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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9월 20일 광주채플 주일설교 ]
◇ 설교본문 : 신명기 23장 15-20절
◇ 설교제목 :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 설교 : 이태근 담당목사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다스 왕은 손에 닿는 것마다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루었지만, 결국 그 탐욕의 '마이다스의 손'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딸마저 차가운 금으로 변해버리는 재앙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손을 원하십니까? 세상의 부를 거머쥐는 마이다스의 손입니까, 아니면 하는 일마다 망치는 똥손입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가 주님께 믿음의 손을 뻗을 때,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된 범사의 복을 누리기 위해 우리의 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압제하는 손에서 긍휼의 손으로 (15~16절)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방의 종이 도망쳐 오거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성읍에 거주하게 하며 그를 압제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15-16절). 도망친 노예를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거나 숨겨주면 사형에 처하던 함무라비 법전 등 고대 근동의 관습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파격적인 명령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전적인 은혜로 출애굽한 구속사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약속의 땅(교회와 목장)은 세상의 압제에 신음하는 자들이 피할 수 있는 쉼터이자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 시집살이, 불통인 배우자, 자녀 고난 속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공동체로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은혜가 말씀으로 온전히 해석되지 않으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해자와 동일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피해자로서 겪었던 무력감과 억울함이 보상 심리로 발동하여, 내가 힘을 쥐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찌르고 통제하려는 애굽 왕 바로(압제자)로 돌변하게 됩니다. 호된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 지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된 복은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안의 '압제자의 칼'을 내려놓고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조차 긍휼히 여기는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한 남편 집사님의 나눔입니다. 덥다고 선풍기를 틀어주려는 아내와 의견이 부딪혀 신경전을 벌이던 중, 아내의 저항에 이성을 잃고 아내의 목을 잡아 거실로 끌어내는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은 충격에 빠져 "무섭다, 더 싸우면 죽을 것 같다"며 두려워했습니다. 이후 아내가 부부 목장에서 남편의 폭력을 고발하자, 남편은 변명을 늘어놓다가 아내에게 화가 나 목장 식구들 앞에서 "이 또라이야, 미친 X아"라며 거친 욕설을 퍼붓는 혈기를 부렸습니다. 늘 자신은 선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를 존중하지 않고 통제하려 했던 내 안의 끔찍한 압제자(사이코패스 같은 혈기와 분노)가 목장 모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을 인정하며,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거친 죄악을 회개하셨습니다.
[적용질문]
@ 나는 누구 및에서 종노릇을 했습니까?
@ 내가 보호하고 살펴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나는 압제하는 자입니까, 긍휼을 베푸는 자입니까?
@ 가해자와 동일시를 하며 받은 대로 갚아주고자 할 때는 언제입니가?
2. 가증한 손에서 정결한 손으로 (17~18절)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창기와 남창'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그들이 번 돈(개 같은 자의 소득)을 성전으로 가져오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십니다(17-18절).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원문에서 창기와 남창은 각각 '게데샤(קְדֵשָׁה)'와 '카데시(קָדֵשׁ)'인데, 그 본래 뜻은 놀랍게도 '구별하다, 봉헌하다'라는 거룩한 의미입니다. 당시 가나안 일곱 족속은 풍요와 비를 얻기 위해 신전 사제(창기와 남창)들과 음란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이름을 가졌어도, 내가 원하는 풍요와 기복을 얻기 위해 신을 조종하거나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창기와 남창'처럼 가증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사업을 앞두고 부적을 지니거나,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하고, 일이 꼬인다고 점집을 찾는 등 모든 미신적인 행위는 내 삶을 사단에게 창기와 남창으로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번 돈으로 드리는 십일조 역시 가증한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 권찰, 성도라는 거룩하게 구별된(게데샤/카데시) 이름을 가졌어도, 돈과 욕망을 쫓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면 그 거룩한 이름이 이방 신전의 창기와 남창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득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결한 손으로 구별될 때 참된 복이 임합니다.
남편(마을지기)이 벌어오는 돈의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 펑펑 써대면서도, 남편의 빚과 세금 고통에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철저히 외면해 왔던 한 아내(권찰)의 나눔입니다.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 자신의 이중성과 무정함 때문에 큐티가 제대로 될 리 없고, 목장 모임마저 이방인처럼 겉돌며 잡담하는 친목 모임(로터리 클럽)처럼 변질되어 가는 것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권찰'이라는 거룩하게 구별된 직분을 가졌음에도, 남편의 헌신을 무시한 채 내 욕망대로 돈을 낭비하는 삶(이원론)이 결국 그 돈과 직분을 창기와 남창처럼 가증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정결한 재정 사용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 하나님 보시기에 내 안에 가증한 것은?
