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석보고
-나눔출석(이름):최성남,윤수현,최인복,공보성, 이지영
-장소:판교채플4층비전홀
2.주일설교
-말씀 : 아직 남은 할 말
-본문 : 욥기 36:1~36
-설교: 강승현 목사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가지 영상을 봤습니다.
우리가 조언이나 심각한 말을 다른사람에게 할때 절대 하지 말아야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기분나빠하지 말고 들어' 이말 하면 안된다는 거에요.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하면 그 다음에 반드시 기분 나쁜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죠.
기분 나쁜 말을 실컷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왜 내가 틀린말했어?'
실컷 기분 나쁜 말을 해놓고 또 바른소리만 해서 상대의 어려운 마음을 만들어 놓고는 내가 틀린 소리를 했어 이러는 겁니다.
아무리 사실이 맞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야되죠. 담임목사님도 그 사람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해서 사실을 이야기해야된다.
<욥기>
생각나는 단어 2가지. 하나는 <고난>, 하나는 <인내>.
욥기의 주제가 흔히들 말하기를 '고난을 인내한다' 이렇게 말한다.
욥이 받았던 큰 고난, 참고 있는 인내는 무엇일까?
자녀가 하루아침에 다 죽어버리는 고난,
사랑하는 아내가 '너가 믿는 하나님을 저주해라' 하고 떠나버리는 가정이 깨어져버리는 고난,
일평생의 전재산이 한꺼번에 탕진되어버리고 없어지는 재정의 고난,
진짜 욥에게 고난은 바로 옆에서 시종일간 계속 떠들어대는 친구들의 잔소리를 듣는게 고난,
욥의 고난은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 옳은 소리만 하는게 고난,
'나는 옳다. 너는 그르다' 옳고 그름의 프레임에 갇혀서 하나님이 인과응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계속해서 욥을 괴롭히는 인간들.
누구도 욥의 환경에 처해보지 못했는데 그냥 바른소리만 계속하니, 얼마나 욥이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욥도 똑같았다.
친구들이 계속 인과응보로
'너 죄를 봐야해'
'너가 잘못한게 있는거 같아'
'하나님이 괜히 너에게 그런 벌을 주시지 않을꺼야'
욥은
'나는 죄가 없다'
'하나님이 왜 그러시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이 하나님이 왜 그러실까. 진짜 죽고싶다'
월요일부터 사람이 바뀌어서 엘리후 등장.
엘리후는 새파랗게 젊은놈이 가장 말을 많이 하는데
'내말을 들어봐'
'내 말에 귀 귀울여봐' 이어서 이야기할께
꾹 참고 있다가 물보가 터지듯이 욥에게 계속 이야기를 한다.
엘리후가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한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내말 좀 들어봐'
'그게 아니고'
욥의 세친구를 포함해서 가장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엘리후는 또 이어서 아직 할 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런 많은 장수를 할애해 엘리후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우리가 이 내용을 묵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은 뭐라고 얘기하며 할말이 있는지, 그렇게 많이 남은 할말은 무슨 말인지 THINK해보겠다.
1. '내가' 가 주제가 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목원이나 가족에게 마지막 남은 한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이 될 것 같습니까?
- 나를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 교회를 위해서 / 가족을 위해서 라고 교모하게 포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남편 / 아내 / 가족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입니까?
엘리후가 '잠깐만~ 잠깐만~ 내말좀 들어봐' 이야기하는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걸 직역하면 '하나님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후는 아직 남아있는 말이 '하나님을 위한 말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나타낼수 있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엘리후가 정말 하나님을 위한 말을 할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통찰력이 이정도 된다. 내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이정도다라는 것을 교만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엘리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지식이 '먼곳'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먼곳'이라는 말을 쓴 진짜 이유는 앞에서 쓴 '하나님을 위해서'를 연결하기 위함.
'먼데에서 온 지식'은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식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만의 정점을 찍는 것.
진실된 언어습관.
진실된 사람은 '정말로~ 진실로~ 참으로~' 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엘리후가 떡하니 '진실로~' 이런말을 쓰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온전한 지식을 갖춘자.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자기를 형용하고 있다. 꾸미고 또 꾸미고 있다.
이세벨의 화장처럼 자기말을 이렇게 저렇게 막 꾸민다.
나르시스적인 자아도취에 빠져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엘리후는 많은 부분에 오류를 저질렀다.
욥이 했던 말을 곡해서 다르게 번역해서 욥에게 답변했다.
