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도 진실하냐 - 열왕기하 10장 12-19절
오늘 본문에서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고서 네 마음도 진실하느냐고 묻는데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되는데 진실하느냐로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될까요?
1. 내가 사로잡힌 것을 봐야합니다
12-13절 이스르엘과 사마리아를 모두 처단한 예후에게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가던 중 목자가 묵는 집인 휴게소가 있었는데 이때 아하시아의 아들들 조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육적인 DNA는 다윗이지만 영적인 DNA는 아합이었습니다 예레미야에서 사마리아까지 여행을 하고 있기에 외갓집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1도 모릅니다
너희는 누구냐하고 묻는 예후에게 굳이굳이 북쪽의 태후 이세벨에 집안임을 밝힙니다 다윗의 DNA가 싫고 틈만 나면 아합 집안임을 자랑합니다 이 장소 이름이 목자가 양털 깍는 집, 목자가 묶는 집인데 죽는 순간까지도 아합의집을 찾고 이세벨이 쥐어준 멍에를 금관인줄알고 이고 집니다
14절 아합집안임을 밝히니 예후는 바로 사로잡아 죽입니다 여전히 아하시아 조카들은 죽기 직전까지도 사로잡힘을 처음 경험했음에도 거기서 끝났습니다 육이 사로잡힌 사건에 내가 사로잡힌 걸 봐야 되는데 정체성을 아합의 집안에서만 찾으니 말씀을 무시하는 구조에 있다보니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로잡힌 웅덩이인 아합 집안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아합집안에 태어난 걸 어떡하냐는 식으로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든 다윗의 길을 따르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되는데 마음이 진실하냐는 것은 마음이 구부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서있다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것이 다윗의 길을 가는 것인데 이들은 아합의 길로 자기를 향한 길, 가족 우상을 향한 길로 갔습니다
우리는 각자 사로잡힌 길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누구나하는 것은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태어납니다 이세상은 이것을 부인합니다 전부 이것이 선이자 법으로 보호하며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냐는 것이 아합의 길이자 심판의 길입니다 그래서 사로잡힌 길을 봐야 됩니다 구덩이에 빠뜨리고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봐야 됩니다 불안과 나를 힘들게하는 직장상사의 고난, 직장고난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진실하게 해주실려는 하나님의 길이자 나에게 알맞은 환경이자 심판의 길입니다 내가 사로잡힌 것이 죄악의 길임을 인정하라는 길입니다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적용질문
보통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나요? 여러분은 누구라고 소개하고 싶나요?
어떤 상황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내가 보고 인정해야 할 나를 사로잡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2.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15절 예후가 또 우연히 만난 사람은 여호나답입니다 모세와 연결된 갈렙가문의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전적으로 믿음을 선택했음을 강조합니다 여호나답은 자기 후손들이 지켜야 될 가훈을 예레미아 3장에 남겼습니다 왜 여호나답은 이런 가훈을 남겼을까요? 오늘사건이 바로 말해줍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도 관심있게 보고 바알교로 뒤덮인 온나라를 보며 언제까지 두시는지를 부르짓었을 것입니다 이때 아합집안을 몰살시키는 예후가 등장하니 반가워서 마중까지 나갑니다 예후와 여호나답이 절친임을 드러내기도합니다 그동안 아합집에서 보면 여호나답은 찌질한 루저지만 예후에게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말을 원어로 보면 내 마음도 진실하냐하고 묻습니다 예후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호나답은 알고 있었습니다 개혁을 하자니 아이러니 합니다 북이스라엘 사람가운데에서도 여호나답이 있었습니다 예후에게 개혁을 혼자하게끔 두지 않습니다
네마음이 진실하냐는 인본적 질문이 영적인 여호나답에게는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바알우상을 몰아내고자하는 그였는데 진실하냐는 질문에 얼마나 의심했겠습니까? 아합에게 저항하다가 순교한 선지자들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계속 있었습니다 네마음이 진실하냐는 질문이 여호나답을 하나님께서 깨우는 질문이었습니다 죄악에 맛서는 것이 마음만이있었고 육적인 것은 없었던 자신을 회개했을 것이고 그의 후손에게도 전해져 예레미야에게까지 이어집니다(예레미야32장)
예후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여호나답은 승승장구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16-17절 나의 열심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는 열심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또한 나의 열심을 드러내는데 차이는 인생입니다 엘리야는 최고의 고난일때 하나님께 호소하며 말하지만 예후는 최정점일때 자기 열심만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집니다
여호나답은 진실하냐라는 질문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만 예후는 그시선이 사람에게 머물러져 있기에 죽이려는 사람 자기 편을 들어줄 여호나답만이 보이기에 진실함만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없이 진실한 것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실함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신도 속아넘어갑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같은 사람이 어딨냐 사람에게 진실하려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진실하려해야 진실하지 않은 내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100% 옳으시면 내모습을 보게 되는데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 진실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됩니다
목장은 삶을 다루는 것입니다 삶을 다루기에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목자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해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목자입니다 앉으나서나 비방하면 따끔하게 해야되지만 비본질적인 (담배 핀다던지) 것을 비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진실해야 처방이 가능합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목자입니다
♤적용질문
가족과 지체에게 내 마음은 진실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어떻습니까?
어떤 일에 열심을 내고 있나요? 그 열심은 성공 때문입니까, 구원 때문입니까?
내가 항상 틀렸다고 생각합니까?
3.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됩니다
18-19절 예후의 혁명이 완성되었습니다예후는 멈추지 않고 사마리아의 백성들을 모아 아합의 바알을 더욱 섬기겠다고 선포합니다 뜻밖에 선포에 모든 선지자 제사장들은 한명도 빼놓지 않고 오라하니 경사났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후의 계책입니다
계책은 속임수 입니다 구부러진 마음입니다 마음의 진실함과 계책은 반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면 계책을 못쓰고 계책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가길 바랬던 여호나답인데 예후는 바알교 척결을 하면서도 선지자를 부르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자기 힘으로 했습니다 바알숭배에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말을 하며 전략을 짭니다 하지만 그안엔 진실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묻지도 않은 인본적 열심이자 나를 높이려는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는 속임수와 같은 열심입니다 속임수와 계책으로 끝나는 예후입니다 이와중에 여호나답도 분별이 안되기에 깨져야될 것이 많았던 것입니다 회개할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여호나답도 예후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묻고 공동체에 물어보며 가야 됩니다 그것이 진실성을 지키는 길입니다 사소한것도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렇게 묻고 갈때 하나님께서 최고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적용질문
계책이 통해 좋아했던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자랑스럽습니까? 이제 부끄럽습니까?
반대로 계책이 막혀 회개한 일이있습니까? 내 열심과 계책을 내려놓고 목장에 물으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다인
- 오빠의 가정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 아빠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순종(?)하는 적용 할 수 있도록
- 절약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상아
- 사로잡힌 환경(아빠의 조울증)에서 말씀 더욱 붙들고 진실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 돈 절약하기 (가계부 밀려서 몰아쓰지 않도록)
- 직장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며 가기
은재
- 이모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힘을 주시길
- 다이어트 시작하는데 포기하지 않기를
- 직장 구해질수 있기를
하은
- 남자친구와의 스킨쉽 잘 조절할 수 있도록
- 큐티 우선순위로 두고 할 수 있도록
- 돈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정민
- 수업 발표 떨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 자투리 시간 버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