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주일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이세벨을 내려던지라
열왕기하 9장 30절 - 37절
30절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절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절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절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절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절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절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절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아니 그 아파트 하고 롤렉스 때문에 결혼할 수 있어요 그거 안해줬다고 떠날수 잇어요? 참 이상해 3년만 떠난다고 굉장히 집사님 매력이 있으신가 쫙쫙 다 하는것 같아 ㅋㅋ 그래도 말씀이 들리니 3년만에 돌아오시네요 말씀이 들리던 안들리던 말씀을 듣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팅크트립에 많은 관심과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보통 명사가 된 악인 이세벨을 던지라고 합니다. 주님 우리의 이세벨을 보게하시고 던지게 하시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아멘
인간은 무언가를 새롭게 얻는 기쁨 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크게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손실을 피하려는 성향을 말하는데 아들을 잃어버리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부갈등 장서갈등이 있는데 이땅의 연봉 등으로 가치를 정하고 그러니 거기에다가 내 새끼는 가치가 엄청나기에 다들 이렇게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결혼이 안되는거고 되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여러분은 피하고 싶은 손실은 무엇인가요? 아하시아는 가족우상 버리기 싫다가 갚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회피 손실 성향을 넘어서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내버려야 할것이 우리 죄악입니다.
아합과 결혼한 뒤 수십년간 악의 죄악의 끝판왕 이세벨이 심판을 받는데 이세벨에 내려던져저 죽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가득한 죄악들을 던지기 바랍니다.
이세벨도 들었네요. 들어도 이상한것을 바라네요 예후는 나봇의 포도원에서 요람을 죽였어요. 그리고는 다시 이스리엘로 돌아왔어요 거기에 끝판왕 이세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외쳤습니다. 여제사장이기도 했어요. 이스라엘. 그런데 왕자 아합과 결혼했어요. 왕비가 되었어요. 아들도 둘이나 왕을 만들었죠. 딸 아달리아는 남유다 여브라함에게 시집 보냈어요. 그리고 여왕이 되었어요. 사위도 왕이에요. 외손자 아하시아도 왕이에요. 이세벨이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앞둔 그 순간까지 그냥 왕들에게 둘러싸였어요.
근데 그 수많은 왕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쳤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더 많은 대접을 받은 왕 중 왕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성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궁궐 안에서 다 들었어요.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아들 요람도 죽이고 외손자 아시아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자기 차례인 것을 알았겠죠. 그동안 엘리아 엘리사의 말씀을 아무리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려요. 그동안 하나님은 이세벨에게 정말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셨거든요. 그녀는 엘리아와 바울 선지자의 갈매산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아이 회개했을 때 제왕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도 보았어요.
예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이 없어서 못 믿겠어요. 여기 여기 20년이 나와도 안 믿어지는데 그래도 오시는 분이 있네요. 안 믿어지는데 그래도 와요. 그러니까 뭔 얘기를 하고 어떤 기적을 들어도 정말 안 믿어지는 거야 이세벨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어요. 정말 금 그릇 중에 금 그릇이기 때문에 남편은 전수하고 큰아들은 난간에서 떨어져서 아파 죽고 작은 아들은 화살에 염통이 뚫려 죽고 외손자는 도망가다 죽어도 안 되는 게 회개네요. 이 회개가 얼마나 기적인지 몰라요. 그러니 이세벨이 예우를 기다리며 한 일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민 거예요. 왕후마마의 화려한 치장을 한 겁니다. 어떻게 다 죽고 자기 목숨도 위태로운데 이렇게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있다니 이게 제정신에 하는 짓입니까? 