엘리후 역시도 하나님의 인과응보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뭔가 더 고급지게 정죄하는것. 고등교만의 모습을 엘리후가 보여주고 있는것.
엘리후가 고등교만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내가' 주인공 이기 때문이다.
'지식'이라는 단어는 1인칭이고, 단수명사이다.
지식 앞에 주어가 뭐가 붙어야 할까요? '나의 지식'
지식이 오긴 왔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식도 내 지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짧은 4절의 구절에 7번이나 자기를 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나'라는 주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나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수록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 계시죠.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때,
교회 사역을 한다고 할때,
어떠한 일을 만나서 나눔을 한다고 할때,
자꾸 나의 이야기,
내가 나오면 그때 그것은 교만에 빠지고 우상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남은 말이 무엇일까.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아직 남은 한말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고 물어본다면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께서 / 우리의 말은 예수님이 라고 시작되었으면 너무 좋을것 같습니다.
저는 물욕, 소유욕, 가지고 싶어서 안목의 정욕,
눈에 보여지고 나타나지는 안목의 정욕들이 내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원천의 죄를 다 해석해 줄수는 없더라구요.
우리들교회에 와서 저를 보게 되어지는 객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내속의 죄가 이러이러하구나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꾸 경험하게 되었어요.
지난주 월요일 집사람 생일이었습니다.
계속 선물 뭐사줄지 물어보아서 살짝 미쳐서 '니는~ 뭐해줬는데' 이야기했어요.
집사람은 저에게 생일마다 많은것을 해주었습니다.생일축하 이벤트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안해줘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몇일지나자 이 선물 사줘라고 사이트 URL이 왔습니다.
집사람이 직장에서 일찍 와 있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생각이 들어서 열어보니,
내 생일에 여기 데려다줘~ 하면서 나 생일에 3시에 마쳐~ 보내줬는데
집사람 생일날 까맣게 잊고 머리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날 당일 식당에 예약했으나 예약이 안되었습니다.
집이 아파트 가장 윗층인데 옥상 올라가는 계단에 아무도 사용을하지 않아,
사진처럼 갔다놓았습니다. 내 신발, 전자기기, 내 물건, 나에 관련된 모든것들.
이기심에 나밖에 모르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다.
저는 학교 다닌다고 아침에 저만 차려입고 휙~ 나가버리면
집사람은 애들 둘다 챙겨서 입히고, 먹이고, 자기도 챙겨서 둘을 데리고
어린이집에 내려두고, 직장에서 일마치면 어린이집가서 애들 데리고 오고
애들 씻기고, 준비하고, 어지러 놓은거 다 정리하면,
그때 에헴~ 하고 저는 들어와요. 정말 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에헴~ 하고 들어오면 하는말이 빨리 자자. 피곤하니 빨리 자자.
들어오면 같이 정리해주고 하면 좋은데 저는 바로 찝찝한거 못참으니, 내가 씻어야한다고.
저의 가족이 5명인데,
이기적인 나라는 삶의 주어 때문에,
거룩한 가정이라는 주어가 없었습니다.
내가 편한대로,
내가 가지고 싶은것,
나를 위해서만 살았던 겁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저많은 물건중에 가족을 위한것이 한개도 없다면
내 마음안에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고 나의 것들로만 가득차 있지 않겠습니까.
나라는 주어는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더불어 다른사람을 전혀 공감해 주지 못하는 그런말이 되어 집니다.
2.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늘의 언어만 써서 더욱 힘들게 한 적이 있나요?
- 우리들교회에서 배운 구속사적 언어중에 특별히 나를 회개하는 언어는 무엇인가요?
- 여전히 내 죄보다 내 고난이 크다고 외치시나요?
- 내 죄보다 고난이 작다고 인정이 되시나요?
욥과 세친구는 오랜시간동안 말을 해왔지만, 대화가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욥과 세친구는 똑같이 평행선을 그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욥에게 주시는 고난은
욥이 느끼는 하나님은 지금껏 알고 있던 하나님이 아니었다.
나는 죄가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큰 벌을 받을만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욥이 엄청난 물음표를 찍으면서 그렇게 계속 하나님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에 대해 듣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계속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은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인과응보, 네 죄를 봐라~
이 말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친구들이 쓰고 있는 그 언어는 내가 지금 필요한 언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귀만 따갑게 하는 하늘의 언어만, 옳은 말만 계속하고 있다는 거죠.
욥의 노력,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싶은 욥의 노력은 구체화되어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 질문을 하고 말하고 싶어한다.
