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열왕기하 9:11-22
해마다 세계평화지수가 발표되는데 2023년 결과를 보니까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아이슬란드라고 해요. 그리고 163개국 중에서 한국은 43번째인데, 북한은 149번째라고 하네요. 북한 뒤에도 있는 나라는 뭐죠? 빨리 북한에도 복음의 등불이 비취어져서 같이 평화롭게 되면 좋겠어요.
평화, 평강, 평안. 이거 다 성경에서 말하지만 한마디로 원어로는 샬롬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평안을 좋아하면 인삿말로 이거 이렇게 쓰겠습니까. 우리도 늘 '안녕하세요.' 그러자나요. 그런데 살면서 세상은 참 평안이 없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니까 자꾸 엉뚱한 것을 이렇게 쫓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결론적으로 평안은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데 말이죠.
선지자 제자의 기름부름을 받아 왕이 된 예후가 오늘 본문에서 계속해서 '평안하냐?' 이 질문을 받는데요. 예후의 주군이었던 요람도 예후를 보자 평안하냐고 물어요. 여기에 예후는 '어찌 평안이 있으랴.'하고 찬물을 확 끼얹는데요. 그 전령자가 오늘의 주인공 예후에게도 평안하냐고 물으니까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합니다. 우리가 아들이 죽었는데도 '평안입니다.' 외쳤던 수넴 여인과 너무 다르죠. 그래서 오늘은 이 땅에서 평안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평안이 나와 상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자기가 상황을 만들려 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11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 본문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가 영적으로 해요. 이 어두운 시기 가운데 하나님의 대책은 그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예후였어요. 엘리야가 호렙산 위에서 계시 받고 적어도 15년 후에 등장을 했는데 엘리야에게 예언을 하시고 사명을 주셨어도 엘리야는 그 일을 때가 되지 못해 엘리사에게 승계했죠. 그러니까 엘리사도 그 얘기를 듣고 계속해서 주목했을 거예요. 누구를요? 하사엘과 예후를요. 25절에 보면 예후도 여호와가 아합에게 내린 그 심판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모두가 때를 보며 상황이 무르익기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예후가 반역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어요. 엘리사도 그거를 알고 때를 맞췄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각자에게 불이 내려와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예후가 믿음의 사람이라기보다 그때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예후를 택하셨어요. 그는 남북을 척결한 공을 세웠으나 믿음의 사람으로 분류가 되지는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너무나 어지러운 시대에 일반 은총의 정의도 실종되었기 때문에 이 잔인함의 개혁으로 쓰임받은 왕입니다. 그러나 쓰임받았지만, 왜 이렇게 얘기하냐면 이들은 오늘 여기 지금 11절에 보니까 선지자를 멸시하는 자들이에요. 그러니 선지자의 제자 보고 '그 미친놈이 뭐라고 했냐?'고 묻습니다. 예후 공동체에게 따라다니는 말은 미친 XX예요. 예후는 선지자의 제자가 와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겠지만 신속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했죠. 그래서 어떤 생각이 탁 떠올랐는가 하면 자기 부하들이 자기 몰래 일을 벌였구나 '이것들이 진짜로 거사를 저질러 버렸네. 내가 이 속아주는 척해야겠다.' 그리고는 머리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예후가 '아유, 알면서 뭘 그래.' 이러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장수들이 '아니, 당치 않은 의심이에요. 우리는 그 미친놈과 말하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예후가 이게 장난이 아님을 알고 '이게 연기가 아니고 실제 상황이구나.' 그래서 이제 골방에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무시하면서도 그가 한 말은 굉장히 궁금해 하더라고요. 군인들도 깜짝 놀랐죠. 이걸 반역인 걸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요람왕보다는 예후 장군을 자기들의 주군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옳고 그름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입니다.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
-> 13절이에요.
