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내가 주를 보았다
요한복음 20:1-18
큰 기대를 가지고 높은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거나 힘들게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구름이나 미세먼지가 잔뜩 껴 가지고 그 풍경을 보지 못하면 너무 아쉽자나요. 우리가 비행기 값 들여가지고 큰 맘 먹고 스위스 알프스까지 갔는데 만약에 그랬다면 너무 아깝겠어요. 그런데 날씨나 먼지를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으니까 잘 보이면 더 좋고 잘 보지 못하면 이렇게 더 아깝습니다.
팔복산 기도회에서 요한복음 고난주간 큐티를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이제 그 정상에 올랐는데요. 팔복산 정상에서는 무엇을 봐탸 대박일까요? 바로 부활하신 주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보고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치는데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 특별히 처음 오신 VIP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하시는 기적이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걱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마리아가 어떻게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했는지 우리도 오늘 그 과정을 따라가 보십시다.
1.문제 때문에 울 때 의외의 천사를 만납니다.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 10절, 11절이에요.
1절부터 9절까지 얘기를 좀 하면 두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이에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고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예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주일 새벽에 무덤에 갔거든요.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문이 열려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도록 미워했으니까 죽은 시신도 무덤에 편히 누워있는 꼴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너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알려줬어요.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교회의 지체에게 알려야 되는 거예요. 내가 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인데 안 믿는 친정에 가서 알리면 안되는 거예요.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와서 열려있는 문도 확인하고 무덤 안에까지 들어가서 예수님 시신을 샀던 그 세마포와 수건만 남겨 있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을 그렇게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인데 시신을 찾으러 당장 나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제자님들이 그냥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어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포기한 거죠. 부활의 말씀을 그렇게 들었는데 알지도 못하고 이 힘든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하기 바쁜 우리의 모습과 너무 같죠.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교과서인 거예요.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무덤 앞을 떠나지 않아요. 거기에 서 있어요. 그 자리를 지켜요. 문제가 일어난 자리,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리를 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지키고 서 있습니다. 물론 너무 힘들어요. 문제를 직면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가 어떻게 합니까? 울고 있어요. 한 번 울고 마는 게 아니예요. 그냥 우는 것도 흐느끼는 것도 아니예요. 원어로 보면 땅을 치면서 소리지르며 통곡하고 정말 울 기력이 없도록 엉엉 우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입니까? 창녀처럼 부끄럽고 죄 많은 인생을 살았어요. 일곱 귀신이 들리기까지 했어요. 인생의 바닥을 겪었어요.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삶이었어요. 가족도 없었어요. 구경거리, 수군거림, 놀림거리였어요. 모두에게 버림 받은 인생이었어요. 육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인생이었습니다. 이게 막달라 마리아예요. 우리 인생이 막달라 마리아 같습니다. 장르와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인생이 다 밑동잘린 나무 같아서 뿌리로부터 단절되었죠. 생명력을 잃은 앙상한 가지가 우리 인생같습니다. 각자 힘든 문제가 있어요.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경거리 될 가봐, 수군거림이 될 가봐, 놀림거리가 될 가봐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에요. 우리 인생이 다 그래요. 두려워 떨어요. 그리고 겉으로는 너무 교양 있는 척해요. 그래서 생명이 없어요. 조화가 아무리 예뻐도 생명이 없어요. 너무나 들풀 하나도 생명이 있으면 예뻐요. 그런데 이 조화같은 인생에 소망이 없는 거죠. 막달라 마리아는 이런 삶에서 피할 수 있는 피난처조차 없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은 피할 수 있는 자기 집이 있으니까 얼른 갔지니요. 그런데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가느니 무덤 앞이 차라리 나은 인생이었어요.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울 수 밖에 없었어요.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이제 이렇게 무덤에라도 찾아오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그만 그 시신을 도둑맞았으니 엉엉 울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봤다고 해요. 이미 시신이 없는 걸 아는데 자꾸만 보게 돼요. 찾게 됩니다. 문제가 힘든데도 직면하기 보다 보면서 울고, 울면서 또 보고 미련과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신생의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 12절이에요.