친구들은 욥이 필요한 새로운 언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옛날에 있던 그 하늘의 소리로만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언어가 무엇일까?
새로운 언어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요큐티때 여기서 설교를 하면 저기서 담임목사님께서 처방을 해주시고 양육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구속사가 뭐에요?'
어버버 말씀이 들리고,,,,
담임목사님이
'구속사는 요셉이 아니라 유다잖아요.'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라고 이야기하는게 구속사잖아요.
그러면 왜 요셉이 아니라 유다일까요?
요셉은 민족을 살리고, 코람대오하면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범죄하리오 하면서
떳떳히 살았대요. 그리고 민족을 살렸습니다.
유다는 며느리인 다말과 동침하며 수치스러운 행동을 했다.
그런데 왜 요셉이 아닌 유다 일까요?
한마디로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셉이 아닌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오시기 위한 이야기.
예수님이 오신 이야기.
예수님이 다시 오실 이야기가
새로운 언어의 이야기 입니다.
새로운 언어. 구속사의 언어는 성공의 언어가 아닙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싸워 이겨내는 새로운 언어 입니다.
의기양양 잘되고, 내가 잘나갈때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옆에 아무도 없을때 처절한 외로움 가운데에 우울증 가운데 있을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새로운 언어 입니다.
그리고 낙망하고 넘어지고, 좌절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바로 새로운 언어가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엘리후 역시 새로운 언어를 쓰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예수님을 넣으면 어떨까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하나님은 악인들을 살려두셔요. 왜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이에요.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원래 친아들이 예수의 자리에 우리를 수양 양아들 삼아 주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이 멸시를 당하게끔 일부러 하신다는거죠. 왜요?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고 어려움에 부딪혀봐야 그 자녀가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겨내봐야 자녀가 이기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을 살려 두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악인을 악을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고난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는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것을 원치 않으신다.
성도가 또 세상 사람들 동일하게 모두 같은 고난을 받는데,
성도의 고난이 다른것은 고난으로 연단을 받기 때문이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면 말씀이 들리지 않고,
고난이 연단을 받아야지만, 그때 비로서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녀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 자녀를 더 큰 전투력을 키우고, 업그레이드를 시키기 위해서 고난에 고난을 더하시는 겁니다.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그를 개들과 같이 앉히사, 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찾게 하시고
우리가 무비보셋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은 개와 같은 나를 다윗의 식사의 식탁자리에 올라오게 하여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것으로 회복시켜주시잖아요.
우리 역시도 하나님을 참 아버지라고 말할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으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수 있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진겁니다.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줄에 얽혔으면=더욱 단단히 조으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바운더리에서 나아가지 못하도록 줄로 잡아주신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늘 죄인이라서 하나님의 영역을 자꾸 벗어나려고 합니다.
태초에 이후에 아담은 에덴동산의 영역을 벗어나고, 우리는 가정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하고,
교회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줄을 단단히 더 조아 주셔서 묶어주시는 공동체로 만들어 주시는거죠.
특히나 소그룹, 목장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셔서 작은 죄라도 빨리 오픈하고, 나에게 있는 마음의 답답한 것을 빨리 들어내서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이 영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안전장치를 해주신다.
한마디로 우리는 100% 죄인이다.
구속사라는 언어로 하나님을 보게 되어지면,
하나님이 일반적인 신. 욥과 세친구들이 알고 있는 그런신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언어로 우리들과 욥, 친구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데,
선과 악, 옳고 그름만 따지고, 정죄하면서 하나님을 하급한 신으로 내려놓고 말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어서 이땅에 오셔서 나를 만나주신 그 언어.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고 새로운 언어가 되어 지는 겁니다.
3. 귀가 열릴 때 말해야 합니다
*최근에 말씀이 들려지는 곤고와 학대를 당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 좁은 곳을 지나 넓은 곳으로 나와야 하는데 좁은 곳이 좋사오니 하고 나오지 않는 곳은 어디입니까?
- 가지고 있는 물건중 중복되고 쓰지 않으면서 아까워서 이고지고 있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15절의 포인트는 <구원>과 <귀를 여신다>
구원=공고
귀를 여신다=학대
하나님은 공고와 학대로 구원하시며, 귀를 여신다.
학대 당할쯤, 역경으로 의해.
공고와 학대가 있어야 비로소 귀가 열리고 말씀이 들린다.
담임 목사님 늘 그렇게 이야기하시잖아요~
'말씀이 들리세요?'