@ 개 같은 자의 소득으로, 기복으로 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 물질에 있어서 정결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이익을 탐하는 손에서 은혜를 베푸는 손으로(19~20절)
하나님은 형제에게 돈이나 양식을 꾸어주거든 절대 '이자'를 받지 말라고 명하십니다(19절). '이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섹(נֶשֶׁךְ)'은 '물다, 움켜 뜯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이방 사회에서는 연 20~50%의 살인적인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자들을 빚의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즉, 곤경에 처한 형제에게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짐승처럼 그의 살점을 물어뜯는 잔인한 행위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1만 달란트(약 7조 원)의 구원 빚을 탕감받은 우리가, 곤경에 처한 형제(배우자, 지체)의 위기를 틈타 내 잇속을 챙기고 물어뜯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입니다. 무역 상인(타국인)에게 투자를 위해 빌려줄 때는 이자를 받아도 되지만(20절), 이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형제와는 이자 없이 돈거래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대로가 아니라 율법의 뜻대로 상황에 맞게 적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 교회는 영육 간의 파멸을 막고자 "성도 간에 절대 돈거래(계, 투자, 동업 등)를 금지"하는 강력한 국시(원칙)를 세웠습니다. 지체를 진정 돕고 싶다면 성령의 감동에 따라 교회 헌금함에 '목적 헌금'을 익명으로 드려 돕고, 뒤에서 말씀으로 잘 해석받도록 중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은혜의 손길입니다.
앞선 2대지 아내(권찰) 나눔의 이어지는 고백입니다. 엄청난 세금 폭탄을 맞은 남편에게 지인의 조언을 받아 "세금을 감면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하자, 남편은 화를 내며 소주를 마시고 대화를 단절했습니다. 남편의 무시에 분노한 아내는 부부 목장에서 남편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겠다고 벼르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목장에서 남편의 입장을 들어보니, 이미 남편이 세무사를 통해 1천만 원이나 세금을 감면받았음에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가 "세금을 줄였다고 하면 아내가 또 생각 없이 돈을 펑펑 쓸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덧붙여 "과거 네 맘대로 집을 팔아 큰 손해를 보고, 차를 마구 뽑고, 빚을 늘려 잘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아내의 뼈아픈 과거를 팩트로 지적했습니다. 아내는 본전도 찾지 못한 채 팩트 폭격을 당하며, 자신이 돈을 개념 없이 썼던 삶의 결론임을 뼈저리게 인정했습니다. 아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며 가슴이 콩닥거리는 성령의 심장 박동을 느꼈고, 남편이 정해준 경제적 경계 안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순종의 삶을 살아내겠다고 눈물로 결단하셨습니다.
@ 돈 때문에 내가 물어뜯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혹 공동체에서 돈을 빌리거나 꾸어준 적이 있습니까?
@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았지만, 구원과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인생할 때는 언제입니까?
목장장소 : 카페
인원 : 목자님, a, b
@ 나는 누구 밑에서 종 노릇을 했습니까?
@ 가해자와 동일시를 하며 받은 대로 갚아주고자 할 때는 언제 입니까?
목자님: 팀 옮기기 전엔 없었는데 옮기고 나서 복귀한 사람이 있는데, 성격이 좋음. 답답한 면도 있고 이해가 잘 안가는 걸 보니 긍휼을 잘 베푸는 것 같지 않음. 무시가 되는 듯함. 어차피 오래 봐야 하는 사람이기에 그냥 잘 지내면 될 것 같음. 운전할 때 그냥 잘 안 넘어가지고 혈기가 올라옴.
