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박재령
저는 어릴때 부터 부모님과 함께 집근처 작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릴때 집안상황이 좋지않아 부모님이 자주 싸우는 모습을 보게되엇고, 한번은 이혼위기에까지 놓여서 양육권을놓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집안상황이 좀 안정되고 초등학교를 다닐쯤 되어서부터 아버지의 일도 점점 잘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점점 잘되는 것으로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세상과 사람이 그렇듯이 아버지는 일이 점점 잘되고 사업의 규모도 차츰 커져가자, 어느새 부턴가, 교회를 멀리하시고, 집안일보다 교회일에 더 힘쓰시는 어머니를 향해 구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일마다 교회를 다녀온 저에게 아버지는 교회에가서 어머니를 데려 오라고 하셨고, 그날밤은 마치 악몽에 시달리는 듯한 날이였습니다. 어느날엔 아버지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오셔서는 저와 동생을 불러서 거실에 앉히시고는 시계를 못보고, 인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자주 밤을 지새워서 가르치시곤 했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께서 도움 요청을 위해 친척에 전화를 하려고 하자 어디선가 망치를 들고 오셔서는 집전화를 박살을 내셨고, 우리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어가 있자 그 문도 부수기 일수였습니다. 매일 결코 행복하지못한 생활이 계속되고있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어머니가 배에 통증을 호소하시면서 한여름에 이불을 몇#44226;이나 깔아드려도 오한을 느끼셔서 새벽에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많이 아프셨던 걸로 생각됩니다.
몇일뒤, 많이 좋아지셔서 퇴원하시면서 잘 지내다가도, 금새 또 다시 아프셔서 병원과 집을 몇 번이나 오락가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 몇 년간 어머니는 계속 병원에서 생활하셨고, 제가 중학생이 되던 3월초에 아빠께서 갑작스레 중국유학을 권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3일뒤 바로 출국해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어릴때 아랫 집에 살던 이모가 그 학교에 있다고 해서 가게된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 도착 후 술과 담배도 배우고, 쌓인 스트레스에 간음도 자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내 마음에 부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들은 바로는 ‘부흥‘은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 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중국 국제학교의 기독교 선생님들 아래에서 생활하면서 QT를 알게#46124;고, 중보기도의 위력을 보았고, 예배드리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영접을 하면서 생활과 마음가짐이 변하며 한마디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중도기도제목을 발표할 때 문득 엄마생각이 나서 기도제목을 부탁했는데, 정말 의심 없이 한달 하고 반을 중보기도 했더니 엄마가 엄청 많이 괜찮아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에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괜찮아지셨다는 말과 동시에 기도와 예배드리는 태도가 점점 변해갔고, 그 후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담배에 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고, 학교수업에도 매일같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학 때 유스코스타 에 참여해보라는 담당선생님의 말에 친구들과 같이 참여했고, 다시 그곳에서 눈물로 회개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별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다가 엄마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우리들교회를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유학이후로 이곳에 와서 제자훈련을 받게 되었고, 양육을 도와주는 누나와 같이 훈련을 받는 친구 형, 누나들을 만났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공선생님이라는 좋은 지도자 밑에 훈련받게 하셔서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제자훈련 기간 도중에 엄마의 병이 나와 동생에게 유전성이 있다는 말에 검진을 받았고, 검사받기전 속을 비우기 위해 전날 정오부터 약을 마셨는데 그 맛이 마실 게 못됩니다. 그런 약을 둘이서 페트병 한병 반 정도를 마시라니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검사를 마치고, 얼마 후 나에게는 대장에 많은 용종이, 동생에겐 발견 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여기서 대장 용종이란 대안안쪽의 벽이 비이상적으로 자라나 혹이 되어 돌출된 것인데, 암이 될 수 있는 악성용종과 암으로 전이될 확률이 적은 양성용종으로 나뉩니다.) 검사결과에는 양성용종이라 암으로 전이 되진 않아 보였지만, 주치의 선생님 말씀이 어린나이부터 용종이 생겼고, 유전적인 것이라 엄마처럼 후에 큰 병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셔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뭐랄까 남들이 보기엔 딱 하게만 느껴지겠지만 내게는 딱 하나, 동생에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왠지 기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아파하는 걸 봐 오면서, 이런 상황을 동생이 겪는다면 분명 힘들어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검사가 있 은지 한 두달 뒤, 입원을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번 만큼은 여느 때 와는 다르게 떨렸습니다.
수술에 앞서 한 두주 정도가량 검사를 위해 금식하며 이것저것을 검사받았고, 그 사이
제자훈련 때의 멘토 형, 누나들이 반갑게도 병문을 와주었습니다. 수술 전날 검사할 때와 같이 장을 비우는 약을 들이켰고, 시간이 되어서 수술을 들어갔다. 수술은 8~9시간 가량 걸렸다고 합니다. 최근 나온 복강경이라는 기계인데 의사가 고생하지만 환자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기나긴 수술 중 몇 번의 수혈이 있었고, 수술 후 에도 옆구리를 통해 피가 고이지 않게 관을 연결해 놨는데, 이곳으로 2~3배가량의 피가 더 나와 그날 밤새 주치의 선생님이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피는 줄었고 2인 병실에서 6인실로 내려오게 되었다. 2인실에 있을 때는 마취 되 있어서 몰랐는데 6인실로 내려오자 허리가 끊어지는 흔히 말하는 산통 같은 통증이 왔었습니다. 너무 과하게 아파 마약성 진통제도 몇 번 놓았고, 죽고싶다...죽고싶다 하는 생각도 수백번 씩 했습니다.
감사하게 몇일 뒤에는 앉아 있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제자훈련 때 같이 제자훈련을 받았던 형 누나들과 친구들이 와주었고 한달 정도가 지나 식사도 가능하게 될 무렵 목사님도 병문 차 들려 주셨고, 그날 QT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때 말씀이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님께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수술 전 후에 찾아와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수술 전에는 긴장하지 않게 되었고, 수술 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내게 견딜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비로소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서 간증 하고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는데, 보통 대장제거수술을 받은 후에는 짧아도 2년 가까이는 집에서 편히 쉬면서 회복하고, 보통 대장이 없는 사람은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화장실을 가는 일도 수술 직후에는 보통 열 번을 더 가게 되고, 그 후로 또 몇 년 정도의 회복 후에야 평균적으로 하루에 5번씩 정도를 가게 된다고 하셨는데
총 5~6년 은 지나야 할게, 단 두달 만에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인생에 힘들 때 함께하시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도움주시고, 항상 모자란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 돌리고, 우리에게 어떠한 일과 위험이 있더라도 무서워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저를 꾸준히 예배드리게 하시고, 고난도 견뎌내서 이 자리에서 간증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