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해지(중등부)
저는 중3 이해지입니다.저는 4학년 때부터 우리들교회에 다녔습니다. 3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찬양팀을 하면서 온갖 칭찬과 인정을 받았는데 아는 친구들도 없는 우리들교회가 너무 어색했고 예전교회 친구들과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옮기자고 말했을 때 가장 반대한 것도 당연히 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목장모임을 하면서 나눔을 해 왔던 것 들이 사람들 앞에서 편하게 말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빠는 친구와의 동업으로 작은 아기 사진관을 차리게 됐는데, 반씩 돈을 대기로 했던 친구는 돈을 주지도 않고 연락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우리 집은 빚을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는 사진관에 딸린 작은 단칸방 작업실 에서 살게 되었고 나의 어린 시절을 그 단칸방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 그 작업실이 아주 컸던 것 같은데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작은 방이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손님들이 있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창피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작업실 작은 방으로 들어가곤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골목길에 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아 잘 될 것 같지 않았던 사진관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인지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소문을 듣고 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밤에 넷이 모두 손을 잡고 우리에게 집을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점점 커진 사진관은 이번에 4번째 이사를 하였고 처음 사진관에 몇 배나 되게 번창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동안 몸과 마음이 병들어버렸습니다. 예전에 밤낮으로 일하면서 무릎수술도 했었고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도 있어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그런지 2년 전에는 섬유근통 이라는 살이 계속 아프고 마디마디가 아픈 병에 걸리게 되었고 정신과 약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겉보기에는 멀쩡해서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외로운 병입니다. 엄마는 신경이 날카로웠고 평소보다 더 아픈 날에는 아주 조그만 일에도 심하게 화를 냈고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스스로 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가 풀리면 또 자신이 그랬던 것을 생각하면서 힘들어 했습니다. 엄마도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한테 많이 맞았다고 했는데 그 화와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저에게 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들을 내 자식에게 풀 것 같아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프고 힘들 동안 저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집보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1학년 때 남자친구가 병원에 입원 했는데 학원을 몰래 빼먹고 밤에 병원에 갔다가 걸린 적도 있었고 반에 장애인인 애를 괴롭히고 인형필통 머리를 잘라 놓기도 했었고 점심시간에 친구와 애들 지갑을 털었다가 엄마가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2학년 때는 생활지도부 선생님한테 겉옷을 뺏기다가 속주머니에 있던 라이터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을 걸리게 되었었습니다. 또 담임선생님한테 친구들 앞에서 맞고 나서 화가 나서 반항하는 마음에 바로 학교를 나오기도 했습니다. 1,2학년 때는 워낙 철이 없었기 때문에 사건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께 혼나고 나면 엄마와 가족에 대한 분노와 외로움을 풀 곳이 없어서 일기장에 엄마와 엄마를 두둔하는 오빠에 대한 분노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과 저주의 글들을 쓰면서 그 마음을 스스로 달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장을 아빠에게 글키고 말았고 저는 그때 정말 눈물로 하나님께 회개를 했고 엄마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2학년 2학기 때는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로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0점이나 오르게 되면서 공부에 처음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 이젠 절대 아무 일도 없이 보내리라고 다짐하고 공부를 했더니 중학교에 와서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깐깐한 담임은 화장과 렌즈를 끼는 것을 평소에 하지 말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듣지 않자 집에 전화를 했고 아빠가 학교에 불려 오게 되었습니다. 중3 마지막인 만큼 진짜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지 않고 떡볶이를 먹으러 학교를 나가기 위해 담을 넘었다가 또 그게 걸려서 같이 넘은 친구들과 똑같이 걸렸고 다른 친구들은 담을 다 넘어가고 좋게 말했지만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또 아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애들은 똑같이 해도 걸리지 않을 것들을 저는 하나님께서 조그만 것들 까지도 걸리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아직 그렇게까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엄마가 아프고 우울증 약까지 먹으니까 내가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맨날 속만 썩이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엄마와 관계가 많이 회복 돼서 다시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 때 위로해 주고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딸이 되었습니다.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들 교회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다’ 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우리들교회가 아니었다면 우리집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을 우리들 교회에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한번 차린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세상이 좋아서 하나님이랑 멀어졌던 만큼 다시 돌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