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주일설교
네 마음도 진실하냐
김양재 담임목사님
열왕기하 10장 12절 - 19절
12절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절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절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5절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절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절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8절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절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1.내가 사로잡힌 것을 봐야합니다.
예후가 유다의 왕 아시아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시아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으로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이스라엘에서 아의 집에 속한 왕자 70명과 모든 사람을 처형한 예후는 이제 수도 사마리아로 향합니다. 이제 예후에게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입성하기만 하면 끝나는 거예요. 근데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가 있었어요.그 휴게소 이름은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었어요. 양털을 깎으려면 양을 묶어야 하잖아요.그래서 원래 이름은 목자가 묵는 집이에요. 이렇게 바인드 하는 예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간 그곳에 아시아의 형제들이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형제의 아들들 아들들 즉 조카들인데요.아시아 형들은 이미 예전에 다 죽었잖아요. 그죠?기억나시죠? 그래서 그 어린 자식들을 아시아가 돌봐야 했을 것인데요.
그러나 그들 역시 아시아의 모친인 아달리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겠죠.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리아 말입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에 그러니까 이 조카들도 아시아처럼 육적인 DNA는 다윗의 집 사람인데 영적으로는 아합의 집 사람으로 자란 거예요.
그러니 때마다 심하다 외갓집에 놀러 가는 거예요. 힘 있고 돈 많은 외갓집이 너무 좋거든요. 지금도 이 조카들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서 사마리아를 지나 이스르엘로 향하는 신나고 설레는 여행을 하고 있어요. 그간 외갓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이스르엘로 여기는 아주 그 그 부자나라 북이스라엘도 너무 가고 싶어 하는 휴양지잖아요. 이스르엘이 가다가 잠깐 쉬려고 목자가 양털 깎는 집 휴게소에 들린 거예요.
너희는 누구냐고 묻는 예우에게 아시아의 조카들이 신분을 밝히는데요. 아시아의 형제라고만 하지 않아요. 굳이 굳이 북쪽의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간다고 밝힙니다. 왜죠? 자기들은 다윗의 후손임이 자랑스럽지가 않고 아 집에 태후 이세벨 집안이니까 건드리지 말라. 지금 3대를 내려오는 대단한 다이아몬드 수저 집안이잖아.
그러니까 아시아도 그의 조카들도 이세벨 왕할머니 집은 생각만 해도 너무 든든하고 좋은 거예요. 예 틈만 나면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이 한 사람의 불신 결혼의 영향력은 이렇게 대단한 거예요. 게다가 돈도 많고 지위가 있으면 이건 정말 이제 천국 가기 너무 힘들지 않은가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장소 이름이 뭐라고요?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고 사실은 목자가 양을 묵는 집이라고 했어요. 그 아시아는 도망을 가도 정원의 집 길로 도망했잖아요. 죽는 순간까지 저 푸른 초원 위에 우리 집을 찾은 것이에요.
그 집은 다윗의 집이 아닌 아합의 집이었어요. 지금 이 조카들도 똑같이 아합의 집 세력에 다 묶여 있는 거예요. 이세벨이 지어준 그 무시무시한 멍예를 멍예인 줄 모르고 그저 금멸유관으로 알고 이고 지고 쓰고 있어요.
그래서 이들이 정체를 밝히자마자 예우는 사로잡으라고 명령합니다. 14절에요. 이르되 사로잡으라 함에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42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그냥 잡으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굳이 사로잡으라 산 채로 잡으라고 해요. 처음에는 죽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사로 잡아서 그 42명 전부를 웅덩이 곁에서 죽입니다.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였어요. 예. 이거는 공교롭게도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곰에게 죽임을 당한 그 우상숭배에 오염된 젊은이들의 수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여기도 금송아지 우상숭배 여기도 지금 여전히 아시아의 조카들은 이렇게 사로잡힌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불과 얼마나 걸렸을까요?
