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없는 입맞춤
사무엘하 14:28 -15:6
입맞춤은 사람의 아름다운 몸짓 중 하나이다. 성경에 다양한 입맞춤이 있다. 집 나간 아들을 발견하고 측은히 여겨 입을 맞춤. 에서는 야곱에게 입맞추고 묵은 감정을 해결함. 요셉은 형들을 재회하고 통곡하며 입맞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입맞춤은 예수를 팔기로 작정하고 입맞춤을 함. 이처럼 때로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나는 어떤 입맞춤을 하고 있는지
회개 없는 입맞춤은
1. 자기 의로 참습니다.
28절.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죄를 용서함을 받았지만 사단에게 비방의 거리를 크게 주었으므로 칼이 너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란 저주가 아닌 축복을 받았다. 먼저 말씀으로 약속해 주신 바가 있었기 때문. 말씀으로 사는 인생은 형벌은 있을 지라도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어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압살롬이 다말의 복수를 하기 위해 축제에 암몬을 죽이고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압살롬에게 마음이 감. 요압이 눈치채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데려옴. 그러나 다윗은 얼굴을 보지 않음. 가장 어정쩡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을 2년동안 만나주지 않음. 7년이 지났지만 다윗은 자녀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방치됨. 다윗은 왕으로서 죄인을 벌하고 회복의 자리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었음. 다윗이 분수령적인 회개는 했지만 왕복이 아닌 아버지의 옷을 입고 내 죄를 답습하는 아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죄책감에 말을 할 수 없었음. 자수성가한 부모도 자기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다윗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불러 주시기 위한 긍휼이다. 때로는 침묵하며 기다려 주시는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 헤세드이다. 29-30절. 압살롬이 인내의 한계치가 임했다. 자기 의로 참고 기다리다가 암몬을 죽인 것처럼 똑같이 불을 질렀다. 자기 의로 참는 사람이 더 무섭지 않을까 싶음. 목장에서 맨날 싸우는 집은 걱정을 안 해도 됨. 2년동안 참다 갑자기 소장을 보내는 게 무섭습니다.
적용질문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온유한 사람 버럭 화를 내는 사람 자기 의로 꾹 참는 사람)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벌은? 고난 중에 나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까?
어떤 사건으로 예수님이 방문해 주셨습니까
자기 의로 꾹 참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환경 속에서 방치만 하고 있는 것은?
2. 스스로 당당합니다.
31절. 요압은 애초에 다윗 왕과 압살롬의 관계 회복에 대한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왕 앞에서 드고아의 여인이 말을 하게 함으로 압살롬을 데려온 것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왕위 계승자가 압살롬이었기 때문에 요압이 보고 왕권을 혹시 왕위 계승을 압살롬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2년동안 보지 않음으로 요압이 압살롬에 관심이 없어짐. 그런데 어찌하여 밭에 불을 질렀나 물음. 압살롬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집니다.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아쉬운 것이 있어도 좋게 좋게 얘기하는 편인데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 서로 닭 보듯 반응이 없는 부부간이 됨. 압살롬은 요압의 항의에 미안해하기는 커녕 자기가 하고싶은 말만 합니다. 남의 밭에 불을 지르는 것조차 스스로 당당한 압살롬이다. 왜 이렇게 당당하나 생각 해 보면 오직 압살롬의 어미만 왕족입니다. 구술에서 있을 때에도 여전히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낮아지기엔 부족했다. 모세도 40년을 기다렸음. 압살롬은 3년만에 돌아와서 낮아진 마음이 없었음. 그래서 압살롬이 요압에게 어찌하여 구술 땅에서 데려왔냐고 하소연합니다. 내가 뜻한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환경이 풀리기를 바라고 공동체를 찾아왔는데 예수 믿기 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32절. 왕을 대면하여 자기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함임. 압살롬이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임.
나는 무엇이 그렇게 당당합니까?
나의 억울함만 토로할 때는 언제입니까? 남의 보리밭에 불을 지른 적은 없습니까?
아무리 불러도 꿈적하지 않을 때는 언제입니까? 불러도 대답없는 당신처럼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눔: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항상 억울함이 쌓여 있으니 이런 말이 툭툭 나왔다. 우리들 교회를 다니다 남편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는데 뭘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고 하심. 남편이 간증을 했는데 그날은 일부러 채플에 같이 오지 않았다. 남편의 간증에 진정성을 못 느껴 욕이 나올까봐였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 주님께서 남편을 오해가 아닌 이해하게 됐다. 자존심보다는 회개하는 은혜를 주시는 것 같다. 경제적 고난이 지속됐기 때문에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됐다. 남편을 몰아세운 제가 보여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다. 주님께 기도하기를 독선적인 저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3. 기회를 엿봅니다.