성경은 이때가 언제인지 친절하게 다시 한 번 알려줘요.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고 왕이 된 때가 언제냐 하면 요람이 출전했다가 아람군 공격에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인 거예요. 그러니까 왕을 호위하는 친위대만 요람과 함께 이스르엘로 왔고, 주력부대는 그대로 전장인 길르앗 라못에 남아 있는 거예요. 총사령관 예후의 지휘 아래 말이죠. 그러니까 요람이 부상 당해 이스르엘로 피한 사이에 그 예후가 이렇게 반역을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 혼란의 시기에 야당적인 기질이 강한 예후와 그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모반을 생각하고 있는데 엘리사의 제자를 이 미친자라 하면서도 이들에게는 이 모반을 위해서 명분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다시피 엘리사가 얼마나 전쟁마다 이기게 해줬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속으로는 엘리사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라고 하니까 이거는 엘리사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딱 맞는 안성맞춤인 거예요. 이럴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용해서 '이걸 합법적인 혁명이 되게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이 부하들은 요람은 아프고 예후는 신뢰하지 않아도 이게 모반이자나요. 그래도 나에게 유익이 된다면 당장 따라가는 것이 배반이고 기회주의죠. 그리고 인간의 악한 군중 심리인 거예요.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미친자가 하는 소리로 늘 정해놓습니다. 자기의 유익한 거는 딱 그것도 받아들여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자 입장에서는 미친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야 하고 이용 당하고 미움을 당하는 거를 당연하게 여겨야 돼요.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소속이 다른 거예요. 세상에서는 미움을 당하나, 요한복음에.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니까 100% 악하고 음란한,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군중은, 이 군중 심리죠.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요. 철저히 자기의 유익에 따라서 움직이죠. 그러니까 '아, 돌아가는 거 보니까 예후가 왕이라.' 나팔을 불면서 '예후는 왕이라.' 외칩니다. 어쨋든 예후는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도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을 합니다. 대담하면서도 신중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소위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것 같아요. 그래도 북이스라엘에서 들은 풍월이 있자나요, 말씀. '이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구나. 엘리사가 허락했네.' 막 밀어부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의로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 예후 왕조는 4대를 가지만 믿음의 왕으로 분류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후 스스로 만들고자 했다면 어땠겠어요. 자, 우리가 뭐를 다 아이디어를 내고 회사에서도 뭐 다 이기려고 하지만 요람의 부상부터 시작해서 치료하러 이스르엘로 가는 것, 언제 군대를 일으킬 것인지, 아람 군은 어떻게 대처할지, 스스로 왕이 되는 명분은 어디서 찾을지 신경 쓸 일이 한, 둘이 아니예요. 내가 1조를 달성했으면 그 다음에 2조를 향해서 또 가는 거예요. 언제나 더, 더, 하나 더. 밤 잠을 설치며 고민해야 하고, 그렇다고 또 결과가 고민한대로 나올지 확실치도 않아요. 인생은 늘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예후 마음 속에 왕이 될 욕심이 있든 없든 지금 이 상황은 예후가 만든 것이 아니예요. 마치 아무 이유가 없이 지금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이 세상은 우연은 없어요. 전혀 없어요. 아셨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말은, 그거는 정말 불신의 말인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에요. 요람을 전쟁을 나오게 한 분도 하나님, 요람이 부상을 입게 한 분도 하나님, 요람이 군대를 예후에게 맡기고 이스르엘로 치료하러 가게 한 분도 하나님이고, 선지자의 제자를 보낸 분도 하나님이고, 장수들과 군대의 마음이 예후를 향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상황을 만들어 예후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예후가 엄청난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중요한 거예요. 