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세민(중등부)
저는 부모님 모두 교회에 잘 다니시는 5대째 신실한 기독교 가문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다리를 꼬맸을 때 큰 소리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을 정도로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러던 중 2학년 때 저는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떠났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2년 동안 운동도 하고 영어도 늘면서 한국이 그립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제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뇌졸중 때문에 왼쪽이 마비 되셔서 아빠는 급히 한국으로 먼저 가셨고, 남은 저희 가족은 2007년 6월 정이 들었던 말레이시아를 떠나 낯선 한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에 폭풍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 똑똑하구나, 신동이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저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학교에서 올백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5학년에 들어서면서 가장 유명한 영어학원, 수학학원에 들어갔고 제 학업실력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는 학교에서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집단 왕따를 시키기도 했고, 욕은 하는 말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 잘하고, 엄마 말 잘 듣고 학급 회장까지 완전 엄친아 였습니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나 더 배운게 있습니다. 2년 넘도록 지켜온 너무나도 아픈 고난입니다. 저는 음란물을 접하면서 5, 6학년 때에는 거의 매일, 엄마 몰래 야동을 봤고 매번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아주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지만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컴퓨터에 암호를 설치해 놓았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접했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있습니다. 기도할때는 늘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부르짖지만 저는 아직도 털어놓기 힘든,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오기 전에 저희 가족의 믿음 생활은 너무나도 처참했습니다. 저는 신앙 레벨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 교회에 가서 졸기만하고 은혜롭지도 않고 설교가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습니다. 큐티는 물론, 성경책도 일년에 한두번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주일날 무슨 경시대회만 있으면, 교회는 빠지고, 인터넷 예배만 드리는 형식적인 교회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악한 생활을 할 때 아빠가 암에 걸리는 사건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상관도 안 하고 제 죄도 못 보고 회개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더 악한 길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아빠가 암에 걸리자 저에게는 불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려고 했던 국제중 꿈도 접게 되고, 아빠의 암과 우리 가정을 위해 부모님께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자, 저희는 방해가 된다고 경기도 산골의 어느 기숙사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저는 대치동에서 이룬 명예와 학원들을 다 떠나자니 정말로 싫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는 양의 탈을 쓴 순종파였기 때문에 학원을 내려놓고 기숙사로 떠났습니다.
기숙사에서도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맨날 욕하고, 왕따 시키고, 괴롭히고,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2개월 만에 한국학교에서 졸업을 해야된다는 명분으로 다시 다니던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들 교회 초등부를 다니게 되었고 저에게는 크나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름을 날리겠다고 일주일 앞둔 기말고사 준비를 했습니다. 거의 잠도 안 자고 공부만 했습니다. 때는 2009년 11월,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교만한 마음을 멈추시려고, 시험 이틀전 신종플루를 저에게 선사하셨습니다. 그토록 잘 준비했던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성적표에는 제가 용납하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점수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새로운 학교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점수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었는데, 별 볼일 없는 봉천동에 있는 외국인 학교, 서울 크리스천 스쿨, 로 보내지면서 또다시 제 이름은 짓밟혀 졌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고 나니, 평안을 주셨습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 환경에서 6개월 동안 신앙으로 무장하고 우리들교회 여름수련회에 갔습니다. 그 동안 제 죄를 처음 바라보게 되었고, 제 고난을 차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2010년 8월 12일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울었고, 은혜 충만으로 수련회를 나왔습니다.
우리들 교회를 다니면서 제가 인정 중독이라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저를 치켜세워주는 맛에 살고 공부도 인정받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보다 저에게 칭찬을 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합니다. 저는 칭찬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믿었고, 바로 얼굴을 돌리는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꼭 사람들이 나중에 내 칭찬을 하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많은 사람과 있으면 괜찮지만 단 둘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불편합니다. 이러다 보니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고 결국은 혼자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았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사랑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참 많은 선물을 선사하셨습니다. 저에게 좋은 두뇌를 주셨고, 멀쩡한 사지를 주셨습니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게 하셔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가장 가치있는 선물은,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저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신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에게 저의 모든걸 맡기고 싶습니다. 올 한해 제 목표는 매일 큐티를 하는 것인데, 이제 복음서가 끝났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는대로 정말 도와달라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제 고난과 저의 가족을 위해 많이 기도들 해 주세요. 하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