33절. 결국 압살롬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5년 만에 부자 상봉을 했음. 무미건조하게 사면을 인정받는 것처럼 입맞춤을 하고 있음. 그런데 압살롬은 그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음. 이처럼 회개가 없는 입맞춤은 더 큰 화를 부릅니다. 15장 1절. 압살롬은 당장에 왕이 된 것 처럼 군대를 준비합니다. 2-4절. 구약시대 때 성문 광장은 재판이 열리는 장소임. 그런데 압살롬은 성문 길 곁에 서서 올라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느 성읍 사람이냐고 물으며 은근히 편을 가르며 허위 정보를 유통시키며 마치 자기에게 법적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함. 5-6절. 압살롬의 처세술이 탁월함. 압살롬은 백성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입을 맞추며 호감을 표현함.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과 얻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잠시 잠깐 뺏을 수는 있겠지만 얻는 것은 내 마음이 닿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음. 압살롬은 사람의 마음을 훔쳤고, 다윗은 마음이 합한자라 하십니다. 14장에 분수령적인 회개가 나오고 15장에 지금 이야기가 쭉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내용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윗의 신앙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닌 가 하는 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윗의 살아있는 셋쨰 아들의 이름이 나단이다. 선지자의 이름과 동일하다. 밧새바의 사건이 해석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야의 장례가 끝나자 마자 밧새바와 동침함. 후에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7 일만에 죽고 나단 선지자에 의해 드러남. 첫쨰 둘쨰 태어날떄 까지는 몰랐지만 셋쨰가 태어나고 나서 꺠닫고 나단이라 짓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넷쨰 아들을 솔로몬이라 짓습니다. 다윗은 이미 5년전에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지만 밧새바에게는 평화, 회복이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따라서 다윗의 신앙에 적신호가 왔다기 보다는 밧새바가 회복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벌을 인내하는 과정이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약삭빠른 처세술이다. 조금만 친절해도 사람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음.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얻으려면 내 마음이 먼저 철저히 낮아져 하나님꼐 닿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까?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있습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환경은?
목장모임 장소 : 5층본당
인원 :목자님, A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자님: 버럭 화를 내는 사람, 자기 의로 꾹 참는 사람. 갑자기 혈기가 폭발하는 모습이 있음,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에 더 크게 화냄.
A: 주로 어떤 일에?
목자님 : 준비가 잘 안되는 부분이 화가 남, 책임지는 자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화가 남.
@나는 어떤 사랍입니까?
A: 우유부단한 사람. 주변 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음. 진로 관련해서 너무 고민하다 결국 시간을 낭비하게 됨.
목자님: 여러 가지 해봐야 결정 할 수 있음.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은 다윗인데 다윗처럼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 같다.
한가지 후회하는 게 있는 데 26세에 전도사를 들어가서 늦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지만 잘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혼나니까 교회에 대한 마음이 떳다. 주변 시선을 신경 느라 계속 다녔음. 지금 회사 다니다 보니 경험이 있었더라면 전도사 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듦.
@나는 무엇이 그렇게 당당합니까?
목자님 : 아무리 내가 잘 알아도 청년이여서 팀장을 할 수 없지만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내 주장을 할 때가 많음. 같이 얘기를 하면 듣지만 혼자 미리 선 긋고 판단함. 사고치고 내려왔을 때 가족이 도와줬는데도 불구하고 죄에 대한 회개도 없이 오히려 당당했었음. 문제가 됬었던 교제 여성을 끊지 못했었음. 그 여성과 만나는 데도 좋지 않았었고 회의감이 듦. 기간직을 들어가서 그 일을 하면서 돈을 받을 때 그 돈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또 죄를 저질렀음. 그때도 부모님이 도와주심.
@나의 억울함만 토로할 때는 언제입니까?
A: 제대시즌임. 피해를 당하긴 했지만 억울함이 커 상황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 그 때도 들은 말씀이 있어서 나의 죄를 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억울함이 남아있는 회개없는 죄고백이였음.
기도제목
목자님 :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과정과 겨로가는 다 하나님께 맡기기
A :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죄 고백 먼저 하고 회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