근데 이세벨이 진짜 이스라엘 바알 숭배를 퍼뜨렸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반하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깡그리 없애려고 했고 그냥 남편이고 자식이고 남유다고 북이스라엘이고 예수 믿는 이스라엘을 그냥 영육 간에 다 넘어지게 한 아주 무서운 여자 아닙니까? 하나님 음성을 못 보면요. 세상에서 뭐 아무것도 못 봐요. 말씀대로 해야지 여러분들 우리들교회 20년 동안 말씀대로 왔기 때문에 이게 성경이 경영학 교과서 아니겠습니까? 어떤 성공적인 목회 100번 배워도 그게 안 되는 거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예우를 봅니다. 하나님 봐야 되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무서워서 숨거나 그냥 그냥 살려달라고 지금 빌어야 되는데 오히려 예후를 향해서 먼저 말을 겁니다. 주인을 죽인 너 심으려 평안하냐 평안하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이렇게 평 물어보죠. 시므리는 그때로부터 약 40년 전에 자기가 섬기던 엘라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됐는데요. 백성이 왕권을 인정하지 않아서 왕이 된 지 일주일 만에 궁에 불을 질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7일 천하로 끝난 왕이에요. 그러니까 이세벨이 예후에게 너 심으려 평안하냐라고 묻는 것은 너 지금 반역해서 성공한 것 같지만 7일 만에 끝날 거야 좋아하지 마라 비꼬면서 꼬집고 지금 저주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예우 앞에서도 단장을 하고 당당하고 이런 이세벨을 멋있는 여장부라고 여러분들은 칭송하시겠습니까? 왜 대답 안 해요??ㅎㅎㅎㅎ 인간 탈락에 정말 최종 증거는 죽음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가 다 100% 죄인이기 때문에 사망의 골짜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러니까 그야말로 영벌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정점은 언제예요? 아들이 잘 낳고 노후 보장이 돼 있고 연봉이 많을 때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정점은 죽음인 거예요.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주님 만날 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설렘으로 맞게 되기 때문에 정점이 맞아 죽음은 정말 정점이에요. 근데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너무 힘든 게 많은 것.
내가 주님 만날 날이 다가왔는데 그때 내가 왜 죽어? 이게 그래서 그냥 꿈이고 눈썹 그리고 물론 이세벨이 이런 죽음을 맞이하려고 화장을 한 것은 아니죠. 문제는 우리가 이런 꾸밈과 포장에 너무 잘 속아 넘어간다는 거예요. 내가 잘 속으니까 남도 속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내 눈과 달은 크고 예쁜 눈을 그리고 내 머리보다 풍성하고 화려한 머리를 꾸밉니다.
눈과 머리뿐이겠어요? 옷이나 신발, 가방, 자동차 집처럼 기본적인 것은 물론 학벌, 이력, 지위와 재산, 내 자신을 포장해 줄 화려한 것들로 끊임없이 꾸미는 거예요. 죽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고 사명을 위해서 쓰임받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 본 모습을 감추는 화려한 포장이 되어서 남도 속이고 나도 속이는 수단이 될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생각해야 해요.
그게 어떻게 롤렉스 준다고 결혼을 할 수가 있어 오늘 간증 잘못하셨네~ 이세벨은 화려한 화장을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본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해요. 보려 하지도 않아요. 자존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높이 있어요.
이 땅에 내려와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예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본 그 순간이 사실 이세벨이 자기 본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할 이제 마지막 기회 아니었겠어요. 그런데 이 화려한 꾸밈 속에 갇힌 이세벨은 그런 이 세상의 모든 소식은 하나님의 소식과 더불어 같이 들려야 되는 거거든요.
오늘 큐티를 했으면 그거하고 내 사건이 연결이 돼서 들려야 되는데 들었으나 자신에게 속아서 자신의 모습을 못 보고 도도하게 예우에게 그렇게 이제 함으로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정말 이 말씀은 경영학 교과서 맞습니다. 부부 교과서 맞습니다. 따라서 화려하게 꾸민 것들이 다 벗겨져 내 수치가 드러나는 사건은 절대로 저주가 아니에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대신해주는 거예요. 내 본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스스로 속고 속이는 일을 멈추고 진짜 내려 던져야 던져 버려야 할 내 안에 이세벨을 분별하도록 도우시는 것인데, 그거를 놓치고 이 세상이 다 인줄 알고 밑동 잘린 나무같이 짧은 인생에 이러고 지옥을 가는 거죠.
무엇을 제일 열심히 꾸미나요? 왜 꾸미나요?
감추고 싶은 약점은 무엇입니까?
들었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해 내려 놓기 어려운 자존심은 무엇인가요?
2.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이 외침을 들은 넷이 두세 명이 예후를 딱 내다봤어요. 그러니까 내려던지라 했어요. 이 내시들은 자기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잖아요.