예후는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자기 스스로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9장 8절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굽은 길, 즉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은 평안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악한 자는 꼭 악한 자가 쟁취하게 하신다는 거, 이거 아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놈이 나빠서 내가 저놈을 물리치겠어.' 그건 하나님의 길과 반대되는 아합의 집 길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뭔가를 당했다고 여러분들이 상대방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일이에요. 우리는 내 감정, 내 생각대로 원하는 상황을 내 힘으로 이겨야 편하고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힘을 키우려고 얼마나 열심히 삽니까? 그래서 밤낮 주제가가 '원수 갚자, 원수 갚자.', '복수하자.' 한 목자님이 어릴 적 어머님이 늘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 서울대 가고 판, 검사 되서 원수 갚아야 된다. 꼭, 서울대 가서 원수 갚아야 한다.' 맨날 이 얘기를 주입시켰대요. 왜냐하면 옛날에 많았던 땅을 그 밑에, 할아버지가 노름을 해서 다 날렸기 때문에 '우리는 옛날의 영광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학 가는 걸 원수 갚기 위해서 가라고 어려서부터 들으니까 서울대학 가서 다 원수 갚지 않겠어요. 우리가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능력을 갈고 닦는 노력은 참 귀허죠. 그런데 그것의 목적이 행복에 있으면 결코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그러면 행복은 상관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놔야 평안이 오고 행복이 온다는 거예요. 이 2개를 분리해서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평안한 사람은 잘 기다려요. 뭘 기다리겠어요. 하나님이 뜻하신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요. 그런데 우리는 '내 뜻을 언제 이루어주시나. 내가 이렇게 목장을 가고 이러는데 그런데 왜 승진도 안 되고, 애들은 대학교 떨어지냐.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이 뭐가 있냐. 내가 목장에서 밥을 몇 끼를 했는데.', '나는 왕이 되고 싶은데 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하나님은 언제 열어주시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이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하나님 안 믿어. 떠날 거야.' 이러는 거죠. 선지자의 제자는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했자나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이제 필요할 때가 있죠. 그러나 자꾸 반복적으로 교회를 와도 인생의 목적은 애들 학교 가는 거고, 회사 잘 가는 거고, 승진하는 거고, 건강한 거, 물론 건강해야 되겠죠.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면 평안이 없어요, 늘 특별한 것만 꿈꾸니까. 부르심, 사명, 그 뜻을 생각하려면 나에게 주신 이 자리가 다 사명의 자리인 거예요. 환경이 바귈 때마다 거기가 사명의 자리인 거예요. 그런데 그걸 자꾸 바꾸려고 그래요. 내 환경을 감사하는만큼 평안해집니다. 그것이 가장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면 꼭 하나님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그 상황에 또 순종해서 여전한 방식으로 또 평범하게 살면 되는 거예요. 오늘도 눈을 뜨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순종하면서 따라가는 것 자체가 진정한 평안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요즘 평안합니까, 불안합니까? 내 힘으로 만들고자 하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상황에 순종하며 살았더니 평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2.헛된 평안을 구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15 ....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 이제 뜻밖의 상황이 열린 예후가 길르앗 라못에서 군대의 충성맹세를 받고 즉위식을 마쳤는데요. 아유, 그냥 왕이 되자마자 권세를 휘두르네요. 환경에 장사가 없어요. 어제까지 후배였는데 오늘은 이제 '나는 왕이고 너희들은 신하.'인 거예요. 그러니까 명령을 하면서도 고상한 척 하면서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뭐 이러면서 명령을 합니다. 