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2. 주일설교 <바알을 죽이라>
본문 열왕기하 10:20-27
- 김양재 담임 목사님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MZ세대의 결혼은 참 다르다고 하는데, 양가 부모의 개입을 못참고 생활비 통장을 만들어 서로 쓰고 출산계획이 있어도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빨리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기도 합니다.
반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늘 한결같은 반려견과 달리 자녀는 배반을 당하니 키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만년만에 가장 잘 사는 시대가 되니 결혼을 하고도 연애때가 그리워져 그렇게 외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엄마들끼리 만나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나누고 잘 아는데 배우자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이혼 전문 변호사가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모든 것을 잘해서 돈도 권력도 땅도 다 물려주고 바알 숭배도 물려주니 최악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바알을 똥파리 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신이 결국 똥파리 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죽여야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좋은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알을 죽이려면
1. 특별대우의 예복을 벗어야 합니다.
(20절)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는 예후의 계책이 시작됩니다. 바알을 위하여는 예후를 위하여도 되는 것입니다. 제 1회 전국 바알교 부흥회 광고가 온 나라에 퍼집니다. 아합 집안이 바알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에 죽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바알교의 부흥을 위해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불참시 사형이라는 공지를 합니다. 그러니 참석률 100%의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 시절에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하였던 것을 생각해볼때 그때보다도 더 많아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큰 신당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자가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아합이 이세벨과 불신결혼한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부모를 따라 열심히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 동생이 바알 교를 없애고자 하였으나 남았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때도 여전히 바알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회개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알은 성공과 돈의 신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매력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하신 것처럼 바알을 죽이고 죽였으나 온 땅을 가득 채우도록 부흥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바알이 우리 안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바알의 신당이라고 하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바알의 집입니다. 즉 생활의 한 부분처럼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것이니 죄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공과 번영과 돈이라는 바알을 우리가 욕심으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제사장으로서 죽어져야 하는데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도 해결이 되지 않고 나라도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보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가득 채운 욕심을 예후는 특별대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잠시 후에 죽일 것인데 특별대우를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21절) 예복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특별한 모양으로 만든 특별한 옷입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도록 하는 옷인 것입니다. 예복을 내다가 줬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준비해두었는지 온 바알교가 다 모였는데도 부족하지가 않았습니다.
보통은 제사장 정도 되어야 입을 수 있는 옷이었는데 참석자 모두에게 예복을 입었습니다. 외적인 감각을 만족시켜주면 무엇이든 인기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교황의 즉위식을 보면 색색의 옷을 입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기만 해도 대단한 것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계책의 대가인 예후의 모습입니다. 군중의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합니다.
또 다른 특별예복은 만인 제사장이되었으나 질서를 무시하는 모습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공동체는 완전하지 않고 교만합니다. 그렇기에 때가 차기까지 훈련을 받습니다. 직분을 받아도 더 거룩하지 않습니다. 질서가 있어야지 무리가 인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를 나보다 높이 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멀쩡한 개인도 군중 속에 들어가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모두가 검찰이 되고 판사가 되고 기업가가 되고 언론인이 되고 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모든 질서를 폭력적으로 해체하려고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이 바알 예복을 입은 자들의 심리가 아니겠습니까. 아합을 섬기던 제사장은 아합과 이세벨이 죽었으나 하루만에 예후에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프로 맞고 백프로 아닌 것 다 이상한 것입니다.
혼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아서 이상한데, 예복을 입고 공동체에 들어가니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구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열광하고 더 소리치고 더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바알을 죽이기 위해서는 특별대우의 예복을 벗어야 합니다. 특별대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모르면 내 안의 바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이미 입고 있는 예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게 아니고만 외치고 있다면 내 안의 바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특별한 존재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성도가 된 것을 자꾸만 잊을 때가 많습니다. 바알이 주는 특별대접을 찾는 헛된 것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 교회보다 더 거룩히 여기며 위하는 모임이나 대회가 있습니까?
