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7 주일설교 요한복음 15:1~10 딱풀 제자가 됩시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부부목장을 인도하면서 꼭 하는 적용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핸드폰에 저장된 아내와 남편의 이름을 바꾸기, 두번째는 남편분들 적용인데, 아내에게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고백하며 꽃을 선물하는 적용입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가족끼리 대화하는거 아니야~ 라고 하던 부부입니다. 서로 대화를 안하니 부부목장을 너무나 기다렸다고 합니다. 부부목장을 하면 서로보며 말하는게 아니라, 목장 식구들을 보며 대화를 했습니다. 이 부부 덕분에 목장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분에게 남편의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망설이셨습니다. 저장된 이름은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로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핸드폰이 울릴 때 마다 얼마나 놀랬을까요? 집사님은 그날 적용으로 남편을 사단에서 하나님뿐인 내남편 으로 바꿔서 저장 하셨습니다. 근데, 사실 도저히 못바꾸겠다고 하셔서 옆에 집사님이 해주셨습니다. 그 아내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목사님 핸드폰에 이렇게 뜨는게 더 무서울 거 같아요'
아내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당신 핸드폰에는 내가 어떻게 저장되어 있어? 아내가 전화해봐 합니다. 전화를 하니 ㅊㅅㅈ 으로 화면에 뜨는 거였습니다. 최근 육아 문제로 전쟁을 치뤘는데, 그날 바꿨다고 합니다. 이름 3글자도 꼴도 보기 싫어서 초성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금요일 한 전도사님을 만나서 나눴는데, 이후부터 초성준 목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조적이십니다.
여러분은 아내, 남편의 이름을 어떻게 저장해 놓으셨나요?
저희가 항상 하는 두번째 적용인 꽃 선물하는 적용입니다. 아내 집사님들께 상처와 아픔만 줬던 남편 집사들이지 적용을 합니다. 아내집사님들 반응이 결혼하고 처음 받아본다, 목장이 최고다 하는 반응들 입니다. 봄도 되었는데, 아내분에게 꽃 선물하면 좋을거 같습니다. 꽃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꽃 다발은 살아있는 듯 하지만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생명을 주는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떄문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생명의 공급처인 그리스도께 붙어있지 아니하면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겉이 화려해도, 잘 단장해도 그리스도께 생명을 공급 받지 못하면 죽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있는 자로 살지, 어떻게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지 말해줍니다.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붙어 있는 것입니다.
5, 8절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성령의 강론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주실 때, 두 번째 대지에서 딱풀 성도에 대해 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딱풀 제자가 됩시다로 정해 봤습니다. 우리가 딱풀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 우리가 나무가 아닌 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1절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 하나님은 농부라고 하십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자체를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 쉬운 개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나는 포도나무다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 백성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포도나무를 기르는지 보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으니, 극상품 포도열매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포도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들포도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은 정의라는 열매를 원하셨는데, 포악으로 공의의 열매를 원하셨는데 불공의, 부르짖음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실패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시작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는 기존과 다른 새 모델을 보이겠다 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진짜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우리를 가지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삶과 가정에서 들포도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부터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5절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가 해야 하는 것 한가지는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이신 예수님과 농부이신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무이신 예수님이 날마다 살아날 은혜, 일용한 양식과 건강 지혜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옛 속담을 보면 선조들이 참 유머러스하고 지혜롭구나 라는게 보입니다. 여러 속담중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데 우리들 교회와서 나는 놈 위에 또 있는 것을 봅니다. 바로 붙어 가는 놈 입니다. 이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또 하나 재밌는 속담이 있는데, 말꼬리에 파리가 천리간다 라는 속담입니다. 