'고난이 있어야 말씀이 잘 들릴텐데'
고난이 있으면/ 학대가 있으면/ 귀가 열려진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다가왔다/역경이 다가왔다/ 아~ 이제 드디어 내 귀가 좀 열려지는 구나~
나의 자녀에게/내가 속해져 있는 가족과 직장에 / 아~ 나의 자녀가 드디어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하겠구나~
오늘 마무리는
좁은곳을 지나 넓고 기름진곳. 넓은곳과 기름진곳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고 이야기한다.
동물과 식물이 가장 기름질때가 언제일까요?
가장 기름질때는 살이 찔때, 가장 건강할때 기름져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여러가지 조건들이 필요 합니다.
건강하려면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넓은 환경이 그런 상황이 조성되어져 있을때 건강할수 있습니다.
출산할때 아기들을 보면 가장 좁은 곳을 뚫고 나오잖아요.
사람이 물리적으로 가장 좁은 곳을 지나올때가 출산할때 입니다.
좁은곳을 비집고 나오려면 얼마나 아기들이 힘들겠습니까.
우리는 산모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눈으로 보니까 산모에게 늘 고생했다라고 수고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제일 고생한 이는 누구일까요? 아기 입니다.
정말 그렇대요. 산모보다 아기가 훨씬 더 많은 고통과 고난을 산도를 지나오면서 그렇게 느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좁은 길을 이끌어 내시니, 우리가 얼마나 고욕이겠습니까.
말씀이 들려지고, 내 죄가 보여지면, 기뻐하는 것보다
어찌보면 죄를 회개하고 뉘우쳐야하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 입니다.
여전히 모르고 지나간것, 내가 의식하지 않고 덮어 버렸던것.
내가 생각나지 않으려고 저 등뒤로 던져버렸던 모든 것들이 회개하면서 일어나야되니 어찌보면 좁은 길을 지나는 역경을 몸으로 부딪쳐야 합니다.
공고한 날 학대로 통해서 구원의 말씀이 들려져 회개가 되어지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넓은 곳으로 앉혀주시고, 가장 기름진 것으로 우리를 상을 채워 주십니다.
제가 처음에 집사람의 생일을 못챙겨줘서 핵폭탄이 터졌다고 했잖아요. 설마 그거 하나로 핵폭탄이 터졌겠습니까. 신혼 초부터 쌓였던것이 쌓이고 쌓여서 생일날 터진겁니다.
지난주 목요일날 목장을 했습니다. 연애때부터 쌓이고 쌓였던것들을 하나하나 조근조근 고발을 하더라구요.
물욕, 소유욕, 회피 이런것만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기심, 나 밖에 모르는게 가장 큰 죄였습니다.
한번은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목사님은 두려운것이 있나요? 두려운 사람이 있나요?'
저는 두려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두렵다라고 느껴본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폭력과 폭언을 너무 심하게 당했어요. 그래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항상 무서웠어요.
제가 잠에 대해서 예민합니다. 제가 잠을 보상받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릴때 아버지께서 술만 드시면 자는 저를 때리고, 폭언을하시고, 잠을 안재우셨습니다.
아버지가 술드셨다는 이야기를 통화로 들으면 이명과 함께 두려움에 잠을 못잤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일순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역시도 두려워지기 싫었고,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연결이 안되어져서,
고난이 오면 역경이 오면, 어려움 대신해서 내가 쾌락으로 채우면돼.
고난을 대신해서 물건을 사서 모으고 눈에 보이면돼.
힘든일이 닥치면, 내가 구덩이를 봐서 거기 있으면 안맞겠지. 그것을 피할수 있겠지.
가족을 비롯해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안보였습니다.
그렇게 아프다고, 힘들다고, 죽겠다고 이야기를 해도
오랜시간 목사로서 상담을 하고, 설교를 하고 사람을 살려야한다는 사명이 있는데도
저는 저만 생각했었습니다. 내 감정이 내 기분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기심 때문에,
집사람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참고 힘들었던 내용이 제 귀에 들리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덮여있던 제 귀를 열어서 아직 남은 할말이 있다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구요.
너에게 주어진 가족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라라고요.
너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회피하고 물건을 사모아서 보상심리 받으려고 했던 그 똥을 던져버리라고요.
저는 적용으로 그래서 20년 넘게 이고 지고 있던 짐을 내려 던지려고 합니다. 목장에서 목요일날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가 열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시는데,
이 물리적인 짐이 치워지면, 영적인 저의 두려움에 올바른 하나님의 대상으로 채워질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후원이 꼭 필요 합니다.
