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송이(조장)
아빠는 부재중이셨지만 엄마는 최선을 다해 양육을 했기에 유아시절은 행복했던 것 같았어요. 10살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면서 두달동안 입원을했는데 그때 오빠가 사춘기때 돌봄을 받지 못했어요. 대학때 원하는 곳에 못가서 힘들었지만 우리들교회에 다니면서 회복이 되었고 취업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결핵에 걸리게 되었고 양약을 감기약도 못먹는데 13알을 9개월동안 먹으면서 너무 힘들었던 시기예요. 그러면서 교회수련회는 참석안했었는데 스스로 찾아가게 되고 온전히 정착하게 되고 우리들교회에서 함께 봉사하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어요. 군인이라서 포천에서 살면서 감옥생활같고 남편 월급으로 살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부부목장에서 너무 가족처럼 챙겨주셔서 적응하게 되었지만 둘째가 1살 때 남편이 전역하게 되면서 제가 반대하는 트레이너의 직업을 갖게 되고 일에 올인하면서 독박육아에 새로운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아요. 그때 아이들에게 온전히 제 힘으로 키우면서 말씀을 안찾았어요. 이제 아이들이 조금씩 크고 제 시간이 생기다보니 다시 말씀을 찾게되었고 코로나가 오기 2달전에 교회분의 소개로 대전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코로나의 영향을 그나마 적게 받도록 인도해 주셨어요.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어요.
지원동기
이번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통이 어렵고 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을 알았어요.
육아서적을 많이 찾고있던 중 신앙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박지윤(부조장)
어렸을때는 항상 집에 엄마가 계시고 아빠는 회사를 다니시는 평범한 가정에서 살다가 10대가 되면서 엄마의 학업에 대한 기대가 컸고 저 스스로도 잘해야 겠다는 병이 있어서 그때부터 내려갔던 것 같아요. 엄마의 기대가 너무 답답해서 고등학교때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10년정도가 제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안계시고 질서 생활을 하는데 친구 관계나 부모님이나 교회나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없었고 가장 예민한 시기에 오로시 혼자 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굉장히 외로웠던 시기였고 공부로 돌파해보자 열심히 공부했지만 대학 진학후부터 목적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도 또 경쟁을 해야하는 구조에 낙담을 하면서 우울증이 있었고 취업을 하게 됐지만 취업하면서 관계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직장생활에서도 힘듦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친한 언니의 소개로 우리들 교회로 오게되었어요. 그때부터 제 삶이 해석되고 말씀이 들리고 하면서 처음으로 제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회복이 많이 되면서 올라가게됬고 청년부에 속하다 보니 결정을 하기가 편해지더라구요. 혼자 생각해서 결정을 하다가 공동체 안에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결정을 하다보니 안정됐던 것 같아요.
30대 들어가서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교제를 했었고 초반에 헤어지면서 내려가게 됐어요.
33세쯤 헤어졌는데 결혼이 너무늦었다고 생각했고 제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어져서 힘들었었는데 공동체 안에서 말씀으로 이겨내다 보니 36세에 결혼도 하게 되고 아이도 낳게 되었어요.
19개월 차이의 아이둘을 키우고 있어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부목자에도 속해 있고 목장에서 여러 얘기를 듣다보니 인생에 어떤문제가 와도 돌파를 어떻게든 할수있겠구나 하는 근본적인 안정감이 있는 것 같아요. 육적으로는 힘들지만 감사한 시기를 보냈던 것 같아요.
지원동기
첫째딸이 올해 유치원에 갔어요. 아이에 대해 잘 몰랐어요. 작년에 둘째를 키우면서 첫째를 봤는데 굉장히 예민한 애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안가다가 오랜만에 원에 가니 적응을 못하니 의사표현은 못하고 쉬도 안하고 오고 선생님들과 얘기도 안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생각한것보다 굉장히 예민한 애라는 것을 작년 4살 때 알게 되었어요.
갈수록 너무 힘들고 예민한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배우고 싶어요.
환경이 조금만 바뀌면 굉장히 반응이 격하게 나오고 신경질을 내요.
이때까지는 정신없이 키우다가 이제는 알고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손민혜
오빠가 한명있는 둘째인데요 부모님 사랑이랑 할아버지 사랑을 받았던 것 같고
마이너스 사건은 초등학교1학년때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눈옆이 찢어졌었거든요.