평생에 정말 이세벨이 모든 뒷배를 다 봐줬을 그 내시들인데, 예후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예우 편이 되고 이세벨을 내려 던졌어요. 평생 자신이 하늘보다 더 높은 줄 알고 살았던 이세벨이 지금 예후에게 배신당하고 가장 측근에 있는 내시들에게도 배신을 당했어요. 배신을 안 당할 거다 이런 생각하지 마세요. 바닥에 떨어져 죽었어요.
그래서 그 죄악의 끝판왕 이세벨이 던져진 그 시체 위에 병거가 그 위를 지나갔기 때문에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트인 거죠. 그리고 거기서 예우가 그 시체를 밟았어요.
이세벨은 방금 전에 조롱하며 저주했던 예후의 발에 자신의 시체가 밟히는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왜 이렇게 다 구체적으로 하냐 하면 진짜 지옥은 있다는 걸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래요. 하나님이 진짜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다. 왜 성경은 그녀의 구속사적으로 이거를 읽으셔야 돼요.
근데 이게 하나님을 믿는 나라인데도 근데 그게 북이스라엘 처음부터 끝까지 여로보함의 길로 따랐더라. 인간을 그렇게 추정하는 국교로 만들었어. 이 엄청난 악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했어요. 그리고 자기의 가신들 바울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먹으며 거느렸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죠. 이세벨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웠는지 엘리야조차 도망갈 수밖에 없었어요. 이세벨은 이제 불신과 우상숭배와 살인과 강탈, 온갖 악행의 주인공인 거예요.
죄에 중독된 사람이 철저히 세상에 속한 사람이고 사탄의 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이세벨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 있다 그랬죠. 그는 정말 그 신천지 이단처럼 교회에 잠입해서 성도들을 깨워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했어요. 요한계시록 2장 20절에 나오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도록 충동하고 유혹한 거예요. 근데 믿음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이세벨을 추종했다는 거 추종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고 하셨죠? 그를 침상에 던질 터 음행을 저질렀던 침상이 곧 병상이 되어 거기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 내가 너를 아노라 요한계시록 좀 읽어보세요. 우리 안에도 이렇게 온갖 이세벨들이 가득해요. 무엇이든 내 욕심을 채워줄 것 같으면 따라가 섬기는 우상숭배에 의해 이세벨이 있고, 계속 말씀과 사건으로 경고하셔도 부르셔도 경고하셔도 듣지 않는 고집의 이세벨이 그냥 남편이고 자식이고 남유다고 북이스라엘에 당한 이세벨이 있어요. 돈이라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얻어내려 하는 탐욕 이세벨이 있어요. 누구든지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충동질의 이세벨이 있어요.
내 배경과 소유와 지위를 의지하며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이 교만의 이세벨이 있어요. 끝까지 자기 본모습을 외면한 채 화려하게 꾸미고 포장한 모습에 도치되는 자기 안의 이세벨이 있습니다. 쾌락에 사로잡힌 중독의 이세벨도 있고,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게 악인 줄 알면서도 세상에서 힘과 영향력이 있는 이세벨을 너무 부러워하며 이세벨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거죠. 이세벨 편에 서 있어요. 또 난 부끄럽다. 난 부럽다. 언제부턴가 남이 기준이 되어버린 이 한국에서 남과 하나님의 음성을 못 받아주 비싼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한국 한국의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이 사교육비 지출 시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결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된다는 사실이 지금 경제학적으로 밝혀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교육비가 부유층이 비싸게 내니까 여기 이쪽도 거기를 따라가야 된다는 비교 있잖아요. 비교 그러니까 사교육비를 사교육을 제한하는 시간적으로도 이 정책이 효능을 보고 있다고 그래요. 다른 나라에서 이 세상에 무서운 게 비교 이세벨인 거예요 한국 사람들의 비교 이세벨은 가히 세계 최고예요.
교육열이 아니에요. 만국병이에요. 만국병 내 안에 있는 이런 모든 이세벨을 오늘 내려 던지라고 합니다. 예후가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이건 예우편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적어도 지금 예후는 청년 선지자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도구예요. 집의 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병기이고 활입니다. 그러니까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편이 될 자를 찾는 거예요. 이세벨이 부럽고 좋은 내 본성 편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런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고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편이 되는 건 뭐예요?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면서 그날 말씀으로 내 안에 이세벨을 찾아내는 거죠.
