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
채은영
저는 모태신앙으로태어나 초등학교1학년때부터 우리들교회에 나오게되었습니다. 저희집안은 교육자집안으로 부모님모두 초등학교교사였습니다.
그러다 아빠는 일본 동경학교로 발령을 받으셨고, 저희 집안은 일본에서 살게 되었으며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평범했던 저희 집안은 아빠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러지시면서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없었던 아빠의 가장 잘난 부분을 치신 것입니다.
아빠는 일본에서 2번 한국에서 1번 총 3번의 대수술을 통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그래서 휴직 중이셨던 엄마는 복직하셔야만 했습니다.
수술 후 아빠는 처음에 몸도 못 가누시며 누워계셨고 급기야 돌아가실 뻔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빠를 살려주셔서 지금은 조금씩 걸어다니시고 운동하실 수 있는 기적을 하나님께서는 베푸셨습니다.
지금도 조금 그렇긴 하지만 예전에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창피해서 친구들에게는 삼촌이라하며 외면하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되도록 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 아빠의 아픔은 창피함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약재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당히 우리 아빠에 대해 얘기 할 수 있는 그런 용기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아픔으로 인해 큰언니는 남자친구로 아빠의 사랑을 채우려했습니다. 그렇게 남자를 만나고 다니다가 언니는 외제차를 타고 명품으로 치장한 8살의연상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혼전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국 2008년5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잘 살고 부자인 줄만 알았던 형부라는 사람은 모아둔 돈도 없고 직장도 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이 사실을 알고 형부에게 얘기하였더니 형부는 크게 화를 내며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언니는 형부와 떨어져 지내기로 하고 3달동안 저희 집에서 살게 되었었는데, 언니는 이혼을 하고 싶어했지만 우리들교회에서는 이혼을 반대하기 때문에 언니는 참고 다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사건을 통해 형부도 교회에 매 주 나오며 큐티도 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잘 살다가 또 이번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형부가 직장을 계속 다니지 않는데 그것을 큰언니 탓으로 돌리며 이혼하자고 쫓아내서 결국 언니는 다시 우리 집에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습니다. 형부의 요청으로 현재 이혼소송중에 있고, 10월달에 법정에서 판결이 나는데 그때까지 저희 언니가 믿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형부에게도 하나님께서 찾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제 고난은 또 있습니다. 저는 착하다는 소리에 약해서 남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며 그 부탁을 거절해도 매우 미안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많아서 학교에서 착한 척, 공부잘하는 척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것 때문에 열등감도 많고 시기심과 질투심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한 것이 죄인지도 몰랐는데 이번 여름 수련회를 통해 깨닫게 되었고 정말 진심어린 눈물을 처음 흘리며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믿음이 점점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 사건을 통해서 저희 가정을 한마음되게 하시고 저를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