그러면서 '길르앗 라못에서 아무도 이스르엘로 도망하지 못하게 봉쇄하라. 반란의 소문이 요람에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 상황을 통제하라.' 자기 명령으로, 자기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거예요. 왜? 당장 불안이 시작됐어요. 불안하니까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성 출입을 봉쇄하고는 곧장 병거를 타고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로 갑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서쪽으로 70km 거리인데 병거로 가면 빠르면 4시간, 천천히 가도 10시간 안에는 도착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후가 병거를 빨리 몰았을까요, 천천히 몰았을까요? 20절에 보니까 파수꾼이 예후의 병거를 보고 미치게 몬다고 하자나요. 이게 이제 예후의, 미치게 모는 게 트레이드 마크인 거예요. 평소에도 미친듯이 빨리 몰고 다니는 스피드광 예후인데, 이제 나라를 뒤집어 엎어야 하는 이때 명분이 생겼으니까 요람을 죽이러 빨리 가야하는 지금은 더 미친듯이 가지 않겠어요. 미친듯이 XX 뭔가 심판의 상징이 되었어요. 그런데도 다 너무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 이게 자기 욕심이 들어간 거 자나요. 그러니까 들킬까봐 불안하고, 실패할까봐 불안하고. 그러니까 이제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자기가 가져야 될 권세, 돈 이런 거 생각하니까, 뭔가 명분이 있는 것 같아도. 문제와 사건이 없는 상태, 그래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평안이라고 생각하자나요. 그런 거 세상에 없어요. 불안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과 수고는 결국 더 깊은 불안을 일으킵니다. 문제를 문제로 덮는 거예요. 큐티 본문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어요.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런데 세상의 힘으로 평화를 누리고자 하니까 여러분들이 불안하죠. 세상이 주는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예요. 힘으로 눌러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포장하는 평안이에요. 그러니까 전부 인격이라는 가면을 쓰고 '평안해. 아름다워라.' 집에서 다 싸우는데. 인격이 가면이라는 뜻이에요. '인격적이다=가면 쓰고 있다' 이 뜻이에요. 그렇게 이 힘을 얻으려고 수고하고 싸웁니다. 헛된 평안을 구하면 참 평안을 얻지 못하는 거예요. 큐티 본문 요한복음 16장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미치게 병거를 몰아도 예수 이름으로 구한 것이 아니기에 평안이 없어요, 기쁨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왜 기쁨이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예후가 병거 타고 달려오던 그 시각 이스르엘의 상황은 어떤가요? 요람이 누워있어요. 부상을 치료해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병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데 그냥 누워있습니다. 주력 부대가 전부 전장에 나가있는데 자기 혼자 누워있어요. 엘리사와 있었던 여러 사건을 통해서도 봤지만 요람은 진짜 심각한 게 하나도 없어요. 불안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여러분 요람처럼 하나도 없어도 문제예요. 하나님이 없이도 '다 괜찮아, 괜찮아.' 이거 문제예요. 아합의 집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되었자나요. 평생 높은 자리에 앉아서 귀하게 살았기 때문에 늘 편한 것만 찾습니다. 어려운 것은 생각도 하기 싫어요. 순간순간 자기 기분대로, 떠오르는 생각대로 일을 저지르기만 할 뿐 왕으로서의 책임을 할 줄을 몰라요. 분별을 못합니다. 부하들이 요람을 버리고 전부 예후 편에 서는 게 당연해요. 성경은 아하시야의 상황도 빼놓지 않고 다시 한 번 강조해서 기록합니다. 삼촌 요람을 보러 이스르엘에 왔다고 다시 알려줘요. 이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죠. 가족 신화에 물들어서 다윗의 길을 버리고 아합 집 길로 간 아하시야의 인생 마지막 종착지가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이에요. 슬프고 기가 막힌 일이에요. 가족 신화에 젖어 있다가 죽음의 길을 간 거예요. 둘 다 다 고난이 없어서, 둘 다 다 완전히 죽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가족 신화를 버리라는 경고입니다. 가족을 객관적으로 봐야 되는 거예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은 완전히 맞을 거야.' 이런 환상을 좀 버리시기를 바래요.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 17절입니다.