1시간 걸렸을까요? 이 짧은 시간에 사로잡혔다는 게 뭔지 태어나서 처음 경험했을 거예요. 너무 두려웠겠죠. 근데 거기서 끝났어요. 이렇게 육이 사로잡히는 사건을 당하면 내가 사로잡혀 있는 죄악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어디서도 들어보질 못했어요. 자기 정체성을 다윗의 집에서 찾지 않고 아합의 집에서 찾고 있는데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어야 그나마 한두 번이라도 들어올 텐데, 구조 자체가 말씀을 무시하는 아합의 집 구조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는 귀를 막고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죠. 그러니까 아시아나 그 조카들은 아합의 집 죄악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웅덩이 정말 이제 빠져 있었는데 그것을 전혀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예루살렘에 사는 왕족인데 지나가는 선지자 한 명이 없었겠습니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해요? 태어나고 보니 내가 아합의 집 사람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내가 이렇게 챙겨 먹은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전혀 귀담을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어요. 환경이 받쳐주잖아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당부하신 것 하나 고르라고 하면 다른 게 아니에요. 열왕기상 9장 4절에 내 아버지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라. 이 말씀을 북이스라엘 왕, 초대 왕 여러 모함에도 똑같이 하셨어요. 남유다든 북이스라엘이든 다윗 이후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길은 다윗의 길이었어요. 이건 곧 하나님의 길이었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15절에 나오고 오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이 진실하다.
이 말은 곧 마음이 바르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구부러져 있지가 않다는 거예요. 이제 구부러지지가 않고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그 열매가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서 있다는 거예요.
해바라기처럼 하나님 바라기가 되는 것이 마음이 진실한 것이고 바른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게 다윗의 길을 가는 것인데, 아시아나 그 조카나 전부 그 길을 떠나서 아합의 집 길을 갔어요.
그건 뭐죠? 자기만 높이고 자기 가족만 옳고 좋고 가족 우상 가족 신화에 빠져 있는 그렇게 자기를 향해 굽은 길을 가고 말았어요. 거기 사로잡혀서 그런 줄도 모르고 끝까지 갔어요.
근데 인간은 다 군중 심리가 있잖아요. 그 모든 왕자들이 똑같이 움직이니까 그 길이 옳은 줄 알고 그냥 다 같이 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모습이죠. 우리가 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로잡혀 있는 죄들이 있어요. 낳을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사로잡힌 건지도 몰라요. 너무 자연스럽기ㅇ 때문이에요. 거짓말은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할 줄 알지 않습니까? 이게 가장 분명한 증거예요. 마음이 진실하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는 증거예요. 거짓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죠. 거짓뿐이겠습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에 다 사로잡힌 채 태어나죠.
그런데 그게 문제인지 몰라요. 이 시대는 더 그렇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말 자체를 부인하잖아요. 원래 그런 걸 어쩌냐가 무엇이든 전부 선이 되는 시대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해? 전부 이게 선이에요. 이거를 다 법으로 보호해 주자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냐 이게 아홉의 집 길이에요. 예. 이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심판을 받는 길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로잡히는 사건이 와야 하는데 진짜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을 보라고 육이 묶이고 사로잡히고 이제 구덩이에 빠져서 내 영을 묶고 있고 사로잡고 있고 구덩이에 빠뜨리고 있는 이 심각한 죄악을 보라고 이 일이 왔는데 여러분 지금 사로잡혀 있어요.
가족에게 직장 사람에게 이에 질병에 사로잡혀 계세요 불안과 여러 중독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건 우리가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어떻게든 살리시려고 어떻게든 굽은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을 오게 하시려고 거짓을 떠나 진실하게 하시려고 딱 맞춰서 주신 환경인 줄 믿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말씀을 듣고 내가 사로잡힌 존재라는 걸 이런 환경에 사로잡힌 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죄악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걸 볼 때 최고로 진실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자유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집의 왕자들이 단 한 명도 마지막까지 회개를 하는 자가 없기에 심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환경이 좋은 게 그러니까 축복이겠습니까? 이걸 끊임없이 헷갈리게 하는 것이 이제 기복이고 이단이고 여기서 바른 길을 간다는 게 쉽지 않은 길이에요.
적용해보세요
보통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나요?
누구라고 소개하고싶나요?
어떤상황에 사로잡혀 있나요?
내가 보고 인정해야 할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렇게 지난주와 지금 오늘 북이스라엘의 70명과 남유다의 42명이 다 죽었어요. 최고의 사교육을 받는 왕자들이 하버드 유니버스티 오브 사마리아 모두 죽었어요.