A: 종 노릇이 아닌 가장 노릇을 함. 아버지의 불안정한 급여 때문에 내 급여에서 6천 정도를 가져가셨음. 보호해 줘야 할 사람은 여자친구 인 듯싶음. 주례를 담임목사님이 해 주실 수 있으니 얘기해 보라 해보니 여자친구가 부담을 느낌. 아직 상견례를 안 했기 때문에 뵙고 난 후 담당목사님께 얘기 드리고 나서 담임목사님께 얘기해보자 함. 이미 여자친구와 담임목사님으로 얘기가 돼있었기 때문에 바꾸는 것을 여자친구가 납득을 못 하는 중. 집도 임대주택이 현실적이라고 얘기를 하니 여자친구 가족이 그럴 거면 광주로 안 보내겠다 하니 마음이 슬픔. 부모님과 얘기해 보니 매물을 보고 여기까지 해 줄 수 있다, 잘 하면 살 수도 있다 라고 하니 여자친구랑 얘기함.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전세 까지만 가능 해 보임. 근데 전세는 위험하고 여자친구가 자기 집에서 살고 싶다 함. 또 자기의 계획이 깨지니 화가 났음. 그 뒤로 결혼 날짜 잡은 사실이 엘더님에게 말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됨. 내 생각엔 부모님 뵙고 날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괜찮을 것 같다 했는 데, 여자친구 쪽이 물어보지 않았다 함. 그래서 문제가 좀 있는 데, 엘더님이 좀 무섭게 연락이 옴. 여자친구가 좀 조급 해지니, 부모님을 뵙고 싶어 하는데, 어느 쪽을 먼저 볼까 하다가 여자 쪽을 보는 게 정서에 맞다 해서 이번주 월요일에 잡음. 근데 얘기를 안 해서 문제가 생겼으니, 이번에는 엘더에게 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니 여자친구가 폭발함.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함. 이러한 것을 통해 내 말이 맞을지언정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안 돼있으면 폭력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듦. 오늘도 공동체 나눔에서 아내집사님이 세금문제로 결국 자기 죄 보는 것처럼, 결국 내 죄 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함. 내가 너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는 데 전도사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심.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심. 어머님은 여자친구의 죄만 보이는 듯함. 공동체에서 아들만 보이는 것 같음. 그래서 여자친구를 보호해 줘야 겠다 생각함.
B: 저번주에 알코올의 종 노릇을 했습니다. 맥주 두캔씩 매일 마셨는 데 살도 4kg 찌고 잠도 새벽 5시에 자고 그래서 왜 그런가 생각 해 보니, 힘들진 않은 데 시험이 다가오니 무의식적으로 불안한 것 같음. 아침에 일어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여전히 안되니까 답답함. 어렸을 때 엄마한테 받은 상처가 많아서 난 절대 저렇게 안 해야 겠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모습이 나옴. 남이 뭐 물어보면 대꾸 안하고, 눈치를 안 보는 면이 있는 데 지금이야 떨어져 사니까 좀 괜찮아짐. 나중에 가정 꾸리면 좋은 점만 잘 골라서 자녀에게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음.
목자님 : 직장은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붙여 주심.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내 스펙이 세상적으로 보면 들어갈 스펙이 아님. 이직할 때 타이밍 상 굉장히 불안했는 데, 결국 붙음.
A: 재혼가정 중에서는 그나마 축복받은 것 같다.
목자님: 내 안에 가증한 것은 교만, 정죄 같음. 음란은 청년부 남자 보면 끊는 적용 보면 대단하다 싶은데 빠져 사는 사람도 있어서, 잘 못 끊음. SNS 보면서 알고리즘에 유혹에 이끌림. 목자모임이 마을모임으로 바뀌면서 가기 싫어짐. 목장에서 나누는데 왜 또 하나 싶어서 무시가 됨. 아빠는 십년 넘게 같은 얘기를 목자모임에서 듣는다 라고 하셨는 데도 여전히 무시가 됨.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음. 교육가서 중급관리자랑 얘기하면서 공감은 배경, 가치관을 통해 이해하고 들어주는 것이어서 공감이 어렵다고 함.
A: 내 안의 가증한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임. 지금은 내 죄만 보는 게 적용인 것 같음. 물질에 있어서 정결함은 이번 월급이 25만원 더 들어왔는데, 이것저것 돈 나갈 일이 있었음. 감사합니다 하고 십일조에서 플러스 해서 드렸는데, 이게 정결한 것인 듯함.
목자님: 나도 월급이 더 들어왔는데, 따로 빼 놓자 했다가 이 돈이면 어디 여행을 가야겠다 생각함. 임플란트 할 때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그냥 돈을 부모님 드림.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봤자 별로 큰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또 음란한 생각만 드니까 부모님 드림.
B: 저번 달 월급 십일조를 안 냄. 저번달부터 국취가 끊겨서 그랬는데, 카드값이 월급이랑 똑같으니 압박감이 느껴 졌음. 돈을 조금 더 쓰고 싶은 욕심이 올라왔음. 이게 가증한 것 같음. 요즘 물질 욕심이 생긴 듯함. 아무 생각 없이 연금복권 만원어치 샀음.
목자님: 욕심이 지금 오는 게 나을 듯. 나중에 직장 들어가서 생기면 사고를 쳐도 나중 가서 다 갚겠지 생각되니까, 차라리 지금 오는 게 좋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