# 가족모임, 골프모임, 동문회, 학부모 모임, 각종 동호회 모임 다단계모임 등 거기서 어떤 특별 대접 받기를 구합니까?
# 내가 당장 벗어버려야 할 바알의 예복은 무엇입니까?
2. 여호와의 종과 함께 생명 걸고 적용해야 합니다.
(22절) 예후가 바알의 신당에 직접 들어가는데 혼자 들어가지 않고 여호나답과 함께 들어갑니다. 이는 예후 혼자만의 생각으로 바알교를 처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바알교 척결은 굳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척결하는 것은 여호나답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척결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호나답이 필요했습니다. 예후는 믿음은 없지만 머리가 왕 좋았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으면 머리라도 좋고, 머리가 안좋으면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라도 좋으시길 바랍니다. 안그러면 이 세상에서 살기 힘드십니다. 뭐가 더 어렵겠어요? 믿음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예후가 바알교의 무리와 대면하는 자리에 여호나답도 함께 들어갑니다. 신당 안에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남게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은 나가도록 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과 바알을 섬기는 사람은 물과 기름 같아서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예후의 계책은 옷으로 구분해서 바알을 믿는 자들을 척결하기 위함이니 너무 좋아보입니다.
바알교 부흥회가 시작이 됩니다. 신당에서 번제와 여러 제사를 들이기 시작하는데, 끝나자마자 명령을 내립니다. 예후가 80명에게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고 합니다. 바알을 죽이라 하매 호위관과 지휘관이 그들을 죽입니다. 잠시 전까지 기뻐하며 바알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 온갖 열심으로 우리도 제사를 지냅니다. 돈에게, 공부에게, 여자에게 드립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죽음입니다. 숭배자들을 신당 문으로 삼켜 그 열심과 정성의 단물을 빼먹고 껍떼기를 뱉는 것입니다. 숭배자들은 우상을 앞세운 자들을 위한 먹이일 뿐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을 교주로 섬기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하면 그렇게 교주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걸 가져다 주면 이 땅에서 뭐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교주에게 소비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도 이렇습니다. 마치 사이비 종교같습니다. 우리 머리는 점점 커지고 잘살고 있는데 오히려 더 어리석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욕심에 눈이 가려져 바알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내 안의 바알을 죽여야 합니다. 집에 모신 우상단지를 버려도 내 마음 속 우상을 버리지 못하면 우상단지는 다시 생기는 것입니다. 혼자 바알 교도들을 상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과 함께 해야 합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해야하는 것입니다. 예후와 여호나답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바알교를 척결하려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맞지 않아도 구원 때문에 굴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약하디 약한 우리 한 사람이라도 맞는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강한 우리들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머리는 나빠도 믿음이 있으면 강한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머리가 안좋은 것은 알고 있으니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종인 지체들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열심을 내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적용을 하면 그것이 바로 생명을 건 적용입니다. 십자가를 길로 둔 적용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하나씩 없애주십니다. 열심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내면 예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내 안에 가득한 각종 바알을 주님이 하나씩 죽여주실 줄 믿습니다.
# 바알을 섬기는 자입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종입니까?
# 내 안의 바알은 무엇입니까?
# 말씀으로 통하는 영적인 동지가 있습니까?
# 생명 걸고 적용할 일은 무엇입니까?
# 여러분은 생명 내 놓고 교사, 부목자, 목자, 마을, 초원, 평원, 권사, 장로, 목사, 아내, 남편, 부모, 자녀를 하고 있습니까?
3. 그 근원을 불사르고 헐어야 합니다.
