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한나_간증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영아부 때부터 주일이면 교회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저희 아빠는 그 당시 대기업에 근무 하셨고, 엄마는 사업을 하셔서 버신 돈으로 여의도에서 파리바게트를 하시며 저는 굉장히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97년IMF때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의 부도로 급작스럽게 가정형편은 기울어졌고 원래부터 성격차이로 다툼이 있으셨던 부모님께서는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닥치자 싸움을 하시는게 잦아지셨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생활을 마칠 때쯤, 가정환경은 더 어려워져 서울에 계신 할머니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됐습니다. 엄마는 사업을 계속 하시면서 밖에서 술을 드시는 날이 잦으셨고, 어느 날 참다못한 아빠와 다투시던 중에 아빠가 엄마를 밀치시면서 엄마는 책장에 머리를 다치셔서 다섯 바늘 정도 꾀매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모님이 별거를 하셨고, 저는 엄마와 둘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제가 6학년 때쯤 갑작스레, 엄마와 저는 꽤 큰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부터 아빠는 주말마다 집에 오셨고, 그동안의 공백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름 그 시간을 잘 보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고 특목고입시를 준비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저는 자만해지고 친구들을 선동해 안 좋은 일을 행하곤 했습니다. 때마침, 엄마가 하시던 일이 안 좋아지면서 분당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학 온 학교에서 예전과는 다른 환경에 공부마저 손을 놓게 되었고, 엄마는 하시던 일에 연류되시어 경찰서를 드나드시면서 조서를 받느라 일을 하실 여유가 없었고, 경제적인 부분은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놀면서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올라갔는데, 제가 배정 받은 학교는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던 꼴통학교라고 불리던 인문계였습니다. 몇 날 며칠을 울고 입학한 후에 1학년 때는 여자반이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다니며 무사히 2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2학년 때부터는 합반이었는데 1학년 때는 안 그러던 제가 다른 여자친구들처럼 점심시간이면 화장을 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반 친구들과 단합한답시고 야자 띵까고 나가서 술 먹고 놀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같은 반 친구와 불신교제를 하였고, 교회는 다녔지만, 말씀이 없어서 불신교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와 다시 친구사이로 돌아오게 되었고, 같은 반이었던 저로서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성적은 밑바닥까지 가게 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던 저는 우울증이 왔고, 밖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거나 하소연 하면서 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힘들던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교회에 오게되었습니다. 온지 3주만에 겨울캠프에 가게되어 친구도 없고 해서 많이 걱정했지만, 그곳에서 지금 같은 반 친구인 하영이와 여러 아이들도 만났고, 그곳에서 지금까지의 저의 죄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지난 저의 죄들을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는 예전의 불신교제의 휴유증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3학년에 올라와서는 예전의 죄들을 자제할려고 했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오히려 제가 친구들을 선동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제자훈련을 통해 저를 회개하게 하셨고, 제자훈련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다거나 샛길로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아직도 가정환경은 좋지 않지만, 요즘은 엄마와 새 아빠와 같이 큐티도 하고 김양재 목사님 설교 들은 걸로 같이 나눔도 하면서 환경이 좋았을 때보다 더 마음의 평화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