모두 죽었어. 그래서 우리 교회 아이들은 어떨까 그래서 이제 이렇게 오늘 어린이 주일이잖아요. 그죠? 우리는 어린이 주일 설교를 특별히 하지 않아요. 날마다 어린이 주일이기 때문에. 근데 이제 이번 팔복산 기도회에 이제 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침에 일어날 나이가 아닌데 첫째가 가자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아이가 가자 그러니까 이제 아이를 이제 내려줬는데 아이들은 본당에 들어갔고 본인은 4층에서 기도드리고 있는데 첫째가 기도 받으라고 기도받으러 나오라고 할 때 나갔다는 거야.근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서 큰 사랑도 없고 애들 치대면 다정한 엄마가 아니거든요. 니가 알아서 해. 그래서 엄마가 고난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어쨌든 교회를 이렇게 오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그래도 구원의 길로 아이들을 키워가시는구나 그런 아이들이 도리어 나에게 천사로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오니까 막내가 또 자기 눈물을 닦아주셨다는 거예요. 닦아주셨다는 게 아니라 주었다는 거예요. 이런 집도 있어요.
그래도 어쨌든 교회를 데리고 왔어 그런가 하면은 또 항상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고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고 언제 학교와 교회에서 돌발 행동을 일으킬 것인가 그날그날 하루 은혜로 그날 말씀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시는 부모도 있어요.
자녀 때문에. 근데 그렇지 않은 자녀였다면 저도 지금 사교육시키고 그러면서도 더도 하면서 세상적으로 계획 세우며 말씀과는 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돼서 우리 아이의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이 행동은 정말 있어야 할 일이고, 정말 아이가 나 때문에 수고한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도 있어요.
그래도 여기도 데리고 와요. 아이들을 또한 우리 중등부 선생님은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새로 배정된 중일 아이와 대화를 하는데 너는 어느 학교 다니냐 그랬더니 아무개 중학교라고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그랬더니 서산이요 이랬다는 거예요.
충격을 먹었는데 나는 교회에서 20분 거리에서 막 귀찮아하면서 왔는데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서산에서 왔는데 그것도 아빠가 너무 싫어해가지고 눈치 보면서 온다 이랬대요.
여러분 교회를 데리고만 와도 아니면 억지로 데리고 와도 부모의 핍박으로 겨우겨우 와도 교회를 오게 하는 것은 이 왕자들과 다르게 진실해지는 아이들이 진실해지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2.사람만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니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다 같이 니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원 아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우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예우가 그다음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은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에요. 아브라함의 후처 그드라가 낳은 여섯 아들 중 넷째가 미디아니에요. 근데 그 미디안의 소생 중 겐 족속이 나오는 거예요. 그 겐 족속의 소생 중에 레갑 자손 중에 지금 요나답인 거예요.
우리가 사라의 구속사를 통해서 그들의 자녀들을 동쪽 땅으로 쫓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중에 일부가 모세를 따라 이스라엘에 합류했고 갈렙 자손 중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이방 출신이지만 모세와 연결이 되고 또 그 유명한 갈렛 가문에 들어갔어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인데 모세 따라 나섰다가 영적으로 최고의 가문에 계속해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주제가 이방인이었던 레가 가문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이 하나님의 정체성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지켜왔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삭의 후예라고 해서 떨어져 나간 에서도 있는데 그두라의 후손이라도 돌아온 택자가 있는 거잖아요.
성경은 항상 이 전적인 선택임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들이 요즘에 너무 못되게 그러니까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 사람들은 한 집에 자녀를 10명 이상씩 낳아요. 지금 우리 인구 절벽인데 이게 굉장히 기도해야 되고 아주 이슬람교가 전 세계에 지금 펼쳐질 예정이에요.
그런 나답은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이루어졌음이 이 이름 속에 함축이 되어 있는데요. 한마디로 영적으로는 아주 뼈대 있는 이게 몇백 년 흘러왔으니까 그런 집안의 선조라는 거예요. 영혼아답은 자기 후손들이 지켜야 할 특별한 가운을 예레미야 35장에 보면 남겼는데요. 평생 포도주 마시지 마라. 살 집을 짓지 마라. 포도원이나 밭이나 농사 지을 수 있는 씨앗도 가지지 마라. 너희들은 장막에 살아라.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추구하는 삶을 살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아라.