울다가 흰 옷 입은 두 천사를 봤어요. 예수님의 시체가 있던 곳에 앉아 있었어요. 의외죠? 무덤에 있는 천사라뇨. 상상 못하던
장면을 본 거예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존재를 만난 거예요. 엉엉 울던 막달라 마리아가 한편으로는 너무 놀라고 한편으로는 조금 소망이 생기지 않았겠어요?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냐고 물어요. 사실 천사들은 우는 이유를 물어본 게 아니예요. '얘, 이게 울 일이 아닌데 왜 우냐? 울지 마라.' 이런 뜻으로 말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시신이 없어진 문제만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질문 의도를 헤아리지 못해요. 우리도 내 문제만 생각하면서 울고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이 들리지 않아요. 그냥 내 생각대로 듣고, 내 문제 위주로 이해하고, 내 슬픈 거만 말해요. 아픈 거예요. 우리가 다 아파요. 그래서 싸울 수 밖에 없어요. 인생이 아프고 슬프고 늘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분들이 오늘 오셨습니까? 잘 오셨어요. 천사같은 지체들이 여러분을 맞이하며 환영해요. 너무 잘 오셨어요. (꾸벅)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꾸벅)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꾸벅) 주님은 우리처럼 연약하고 아픈 사람 기다리셨습니다. 멀쩡한 의인은 주님이 필요가 없어요. 주님은 아픈 죄인 살리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 죽은 우리를 부활하게 하시려고 오늘 여기서 말씀하세요. 적용질문입니다.
[적용] 어떤 문제 때문에 울고 또 울고 있습니까? 의외의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까? 누군가에게 천사 같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2.의외의 환경에서 양육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 내가 울고 있는 사건 속에서 '예수님은 내 뒤 편에 서 계시는구나.'를 믿으면 되는데 내 상황이 급박해서 사건만 쳐다보느라고 예수님이 안 보였어요. 보려고 돌이켰지만 내 힘으로 돌이키니 예수님이 안 보였어요. 마리아가 그토록 따르던 주님, 이제 그 시신이없어진 것도 그렇게 슬퍼할 정도로 사모하던 예수님인데요. 왜 못 알아봤을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사건이에요. 우리의 각자 환경 속에서 내 자녀는 잘 돼야 되고, 부도는 절대로 나면 안 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바람을 펴도 내 남편은 이런 일은 절대 없어야 되고. 그러니까 당연히 내 자녀는 엄친아여야 되고. 그런데 이제 남편 문제, 또 부도 문제, 자녀 문제가 다 터졌어요. 절대로 인정이 안되는 거예요. 믿어도 이 고정관념은 너무도 굳세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어야 한다.'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안 들리는 거예요. 교회가 6만 개라고 해도 지역감정, 진영논리는 절대로 안 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이 구속사가 들려야 되는데 너무 예수님, 엘리사 말 듣는 사람이 없자나요. 우리는 다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 같지만 나도 남도 속는 것이 사건 때문에, 결국 내 자신의 유익 때문에 울 때가 많아요. 막달라 마리아 입장에서 예수님이 정말 자기의 시그니처야. '누가 이제 자기를 그렇게 따뜻하게 해 줄 것이며 사람 대접을 해 주겠는가.' 시신에 향품 발라서 장례 잘 치뤄놓고 죽는 날까지 무덤에 오는 게 인생의 하프 타임의 비전인데, 그것이 죽는 날까지의 계획인데,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그래서 계획 다 정해놨는데 지금 시체가 없는 거예요. 환경이 어려워서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데 깨달아지지 않아서 안타깝고 정말 울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그거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무덤덤한 사람인 거죠. 마리아는 실제로 주님이 부활하셨는데 지금 시체가 보이지 않아서 울고 있어요. 결국 가장 좋은 일 앞에서 울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지금 내가 울고 있는 사건이 가장 좋은 주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일인데 시체가 없다고 지금 울고 있는 거예요. 제가 10년 전에 세월호 바로 한 이틀 지나서 이 설교를 했어요. 첫번째 대지가 시체가 없어서 울고 있는 마리아 진짜 여기서 주님을 만나야 되는데 전부 시체 찾느라고, 온 국민이 시체 찾느라고. 그런데 거기는 지금 생명이 없는데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는 이게 가장 좋은 일인데, 저는 그때 그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성성하게 살아있네요. 그렇게 설교를 했어요. 저하고 똑같은 일이 일어났자나요. 그런데 이렇게 울고 있는 거예요. 