지금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평안이 지금 몇 번이 나와요? 정말 심히 불안하다는 증거예요. 이스라엘의 왕의 별궁이 있는 제 2의 수도 이스르엘이에요. 당연히 적군을 감시하는 망대가 있죠. 그런데 파수꾼이 경비를 서고 있는데 멀리서 병거 부대 하나가 막 달려오는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다행히 적군이 아니라 아군인 거예요. 길르앗 라못에서 오는 부대인 거예요. 바로 왕실에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요람이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라고 하는 거예요. '평안하냐? 전황이 어때?' 물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전황이 궁금하기는 했나봐요. 여러분 평안이냐고 물을 만한 사람에게 평안을 물어야 하건만 자기를 죽일 사람에게 지금 평안을 물으니. 우리는 누구에게 날마다 평안을 물어야 할까요. 계속 나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까 하여 평안을 찾지만 참 우스워요. 요람 자체가 평안 자체를 물을 자격이 없어요. 우상 숭배의 죄악 가운데 있으면 이렇게 평안을 이렇게 엄청 찾네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예수도 안 믿으면 늘 하는 인삿말이 '아버지, 별 일 없죠? 엄마, 별 일 없지? 식사는 하셨고?' 그거 밖에 물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어. 우리는 부모님한테 전화를 딱 하면 '아유, 오늘 그냥 하나가 되라고 그랬는데 엄마, 아버지는 안 싸웠어요?' 이렇게 말씀으로. '난 싸웠네. 엄마 며느리하고 싸웠네.' 이러면서. 왜 안 웃어요? 너무 싸워가지고.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날마다 평안, 별 일 없냐고 이게 완전히 울리는 꽹과리 같은 인사를 늘 이렇게 하죠. 그래도 또 안 하는 것보다는 낫죠. 죄를 짓고 있자나, 다급해지니까 그냥 앉으나 서나 평안을 찾아요, 그래서 나에게 위로를 줄 사람만 찾아다니는. 평안이 찾아집니까? 내가 깨끗하고 회개하고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평안을 물을 자격이 있죠. 예후는 요람의 이런 연락병에게 '네가 평안이 상관이 있느냐?' 파수꾼은 정확하게 파수꾼 역할을 하며 미치게 모는 예후에 대해 예고했으나 요람이 들을 귀가 없어요. 이제 자기가 신뢰하던, 의지하던 장관도 죽었고, 이제 예후에게 배반 당해서 죽기 일보직전인데 전혀 몰라요. 자기의 결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후의 병거까지 달려간 연락병은 '평안하냐?'는 왕의 질문을 전합니다. 이거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물은 거예요. 그런데 예후가 뭐라고 합니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지금 저곳 전황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이 전장이다. 구시대의 왕 요람을 새 시대의 왕인 자신이 제거할 거다.' 승리는 자기 편이니까 죽기 싫으면 내 편에 서라고 위협하는 거예요. 연락병은 예후 장관의 카리스마에 압도가 되어서 부대에 합류할 수 밖에 없었죠. 이런 거를 뭐 어떻게 욕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시대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이해를 해야 되는데 늘 결과를 보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 년이 가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그 시대의 이 상황을 항상 이해를 해야 돼요. 이 상황을 멀리서 살펴보던 파수꾼이 곧바로 왕에게 또 보고합니다. 그러자 요람은 연락병을 다시 한 번 보내라고 해요. 그런데 하지만 그 연락병도 예후에게 똑같은 말을 듣고 예후 편이 됩니다. 요람은 두 번이나 병사를 보내 평안하냐는 질문을 예후에게 던집니다. 자기는 이스르엘 궁궐에 누워있지만 이 전쟁, 아람과의 전쟁만큼은 이겨야 되는 거예요. 아버지 아합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벌인 전쟁이에요. 반드시 이겨야 했어요. 수고 없이 열매만 딱 바라는 모습이에요.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는데 우리는 십자가는 너무 싫고 영광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적용 없이 교회 나오게 만들고 싶어요. 고난 하나도 없이 교회만 나오게 하고 싶어요. 목자 되게 하고 싶어요. 이게 다 문제 없이 평안만을 바라는 거죠. 헛된 평안을 찾는 거예요. 우리가 육이 무너지는 것 만큼 영이 세워지는 거예요. 누구도 예오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말 한마디에 기뻤다, 슬펐다 하고 행동 하나에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평안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도 목장에서 그냥 믿음의 분량이 안되면 한 마디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는데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평안하려면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돼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평안이에요. 