날개가 쎄지 않은 파리가 말꼬리에 붙어 있으면 천리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 와서 자주하고 자주 듣는 처방이 바로 붙어만 있어라 입니다. 아까 우리 청년이 간증도 했듯이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날마다 말씀이 차곡차곡 쌓여서 내 가치관을 변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잘 붙어가는 것이 잘 믿는 방법입니다, 붙어 있기에 들포도에서 극상품 포도로 인생이 바뀐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목회자로 헌신하신 아버지는 정말 열심을 다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셨습니다. 열심히 사역을 하시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어린 저를 금식기도원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3일 금식하는 것이라고 통보하셨습니다. 마음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기도굴에 저를 넣으시고는 혹시난 나올까봐 밖에서 문을 잠그셨습니다. 너무 서운하고 저사람이 아버지가 맞나? 했습니다. 매순간이 고비인데, 둘째날 저녁에 너무 고비였습니다. 너무 허기가 져서 감당이 안되서 저녁집회 예배를 드릴려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강당에 앉아 있는데, 그날따라 흰 백발의 강사님의 모습이 흰 쌀밥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신 아버지는 본당을 꽉 채우셨습니다. 이후에는 건축을 하시겠다 하면서 또 열심을 내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정사고가 터지고 많은 성도님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집도 길거리로 나가게 되었고, 가정의 불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나가셨고, 아버지는 사모가 믿음이 없어서 돈벌러 나간다고 비난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저와 여동생을 불러놓고 상대에게 서운한 것들을 저희에게 푸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저는 군 입대로, 여동생은 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였습니다. 부모님은 훈련소 4주차때 이혼을 통보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재혼 하셨습니다. 이혼이, 재혼이 답이라고 생각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은 온 가족의 삶에 들포도만 가득 맺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왜 우리 가정은 들포도만 가득하고 안되는 것만 가득한지, 이런 환경을 만든 부모님도 싫고, 허락하신 하나님도 싫다고 손가락질 하며 불평하며 원망했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서 실망하지 않냐고 하셨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잊지않으시고,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딱 붙여 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딱 붙어가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니 제 관점이 변해 갔습니다. 쳐다보기도 싫은 가정이었는데, 이 가정을 직면할 힘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셨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우리가 붙어있지 못했고, 기복에 우리가 붙어 있었구나, 판단과 정죄로 들포도만 낼 수 밖에 없었구나 라는 이유가 깨달아 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정을 심방할 때 마다 제가 더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간증, 함께하는 지체들의 간증을 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간증들인데, 이게 하나님께 접붙여 지니 구원을 향한 약재로가 되는 것을 봅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분들과 하루하루 지옥을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기다리지 못한다고 할만큼 했다고 외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들포도 같은 인생에 무기력한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답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결코 다른 데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난 중에 있을 때가 골든 타임입니다. 더 예수님께 힘내 붙어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이 교회와 목장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지고, 살 소망이 생깁니다. 내 힘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혼, 재혼, 낙태, 자살이 답일 것만 같습니까? 하지만 이는 답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떠나고는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를 떠나 내린 답은 오히려 나를 더 괴롭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가지가 예수라는 포도나무에 딱 붙게 된것이 최고의 사건임을 믿습니다.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가지로 잘 붙어 계십니까?
바울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 너는 원래 돌 감람나무다 하지만 그런 니가 그 가지가 꺽여져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오늘 본문으로 말하면 바로 포도나무입니다. 또 바울은 가지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뿌리에서부터 힘을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뿌리에 공급받아, 뿌리로 부터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해야 한다면 나무되신 예수님을 자랑 할 뿐입니다. 크리스찬이 누구냐고 표현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된 사람이라고 말하면 될거 같습니다.
- 나는 어떤 포도를 내는 인생이었나요?
- 내가 가지임이 인정이 되시나요
- 오늘 내가 딱풀 제자로 붙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2. 가지치기가 필요 합니다.