그럼 요나답은 왜 이런 가운을 남겼을까요? 또 어떻게 그 후손들은 200년이 훨씬 지난 예레미야 때까지도 선도의 명령을 따라 가문의 영적인 전통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축복했다는 거 복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어요. 근데 그동안 아지의 관점에서 보면 영혼 나답은 루저고 찌질한 방해 찌질한 방해꾼에 불과합니다. 근데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한 사람 예우가 지금 복을 빌어주는 거예요. 아주 그냥 아악 가문에서는 골치 아픈 사람이었을 거 아니에요. 요나답에게 좀 위로가 됐을까요?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예우의 질문이 중요합니다. 예후가 자기 마음이 영혼 아답의 마음을 향해 진실한 것처럼 영혼 아답 내 마음도 진실하냐 이렇게 물었는데요.
원어로 보면 순서가 반대예요. 내 마음도 진실하냐부터 나와요. 내 마음이 내 마음을 향해 진실한 것처럼 그러니까 이제 여호나답의 그 마음을 지금 묻는 거예요. 물론 예후의 질문은 전략적인 것이었어요. 예우는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임받고는 있지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죠. 예후는 아합과 이세벨과 요람의 총애를 받으면서 밑바닥부터 훈련받아 장관이 된 뼛속 깊은 아웃 가문의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똑같은 악이 자기에게도 고스란히 있는데 이걸 개혁하자니 굉장히 아이러니하겠죠. 그런데 남유다도 아니고 이 북이스라엘의 사랑 가운데도 단 한 사람, 영적으로 뼈대 있는 집안에 확실히 구별된 요아답 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지금. 근데 그 사람이 예우를 인정하고자 찾아왔으니까 최고의 명분이 생겼어요.
예. 개혁을 혼자 합니까? 물론 이제 하나님이 도와주신 거가 있겠지만은 예우는 정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여호나답을 금세 끌어들이고 이용을 합니다. 게다가 예우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직접 기름부음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선지자의 제자가 와서 기름 부었어요. 정치인들이 이런 걸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아주 일석이조인 거예요.
지금. 그런데 예후에 니 마음도 진실하냐라고 인본적인 질문을 했지만 우리 영적인 영혼아답에게는 아주 굉장히 이 질문이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어요. 수백 년 신한 정통을 이유는 가문의 족장이에요. 아합과 이세벨의 멸망을 지금 기다려요. 이스라엘에서 우상을 몰아내고 싶어해요. 근데 하나님을 향한 또 나라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진실하고 바르다는 데 대해서 얼마나 의심을 해봤겠어요? 본인은 이제 기가 막혀 나라를 위해 기도만 해 그런데 하나님이 예우를 통해서 물으시는 거예요.
마음이 진실하냐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아합에게 저항하다가 순교한 선지자들이 생각났겠죠. 엘리 가 이세벨에게 쫓겨다니며 고생했던 것이 생각났겠죠. 엘리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합의 집을 그래도 돌이켜보러 오고 수고했던 것이 생각났겠죠.근데 자신은 어떻습니까? 사마리아 수도에 살고 있어요.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이리 판단하고 정제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몸은 사마리아 집에 가만히 있어요. 주님이 물으십니다. 니 마음이 진실하냐 이 질문이 영원한 답을 새롭게 일깨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줄에 좀 더 다루겠지만은 31절에 보면 예우가 이 바알교는 제하고 그렇게 원했던 금송아지 우상은 재하지 않아요. 그는 개혁 공신의 상을 포기하고 그래서 후손들에게 나은의 인생처럼 살라고 명령을 했어요. 그래서 포도주를 먹지 말고 이런 이런 이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죠. 죄악에 맞서는 영적 전쟁에 마음으로만 함께하고 몸은 함께하지 않았던 자신의 진실되지 않음을 회개하면서 이제 나가는 거죠.
다 밭을 다 팔고 광야에 들어가서 이제 사막의 교부들처럼 그때부터 수도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처절한 회개의 적용이 그 후손들에게도 256년 동안 이어져 이제 앞으로 일어날 예레미야 시대까지 가서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들을 불러가지고 술을 먹였더니 절대로 안 먹였죠.