십자가 내가 지기로 결정하면 그 순종에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십자가 없이 얻고 싶은 헛된 영광은 무엇입니까?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가지게 되니 불안한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과 함께 기꺼이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3.악을 끊지 못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 파수꾼이 요람왕에게 상황을 다시 보고합니다. '두번째로 보낸 연락병도 돌아오지 않는데요?' 추가로 중요한 보고를 하는데 지금 오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예후라는 거예요. 병거 모는 것만 봐도 그렇게 미치게 잘 모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보고를 듣자마자 요람이 병거 타고 나섭니다. 또 같이 있던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같이 나서요. 이 가족 신화를 얼마나, 둘이 꼭 붙었는지 죽으러 가는지도 모르고 같이 나서는 거예요. 이게 아합 집의 특징인 거예요. '우리 형제는 너무 화목해.' 이 세상에 악하고 음란한 인간들이 모였는데 뭐가 화목해요. 돈 있고 권세 있을 때는 화목해 보이죠. 그런데 돈 있는 집들이 더 반목을 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권세가 있자나요. '외삼촌도 왕, 나도 왕, 웅리 할아버지도 왕, 우리 왕. 로얄 패일리. 할렐루야.' 그런데 왜 요람은 직접 병거를 타고 요람에게 갔을까요? 사실 명분상 치료 중이자나요. 그런데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에 포위됐을 때 기억하시죠? 그때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백성들에게 밟혀서 죽은 장관 생각나세요? 그런데 요람이 그때 그 장관을 어떻게 했다고 그랬어요. 손에 의지했다고, 그의 손에 의지했다고. 그런데 그렇게 요람이 믿고 의지했던 장관이 또 있는 거예요. 바로 예후인 거예요. 예후는 할아버지 때부터 집안의 가신인 거예요. 왕명을 받고 알아보러 간 부하가 지금 둘이나 돌아오지 않았자나요. 그러면 적어도 왕이 되가지고 상식이 있어야 되자나요. 눈치를 채야 하는데 예후를 그냥 철석같이 믿어요. 상식적이지 않을 때는 THINK를 해봐야 되는데, 둘이나 안 오는데 직접 만나러 가는 거예요. 요람이 엘리사 말 안 듣는 거 왜에 잘 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사람을 의지하는 거예요. 사람을 잘 믿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믿기로 작정한 사람 그저 끝까지 믿는 거예요. 인간적으로 의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 좋아 보입니다. 매력적일 수 있어요. 사람 믿고 의지하다가 망하는 게 한, 두 해가 아니자나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불신으로 사람을 믿기 때문에. 사람은 선한 것이 한 개도 없다고 그랬어요. 100% 죄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자꾸 사람을 믿는데. 인간의 정치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는다고 하죠. '우리가 친구 아이가.' 그러죠., 그러니까 자기를 죽일 사람인데. 전쟁에서 상처나서 아파 누워있는 몸이 얼마나 좋았으면 병거 타고 맞았을까요. 한편 의심을 할 수도 있지만 '설마설마 내가 나쁜 놈이지 어떻게 예후를 의심해.' 미숙할수록 정에 이끌립니다. '그럴리가 없어.' 여러분 항상 그럴리가 있습니다. 항상 이거를. 남녀간의 만남, 결혼, 회사, 어떤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100% 있습니다. 아니 이게 경영학 교과서 아닙니까, 큐티가. 이게 정치 교과서 아닙니까. 이게 정치하는 거예요? 예후는 요람을 죽이러 왔어요. 칼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람은 예후가 그저 반가워요. 그래서 두 사람이 탄 병거가 만나는데 바로 그 장소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인 거예요. 아합과 이세벨이 이 토지를 빼앗으려고 나봇을 죽였자나요. 바로 그 땅이에요. 아합 집의 탐욕과 교만이 폭팔한 바로 그 곳, 하나님이 그렇게 악을 행했어도 그 하찮아 보이는 나봇의 토지 하나 뺏었다고 이 집을 심판하자나요. 여러분 내가 오늘사소한 거 하나 잘못했다고 이 모든 죄를 그냥 넘어갔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병거의 속도와 시간까지 계산하셔서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는 예후와 요람입니다. 하나님의 정확 무오하심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게 말씀이 응하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날마다 큐티로 경고 듣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요람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 22절이에요.