2절에 보면 농부가 깨끗게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요? 가지를 제한다고 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제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을 뺏어 가신다는 게 아닙니다. 윌킨스 박사는 이를 포도나무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한다는 말의 원어를 보면 아히로 라는 말인데, 이는 집어서 올린다는 뜻 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는 밑으로 처지는 습성이 있고, 밑으로 내려가면 먼지가 덮이고 곰팡이가 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를 들어 올리고, 지지대에 묶어둡니다. 그러면 다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윌킨스는 아버지 하나님이 이렇게 자녀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포도나무를 본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다 너무 궁금해져서 포도농가가 있는지 검색을 했습니다. 마침 포도 체험농가가 떠서 혼자 다녀왔습니다. 실제로 가서 보니 오늘 본문이 너무 이해가 되었습니다. 포도나무에 대한 제 환상이 다 깨졌습니다. 물론 겨울에 가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죽은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예수님을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표현 합니다. 포도농가 가서 포도나무를 보고 나서 이말을 이해했습니다. 포도나무는 그저 열매를 맺기 위한 나무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관상용으로 쓰는 나무가 있는데, 포도나무는 땔감으로도 못 쓸 것 같았습니다. 농가주인분께 사실 내가 목사고 말씀을 준비하다가 포도나무를 실제로 보고 싶어서 왔다. 그러면서 가지를 들어 올려주고, 가지치기 작업을 안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땅에 쳐박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그리고 숙련된 농부만 이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고, 어떤 가지는 가지를 쳐야 하냐고 물어 봤습니다. 순이 있는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 같은 순 이었는데 농부 눈에는 다르게 보이나 봅니다. 그래서 숙련된 농부가 필요한 거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가지치기 하고 남은 가지가 있는지 물어보니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잘린 가지를 보면 열매를 맺을 것 같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지만 농부 눈에는 보이는 거 같습니다. 또 잘린 가지를 보며 오늘의 본문이 심판의 본문이 아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어떻게든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365일 24시간 가지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신경을 쓰고 계시는 구나, 하나님은 잔가지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구나 좋은 포도를 내기 위해서 내 인생에 크고 작은 뻗어 나온 불필요한 잔가지를 오늘도 잘라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가지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픈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를 가지가 아플까봐 안한다? 이는 농부가 아닙니다. 성장통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를 보면 아고 우리 아이는 더이상 안 크지않고 않아프면 좋겠다. 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네스에 등록된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4500송이가 열렸다고 합니다. 나무에서 뻗어나온 줄기만 어마어마 하다고 합니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실속없이 무성하게만 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상에는 먹을 만한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고자 가지를 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위를 들고 내 인생에 가지치기를 하실 때, 하나님을 너무 원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낙심과 불평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아들을 징계한다고 하십니다. 그 징계 가운데, 나를 점검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내가 순종하고, 헌신의 자리에 둘 때, 위대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가지치기 작업을 통해 불필요한 가지가 잘려나가는 양육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감격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의 정기 검진 날이었습니다. 사역 때문에 동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내에게 연락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아내의 우는 소리만 들립니다. 아내는 울면서 여보 미안해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는데, 내가 아내를 지키지 못했어 라고 합니다. 위로를 한거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산 수술을 일정을 잡기 위해 병원을 갔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수술을 기다리면서 눈믈을 흘리고, 저는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7년 간의 난임 기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원망이 없어진줄 알았는데,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튀어 올라왔고, 다시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할 때, 제 안에 가지쳐지지 않은 가지들이 다시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피해자고, 하나님은 가해자라고 불평을 쏟아내는 제 목습을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안의 자르고 잘라도 자라나는 교만과, 피해의식을 가지치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이 가지치기 위해 주신 사건임을 인정하며 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가지치기에 괴로워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
- 날 살리시는 가지치기에 순종하고 계신가요?
