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보미
저희 집은 불신 가정입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으며 할머니께서는 절에 자주 가십니다.
제가 5살이 막 되던 때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엄마와 살아야 하지만 그해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
은행에 융자를 받아서 지은 집이 IMF 때문에 경매에 넘어 가게 되었고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마는 없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저와 할머니, 이모 뿐이었습니다.
셋이서 살면서 6년에 걸쳐서 몇 억대의 빚을 다 갚게 되었고, 이사도 여러 번 갔습니다.
셋이서 같이 사는 동안 저는 이모가 엄마인줄 알았으며 할머니가 아빠인줄 알았고.
우리 집에 지극히 정상적인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아빠의 행방을 물으면 미국에 가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그리움도 모르고 평범한 집에서 나름 평범하게 모자람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점점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3학년 때는 우연히 아빠와 통화를 했는데 재혼을 했다는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생각은 꼭 성공해서 아빠한테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고 뭔지 모르는 감정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름대로 강하게 자라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남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음해에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분에 차서 아빠 집에 전화를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받으셨습니다. 죄라면 자식 잘못 낳은 죄밖에 없는 할아버지께 아빠에게 못 했던 말들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왜 버렸냐고, 왜 모르는척 하냐고 그리고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울었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아빠를 죽여 버리고 싶었으며, 앨범 속에 있는 아빠 얼굴을 찢기 시작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엄마, 할머니, 이모 다같이 살게 되었지만 엄마는 처음으로 같이 살아 본지 약 3개월 만에 집을 나갔습니다.
6학년이 되어서 등본을 발급받을 일이 있어서 뗐는데, 다른 친구들과 비교 하면서 우리 집이 이렇 다는게 창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아 함께 사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점점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에 집착과 원망이 생기면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올라가서 학기 초에 친구도 없고 친구들과 충돌이 잦아져서 싸우게되니까 학교를 다니기 싫다며 전학을 가자고 약 한달 갈을 졸랐습니다. 그때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엄마는 왜 내가 힘들 때 옆에 없으며, 나는 왜 옆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나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너무 짜증나 났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올라가서 음악을 접하고 노래가 좋아졌습니다. 노래를 할 때는 행복했습니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졸랐는데 처참하게 무시 당했고, 내 마음 모른다는 엄마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정이 떨어지고 엄마가 하는 모든 행동이 좋지 않았으며 눈에 가시로 보이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원망스러웠으며 정이 없는 상태에서 미움만 커져서 어색해 져버렸습니다.
그렇게 위태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중 2학년때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우울증도 유형이 여러 개인데 저는 쌓아두다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회를 나가다가 한동안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친구와 함께 우리들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교회에 다니게 되어서 조금은 어리둥절 했지만..
교회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간증을 들으면서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아..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격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지내게 되었고 이혼 했다는걸 이야기 하지 않을 뿐 처음으로 창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며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 중 감사하게 예고에 합격했는데, 엄마가 저 모르게 학교에다가 입학포기각서를 썼다는 것을 한달이 지나서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엄마에게 강한 살인 충동을 느끼고 친구들 앞에서 울어 봤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 사건이 잘 풀려서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저에게 오티며 입학시험이며 갈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셔서 안갔는데, 결국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걸 기회로 삼아서 전학시켰고, 저는 바로 그 다음날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힘들고 좋아하는 일이 현실에 가려진 채 잊고 사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다가 김양재 목사님의 예배를 청소년부 때 다같이 듣게 되었고 기도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처음 울면서 기도를 했고, 기도를 한 후에 마음이 너무 편해졌습니다.
전에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교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순간순간 기도를 하게 되면서 전과 다르게 조금씩 변하고 있는 저를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전에 교회에서는 그저 동정(?)의 눈길을 받아 왔는데.
우리들 교회에서는 불편한 눈길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저 같은 사람의 이야길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교회에 나올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증오하던 감정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한 저의 마음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의 기도제목이 있다면 할머니와 손잡고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인데, 꼭 이루고 싶습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제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길을 잘 따라 갈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