마리아가 이렇게 알아보지 못하니까 15절에.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 예수님이 천사들하고 똑같은 질문을 해요.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그런데 하나 덧붙이셔서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가 왜 우는지 주님은 이미 아시는 거예요. '왜 울어. 니가 찾는 사람이 여기 있어. 나야 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은 말씀으로 지금 양육하시는 것이죠. 어린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듯 양육하시는 거예요. 생각해 보라고, THINK해 보라고. 고난은 피하라고 오는 게 아니예요. 고난은 낭떠러지로 질주하던 우리를 멈춰 세우는 신호등이자 가로막인 거예요. 떨어지지 않도록 영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거예요. 고난은 생각하라고 오는 거예요. 내 삶을 생각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생각하고,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유턴하라는 거예요. 나만 바라보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보는 인생을 살라는 사인인 거예요. 이것을 말씀으로 생각하게 하시며 양육해 가십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여러분이 찾던 것이 무엇이든 결국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 핮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납니다. 그러니까 해석을 잘 해야 방황이 끝나는 거예요.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 년이 가도 해결이 안 돼요.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해야 해결이 되는 거예요. 오늘 나오신 여러분에게 주님이 '니가 찾던 대답이 바로 여기 있어. 바로 나야 나.'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셔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아요. 마리아도 그랬죠. 주님의 음성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를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고 해요. 제가 다 말을 해도 그냥 '저 여자가 뭐를 알겠는가. 여자 목사가 뭐를 알겠는가.' 수도 없이 저를 그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그냥 동산지기인 줄 알아요. 여기가 무덤이 있는 동산이자나요.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이자나요.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까 '이 동산에 계실리가 없다.'고 확신한 것이죠. 여자 목사는 안수도 안 주는 교단도 아직 있는데. 그러니까 마리아는 주님을 앞에 두고도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을 찾고 있어요.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면 알려달래요. 정말 시신 찾아 삼만리예요, 다 우리. 아무리 경험이 많고 지식이 많고 심지어 사모함이 커도 예수님을 스스로 찾아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예수님은 인간의 힘으로 못 만나요. 부활의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그러므로 전혀 생각지 않은 장소와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못 알아봅니다. 자, 예를 들면 부활의 주님은 술집의 그 여자를 통해 오기 때문에 못 알아봐요. 교회에서 거룩하게 설교 들으면서도 평생 못 만나던 예수님을 남편이 바람 피우니까 만나고, 부도나니까 만나고, 아이가 사고치니까 의외의 사건을 통해서 양육시켜 주시는 거예요. 만나요. 그것을 모르고 시체 없어졌다고 울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니까 정말 교회를 다녀도 이 문제가 해석이 안 돼. 그래서 수 많은 돈을 써서 우리의 목적은 시체 찾는 거였어요. 이거를 예수 믿는 분들이 다 해석을 해줘야 되는데, 저는 성남 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이 설교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에서 쓸개 탄 포도주는 받지 않으시고 신포도주는 받으시는데 똑같은 포도주인데 그 같은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분별하시고 쓸개 탄 포도주는 안 받으셨는지 놀라면서 십자가는 착한 것이 아니고 마지막까지 분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착해서 사업하고, 착해서 결혼해서, 그래서 분별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Question Time의 큐티를 해야되는 거예요. 내가 거절 못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받는 착함으로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할 수 있는 거예요. 