예레미야 35장에 나왔습니다. 승승장구하며 사마리아까지 온 예우는 이런 것하고 관심이 없어요. 자기는 그저 더 확실한 승리를 위한 명분을 얻으려고 여호나답과 서로 손을 잡고 한 편이 됐을 뿐이에요. 예후는 이거밖에 몰라요.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혹시 나가 역시나입니다. 16절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 엘리아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예후가 지금 인생의 정점에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나오는 지금 오늘 단어가 뭐죠?
나의 열심이에요. 그냥 열심도 아니고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이 이 열심을 보라 자신이 있어요. 보여주고 싶어요. 세상이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열심이에요. 성경에서 여호와를 열심히라는 말이 쓰인 사람이 딱 두 명인데요. 예후가 지금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고요. 다른 한 명이 누군지 기억나세요?
수없이 얘기했는데 바로 엘리아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길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이렇게 말해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차이가 뭐예요? 인생 엘리아는 인생에 가장 정말 최저점 같은 고난 가운데 이렇게 고백을 했는데 예우는 최정점처럼 보이는 순간에 열심을 자랑해요. 엘리아는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말하지만 예우는 친구 영혼 아답을 향해 당당하게 말합니다. 엘리아는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한 열심을 말하지만 예언은 이기고 또 이기는 자기 열심을 말해요. 하나님은 이 열심도 사용하셔서 아 집에 대한 심판을 완료하십니다. 최후의 보루 수도 사마리아 였던 아홉 사람들까지 남김없이 진멸하셨어요. 엘리아를 통해 하셨던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이루셨어요. 여러분 여호나답과 예후의 차이가 뭘까요?
여호나답은 스스로 진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졸이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니 마음이 진실하냐는 청천병력 같은 질문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거예요.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예후는 그 시선이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어요. 자기가 이루고 있는 일만 생각하고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만 봐요. 그러니까 죽여야 할 요람과 아시아와 이세벨만 보이고 오직 자기 편만 들어주는 여호 나담ㅇ만 보여요. 그러니 자기 마음이 여호나답에게 진실했다는 것만 계속 강조하는 것 하나님을 향해 어떤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기고 또 이기고 있으니까요. 사람에게 진실하기도 너무 어려워요. 사실 불가능하죠. 그건 우리 자신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사람에게 진실을 보이기는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속이기도 속기도 우리 듣기이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해주지만 잠깐은 진실한 사람으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게 잘될수록 자신도 속아 넘어가고 말아요.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도 없어야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지 알지 하면서 늘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해요.야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 입만 열면 나 같은 사람이 어딨냐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 진실해 보이는데 만족하면 안 돼요.실제로 진실하려고 힘써야 해요. 그러다 보면 진실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거죠. 진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100% 오르시면 나는 100% 죄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진실의 정의는 내가 틀렸구나 거예요. 내가 틀렸구나.
언제나 나는 틀릴 수 있어요. 그래서 믿는 내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우리들교회 성도라면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근데 다들 우리들 교회를 다니면서도 억울한 일에 막 치를 떨어요. 그냥 그럼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요? 그러니까 이유가 없어요. 이 마음은 아합의 길도 아니고 예우의 길도 아니고 다윗의 길을 따르는 마음,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마음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이에요. 어떤 집사님이 우리들교회 와서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20년이 되었는데도 말씀이 안 들리는 성도가 있다고 하시는 것이 날 두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내가 이게 보청기로 들으면 잘 들릴까 외국에 보청기를 주문해서 들을까 어려서부터 살아온 과정 과정의 역경을 이겨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해서 이겨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어요.근데 아내는 당신이 한 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안 들렸어요. 그런데 드디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수도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한 지가 얼마 안 됐습니다.
