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믿는 어머니와 믿지 않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9살 무렵, 아버지께서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을 믿고 하늘나라로 소천하시는 일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저는 주변 어른들의 동정 속에, 나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왜곡된 인식 속에서 자라며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했고, 당당한 척하며 살아가려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려워졌고, 학교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 속에 관계의 아픔을 안고 청년부로 올라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세상 친구들보다 제 아픔을 공감해주는 교회 친구들이 더 편하게 느껴졌고, 스무 살부터는 교회 친구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애정결핍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로 채우려 했고, 결국 교회 친구들과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요일이면 부서를 섬기고, 큐페에서는 고등부 아이들이 술ampmiddot담배하는 것을 막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불과 재작년까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는 사이,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만난 하나님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학생활에 집중했습니다. 대학교에서의 친구 관계가 만족스럽게 채워지자, 교회와 부서에는 점점 무관심해졌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도파민을 쫓는 삶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신앙을 놓고 있던 사이, 친구들과의 깊은 대화도 어려워졌고, 변해버린 교회 친구들과는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영적 교제가 끊긴 공동체에서 점차 부서도 멀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대학교 친구들이 있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지만, 졸업이 가까워지자 지역에 친구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전에 다니던 고등부에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다녔던 부서니까, 그냥 적당히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참석하던 어느 날, 새로 올라온 스태프 동생에게 외모 관련 농담을 했다가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 사람을 싫어하는구나라는 직설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날 부서가 끝나자마자 간사님에게 고등부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간사님은 2월까지만 함께 해보자며 저를 설득했고, 저는 그 약속만 지키고 떠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삶에 연달아 무너지는 사건들이 찾아왔습니다. 교회에서는 관계가, 대학교에서는 성적이, 가정에서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무너졌습니다. 너무 힘든 마음에, 제 인생의 이 사건들을 해석받고 싶다는 심정으로 큐티책을 펼쳐 하루하루 억지로라도 말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겨울, 고등부 큐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저를 빈 들에 두셨던 이유,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를 말씀을 통해 해석받으며, 드디어 어머니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단 하루를 위해 그동안의 어리석고 죄 많던 삶을 참고 기다려준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때론 저를 꾸짖고 지적했지만 끝까지 내치지 않았던 공동체 지체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붙어만 있었더니 눈물 흘리며 회개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회개는 최고의 감정이다라는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수준이 되지 않는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런 저를 품어준 지체들amphellip 그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고백드립니다. 또한 이번 여름 큐페에 고등부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