사건을 보면 우리늨 이렇게 분별을 하는 거예요. 속아서 이러고 저러고 한다고 그러면 딱 분별을 하는 거예요. '저 사람이 저거를 자기 욕심으로 저거를 받았구나.' 외모로 보지 말고 본질을 분별해야 돼요. 동산지기라고 믿음이 없는 게 아니예요. 제가 여자 목사라고 믿음이 없는 게 아니예요. 그런데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20년쯤 지나니까 우리들교회에 열매가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요새는 조금 자신 있게 얘기를 해요, 열매로 얘기를 하니까. 살아온 인생을 생각할 때 똑같이 성경을 가지고 얘기하는데 동산지기라고 '네가 뭘 알겠냐.' 내가 주님을 꼭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를 내가 결정해 놓고 있으나 주님은 의외로 다른데서 나타나실 수 있죠. 우리는 이럴 때 어디까지 적용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나. 우리도 마리아처럼 이 좋은 일에, 예수 만나는 일에 울고 있지는 않은지요. 남편의 문제나 자식 문제나 돈의 문제나 질병의 문제나 내가 그곳에서만 찾아야 하는 주님이 안 보니까 울고 있지만 지금 내가 우는 사건이 마리아를 보니까 '주님을 보는 일에 내가 울고 있구나.'라고 적용하셔야 합니다. 저도 똑같이, 세월호하고 똑같이 하루만에 우리 남편이 갔자나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남편 시체 찾아 삼만리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정말 건강했던 남편 하루만에 가서 똑같은 사건이니까 제가 증인이 될 수 있자나요. 누구도 말할 수 없는데 저는 얘기할 수 있자나요. 그렇지 않아요? 똑같은 사건을 가진 사람은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동산지기라고 제 얘기를 아무도 안 듣는 거죠, 제가 해석을 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까요?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 16절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 이름을 부르세요. 마리아야 그러자 비로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랍오니라고 화답해요, 아직 선생님 수준이지만.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서 울고 어떻게 찾나 걱정을 했는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이제 만났어요. 14절에는 내가 내 힘으로 돌이키니까 예수님이 안 보였어요.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내 힘으로는 못 믿는 거야, 예수님. 안 들려요. 이 설교도 안 들려요. 안 들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어떻게 더 이상 쉽게 설명을 하나 하는데 성령이 운행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16절의 돌이킴은 신앙의 돌이킴인 거예요. 예수님이 찾아오셨어어요. 직접 이름을 불러주시니까 부활 후에 기록된 첫번째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울던 마음을 정리할 시점이 되었어요. 왜 부르셨을까요? 이제는 울고 있는 그 문제에서 주님께로 시선을 옮기라고 불러주신 거예요. 예수님이 이름을 불러주시니 게임이 끝났어요. 그냥 마리아야 이 한마디에 마리아의 마음이 녹았어요. 주님이 불러주셨자나요. 이렇게 주님은 형편 없는 나를 먼저 찾아오시고 울고 있는 내 옆에 계시고 이 모습 그대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그냥 마음이 녹아요. 여러분 모습 그대로 주님이 여러분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마리아야 이렇게 불러주세요. 여러분이 문제 투성이인 것 문제되지 않아요. 울고 있는 것 괜찮아요. 너무 쉬운 거 몰라도 아무 일 없어요. 일어날 힘이 없어도 피할 곳이 없어도 걱정 없어요. 예수님은 그냥 여러분 모습 그대로 여러분의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냥 살아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나쁜 것 먹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무개야.' 이름 불러서 뜯어 말리자나요. 사랑하니까요. 오늘 주님이 여러분 이름을 부르십니다. 고난이라는 사건으로 불러주셨고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이름을 직접 부르십니다. 지금 여러분 이름을 한 번 불러보세요. 사랑의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보세요. 내 이름만 아니라 옆에 같이 오신 분 이름을 불러보세요. 가족들이 오셨으면 서로 이름을 불러보세요. 혼자 오셨으면 자기 이름을 부르세요. 시작. 여기서만 부르고 끝나지 마시고 집에 가서도 계속 이름을 부르시기 바라요. 저는 이렇게 남편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남자가 불러줬으면 따라갔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스윗한 거예요. 주님이 불러주시는 이름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신 고난과 말씀은 무엇인가요?
