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무뚝뚝한 군인아빠와 평범한 가정주부 엄마 밑에서 자랐고 재미없는 동생까지 이렇게 넷이서 살았습니다. 언제부터 엄마가 우울증을 달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수면제도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6학년 때 학교에서 수영실습이 있는 날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같은 교회 집사님들은 저보다 더 힘들어 하셨고 서울에 갔다는 엄마가 밤늦게 까지 집에 오지 않아 우리는 다른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광주에 사시는 외삼촌들과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저희를 밤늦게 찾아왔을 땐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고 하시더니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족사진에 있는 엄마사진이 영정사진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사실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교통사고 밖에 아는 게 없고 어디서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교통사고라고 받아들였지만, 당일 몇 일 전에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데 엄마가 무언가를 구석에 앉아 열심히 무엇을 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보려고 하니 계속 숨기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서가 아니였나, 엄마가 자살을 하신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공황장애가 있는 아빠한테 엄마 얘기하는 것도 미안하고 심한 죄책감을 가지시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조심스러워 집니다.
장례식을 하던 당시 아는 이모한테 제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울며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장례식후에도 2개월간 아빠는 기도원에 가서 생활하시고 저와 동생은 그 이모네 집에서 생활했었습니다. 2개월 동안 그 이모네 집에서 잘 지내서 엄마가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몇 달 간 집에 친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지내기도 했는데 할머니하고 저는 잦은 다툼이 많아서 힘이 들었고 그때 정말 엄마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시고 갑작스럽게 모든 가족이 해외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아빠와 동생은 고모가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떠난 어학연수는 그렇게 외롭진 않았지만 혼자 떠나서 제대로 된 구경을 못해 본 것 같습니다. 사실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 간 거라서 돈만 날리고 어학연수가 문화체험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아빠가 재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새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이상하게 새엄마에 대한 정보들도 말해주지 않고 같이 살게 된 아줌마라고 소개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보자마자 ‘아줌마 안녕하세요.‘ 라고 했고 정말 몇 달 동안 계속 아줌마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왜 그랬는지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얼마나 심란했을지 정말 죄송합니다. 새엄마는 같이 살게 된 이후 가정적일 것만 같았던 아빠의 달라진 모습에 너무 힘들어 하시고 나와 동생 때문에도 고생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새엄마는 우리들 교회 말씀으로 해석이 되고 치유 받으셔서 우리들도 이사 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와 동생은 새엄마에게 아무런 호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함께한지 벌써 2년 정도 됐는데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무의식적으로도 엄마라고 했었지만 지금은 어색하고 민망한 마음에 엄마라고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새 그 때문에 죄송해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슬슬 40대 초,중반으로 들어서는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하고 있는 걸 볼 때 마다 가슴이 찡합니다. 아빠가 공황장애가 있는 걸 알고 나서 우리 집이 정상적인 집안은 아니였구나 생각하였고 아빠의 공황장애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공황장애면 비행기를 탈 때 머리가 아프고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정말 아빠가 어떻게 미국까지 가고 혼자 왔는지 신기합니다. 아빠가 아직도 공황장애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런 아빠가 너무 싫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담배도 안 피우시고 술도 안 드시는 건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짜증날 정도로 분위기를 다운시키고 집에서도 눈치 보면서 사는 게 싫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짜증을 잘 내고 술을 거절하지 못하는 아빠가 목장모임에 나가고 큐티도 하면서 술을 매번 거절하는 변화된 모습은 자랑스럽습니다. 요새는 우리에게 개그도 날리시고 예전보단 정말 달라진 아빠모습에 설레기도하고 즐겁기도 해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말만 모태였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항상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주위사람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못 받아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존심이 쎄서 있는 척, 이쁜 척, 잘난 척 포장하기 일쑤입니다. 지금도 그러는 제가 너무 한심합니다. 이제는 남들에게 비유를 맞춰주고 좋은 말만 해주는 게 버겁고 내가 남들에게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으면 남도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고 날 버리고 "변했네"라고 할까봐 두렵습니다. 계속 이런 나의 모습에 사람을 진실 되게 대하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할까봐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교생활에서 이런 나의 모습으로 인해 친구들과 멀어지는 사건이 왔습니다. 시험이 끝나서 하루를 헛되어 보내는 저에게 주시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깊은 묵상과 기도로 주님은 이 고난을 잘 견디게 해주셨고 이번에도 간증문을 쓰면서 과거를 회상을 하는데 내가 예전에 주님 없이 어떻게 살았나 생각이듭니다. 예전보다 저는 더 약해졌지만 하나님만 의지해야하기 때문에 늘 굳게 우리들교회에 붙어있으면서 주님이 주관하시는 길을 따라 가야겠습니다. 또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그래도 이렇게 가족만큼은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