사고로 힘들었었고 그때 왕따를 당하면서 많은 슬픈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3에 아빠의 외도사건이 나타났고 수년을 걸쳐서 도박을 하셨고 실직을 하고 경제활동을 안하셨어요.
중학교때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중학교가서는 친구들이 도피처가 됐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은 즐거운 시절을 보냈는데 고3 입시시절은 힘이 들었고 대학 입학해서는 캠퍼스생활이나 동아리 생활은 즐거웠고
취업준비가 제일많이 힘들었었어요 . 취업이 성공했을때는 기뻤고 직장생활은 관계와 업무로 갈등이 있었고 결혼은 30에 했는데 20대 후반부터는 내가 결혼을 할수있을까 신결혼을 할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는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주셔서 우리들 교회는 아니지만 교회안에서 결혼할수 있었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만난지 6개월에 결혼을 했는데 갈등속에서 해석이 되지않고 힘들었어요.
우리들교회를 오게되었고 목장에서 나눔을 하면서 숨통이 트이고 작년에 아들을 낳아서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는 것 같아요. 아이가 주는 기쁨도 있지만 몸이나 마음이 지쳐가는 것이 있어서 그런 상황이예요.
지원동기
우리들교회에 온지는 2년 조금 넘었고 결혼하고 남편이랑 갈등상황에서 해석이 안되서 주변교회를 둘러보다가 우리들교회말씀에 은혜받고 오게되었고 목장을 통해 도움받고 있고요
작년에 아들을 낳아서 이제 13개월인데 육아 잘하고 싶고 성경적으로 키우고 싶은데 할수 있는 것이 유투브보거나 책읽는 것 밖에 없어서 권찰님이 알려주셔서 많은 기대를 하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경설
고등학교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고3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낙태를 했어요.
지금은 낙태가 만연하지만 그때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이것이 흔치 않은 케이스여서 죽으려고 생각했었고
모태신앙이었는데 그때 하나님을 만났던 것 같아요 .
3개월 공부해서 대학을 가게 되었어요. 공부를 열심히해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회사도 빨리 들어갔어요.
일에대한 비전을 찾으려고 퇴사하고 지금의 회사로 옮기면서 분당으로 오면서 우리들 교회에 오게되었구요.
우리들 교회에 와서 결혼이안되서 조바심이 나서 교회안에서 찾아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신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결혼생활을 통해 깨지고 이렇게 더 이상하고 짜증날줄 알았으면 밖에서 찾을 걸 생각이 들어요 .
지금 남편이 집나간지 10일정도 됐거든요. 비상상태인데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원동기
우리들교회에 온지 7년정도 됐고요 청년부에서 결혼을 했고 아이가 17개월 됐어요.
일을 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육아를하다보니 고민도 되고 신앙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권예리
분노조절 장애, 공황장애, ADHD를 앓고 계신 엄마와 경제적으로만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시던 아빠 밑에서 문제가 문제인줄 모르고 자라다가 엄마의 인도로 중고등부예배에 출석하게 되었어요.
그 러다 2013년 엄마와 아빠의 동시다발적 바람 사건을 통해 제게 가족우상이 있음을 알게 해주셨고 머리로만 이해하며 들었던 말씀은 온데간데 없이 제 모든게 무너졌습니다. 사건을 계기로 3개월간 우울증약을 복용하다 이후부터 ADHD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8년간 약을 먹고 있어요.
이후부터 목장과 공동체를 통해 제 삶을 하루하루 해석하며 많은 사건을 통과 할 수 있었고 18년 공동체에서 같이 봉사하던 남편과 겨혼해 19년 슬하에 딸을 허락해 주셔서 육아에 전념하고 있어요.
지원동기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 무엇이 부모의 역할인지 잘 몰라서
말씀은 들어왔지만 육아를 통해 삶과 말씀이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더더욱 드러나서
코로나 펜데믹으로 아이와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꾸 인터넷으로 세상적인 육아팁을 찾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정신차리고자 지원했어요.
전혜은(지역사회)
나눔은 못했지만 간단하게 톡으로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이고 아이가 에너지가 넘치기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남편이 출근이 빠르고 퇴근이 늦어서 거의 혼자 키우고 있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