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유희상
안녕하세요, 고1 유희상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신실한 Christian 이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교회를 취미로 다니셨고, 신앙에 대한 확실함이 없으셨습니다.
저의 가정은 아버지의 폭력과 분노로 다스려져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맞았습니다. 맞을 때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증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너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인지 사회생활능력이 떨어졌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구를 사귀지 못 해서 왕따를 당하며, 저의 유일한 친구는 제 동생과 어머니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힘든 결혼 생활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시고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셨습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슬프고 느낌이 이상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자 아버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으로 가족을 다스리고, 매일 소리만 지르던 아버지께서 김양재 목사님집에서 하던 모임에 어머니와 같이 나가게 되었습니다.그러자 우리 집안에는 폭력이 사라지고 평화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고, 나중에는 우리들교회 개척member까지 되셨습니다.
2005년 여름, 부모님은 충격적인 뉴스를 저와 제동생에게 말해주셨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많은 결정 끝에, 저와 제동생의 미래를 위해 캐나다로 2년 이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교 6학년 이였지만, 저에게는 캐나다로 이사 하는게 큰 충격이 아니 였던거 같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캐나다로 갈려고 20시간 비행기를 탄 기억밖에 없습니다. 캐나다에 가는건 저의 가족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일으켰지만 가장 큰 변화는 한국에서는 왕따이었던 제가 적응을 잘해서 인기짱이되고, 반대로 동생은 한국에서는 인기짱이었는데 캐나다에서는 친구를 못 사귀었습니다. 저의 남매는 인생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왕따여서 교회가 항상 피난처이고 휴식처여서 Q.T.도 정말 열심히 했고, 교회생활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 가자 인생이 풀리고, 모든게 편해지자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갔고, 신앙생활에 점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활가운데 캐나다로 이민 3년째 되던 해에 제 인생에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전학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힘든 시간은 보냈습니다. 하필 이때 아버지만 한국에 떨어져 계셔서, 어머니와 동생하고만 지내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캐나다의 삶은 정말 혼잡하고, 불행하고 힘들었고, 거기에다가 학교 고난까지 찾아오니 저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여름, 저는 한국에 3년 만에 들어오고, 우리들교회로 다시 돌아와 김형민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해 여름이 끝나고, 캐나다로 돌아가게 됐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좋은 학교생활을 보내게 되었고, 저의 가족도 다시 평안해졌습니다.
그 기간으로부터 2년이 지나고 캐나다에서는 지내지는 5년, 2009년 12월 저의 가족은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들어오게 된 이유는 어머니의 여동생, 즉 이모가 폐암에 걸리시고 하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상태라 어머니는 수많은 반대와 손해를 감수하고, 여동생의 구원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사와 전학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더 이상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시라는 곳을 가고, 그러러니 하면서 다음은 하나님이 어떤 곳을 보낼까? 라고 생각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잘 모르고, 교만하고,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을 바울로 바꿔 주셨듯이 저를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한국말을 어색하게 하는 고1 유희상의 간증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