요람은 예후가 그저 믿을 수 있는 장군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길르앗 라못의 전황만 궁금해요, 이겨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되니까. 그래서 이제 계속 묻다가 직접 이제 '평안하냐.' 물었어요. 그렇게 물어도 답이 오지 않는데 평안에 미련이 남아가지고, 평안이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거예요. 어떤 수고나 헌신도 하지 않았는데 평안이라는 열매는 꼭 손에 넣고 싶은 거예요. 계속 '평안하나. 또 묻고, 또 묻고, 또 물어요. 이 질문에 대한 예후의 대답은 이제 무섭고 단호합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예후는 직선적이고, 잔인하고, 개혁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에요. 병거를 몰고 가도 미친 스타일로 몰아요. 금방 알아볼 정도의 스타일이 그 사람의 스타일이에요. 왜죠? 예후는 이제 요람의 부하가 아니자나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경쟁자가 되었어요. 옛 주인이 하늘처럼 모시는 태후마마 이름을 부르면서 그 음행과 술수를 지적합니다. 자, 이것은 하나님이 예후의 입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요람이 가족신화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엘리사를 보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도 대대로 내려오는 악을 인정하지도 않고 죄악 가운데 있으니 이제는 반역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에 말할 사람이 없는 거라. 엘리사를 통해도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이제 반역을 통해서 말을 할 수 밖에 없어. 우리나라도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이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로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됐는데 계속 에수를 개독교라고 그러고. 아주 요새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 왕따 당하는 이 시대에 살면.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보내봤는데 이스라엘이 회개를 안 하자나요. 이세벨의 음행 우상 숭배고, 술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봇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인 악행이에요. '요람 당신이 이 악을 끊어내야 하는데 끊지 않고 여전히 악을 이어가면서 이제 유다까지도 악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어찌 평안히 있으랴.' 외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예후가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로마서 10장 3절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를 가리려고 자기 의를 그렇게 세웁니다. 믿음의 반대는 그래서 열심이에요. 그것이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열심인 거예요. 예후에게 이 일을 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엘리사가 그렇게 말을 안 듣는다고 피를 묻히면서 요람을 처단할 수는 없자나요. 악한 일은 악한 자에게 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 많은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나가서 처단해야 되는 게 아니예요. 평화의 사도 본 회퍼 목사님이 너무 히틀러가 이상하니까 히틀러 암살에 가담을 하셨자나요. 그런데 미리 발각이 되서 게슈타포 감옥으로 옮겨져서 일주일 전에 총살을, 해방되기. 그래서 순교자가 되신 것이 얼마나 본 회퍼 목사님에게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돼요. 히틀러를 심판할 다른 악의 세력을 하나님은 준비하세요. 아무리 아합과 요람이 악을 행해도 엘리사가 그들에게 총을 쏠 수는 없는 거라고요. 믿는사람이 해야 될 일, 안 해야 될 일이 있는 거예요. 도리어 그 역할을 할 예후에게 기름을 부을지언정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 왕도 하늘이 낸다고 하자나요. 선지자의 제자는 부름 받고 예후는 그 제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서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요. 좋은 역할, 나쁜 역할로 쓰임을 받습니다. 예후는 너무도 악한 시대에 악의 심판의 역할로 필요한 역할이었어요. 우리는 히틀러만 없으면 평안할 것 같죠.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위한 역할이에요. 정권을 위한 역할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살아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악한 북한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아직 보이지 않으세요. 그렇다고 우리 남한이 그들을 쳐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믿자나요, 훨씬. 악한 자는 악한 자가 치는 것이 맞아요. 그러니까 어떤 경우도 내가 복수하면 안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의사 선생님이 '절대순종이라는 말씀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남아있는 것은 나하고는 안 맞지만 이것조차 인본주의적 사고이고 내가 돌보는 환자에 대해서는 마무리 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환자들을 케어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순종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은 아니지만 적용으로라도 사직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대순종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국민 한 사람으로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게 맞겠구나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 거 같은 게 많아요. 돈이 그렇죠. 