오늘도 비교 이세벨 중독 이세벨 계속 그리고 그것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큐티 책에 쓰는 거죠. 화려하게 꾸미고 창문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그 악함을 말씀으로 불러내어 적는 거죠. 그 정체를 밝혀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나로부터 끌어내서 저 멀리 던져버려주시기를 기도한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이것이 말씀 편이 되어서 내 안에 이세벨을 내려던지는 적용의 첫 걸음인 거예요. 항상 그러니까 말씀이 나하고 연관이 되게 그러니까 이렇게 인도 받아야 되겠는데 오늘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그랬다. 서쪽으로 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직장을 가라 그랬다. 하나님께서 집을 나선 순간에 저 멀리 보는 그 건물 쪽으로 가라 그랬다. 이거는 하나님을 얘기했지만은 이건 직통계시라고 하는 그거는 이제 하나님과 진짜 상관이 없는 거기에 다 속는 것 같아요.
말씀 편입니까? 세상 편 입니까?
내게 말씀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외쳐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내려던져야 할 내 안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이거 확실하게 알려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이세벨은 없어. 이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야. 그러니 이제 말씀 편에 서라. 예후가 믿음 있는 선지자가 아니라 그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 입을 통해 계속해서 알려주고 계신 거예요. 이 일을 하나님은 엘리아 때부터 계획하신 거 아시죠? 왜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악하니까 근데 계속 예고편을 주시면서 심판을 하셨지 금세 심판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큐티를 하면서 심판의 경고를 받고 빨리 적용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세벨의 시체는 걸음같이 밭에 있을 거라고 하는데요.
거름은 번역이고 원 뜻은 똥이에요. 왕후의 화려한 화장으로 꾸미고 살던 이세벨의 인생인데 결국 똥이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이세벨이었는지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다시는 찾지 못하게 되었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며 다 안고 싶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 포장지를 뜯고 보니까 실상은 똥이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꼭 지어서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 잃어버리기 너무 싫어하는 것들, 더 많이 움켜지려고 애를 쓰는 것들이 결국은 까고 보니까 똥이다. 여러분들은 좀 이렇게 해야 기억이 나잖아. 교양 없이 좀 설교를 해야 내가 원하는 게 다 똥이래 이렇게 하면 기억이 나잖아.
사도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 인이었죠. 이 자격을 위해 갖추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겠죠. 율법의 위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어요. 이런 장식은 이세벨의 장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어요. 사도바울의 장식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갖춘 교회 직분이었다면, 이세벨의 장식은 그야말로 육적이고 세속적인 장식이었어요. 근데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똥으로 여긴다고 같은 말이에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만 하면 다 똑같은 가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똥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냥 너무 힘들고 외롭고 슬프고 억울하고 그러잖아요.
주님 외에는 주님의 말씀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영원하지 않는 것들을 자신보다 더 높이 여기고 주님보다 더 열렬히 섬기면서 쫓아가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그 모든 수고가 여러분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수고가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 그 모든 수고가 주님을 사랑하는 정말 그 성령의 임함으로 그거가 아니면 이 모든 수고가 결국 똥만 남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 아합 가문이 얼마나행복 지상주의로 가족과의 화평이 이거 으뜸 가는 집 아닙니까?
주님을 떠나면 전부 다 똥이 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잃어버리는 거 너무 싫어하죠. 좋아하는 거 내려 던지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돈 내려 던지는 거 불가능할 정도예요. 그러니 돈 좋아하는 욕심 내려 던지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세벨처럼 갖고 있는 이 명품 내려 던지는 것도 어려운데 명품 좋아하고 탐내는 내 허용심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어요? 학벌과 지위 내려 던지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내 교만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작은 습관 하나 내려 던지는 것도 힘든데, 자극과 기호에 사로잡히는 내 중독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이세벨이 악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책임은 압에게 있는 거예요. 출애굽기 19장 6절에 믿는 우리는 세계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세움을 입었는데, 세계 열방 제사장 나라로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방 여인을 부자나라라고 이방 여인을 왕비로 데려오더니 그냥 그 이세벨이 시아버지 오므리부터 남편 아들 요람, 딸 아달야를 홀렸어요.
