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자기열심에 미쳐 교만으로 뺴곡히 채워진 사람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특유의 강박적인 열심으로 교회를 꾸준히 다니긴 했지만 세상에서 점점 잘나갈수록 교회에서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붙들어 매려고 작정하신 듯이 두가지 사건을 주셔서 저를 낮추셨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이 저를 낮춰주신 사건은 저의 공포증입니다. 저는 의학적인 것에 공포증이 있습니다. 혈관, 피, 신경, 안구, 각종 질병들에 관한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접하면 공황 증세에 비슷하게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다가 기절합니다. 이런 공포증은 고3 수험생활을 하며, 국어 비문학 지문을 공부할 때 생명 지문이 나올 때마다 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래도 약이 있었기에 약을 먹고 심호흡을 하며 공부하곤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진 것은 7월 모의고사 때였습니다. 국어 모의고사는 생명 지문이 나올 떄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약을 준비했지만 영어 모의고사 전에는 약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생명 지문만 3-4개가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엔 참아가며 풀었지만 이내 글씨가 읽히지 않았고 책상을 붙잡지 않으면 의자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서 아, 이대로는 모의고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되겠구나 싶어서 그대로 엎드려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떄는 10분정도가 이미 지나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갖은 핑계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불평하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정말 많이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직접, 정말 지문의 첫 문장조차 독해할 수 없고 문제의 선지조차 쳐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신 것은 보지 못하고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고만 외쳐대던 제 모습이 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저를 붙들어주셨습니다. 얼마 전 치른 수능 이후, 가채점을 해본 결과 평소보다는 아주 조금 아쉽지만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수능 성적 통지가 이루어진 날,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습니다. 수학에서 마킹을 밀려써서, 점수가 반토막 아래로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옛날의 저였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가, 평가원 앞으로 달려가서 난동이라도 피웠다가 뉴스에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하나님을 미친 듯이 원망했을겁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저는 그 숫자들을 보자마자 응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기도를 한 것이 진짜 신기할 정도인데, 저는 수능 날 매 시간 시험이 시작되기 전마다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주님께서 보시기에 제 구원에 더 도움이 되는 결과를 주세요. 만약 그것이 필요하다면 만점을 주시고 만약 그것이 필요하다면 시험을 밀려써 대학 진학을 막아주세요. 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말 시험 답안을 밀려쓰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저를 주님께 잡아두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주님께서 저를 넘치게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를 낮추시는 일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제가 가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지도 못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제 자기 열심에 미쳐서 주님의 자리에 제 자신을 놓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능 중간중간 쉬는 시간마다 읊조리며 기도했던 말씀입니다. 정말 저 말씀대로 완벽한 수능 성적표로도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제 수험 생활에 힘이 되어준 교회 목장 친구들, 조기영 선생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제가 졸고 폰만 볼 때도 한마디라도 들리라고 열심히 설교해주신 목사님들 감사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교회오게 해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저를 붙잡아 주시는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