이제 아내의 말을 인정하고 니가 옳다라고 하는데 지금 내가 그 역경을 내가 극복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극복할 수도 있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너무 고난이 많은 사람은 이런 얘기가 우습게 들리겠지만은 저는 그냥 너무 감동하면서 이런 이렇게 안 들리는 사람이 들리는 게 정말 이렇게 이제 진실로 가는 열차를 탔다고 생각해요.근데 각자가 다 틀렸다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죠? 우리가 목장을 한다는 것은 삶을 다루는 것이잖아요. 목장을 안 하면 문제가 없겠는데 목장을 하니까 크고 작은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요. 왜냐하면 믿음의 불량과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수없는 옳고 그름의 충돌이 목장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안 하면 속 편하잖아요. 그죠 설교만 잘해도 다 많이 모이는데 그러니까 목자 때문에 달라지지 않아요. 주님이 각자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까지 붙어 있게만 하시면 그게 최고의 목자라고 그랬어요. 어떤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이의 의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악영향을 주는 목사 비방과 교회의 비방은요.
믿음이 견고하지 못한 목원들은 이런 목원 때문에 목장을 떠나버리기 때문에 이런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왜냐 아무리 부족해도 자기 아버지 계속 누가 욕하면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집에는 질서가 있잖아요. 교회에서 적어도 저는 우리들 교회의 부모인 거예요. 그건 아시죠? 그런데 안 지나서나 목사 비방을 하고 그러면은 이 따끔하게 훈육을 할 수도 있어야 되는데 그러나 이제 비본질적인 목장 시간에 계속 담배를 피고 들어온다든가 이런 걸 가지고 욕을 하시면 안 돼요.
그거는 피면서도 오시는 게 옷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그런데 이 모두 구원 때문에 해야 되기 때문에 이거 여러분들이 진실하셔야 처방을 할 수가 있는 거
목자부터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어요.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목사를 욕할 수 있냐 목사를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 호칭부터 이상하게 하잖아요.
저를 그러면 여러분들은 막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참 저를 이상하게 호칭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호칭하면서 참 또 교회는 오시네요.
그러니까 우리들 교회 목자들도 참 불쌍해요. 자기 믿음도 없는데 이거 다 끌고 가려니까 그러니까 맨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시고 목장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울어드릴게요.
적용해보세요
가족과 지체에게 내 마음은 진실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어떻습니까?
어떤일에 열심을 내고 있나요?
그 열심은 성공 때문입니까 구원때문입니까?
내가 항상 틀렸다고 생각합니까?
3.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됩니다.
예후의 혁명이 이제 드디어 완성되었어요. 아합에 속한 사람들을 다 정리했어요. 그럼 예우가 이제 할 일 다 했으면은 왕 노릇하면서 대접받아도 되지 않아요. 근데 예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사마리아에 사는 모든 백성들을 불러서 이제 선언을 합니다. 자기가 아합보다 바을 더욱 많이 섬기겠대요. 사실 아합의 집과 바울은 바알은 하나잖아요. 다윗의 집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바울 숭배자들은 예후가 아합의 집을 집멸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두려워 떨었겠어요. 다음은 우리 차례겠구나 하면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런데 글쎄 새로운 임금이 뜻밖의 커밍아웃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사실은 아합보다 더 열심히 바을 섬기는 바알주의자입니다. 이러는 거예요. 지금 그러면서 바울에게 큰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까 모든 선지자 제사장들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다 오라 도리어 오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그러니까 이제 바알 숭배자들은 경사 났네 이렇게 된 거예요. 죽은 줄 알았는데 더 큰 지지자가 생겼다는 거예요. 근데 이 모든 게 뭐라고 하죠? 예후에 계책이라고 하는 거 계책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옮기면 속임수예요. 진실하다는 말이 아까 바르다 굽어 있지 않고 똑바르다 그랬잖아요. 근데 그 반대로 마음이 진실한 것과 계책은 반대예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은 개책을 쓸 수가 없어요. 일이 되게 한다고 개책을 쓸 수가 없어요. 거꾸로 개책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예후는 여호나답을 향해 자신이 진실하다고 주장했어요. 하나님을 향해서도 열심 타령하면서 진실하다고 확신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진실을 입증하려고 솔직히 자기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유익이 없을 듯한 바알과 척결을 지금 시도하는 거예요. 바울과 척결은 예후가 받은 사명 목록에는 없었거든요.
여호나답의 목적은 오직 아벳이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바교 척결, 나아가 여러보함이 세운 금송아지교 척결이었거든요.북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던 한 사람이었어요.
사실은 자신과 너무 다른 예후와 손을 잡으면서 바알교를 뿌리 째 뽑기를 강력하게 주장했을 것인데, 예우는 이 중요한 일 사실상 아의 심판보다 더 중요한 바도 척결을 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을 찾지 않아 기도했다는 말도 없어요.
