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3학년 임주혜 입니다.
지난주는 저희 고등학교의 시험기간이었고, 그 둘째 날인 화요일, 저는 아파트 옥상에 올랐었습니다. 가장 표면적인 이유로는 시험을 망쳤기 때문이었고, 보다 내밀한 이유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였으며,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5대째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신결혼을 하셨지만 사랑 없는 결혼을 하셨기에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셨고, 이에 따라 당연지사 부부싸움도 잦았습니다. 아직 신체도 정신도 여물기 이전인 어린시절 몇번이고 반복되는 그 상황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두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동생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그 이불이 갑갑하다며 투정을 부리는 동생의 손을 잡고 제발 우리 가족을 좀 구원해 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싸움이 잦아들어 휴식기에 접어들 때면 부모님은 첫째인 저를 불러 서로의 욕을 하시며 이혼이야기를 꺼내셨는데, 아버지는 그때면 제게 이혼 후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물으셨고 어머니는 이혼을 하면 저와 제 동생은 할머니나 아빠에게 넘기고 자신은 자유가 되겠다는 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다만 저와 제 동생의 존재가 부모님께는 보다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길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유년기와 타고난 기질을 비롯한 여러 환경이 겹쳐지며 저는 불안도가 높고 예민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움츠러들었고, 누군가 제게 손을 올리면 발작적으로 반응하였으며 사람들이 제게 인상을 찌푸리거나 비난을 할 때면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러한 불안정함과 결핍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았고, 당연히 인간관계도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며 여실히 느껴지는 스스로의 이상성과 망가지고 뒤틀린 정신을, 그 우둘투둘한 자국들을 더듬어볼 때면 불안정한 유년기를 제공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올라왔지만, 부모님 각자의 사정이 있으셨다는 것을 알았고 현재의 부모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저희를 키우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족들이 상처받을 것을 알았기에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습니다. 저희 집의 경제 상황은 언제나 그리 순탄치 못했고, 세남매 중 유일한 딸로 예쁨을 받으며 커왔던 저는 그런 제가 어떻게든 집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을 받는 일이었고, 저는 그렇게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어느것도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 빈도수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부부싸움은 저를 날카롭게 했고 사춘기가 찾아와 반항하는 동생을 볼 때면 그 철 없는 모습에 분이 치밀어 올랐으며 유복한 집안의 금슬 좋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면 자괴감과 갈 곳 없는 원망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어린시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는 스스로를 부모님의 짐덩이로 여겼기에 저를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건 좋은 딸이 되는 길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훌륭하게 성장해 부모님의 자랑이 되는 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일들은 전부 무시하고 앞을 향해 내달렸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곧 남의 인정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으니 언제나 괴로웠습니다. 중학교 시절 우울증으로 공부를 잠시 손에서 놓았던 탓에 기본기가 갖추어지지 못한 수학과 영어는 늘상 제 발목을 붙잡으며 저를 괴롭혔고,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은 1등급을, 1등을, 100점을 부르짖으며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저 자신을 짓눌렀습니다. 자신 스스로에게 지운 짐을 짊어지고 긴장한 상태에서 시험에 임하니 제대로 푼 문제의 마킹을 잘못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실수 하나로 등급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덜떨어진 자신을 향한 자기혐오가 피어올랐고, 스스로의 가치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그저 죽고 싶었습니다. 차도를 보면 뛰어들고 싶었고, 혹시라도 무심코 뛰어내릴까봐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해야 했으며, 등교를 위해 넥타이를 멜 때면 그대로 목을 매고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저를 죽음으로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울면서 부르짖었던 하나님이 제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으셨듯, 이번에도 저를 외면하시리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고3이 되자 불안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했고, 식사를 할 때면 제게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 여겨져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체중이 줄고 생각은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렇게 시험에서 또다시 마킹실수를 저지른 그날, 저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19년 동안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말씀이 있으니, 정말 마지막이니까, 딱 세 명한테만 전화를 해보자. 그리고 셋 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뛰어내리자, 하고.
첫번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받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교회 선생님께 걸었고,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옛날 청소년부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고, 목사님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날 청소년부 목사님과 교회 선생님께서는 저희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오셨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고 주님이 아닌 나 자신의 힘만을 믿으며 나의 길을 가려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시절 주께서는 제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이제까지 온전할 수 있었으며, 시험에서의 반복되는 실수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이렇게 완고한 저를 꺾으시려는 주님의 계획임이 처음으로 믿어졌습니다. 나의 길은 하나님이 안배하심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처음으로 들리니 그제야 저는 몸에서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말씀은 욥기 42장의 마지막 절들로 앗아가신 욥의 소유를 주께서 갑절로 갚아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주님께서 다시 돌아온 제게 그런 말씀을 주셨는지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지난주 월요일 호세아 6장 1~2절에서 말씀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가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고 한 바가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여전히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불안하며 제 앞길과 세상이 두려워 떨지만, 세상의 것에 가치를 두는 음란함에서 돌이켜 주님이 나의 길을 안배하심을 믿고 말씀을 붙들며 담대하게 제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저희 집으로 달려와 주신 송지현 선생님과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찾아와주신 청소년부 목사님, 갑작스레 전화를 받아 놀라셨을 전 청소년부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