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고유선(고등부)
안녕하세요 고3 고유선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엄마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 전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이 제일 무서웠고, 일주일에 3-4번은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왜 맞아야하는가를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맞을 때마다 엄마의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리고, 맞고 있는 저에게 등을 돌려 방으로 주무시러 가시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크면서 저는 그것이 방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딱히 미워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는 저에게 모든 걸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육체적인 폭력 속에서 저는 깨달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일류대학을 나오셨고 잘생기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아빠가 가정안에서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때부터 남자는 믿을 수 없는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겉보기에 잘생기고 훌륭해도 그 안엔 폭력성이 존재해서 저에게 상처를 줄꺼라 인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타면서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부분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성격면으로 사교성 좋은 아이, 성실한 아이로 저 자신의 이미지를 굳히길 원했습니다. 결국 뜻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얻었고 누구와도 친했으며, 생활기록부에는 교우관계가 원만한 사교성이 좋은 아이로 항상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를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국은 관계에서는 당연히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항상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제가 가지지 못한 부분까지 가져야만 완벽해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달란트를 무시하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모습보단 ‘왜 내 달란트는 겨우 이거지?’ 라고 자책하면서 닦달했습니다. 항상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의 달란트가 엄청나게 커보여 열등감으로 끙끙 앓았으며 그 아이가 결국엔 미워지고 싫어졌습니다. 짜증이 나고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또한 저 자신을 남들에게 무겁게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다가가기 힘든 사람 말입니다. 저에겐 그것이 멋져보였던 것입니다. 거울 속 얼굴을 보면서 ‘웃는 얼굴보단 웃지 않은 모습이 더 이뻐’라고 주문을 걸어 항상 웃기를 거부했습니다. 엄마,아빠는 그 나이땐 한창 웃을 때인데 왜 그리 걱정,근심이 가득 차 있냐며 제가 웃기를 원했지만, 저는 제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웃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나와 같이 당했던 언니와의 관계는 겉으로는 좋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저는 받았지만, 언니는 차가운 시선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언니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외할머니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때에 전 가슴으로 알았습니다. 언니와 아버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걸 말입니다. 그 당시 전 저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니를 더 따랐습니다. 언니가 시키면 툴툴대도 다 했습니다.
2000년도쯤 엄마가 하나님 안에서 좋은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료공부방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가정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성은 점차 줄더니 사라져 버렸고, 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전보다는 사랑이 넘치며, 엄마와 아버지관계에선 ‘사랑’이란 깨알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엄마에게 아버지의 가정상황과 아픔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언니와 저에게 했던 행동들을 이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이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질 진정으로 사랑하며 용서 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전북 무주에 있는 대안학교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엔 사회적으로 홀대 받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음주,흡연,도벽,성관계 등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은 행했습니다. 그 안에서 아닌건 아니라고 생각한 저였지만 2년동안 참다 결국 그 물에 들어 쾌락을 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서했다고 느꼈던 아버지가 저에게 준 상처들이 다시끔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제일 친했던 남자아이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며 순간 소름과 함께 그 자리를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기억 속 아버지가 다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제가 술을 마시면서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을 때리는 행위까지도 아버지를 기억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제 자신을 계속 학대하고 올가미 속에 가두었습니다. ‘난 부족하다. 왜 이것밖에 못할까?’라고 주문을 걸어 스스로 제 자신을 지치게 만들었고 관계에서는 최악이였습니다. 올해부터 이런 상처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하면서 전 흡연과 음주에 손을 점 점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흡연이나 음주를 할 때마다 올라오는 아토피로 중단하였습니다. 중단했을 뿐이지 끊지는 못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당연히 흡연이 이어졌습니다. 하고 나서 항상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일 날 무단외출로 전주를 가서 졸업생 오빠를 만나 술 사달라하여 술먹고 추태부리고 안 피던 담배피고 아이들에게 권유하며, 찜질방에서 찌질하게 잠을 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더 무서웠던 건 몰래 할꺼 다하는 저에 대해 모르시는 선생님들께 막차를 놓쳤다는 거짓말을 해서 징계를 면했던 부분입니다. 거짓말이 그리 술술 나오는지를 처음 알았습니다. 제 자신이 한심하고 얻은 것도 없던 일탈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는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고 우리들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를 다니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이란 사실을 피부에 와닿게 해주셨습니다. 항상 신앙과 사회생활을 따로 분리시켜왔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들로 통해 하나님과의 접촉을 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절 포기하시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환경과 상처, 아픔들이 저를 미워해서 주신게 아니라 제가 진정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주신 고난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항상 주님의 손길을 무시했지만 포기하지 않으신 부분에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조금씩 주님과의 관계를 좁히기 위해 큐티로써 악과 승부하겠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