티셔츠 100. 신발 260. 필요하신분들 언제든지 연락주셔서, 다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보상의식과 내가 라는 이 이기심에서 내죄를 보는 기름진 곳으로 옮겨 가겠습니다.
가정은요. 제가 늦게 들어가고 싶고, 최대한 밖에 나가고 싶어했던 가정이었는데.
이제 가족들에게 '미안해. 사랑해' 라고 새로운 언어를 쓰는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말좀 들어봐' 했던 사역의 현장, 동역자에게 '내가 들어줄께'라며 진정한 기름진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요리조리 숨어 있었던 목장 공동체와 교회에서 아빠를 용서할수 있고 두려움의 대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로 가장 기름진 곳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목장나눔
최성남
<나의 이기심>
나도 나밖에 모른다고 생각 안했는데, 나 밖에 모른다.
입맛에 안맞으면 손도 안댄다.
나이가 먹었는데 학교를 다니고, 돈은 계속 나가고, 친척분들은 돈벌어야하는데 뭐하고 있냐.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나도 지금 밥벌이 안하고 공부하겠다고 하는게 이기적인가 생각이 들고, 과거에 대학교 다닐때, 동생은 다 돈벌어서 학비대고 하는데,
나는 집에서 해달라는데로 다해주고, 돈번적도 없고. 돈 띵까서 유흥에 섰고, 등록금을.
동생한테도 돈을 받아 쓰고,
나한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것이 남들한테는 휘두르고 다녔구나~ 과거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집에서 지랄하고, 뒤집어 얻고, 안돼면 깽판치고,
우리들교회와서 잘못된거를 처음 들었다.
내멋대로 살고, 이게 이기적인지도 모르고, 피해 받았어~ 어릴때 아버지한테 못받았으니,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하나씩 나의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셨다.
동생한테도 사업한다고 돈빌리고, 마을에 이야기해서 목자와 마을 언니가 오빠에게 와서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동생이 적금 깨서 오빠에게 돈 빌려주고,
아버지의 사랑의 방식이 굶어 죽게 하지 않는게 사랑의 방식이었다.
돈만 주면 다야~ 나에게 사랑을 줘야지 하며 빡이 친건데, 내가 가해자고, 이기적이였던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 나의 잘못된 습관들이 보이기 시작.
회사도 내가 별것도 아닌데 대단한 사람인것처럼 생각. 대표님께도 일방적으로 그만두겠다. 하고 또 다시 들어가고. 이기적인 사람.
개념이 없었고, 우리들교회 와서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 인생의 고난의 쓴맛을 30대후반부터 알게 됨.
인생이 힘든게 찐하게 맛보니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피해만 줬구나 생각이 들고 말씀이 들림. 아직까지도 내가~ 내가가 있다.
선교사 되겠다는것도 있지만 내가 잘된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는게 있으니. 내가 해보겠다는것들이 많았고,
동생은 지금은 괜찮고, 안되는 부분은 서로 이야기하고, 기도제목 놓고 기도하고.
동생은 부부목장 가서 양육을 받고,
자기 남편과 딸 통해 양육을 받고.
부모님 병원 등 챙겨드려야하는데 공부하랴 등으로 잘 못하는부분.
하나씩 적용하고 있다.
심한말 한것 같으면 어머니 염색해달라고 하면 귀찮지만, 올라가서 해드리고, 적용한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관여하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관여 안함. 깊게 관여 안하고 적당한 선을 그음.
공보성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늘의 언어만 써서 더욱 힘들게 한 적이 있나요?
교회 공동체에서 역할을 맡은 분이 프로그램 부분 적으로 고난위도의 일을 하고 싶은데, 너무 쉬운 일들만 맡겨서 고민을 나누는데
FM대로만 이야기를 해줬는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해야한다. 이해를 해준게 아니라 정답만 이야기함. 엘리후. 욥의 이야기에서 생각이 남.
하나님의 지혜를 더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많은 사람이여서 무언가 꼬집어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구속사적인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목자
정답을 이야기하는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해야한다. 기도를 해야하고, 기다려줘야할 때가 있다.
욥 친구들-정죄판단, 인과응보,
하나님이 판단하시는거지, 욥 친구들처럼 그들이 판단하면 안된다.
이지영
-여전히 내 죄보다 내 고난이 크다고 외치시나요? 내 죄보다 고난이 작다고 인정 되시나요?
부모님에게 닮고 싶지 않는 부분을 닮게 되는것
엄마 소리치는거 싫다고 안 닮겠다고 했는데 소리치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거 싫다고 했는데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이야기 또하고 또 하는게 많은데, 엄마가 한 이야기 또하고 또 하는데 나도 그런다.