남유다의 성군 여호사바까지 홀렸어요. 결국 남북 이스라엘을 멸문지화에 빠지게 하지 않았습니까?이세벨이 악녀처럼 보였겠어요. 그냥 미모 하면은 따라갈 자가 없는 미모. 그러니까 그냥 이세벨만 보면 다 홀리는 거야. 다 홀리는 거 그래서 나라가 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왜 아합의 책임입니까? 아합은 나봇의 토지를 갖고 싶어요. 근데 나봇이 그게 내 조상의 유혹이니까 율법에 의해서 팔 수 없다고 하니까 이 아합이 자기가 그래도 적어도 이스라엘 왕 아니겠어요? 백성에게는 율법을 어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죠. 그 땅은 너무 갖고 싶어요. 이게 우리의 문제잖아요.
그죠? 끙끙 앓은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하고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세벨에게 이세벨이 해결사잖아. 이세벨은 그러니까 이세벨에게 뭐라고 전하냐 하면 거짓으로 가감해서 전하는 거예요. 나봇이 내 조상의 유혹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나봇이 내 포도원을 내게 줄 수 없다 그랬다는 거예요. 단어 차이를 이해하시겠어요? 내 조상의 유혹인데 나봇은 내 포도원을 너한테 어떻게 주겠냐 이랬다는 거죠.
이세벨은 그러니까 가책도 없이 못할 게 없는 여자잖아요. 불량자란 단어를 써서 불량자 두 사람을 매수해서 나봇을 높이 앉히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해라. 이 사람은 그 일을 이세벨한테 딱 맡긴 거죠. 그래서 불량자들이 와서 딱 증언을 하니까. 글쎄 백성들이 돌로 나봇을 다 쳐죽였다고 나오는 거 백성들이 너무 악하죠. 이세벨을 그렇게 추종하는 거예요. 이세벨을 추종하니까 산대가 내려왔죠. 다 따라가는 거야. 그러나 말씀을 가감해서 전한 아합은 이세벨 뒤에 숨어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이런 일은 정말 이 세상 정치에서 비일비재해요. 충동질은 사탄의 특기잖아요.
사탄이 다윗도 충동했어요. 욥기에서는 하나님도 충동했어요.
그러나 결국은 이들은 충동을 안 당했어요. 근데 아합은 충동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계속 합리화를 하는 거예요. 불신 결혼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결국 그 결혼을 하는 것은
불신이라는 얘기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우리가 믿는 거 아니겠어요? 믿는 우리에요. 결혼을 하는 건 믿는 우인 거예요. 아합은 이세벨과 혼인함으로 무슨 이익을 얻었을까요?
정치적인 이익을 얻었겠죠. 그것도 3대는 그러나 그것은 모든 악의 발단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학교와 직장과 이 배우자를 선택하려고 할 때 심사숙고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 이세벨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예쁘고 돈 많고 게다가 말도 잘하고 사근사근하고 설득도 잘하니까 이세벨은 믿는 내가 택한 것이고 계속 끌려다닌 것은 나예요. 나 이세벨은 저 이방 여인이었다고요. 근데 와가지고 다 천지를 얼마나 한 사람이 중요한지 몰라요.
온 나라가 이세벨을 숭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 돈과 권력과 화려함이 너무 좋으니까. 근데 내가 못 죽이고 너무 끌려다니니까 이제 결국 내가 제사장 나라로 내 속의 요란과 아시아와 이세벨을 죽이고 내려 던지라고 피해 사자 예우를 보내신 것이죠. 내가 죽어도 내려 던지지를 못하니까 제가 이세벨를 좋아하죠.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인생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다하고 공부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더 돈을 못 내려놔요.
내가 어렸을 때 이렇다고 이 입시도 성공하고 결혼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은 하나님은 예우 같은 남편을 붙여주셔서 저를 마구 밟아주시니까 저에게 가장 훈련이 되었던 것은 있어도 안 쓰는 훈련. 그거를 자그만치 13년을 하게 하셔서 너무너무 치사스러워가지고 내가 그랬잖아요.
야구르트값도 자기가 결제를 하고 내가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성경 봤다 그랬잖아.