이 돈의 평안의 조건처럼 보여요. '이것만 주시면 제가 주를 위해 모든 걸 하겠어요.' 이것이 우리에게 다 있어요. 이것이 바로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예요. 끊어야 할 욕심이에요. 이 악을 끊지 못하면 평안할 수 없어요. 남편과 아내 바꿔 타면 평안할 것 같지만, 그래서 자꾸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죠? 그게 바로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예요. 끊어야 할 악이에요. 교체 선수는 평안을 줄 수 없어요. 헛된 평안입니다.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요. 이세벨의 죄가 남편인 아합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 1부에 기도하신 분은 여기서 10년, 20년 있다가 이혼하고. 그런데도 목자가 됐어요. 그런데도 서로 아직 솔로로 있어요. 그래서 조금 이따가 결합할 건데. 그래서 무조건 이혼하면 우리들교회에서는 사람 노릇 못하는 게 아니라 목자가 됐다 이거예요. 그러면 끊을 수 없는 악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악과 제일 정반대에 있는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봉사하는 거는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위한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의 몸을 함께 섬기며 같이 주님 안에 거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끊어지지 못하던 악이 봉사하면서 다 끊어지는 거예요. 참 평안은 주님 안에만 있기 때문에 주방 봉사, 주차 봉사, 청소 봉사, 주일 학교 봉사, 예배 봉사, 목장 봉사, 뭐 여러가지. 이것이 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딱 붙어있을 수 있는 봉사입니다. 반드시 여러 봉사에 함께 하시면서 끊어지지 않는 악을 다 끊어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집사님 양육 과제를 하며 말씀을 듣기만 하다가 녹취를 하니까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녹취록을 작성하는데, 그래도 부부목장에 했더니 2.5일 걸렸는데 전에는 4일 걸려서 그랬는데 굉장히 지금 2.5일 걸려서 뿌듯하다고 그렇게 나눔을 하셨어요. 여러분 며칠 걸리세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절대 믿었다가 배반당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텐데'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 끊지 못한 악은 무엇인가요? 교회에서 어떤 봉사로 섬기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희연
내일은 병원에서 검진하고 3개월 마다 하는 시술도 해야 하고 하루 종일 병원에 있습니다. 주님, 시술을 잘해야 신장 유지하는데도 도움 되는데 할 때마다 아프고 매번 마음이 떨립니다.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시고 치료의 광선을 내려 주셔서, 허락하신 새 생명...새 삶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영육의 힘과 약속의 말씀 기억나서 충전되도록 기도합니다.내일 병원 가는 것에 평안한 마음으로 다녀 올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중보하는 큰 우리가 있음을 기억나게 하시고, 천사들이 호위하는 특권 누리는 삶 누릴 수 있도록.
주희
1.청지기로써의 본분을 잊지 말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수 있기를
2.엄마가 이번주 토요일날 입원하고 다음주 월요일날 무릎 인공관절 수술하는데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수술 잘되어서 무릎 통증 감해지고 무릎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기를 2주간 입원하는데 입원하는동안 그동안 고생한 엄마가 푹쉬고 잘 회복될 수 있길
3.연약한 우리 엄마 불쌍히 여겨주시어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고 엄마가 교회와 목장에 잘 붙어 갈 수 있도록
4.우리 아빠에게 새 영을 주사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길
5.엄마를 신천지로 이끈 이모와 다른 지체들도 미혹된 주님의 어린양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신천지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 이모가 더이상 신천지로 다른 지체들을 끌어 들이는 것을 막아주시길
6.선미, 수연, 가림 모두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7.신우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전해지며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8.ㅇㅇㅇ 신우회 회장님 업무의 도움자들을 붙여주시어서 신우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복된 한해가 되기를
9.ㅇㅇㅇ ㅇㅇㅇ 의 가정사가 주님 앞에서 회개함으로써 사랑으로 회복되도록 ㅇㅇㅇ 의 귀한 믿음으로 ㅇㅇ그룹이 주님의 뜻이 세워지도록,회사를 이끄는 경영진들에게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겸비함으로 담대함을 얻어 경영의 지혜가 있게 해주시길
10.ㅇㅇ ㅇㅇㅇㅇ의 2025년 3월의 계획된 착공과 준공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잘 진행되게 해주시길
예선
1.나에게 주신 이 자리가 다 사명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말고 여전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하루를 감사하면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도록
2.내 감정, 내 생각, 내 힘으로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놔야 평안이 오고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뜻하신 때를 잘 기다릴 수 있도록
은우
1.세상 평안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과거,현재, 미래를 다윗의 등불 따라 비춰 보는 참 평강 -샬롬누리도록
2.이것만 있으면은 망상이라는 것을 알고, 십자가 사랑에 힘입어 회개하고, 위로 받고, 부활하는 나와 우리 목장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