내 죄보다 내 고난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한테 사랑 못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동생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동생은 할머니와 교회 집사님 손에 길러지면서 사랑을 많이 못받아서 애정결핍이 있다.
윤수현
-최근에 말씀이 들려지는 곤고와 학대를 당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좁은 곳을 지나 넓은 곳으로 나와야 하는데 좁은 곳이 좋사오니 하고 나오지 않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원하는 방향으로 취업이 안되는 고난 속에 있는 내게 욥기 말씀은 많은 위로가 되고 있다. 요새들어 끝이 안보이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 목장 참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주일 예배와 목장 예배는 나로 하여금 또 한 주를 버티게 한다. 이 고난의 시간들이 형벌이 아닌 더 넓고 기름진 땅으로 가게 하시려는 훈련의 시간이라고 하시니 감사하다.
최인복
-최근에 말씀이 들려지는 곤고와 학대를 당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좁은 곳을 지나 넓은 곳으로 나와야 하는데 좁은 곳이 좋사오니 하고 나오지 않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엄마 실종 사건으로 교회에 오게 되었고,10개월 후에 엄마의 장례를 하고, 연이은 아빠의 장례일로나를 아예 교회에 안치신 것 같다.
교회에서 하는 유치원인 선교원을 어릴 때 다녔고 교회를 대학교 때 2년정도 잠깐 다녔지만 말씀이 들리진 않았다.
교회를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교회의 분위기에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가정 고난의 사건으로 우리들교회에 오자마자 말씀이 바로 들리면서 한달 내내 설교들으며 엉엉 많이 울었다.
처음에는 모든 구절이 이해가 안됐으나 세례부터 양육 양교 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됐다.
고난은 크리스찬이던, 불신자이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데, 말씀을 열심히 보는 크리스찬 가정은 고난을 받아도 지혜롭게 지나가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기복의 신앙이 아닌 여러 고난을 하나님의 지혜로 스무스하게 잘 지나가려면 말씀이 있는 이 자리에 항상 있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큐티를 계속하며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 고난이 고난이 아니게잘 흘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동생들 다 밉긴 하지만, 만약 둘째의 입장처럼 내가 자녀중에 둘째처럼 특혜를 받았다면 내가 과연 둘째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달랐을 수도 있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나도 둘째처럼 나만 아는 아이로 자랐을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 제일 부당한 차별을 받고도 가장 바르게 컸다는 거...억울하지만...
여전히 나는 고난이 내 죄보다는 더 큰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 아파트에서 뛰어 죽으려고도 하고, 길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버스타고 일부러 나가서 방황했다.
근데 신기한 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들며 기도를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꾸준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을 통해 지금 이렇게 바른 길로 온 이유인것 같다.
목자
지금은 고난을 해석하기보다는 상처를 치유받을 때이다. 지금 현재 잘하고 있다.
어느 때가 되었을 때 용기를 갖고 상처를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 너무 힘들다. 무리하게 해석할 필요 없다.
고난을 해석한다고 했을 때는 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주실 거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해석이 광범히 한데 그 부분도 조금씩 이해가 되게 된다. 하나씩 깨닫게 하실 것이다.
부모님의 사건과 상처들을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석해 주시지는 않고 조금씩 단계별로 해석해주실 것이다.
<기도제목>
최성남
1. 이번 우리들교회 사역지원(전도사) 하는데, 1차 서류 잘 통과하도록.
2.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잘 자고 잘 먹어서 체력 회복되도록.
공보성
1.영육간에 진로를 인도해 주세요.
2.목디스크 치료
3.법인파산 모든 절차가 주님의 인도 안에 잘 되고 마음의 평안과 담대함을 주시도록.
윤수현
1. 분노와 우울이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지금 고난의 시간 잘 견디며 지나갈 수 있길
2. 속히 진로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3. 말씀 묵상 시간 통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길
최인복
1. 가족으로 부터 받은 제 안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주소서.
상속의 문제도 더이상 억울하지 않게 주님의 방법으로 공평하게 해결해주소서.
2. 고난이 말씀으로 해석되고, 사람 살리는 일/구원이 저의 관심사가 되게 하소서.
3. 외할머니의 허리통증을 감면해주시고, 외할머니와 막내 외삼촌의구원
4. 사람양육기간 무사히 통과 (건강한 거리 두기)
5. 저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예비해두신 자리에서 일을 시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