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하림(고등부)
저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까이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의 종교는 불교여서 어렸을 때부터 가끔씩 절에 다니곤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절에 다니시고 저희 집에는 부적들이 붙여져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영향으로 절에 다니던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고난이 오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중2 때까지는 인천에 살았습니다. 그 때에 가정형편이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파트에 살면서 갖고 싶은 것을 거의 누리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모르던 저는 인천에서 공부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아빠의 권유로 엄마, 오빠랑 셋이 고모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유학을 갔습니다. 처음엔 고모네 집에서 살았지만, 고모가 계속 돈을 요구하셨고, 집안일은 저희가 오고 나서는 전혀 안하셔서 엄마가 모두 도맡아 했습니다. 이런 고모의 성격을 알고 나서는 자주 일어나는 트러블로 인해 엄마, 오빠랑 따로 집을 나와서 셋이만 살았습니다. 오빠랑 저는 비싼 학비를 내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많은 학교를 다녀서 영어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고 한국 유학생들과 놀러 다니면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는 방황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노래방을 가거나 쇼핑을 하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며 다녔습니다. 집에 와서는 공부는커녕 컴퓨터를 하거나 잠만 자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2~3달을 방황 속에서 살다가 유학 비자 문제 때문에 지인의 소개로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의 유학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하셨고 저희는 어쩌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비자 문제 때문에 자꾸 돈을 요구하셨고, 돈만 가로챘을 뿐 비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사업실패로 몇 천만원의 돈만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은 돈만 요구하는 그 목사님 때문에 매주 다니던 교회가 역겨울 정도로 싫어졌고, 믿음도 사라졌습니다.
1년 후, 이제 돈도 떨어지고 유학비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막 의사소통이 되려고 하는 시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적응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달라진 가정형편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캐나다와 공부 방식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성적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변해버린 환경들이 너무 싫었고, 인천, 캐나다에 있던 삶들과 친구들이 그리워서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웃음도 점점 사라지면서 무표정인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친구 은총이가 우리들 교회에 한번 와보라고 전도했습니다. 처음엔 전 교회 목사님께 받은 상처도 있고 그 때문에 믿음도 점점 사라져서 고민하다가 결국 한두 번만 나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김형민 목사님의 말씀과 선생님, 친구들과의 나눔이 좋아서 우리들 교회를 계속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슬플 때면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면 같이 기뻐해주는 쌤과 친구들과의 나눔을 통해 우울한 마음들이 많이 치료 되었고, “고난은 축복이다” 라고 말하는 교회 덕분에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사업에 실패한 후, 작년 3월에 뉴욕에 가서 직장을 구하셨습니다. 이제 좋은 일들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연락두절로 다시 고난이 왔습니다. 올해 1월이 아빠와의 전화통화가 마지막이었고,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아빠는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아빠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매일 밤마다 아빠가 죽는 꿈만 꾸었습니다. 매일 같은 악몽 때문에 저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왜 하필 이런 고난을 주셨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큐티를 하고 저의 죄를 보고 회개하면서, 이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빠 사건을 주심으로써 한두 번만 갈려고 했던 교회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저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아빠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힘들었던 유학시절로 방황했던 저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