너무 치사스럽고 내가 돈 벌어도 훨씬 더 많이 벌 건데. 근데 그거를 훈련을 하게 하신 것이 내가 교회가 아무리 커져도 그 교회 돈이 나하고 상관이 없는 거 피같이 아끼는 훈련 그냥 몸에 뱄어요. 어렸을 때도 이제 망해가지고 힘들게 살아서 이랬는데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생각해요. 말씀 사역을 시작하니까 정말 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성공할 사람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해서 잘 살아야 되는 거 그게 인생의 목적인데 자꾸 말씀 보면서 제 안에 이 세배를 자꾸자꾸 보여주시니까 한 가지 조금씩 조금씩 던질 수가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내 죄를 보고 내 죄를 보고 하는 거지 교양으로 도덕으로 아는 게 아니 내 죄를 보고 적용했던 소소한 것들이 그러니까 내가 그걸 왜 버렸을까 후회가 되지 않고 예고 강사를 버렸죠.
너무 모임이 많아져가지고 예고 강사 하면 돈 생기잖아요. 예고 강사는 돈이 많이 생겨요. 여러분 몰라서 그런데 타임당 레슨 사교육비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근데 그냥 이게 자꾸 사명대로 가게 되니까 그런 것들을 이제
그런데 후회가 되지 않는 거야. 이세벨이 던져버렸는데 찾지 못한다 그랬잖아. 내가 던져버렸을 때 생각도 안 나게 하신 것이죠. 오늘 말씀대로 내 안의 모든 이세벨들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써서 내려 던지겠다고 결단하고 한 가지라도 이 작은 적용을 한다면 이 세배를 내려 던지라고 말씀하신 이 주님이 책임을 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내 안에 이세벨들을 내려던지는 순종을 할 때 그 주님이 그 이세벨들을 우리가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그 탐욕과 중독과 이 모든 것들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제가 생각해도 기적 같은 거예요. 제가 너무 보기에도 이세벨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세상을 너무 난 화려하게 살 사람이야. 누구나 나를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해.그리고 그렇게 살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건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인 거예요. 그 다음에 말씀의 힘인 거예요. 내가 하루하루 적용하고 왔더니만
이제 홍해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도로 건너갈 수가 없는 거예요. 건너기 전에는 날마다 여기를 어떻게 건너가는 홍해발을 한 번 건너니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렇게 되면은 이제 요단강을 사모하면서 가는 거예요. 오늘 내가 사모하던 설렘이 있는 그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셔야 되고 우리 앞에 이세벨이 거대한 권력으로 다가오고 있어요.지금 너무 거대한 온나라가 양분이 되고 그랬을 때 사실은 나봇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봇은 죽는 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러니까 던져버리라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말씀대로 죽었으니까 반드시 도우시며 이루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가 버렸다가도 금방 다시 찾고 있는 습관 중독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똥을 다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게 인정됩니까?
이번 주 다시 내버리려는 적용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세벨을 내려던지라는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참석인원 : 오수근 / 김태규 / 권화평 / 주예성 / 신지우 / 조준혁
기도제목
오수근
1.신교제 신결혼
2.이번 주 회사에서 생활 잘 하기
3.이번 주 목요일에 있을 심방 기도로 준비하기
김태규
1.여자친구와 신결혼 인도해주시기를(여자친구 아버지와 동생들의 구원)
2.학폭가해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3.자기계발을 즐기면서 할 수 있기를(강박이 아니라 즐겁고 순수한 마음으로)
4.동생의 군 생활 가운데 함께해주시기를
5.회사 업무 가운데 소통과 관계의 지혜를 주시기를
6.허락해주신 물질과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신지우
1.수요일 면접 준비와 과정 결과 잘 나올 수 있기를
2.결혼예비학교 과정 잘 할 수 있기를
3.신결혼
주예성
1.억제를 줄일 수 있기를
2.매일큐티 할 수 있기를
3.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길 수 있기를
4.학업이랑 업무에서 지치지 않기를
5.감사할 수 있기를
6.신교제 신결혼
김재훈
1.다이어트 잘 될 수 있기를
2.부정적인 생각을 버릴 수 있기를
3.신교제 신결혼
조준혁
1.예민하지 않을 수 있기를
2.잘 관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