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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9월 6일 광주채플 주일설교 ]
@ 제목 : 악을 제하여 버리라
@ 본문 : 신명기 17:1-13
@ 설교 : 이태근 담당목사
내 몸속에 자라고 있는 암세포를 불쌍히 여기며 그냥 두고 살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가정 안에 들어온 죄와 악 역시 파괴적인 암세포와 같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방치한 악이 결국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낱낱이 찾아내어 제하여 버려야 할 삶의 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악을 끊어낼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 안의 가증함을 봐야 합니다. (1절)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흠이나 악질이 없어야 합니다(1절).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백성들은 예배의 마음은 잃어버린 채 눈먼 것과 병든 것, 심지어 훔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악을 행했습니다. 흠이나 질병은 따로 떼어 치료하면 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미워하시고 구역질 날 정도로 가증히 여기시는 것, 즉 '토에바'(히브리어: תּוֹעֵבָה - 가증한 것)는 다름 아닌 '안 그런 척'하는 위선입니다.
나는 세상의 흠이 없는 척, 나는 불륜을 저지르지 않은 척, 피곤하고 잠이 덜 깬 껍데기로 앉아 속으로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태도가 가장 흠집 많고 악질적인 나의 가증함(토에바)입니다.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앞에 내 위선의 껍데기를 벗고, 나의 가증함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이 악을 제하는 첫걸음입니다.
[적용질문]
@ 겉으로 드러난 나의 흠은 무엇입니까?
@ 다른 사람에게 감추고 싶은 나의 악질은 무엇입니까?
@ 오늘 나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파릇파릇,골골,잠이 덜 깬, 기타 등등)
@ 안 그런 척, 나는 그런 적이 없는 척, 가끔 이런 모습으로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까?
@ 목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판단하고 정죄한 적은 없습니까?
@ 나의 모습 가운데 토에바, 가증스러운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2. 성문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7절)
이스라엘 중 언약을 어기고 해와 달(일월성신)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가 있다면, 자세히 조사하여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십니다(2-5절). 왜 이토록 무섭게 진노하실까요? 히브리어 어원으로 '질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거룩한 열정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의처증이나 의부증처럼 자기 연민이나 결핍에서 비롯된 집착이 아니라, '아낌없는 사랑과 전적인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 배우자가 다른 집으로 들어간다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듯, 언약 백성이 세상 우상을 섬기는 영적 간음 앞에 하나님은 거룩한 분노를 쏟으십니다.
우상 숭배의 재판은 '성문 앞'에서 하지만, 사형 집행은 '성문 밖'에서 이루어집니다(5절). 이 무서운 율법의 심판은 결국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운 수치와 우상 숭배의 죗값을 독생자 예수님께 대신 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치욕을 짊어지고 십자가가 있는 영문 밖으로 주님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 나는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싶습니까?
@ 나는 배우자에게 무관심하고 냉랭합니까, 아니면 질투하는 마음이 가득합니까?
@ 나의 질투는 자기 연민과 자기 결핍에서 시작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아낌없는 사랑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 배우자나 자녀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일월성신처럼 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의 질투가 집착과 폭력으로 이어질 때는 언제입니까?
@ 성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가져가야 할 나의 수치와 부끄러운 죄는 무엇입니까?
3. 교회의 권징과 치리가 필요합니다. (8-13절)
살다 보면 공동체 안에서도 억울하게 다투는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것은 사단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중앙 성소)으로 올라가 제사장과 재판장에게 물으라"고 명합니다(8-9절). 교회(성소)는 다툼을 무조건 숨겨주는 곳이 아니라, 구원의 관점에서 권면하고 치리하며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곳입니다. 여기서 세상 법정과 중앙 성소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려 응징하는 '율법대로' 판결하지만, 중앙 성소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율법의 입이 말하는 방향, 즉 '율법의 뜻대로'(히브리어: 알피 하토라, עַל־פִּי הַתּוֹרָה) 처방을 내립니다. 가늠한 여인을 정죄하기보다 용서로 다시 살리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다만,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 무법하게 행하는 자, 즉 '베자돈'(히브리어: בְּזָדוֹן - 끓어오르는 죽처럼 감정과 혈기를 교만하고 뻔뻔하게 쏟아내는 것)을 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죗값을 묻는 '치리(권징)'가 필요합니다(12-13절). 목사님 본인도 4번의 치리를 받았고 작년에 3명의 목자님도 치리를 받았듯, 치리는 누군가를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맑게 회복시키고 양육하기 위한 생명의 장치입니다. 오히려 말씀이 들리지 않아 치리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진짜 수치입니다.