바알은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나타내기에 인기를 얻기가 좋습니다. 바알의 신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집에 두기도 편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들기 쉬운 만큼 없애기도 쉬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두 죽인 후 예후는 목상과 석상들을 헐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 집의 상징도 없애버립니다. 아합의 집이 바알의 집과 하나이기에 바알의 신전을 파괴하게 됩니다. 진짜 아합의 집이 끝이 난 것입니다. 아합 집의 멸망이 백성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전을 부순 그 자리를 분료처리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루살렘에 힌놈의 골짜기였는데 사마리아판 힌놈의 골짜기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 더러워진 신전의 터가 된 변소에 자기들이 거룩히 모시는 신의 신전을 다시는 짓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변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바알 신당이 변소가 된 것이 오늘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예후때로부터 최소 300년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수치스러워서 두 번 다시 생각하지 못할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강했던 아합의 집이 산산히 부서집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마음이 저절로 낮아지지만, 이기고 이길 땐 마음이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형통할 때 사건이 오는 것이 저주가 아닌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돌아올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 입성학교 커리큘럼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시험을 봐야 합니다. 좋은 학점으로 잘 졸업하라고 사건이 옵니다. 학위를 받는 때는 죽을 때입니다. 그러니 언제까지 계속되냐, 왜 고난이 찾아오냐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가 너무 명문이라, 천국가는 학교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천국 동창회에서 다같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후의 인생이 쓰임받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짜 열심이 있는 여호나답이 있었기에 바알의 신전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예후는 더 나아가 개혁을 할 수 있었지만, 금송아지를 멸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후는 바알 숭배의 근원이 신당과 신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근원이 내 안에 있음을 몰랐습니다. 내 안의 바알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후는 내 안의 바알을 몰랐기에 열심으로, 머리로 겉은 다 죽이지만 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한 왕이 되지 못합니다.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씀의 빛으로 나의 상황과 나의 주변을 비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을 보지 못하면 한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가장 먼저 내 안의 죄악을 비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밖에 있는 것을 없애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근원을 보려면 땅 파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굳고 완악한 마음을 파야 하는데, 아무리 말해도 예후는 마음 속의 바알을 보지 못합니다. 이번 주 우리 안의 바알 우상을 다 찾아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 바알의 목상처럼 이제는 불사르고 헐어야 할, 나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다시는 기까이 가기 싫은 변소로 만들기 위해 이번 한 주 어떻게 불사르고 헐어버리시겠습니까?
기도제목
찬희
1. 이번주도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할 수 있도록
2. 양교 마지막 주차인데 숙제 밀린 것 까지 잘 나눠서 할 수 있도록
3. 무리해서 일정 잡지 않고, 집에서 안식과 평안 누릴 수 있도록!
4.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수면 해서 건강 회복하도록!
5. 콧물 그만 나오도록,,,
지은
1. 진실되지 못한 내 상황을 보면서 눌리는 것들이 있는데 회피하지 않고 기도하며 나아가길
2. 올해 두번이나 다친 발목을 방치하고 있는데, 이번주에는 꼭 치료 받고 염증 빠질 수 있기를
3. 얼마 안남은 2차 시험 차분히 준비할 수 있기를
4. 유혹 앞에서 계속 무너지는 내 모습 솔직히 잘 나누며 갈 수 있기를
5. 울림픽, 아웃리치, 고등부 교사의 자리 모두 내 열심보다는 주님께서 주신 마음 가지고 임할 수 있기를
6. 나도 옳은 개소리하는 지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사랑
1. 지혜를 주셔서 위로와 공감의 말, 사랑의 말을 할 수 있기를
2.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타적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3. 내 안의 욕심인 바알을 큐티로 보면서 경계하고 하나님한테 맡겨서 이길 수 있기를
4. 토익 목표 달성할 때까지 욕심과 불안보다 편안하게 잘 준비할 수 있기를
혜명
1.회사 지각하지 않길
2.회사에서 졸지 않길
3.내가 가야할 올바른 길 알 수 있길
4.큐티,말씀 자주 볼 수 있길
5.신교제 할 수 있길
6.양육 재수강 안하고 끝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