3.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사명 감당하게 하십니다.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 돌이키니까 말씀이 들려요. 말씀하신 내용은 붙들지 말라, '만지지 말라.' 현재형 헬라어로 계속해서 주님의 그 육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행위를 말해요. 주님을 다시 만나서, 그러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난 거 같은데 아직 육신의 주님, 이게 반까이(만회)가 되는 거예요. 다시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던 순간에 예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생각이 나서 또 같이 있고 싶고 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생각에 다시 예수님을 붙들고 만지려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힘들 때는 돌이키다가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으니 다시 행복했던 때를 꿈꾸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자, 자꾸 남편 얘기해서 죄송한데, 남편의 외도나 또 여자의 외도나 같은 거죠, 아내의 외도나. 울며 주님께 양육받고 주님을 만났어요. 남편을 초청했더니 남편이 정신을 차렸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정신을 차리니까 사명을 딱 놓아버리고 옛날에 하던대로 그냥 남편 붙들고 놀러다니고 싶은 거예요. 예배고, 목장이고, 교회고, 주님이고 다 떠나도 남편만 있으면 그저 좋아요. 이게 남편 사랑이 아니예요. 망하는 거예요, 그거. 이게 바로 육적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거죠. 이제는 새로운 부활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타적으로 살라는 것인데, 이타적으로 살아 여기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사명을 감당하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은 못 알아듣고 도망가고, 팔아먹고, 흩어졌지만 이 창녀 마리아는 무서움보다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울다가 지금 주님을 보았어요, 만났어요. 그리고 사명을 주셨어요.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주를 보았다고 처음 전도 간증한 곳이 어디인가 하면 기라성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러니컬하죠. 제가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남편이 가고 온통 장례식하니까 모든 목사님들이 다 와서 예배를 드려주셨는데 제가 이렇게 그때 간증을 했다니까요. 정말 말씀이 응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입이 없어 말을 못해.
어제 요한복음 19장 마지막은 다 이루었다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사명을 완수하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모든 일을 다 이룬 후에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 목이 마르다고 하셨어요. 내 인생의 결론은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성경에 목이 말라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끝없이 세상에 목이 말라요. 예수 믿으면서도 정욕에, 자랑에, 세상에, 안목에 목 말라요. 사역을 해도 야망에, 사역에, 선교에, 설교에 목이 말라요. 그러니까 성경을 응하게 하는 삶이 최고의 전도요, 양육이요, 정말 상담이요, 삶이에요. 이제 뭘 해야 합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어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놓치고 또 놓쳐도 또 붙들려고 하는 육신의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내가 듣고 싶은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까? 부활이 내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까? 남편, 자녀, 돈 등이 기쁜 소식입니까?
기도제목
희연
1.말씀으로 기름 부어주시는 주님 감사드리며 영광 올립니다. 말씀과 함께 삶을 잘 살아가는 힘을 주시길
2.병원 검진 잘 받게 해주시어 감사하고 이식 신장 뿐 아니라 몸 컨디션 관리 잘 하여 건강하게 회복하게 해 주소서
3.이석증 때문에 어지럼증이 심한데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되도록
4.엄마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
5.언니 가정에 평안과 은총과 건강하길
6.목장 평안과 목장 식구들의 기도들이 이루어지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며 은혜 받길 또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7.큐티 말씀으로 하루를 인도해주시고 감사하며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주희
1.가족의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하루 하루 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 붙들면서 감당하고 갈 수 있도록
2.엄마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미뤄져서 내일 아침에 수술 예정인데 컨디션 좋아져서 수술 미뤄지지 않고 수술 잘 되어서 무릎 통증 감해지고 무릎 오래도록 사용 할수 있기를 2주간 입원하는데 입원하는 동안 푹 쉬고 잘 회복될 수 있길 수술에 임하는 모든 의료진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베풀어주시길
3.연약한 엄마를 불쌍히 여겨주시어 지켜보호 하여 주시고 교회와 목장에 잘 붙어 갈수 있도록
4.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여러 합병증을 오래 도록 앓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술이 유일한 낙이라는 아빠를 불쌍히 여겨주시어 주님이 그리스도가 되어 주시길
5.우리의 아둔함과 어리석음을 아시는 주님 미혹된 주님의 어린 양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엄마를 신천지로 이끈 이모와 다른 지체들도 신천지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고 그 이모가 더 이상 신천지로 다른 지체들을 끌어 들이는 것을 막아주시길
6.선미, 수연, 가림 모두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7.신우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전해지며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예선
1.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끝날 인생이었는데 마음껏 울며 나눌 수 있는 천사 같은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어떤 일이든 잘 나누고 갈 수 있도록
2.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날마다 돌이킬 수 있도록
3.내 삶을 잘 살아내는 것밖에 보여줄 것이 없음을 알고 허락하신 자리를 잘 지키고 부활의 가치관으로 이타적으로 사는 인생되도록
은우
1.너가 어찌 평안 할 수 있겠느냐? 여러 번 물어주시고 우리들교회로 견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맞은 때에 본향으로 불러 주실 것을 잊지 않고, 하루만 사는 부활신앙으로 처소를 잘 지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