- 내 안에 가지치기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3.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이 10번이 나옵니다. 거한다는 말은 주안에 머물러 있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7절에서 명확한 답을 주십니다. 생명을 걸고 지켜야할 명령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산다는 말입니다. 필요할 때 들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7절
말씀이 곧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곧 말씀입니다. 즉 말씀이 내안에 거한다는 게 예수님이 내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말씀에 거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 주 예후에게 기름 부은 제자는 들은 말씀이 있는 제자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말씀 안에 거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삶에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능력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이고, 농부이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이 내안에 거한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수리센터에 가서 들은 말인데, 전기제품의 60% 고장의 원인은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거라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안에, 말씀안에 딱 접촉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한 영화에서 사막에서 온 족장들을 관광을 시켜주고 호텔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족장들이 가장 신기해 하는 것은 수도꼭지 였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로렌스가 놀랍니다. 수도꼭지를 공구로 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족장들 눈에는 이 수도꼭지에 능력이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막에 가서 이를 돌리면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에게 잘 붙 있어야 수도꼭지를 틀때 물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전도축제인데, 많은 분들이 말씀안에 딱 붙어서 구원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 매일 큐티하고 계신가요?
- 목장예배, 공예배 사모함으로 참석하고 계신가요?
- 팔복산 기도회 전체 참석하실꺼죠?
<적용질문>
내가 붙어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A.
집. 친구가 계속 나와서 살자고 하는데 고민돼. 언니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해서... (지금 가정에서 문제가 해결돼야 내가 이룰 가정에서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듯) 회피만 하던 인생이라 해결할 건 해결하고 가야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러지 못하면 자기혐오가 생기게 되니까... 내가 하나님한테 구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고자 발버둥은 쳐보고 싶어. (왜 스스로 해결?) 목장에 나누려고 해도 목원들이 부담 될까봐 다 못 나누는 게 있어. 어디까지 묻고 가는 게 맞는지 모를 때도 있고... 하나님도 나를 그렇게까지 신경쓰실까, 내가 너무 하찮은데 과연 내 얘기를 들어주실까하는 마음이야. 날 사랑해주세요 하기보다는 뭔갈 구하지는 못하겠으니까 그냥 주시면 따르겠다는 생각. (하나님 앞에 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좋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조금 더 가질 필요가 있어보여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겠다는 너의 상태 그대로를 솔직하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
B
집. 그런데 가족구원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알아서 살게 두고싶어. 1인분의 몫은 하면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 가족들한테 받았던 사랑을 모두 외면하고 나나 잘 믿고 잘 살고 싶은 비겁한 마음이 들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기혐오가 생기기도 해. 하나님한테도 부끄럽고 죄송하고... 그런데도 회개마저 잘 안돼. 그냥 가만히 붙어있는 것 밖에 할 힘이 없어.
C.
양교에 붙어있어야...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는 알겠는데 회사도, 남자친구도, 집에서도 그렇고 훈련의 때인게 너무 순종하는게 힘들다.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실거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사건에서 한 번 넘어졌을 때는 나를 사랑하시나 싶고... 양교를 드랍하고싶은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약간 편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랄까? 셋팅을 다 해주셨는데도 숙제하는게 좀 하기가 싫다잇...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고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남동생 교회 와줘라~( 남동생 케어는 부모님의 몫이야! 잘 얘기해봐. 너가 양육을 지금 받고 있으니 너의 예배에 충실할 때가 아닐까. 너는 동생과 부모님의 창구일 뿐...)
<기도제목>
A
- 양교 숙제 미루지 않고 할 수 있도록
- 신결혼과 일적인 것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고 잘 기다릴 수 있도록
- 남동생 주일 예배 회복될 수 있도록
- 아빠가 말씀 보면서 제사장으로써 잘 서계실 수 있도록
B
- 욕심과 불안을 가지치기 당하는 환경 속에 있는데 잘 순종할 수 있도록
- 가족구원에 대한 애통한 마음 주시기를
- 생활예배 잘 사수할 수 있도록
C
- 너무 일 벌리지 않을 수 있도록
- 부모님과 이야기 하고나서 안전하게 대만에 다녀올 수 있도록
D
- 한 주간도 큐티하며 적용할 수 있도록
- 동생과 아빠 계획한 대로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 청소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