" 라는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내가 없어지면 이 싫은 감정이 없어질까" 라는 생각과 함께 "더이상 착한 누나 하고 싶지않아." 라는생각에, 지금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게도 벽에 머리를 계속 박았습니다. 정말'쿵,쿵,쿵,"하고 말이죠,
하지나 그나마도 머리가 아파서 더는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고
이로써 제 첫번째 자살시도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착한누나 행세'도 끝이났습니다. 동생이 싫다고 이모에게 얘기했더니
'네 그 좋은 성격은 어디로 갔냐,'라며 화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 하자 이모는 그뒤로 저에게 동생을 돌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끝났다'는 안도감에 기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측면으로는 우리집은 '내 감정도 표현 못하는 갑갑한곳' 이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화 와,짜증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라 유치원 물건중 눈에 띄는것이 있으면 몰래몰래 집어왔고 제가 물건을 집어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선생님을 비웃으며 우월감에 빠져 그것이 내 화 와 짜증을 표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것도 잠시 어머니눈에 집에 없던 물건이 생기자 아버지께 어머니가 바로 말씀을 드리셨고 저는 그 벌로 아버지께 훔쳐온 물건의 횟수만큼 손바닥을 맞았습니다.
제 생애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어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로써 제 암울했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기는 끝이나고 초등시절은 정말 정신줄 놓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 생각하며 살았겠지만 지금 초등학교때 생각나는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저에게 말하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우리들교회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저 간식을 먹으러 나오는곳 일뿐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초등 6학년 처음 제자훈련을 받았고 그때 조금 아주조금 정신줄을 똑바로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신줄을 붙잡아 이성적으로 산지 얼마 안돼어서 저는 두번째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이유는 제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엄히 꾸짖으셨고. 저는 정신적으로 아직 유치원 때의 상처가 채 아물기전 그보다 더 큰상처를 마음에 입었습니다. 그때 , 저는 커터칼로 제 왼쪽 손목을 아무 미련없이 그었습니다. 그뒤로 저는 정신이 다 나은거라면서 낫지도 않은 상처를 그대로 두고 이건 내 상처가 아니야 라며 외면 하였고, 최근까지도 이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곪을대로 곪고, 차마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했던 상처들을 조금이나마 표현할수 있었던 방법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번 간증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 였습니다. 최근에는 만화를 끊으려고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친구의 권유로 만화를 접하게 되었지만 그때 J-POP도 같이 접하였고
일본 노래 가사에는 자기연민, 다른 사람때문이다, 라는 비유적 표현이 많아서
늘 일본 노래를 부르고 외우면서 다녔습니다.
요즘은 또 K-POP에 빠져서 얼마전엔 오디션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또다른 오타쿠의 일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 간증문을 쓰면서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간증문을 쓰기 직전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착하지 않습니다. 그 유는 저는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나게했기 때문입니다. 집이 짜증난다 라는 상처를 미처 보지못하고
마음에 있었지만 꽁꽁 숨겨둬야지 라는 생각으로 차마 말하지 못하였던
"제 인생에 신경쓰지마세요" 라는 말을 입에 담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자꾸 저를 데리고 물건을 보러다니시고, 아침마다 성경얘기를 하여짜증나고,
맨날 자신의 주장이 옳다 하시는것이 짜증 났지만.
그냥 길게 말할걸,,, 이라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하러 짧게 얘기한다고 '신경쓰지 마세요' 라고 그렇게 큰못을 어머니 가슴에 박았을까요.
지금 컴퓨터 타자를 치고 있는 이순간도 칼로 손목을 그어버릴까 수십번도 더 자살 충동이 일어납니다. 저는 예수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 만 제가 세례를 받는이유는
제 육체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렇게 제 죄를 말하면서 제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 간증입니다. 지금까지 제 긴 간증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