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이윤선
저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가 교회에 처음 나가시게 된 사건은 IMF때 주식투자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엄마만 따라다니다가 7살 때부터 인천의 한 교회에 규칙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율동부에 들어가서 율동을 하기 위해 교회에 다녔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친밀해지지 못했습니다. 수련회에 가면 눈물도 흘리고 은혜도 받았지만 그때뿐이었고 다시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성경말씀을 꽤 안다는 것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유대인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엄마의 강요로 인해 교회에 다니셨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엄마 때문에 다니시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씩 회사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친구 분들과 만나면 술에 취해 들어오시곤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시면 항상 엄마와 싸우시면서 두세 번쯤은 이혼얘기까지 오고가게 되었고 아빠가 술을 드실 때마다 오빠는 안쓰러워하고 저는 두려움에 떠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빠는 말을 안 하시고 엄마는 할 말 다하시는 성격이시기 때문에 항상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잔소리가 들렸고 저는 지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아빠가 술 먹어서 취한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아빠는 술을 끊는 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지만 결국 술을 끊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영어 학원을 차린답시고 6학년 초에 이사를 하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던 중 제가 중1때 직장암에 걸리셨습니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하시고 금방 회복하셨습니다. 엄마는 그 후로 믿음에 열심을 내시고 교회를 더 열심히 다니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인터넷으로라도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실 수 있었지만 저를 빼고 아빠,오빠는 우리들교회로 다니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만 친구가 다니는 다른 개척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작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서로 친해지기 쉬웠습니다. 그 사이에 엄마는 그동안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우리들 교회로 옮기셨고 오빠와 아빠도 우리들 교회에 나갔습니다. 저는 친구 따라가는 교회에 적응해 성가대도 서고 언니오빠들과 장난치는 것이 재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중1 크리스마스이브 때 제가 너무 늦게까지 교회에 있자 가족들은 제가 있는 교회로 찾아왔고, 엄마는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시더니 목사님의 믿음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든다며 바로 저를 그 교회에서 빼내셨습니다. 사람들과 정이든 저는 밤새 울었고 그 다음날 가족들이 다니는 우리들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온 날은 성탄예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강당을 빌려서 예배드리는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처음 본 우리들교회는 너무 따뜻한 분위기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중등부에 나왔습니다. 저는 큐티 라는 것도 몰랐고 성경말씀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교제금지에다가 간증하는 것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창피해서 하지 못 할 말들을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만 말했습니다.
저는 딱히 고난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모두 우리들교회에 나오신 후 사이가 좋아지셨고 양육도 받고 매주 목장을 나가십니다. 아빠는 술도 끊으셨습니다. 오빠가 괴롭히지도 않고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큰 고난은 이사 때문에 전학을 와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에 학교와 지금의 학교분위기는 많이 달랐습니다. 친한 친구가 없는 학교는 정말 지루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멍하니 앉아있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 먹을 친구도 없었습니다. 같이 밥 먹자는 친구가 있었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찐따’같은 그 친구랑 밥 먹기가 창피하고 마침 배도 아파서 점심도 먹지 않았습니다. 전학교에서 그래도 찐따 인 친구와 다닌 적이 없던 저는 이 학교생활이 허탈하고 찐따 같은 친구들이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 짜증났습니다. 그래서 자꾸 겉모습에 신경 쓰게 되었고 엄마한테 겉모습이 중요하냐고 그렇게 꾸며서 뭐하려는 거냐는 꾸중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애들 다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안 꾸미는 애가 어딨냐고 대들긴 했지만 엄마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우상인 제게 하나님이 친구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고난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은 친구들이 말도 많이 걸어주고 인사도 해줘서 점점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애들이라도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 와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하지 못했던 가정예배도 점차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꾸준히 목장에 나갑니다. 이제 인천에서 서울의 신림동으로 이사를 왔으니 교회도 더 가까워 져서 너무 좋습니다.
저번 주 토요일에는 증조할머니가 3주전에 김형민 목사님을 통해서 세례영접을 받아서 구원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머지 가족들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고난이 없어 말씀을 깨닫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고난 없는 것을 고난이라 생각하고 가정예배 때 졸지 않고 엄마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교회 와서도 목사님말씀에 집중하고 믿음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