선지자를 불렀다는 말도 없어요. 묻지도 않았어요. 왜죠? 싸움에는 자기가 이긴 자거든요. 누구 힘을 빌릴 필요가 없어요.
상황을 보면 기막히게 좋은 아이디어가 작전이 딱 떠올라요. 이번 작전도 얼마나 좋습니까? 제1회 전국 바알교 부흥회를 기획해서 홍보하는 거예요. 가장 큰 축제를 열겠다고 하는 것 전부 다 오라고 안 오면 죽이겠다고 당근과 채찍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그냥 아는 거예요.전략의 천재 맞습니다. 이런 부하가 있으면 저도 이런 후임이 오면 너무 좋겠어요. 전략의 천재 예후야말로 열심의 최고봉이죠. 누구라도 그 열심을 볼 수 있어요. 보면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실함이 없어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조차 진실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찾지도 묻지도 않아요. 가짜죠. 그 엄청난 열심은 인본적인 열심이에요. 나를 위한 열심, 내가 잘 되고 내가 높아지기 위한 열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열심이에요. 열심의 끝이 바로 속임수예요. 이게 맞다 이 길이 맞다 이렇게 하는 게 맞다 이렇게 계속 스스로 속이면서 욕심을 연료 삼아 불태우고 있는 열심은 결국 속임수로 끝납니다. 잠깐 옳은 것 같고 통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가짜라는 게 드러나요.
예후에 열심히 이렇게 속임수와 계책으로 끝난다는 건 사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여호나답은 이걸 왜 동조할까요? 여호나답도 아직 깨어져야 할 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속만 끓였을 뿐 나서서 당해 혼자 거룩하게 살아서 당해본 일이 많지 않아서 여호나답도 아직 분별이 안 되는 것 같아.
바알교를 한 방에 없앤다는 그 목적이 너무 좋기 때문에 수단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아요.
이런 기대가 다 무너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니 마음도 진실하냐 이 질문으로 회개해야 할 때가 아직 차지 않은 것이겠죠. 이렇게 묵상을 해가면은 이 땅에 틀리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항상 너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이렇게 말할 사람은 예우도 아니고 여호나답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 땅에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날마다 물어야 돼요. 내 개체에게 의존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물으며 성경을 펴야 합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전만 의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 받아야 돼요. 공동체에서 묻고 지체들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이런 형식이 우리 마음의 진실성을 세워주고요. 지켜줍니다. 뭘 이런 걸 물어 이러지 마시고요. 이런 생각이 영적 진실성을 좀 먹는 거니까 절대로 거기 넘어가지 마시고 사소한 일도 말씀으로 인도함 받으시길 바랍니다.
내 열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때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어떤 정말 그냥 목원이 이런 나눔을 했어요.
'목장에서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안전장치를 하는 거예요.'
적용해보세요
계책이 통해서 좋아했던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자랑스럽습니까?
이제는 부끄럽습니까 반대로 계책이 막혀서 회개한 일이 있습니까?
내 열심과 계책을 내려놓고 목장에 물으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는
내가 사로잡힌 것을 봐야합니다.
사람만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됩니다.

기도제목
오수근
1.4월 마감 잘하고 회사에 불만갖지 않기를
2.자기 자리 잘 지킬 수 있기를
3.신교제 신결혼
김태규
1.여자친구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하는 제가 되기를 그리고 신결혼 할 수 있기를
2.학폭가해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3.자기계발을 즐기면서 할 수 있기를(강박이 아니라 즐겁고 순수한 마음으로)
4.동생의 군 생활 가운데 함께해주시기를
5.회사 업무 가운데 소통과 관계의 지혜를 주시기를
6.허락해주신 물질과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신지우
1.다음 주 결혼식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주예성
1.신교제 신결혼
2.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3.일터와 학업에서 체력 주시기를
4.말씀기도 규칙적으로 할 수 있기를
5.교회를 오고 목장을 참여할때 즐거움과 기쁨으로 참석할 수 있기를
6.양육자의 역할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주차도 잘 수행할 수 있기를
조준혁
1.마지막 남은 강의 한 달 마무리 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