(공동체 고백) 아빠 목자님의 이중적인 언행에 상처받아 담당 목사님께 긴 장문의 톡으로 아빠를 고발한 한 딸의 사연입니다. 번아웃으로 직장을 관두고 집에 내려와 있는 딸이 엄마가 한 밥에 "맛있다"며 칭찬하자, 요리에 자부심이 있는 아빠(목자님)가 짜증 섞인 말투로 핀잔을 주며 분위기를 망쳤습니다. 딸은 아빠가 늘 화를 내고는 "농담"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목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큐티 나눔의 소재로만 쓸 뿐 삶의 적용은 전혀 없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아빠 목자님 역시 겉으로는 "세상 성공보다 딸에게 말씀을 가르치겠다"며 훌륭한 나눔을 올렸지만, 실상은 딸의 번아웃 낙향에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자기 연민과 강박)이 쌓여 딸의 칭찬 한마디에도 끓어오르는 무법한 혈기(베자돈)를 쏟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무법함이 성소(공동체)에 고발당해 수치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나를 살리는 치리입니다. 감사하게도 최근 남편 목자님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신과에 가서 불안과 강박증 약을 처방받아 치료를 시작했다는 아내 집사님의 회복 나눔이 있었습니다. 무법하게 끓어오르는 내 감정의 병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처방을 잘 따를 때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 이런저런 다툼으로 조용히 공동체를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 내가 윗질서에 물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무조건 숨겨주고 비밀로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 떠벌리는 것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을 분별하고 있습니까?
@ 구원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율법 대로 사람을 정죄할 때는 언제입니까?
@ 나는 어떤 면에서 무법한 자입니까?
인원: 목자님, a, b, c
장소: 카페
목자님: 지난주에 이어서 회사는 괜찮은데 외로움. 운동 말고는 활동적인 것이 없어서 우울감이 심해짐. 주변 사람들이 결혼 한다니까 소외감을 느낌. 목자모임에서도 다 똑 같은 얘기들이어서 재미도 없어짐. 흠 없는 척 깨끗한척 하는 바리새인 얘기 하신 것이 처음 왔을 때도 그렇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함. 나는 제대로 된 회개가 없는 것 같음. 그런데 판단이랑 정죄를 많이 함. 초등부 얘들 조차도 정죄하는듯. 교회에 일하러 가는 건가 싶음. 목장 또 쉬고 싶었는데 2주연속 쉬는 것은 아닌 것 같았음. 원래 이번주에 적용간증 해달라고 전도사님 한테 연락이 왔는데 안함. 작년에 목장을 초반 3개월 안 가고 나중에도 한 3개월 안 갔었는데 안 갔을 때 목사님 이랑 면담을 했는데 교회 떠나고 싶은 마음을 막아 주심.
A: 오늘 너무 피곤함. 처음부터 말씀에 컨디션 관리 얘기가 나와서 돌아봄. 직장생활 하면서 온전한 예배가 안 되는듯. 힘들면 붙잡게 되는 것이 어떠한 사건이 있으면 그렇겠는데 그게 아니라 일상에서 힘드니까 잘 안됨. 운동 갈 생각은 하는데 큐티는 잘 안 하게 되는 듯. 내 힘듦에 대한 보상심리가 너무 큼. 첫 달에는 십일조를 드렸는데 다음부터 안 하게 됨. 가증해 보임. 어제 친구들과 실컷 놀고 늦게 들어와서 컨디션 조절을 못함.
목자님: 회사에서 현타오는 기간이 최소 1년은 간다. 버텨야 아마 인정을 해 줄 것이다. 나도 현타오는 기간이 오긴 했는데 그 때가 오히려 편했던 것 같음.
A: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안 하니까, 도태되는 듯한 두려움이 큼.
목자님: 그 시기가 다른 공부할 시간이다. 잘 썼으면.
B: 상견례 후 날 잡고 싶었지만 공동체에 물어보고 하고 싶었는데 저번주에 목장을 못해서 전도사님께 물어봄. 그랬더니 날을 먼저 잡게 됐는 데 그러면서 오늘 간증하면서 말 했듯이 당황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음.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흠 인 듯 싶음. 1년이나 기간이 남았는데 앞 일을 잘 모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겠음.
C: 하반기 공고 떠서 필기시험이 10월 17일 로 확정됨. 컨디션 조절 때문에 술을 안 해야 하는 데 생각함. 꾸준히 술담배에 대한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듯한 느낌. 방금도 담배피고 올려는데 라이터가 기름이 남아있어도 안 켜졌음. 친구도 금연 시도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