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제자 (열왕기하 9:1-10)
날짜: 2024.03.10
제목: 선지자의 제자 |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본문: 열왕기하 9:1-10
설교: 김양재 목사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뵙고싶은 선생님이 계시는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18살로 최연수 우승을 해서 마에스트로 칭호를 받는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니 조금도 주저하지않고 자기 스승 손민수 교수를 뽑았다. 교수 인터뷰를 들으니 제자 임윤찬은 평소 자신이 하는 말을 지나치는 법이 없고 피식 웃고 넘어가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어떤 말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한다고. 하다못해 책 한권을 소개해줘도 그것을 꼭 읽더라는 것이다. 굉장한 칭찬이다. 여러분은 어떤 제자였나요? 그리고 어떤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임윤찬은 스승보다 더 거장이 되었다. 요즘 요한복음을 묵상하는데, 예수님을 배신한 갸롯유다도 제자중 하나였다. 무늬만 제자라고 하지 말고 주님의 진짜 제자가 되어야겠다. 오늘 본문에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한 사람이 나온다. 1절 읽는데 선지자의 제자가 눈에 들어왔다. 스승 엘리사도 주님의 제자이고, 선지자의 제자는 곧 주님의 제자이다. 선지자의 제자도 제대로 못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할수는 없다. 구약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는 책이 열왕기하 이고, 이번이 마지막으로 제자가 나오는 장면이다. 제가 성령의 제자, 성령의 제자양육으로 설교했다. 선지자의 제자는 처음인 것 같아서 본문은 달라도 날마다 똑같은 설교, 오늘은 선지자의 제자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1. 가장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1절
엘리사선지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열왕기하 시작부터 지금까지 엘리사 선생님이 수고를 정말 많이 하셨다. 홀로 고군분투하며 여호람때문에, 여호사밧 게하시때문에 고민하고 속이 썩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이 살렸다. 과부, 수넴여인, 가뭄의 제자들, 나아만 장군, 군대, 도시, 나라도 살리고 쉴새없이 하나님 말씀 전하고 사람살리는 사역을 했다. 이 엄청난 사역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엘리사가 쇠약해지기전 마지막으로 완수하려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맡기신 세가지 임무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이다. 아람의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장군 예후에게 기름붓고, 세번째 엘리사에게 기름 부으라는 것이었다. 엘리사만 기름 붓고 두개가 유업으로 남았는데 1번을 수행하러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을 쏘아보며 통곡하고 기름부었다. 마지막 2번 예후가 남았다. 엘리사가 이제 이것을 완수하려고 한다. 엘리사는 북이스라엘 사람이다. 북이스라엘 왕은 이제는 요람이라고 불리는 여호람이다. 남유다의 여호람은 이미 죽었다. 북이스라엘 여호람은 아직 병중에 살아있다. 엘리사는 예후라는 장군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워야한다. 예후는 요람의 아들도 형제도 아니다. 그냥 장수이다. 그러면 뭐인가? 반역이다. 왕이 살아있는데 그 밑의 장군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요람 왕이 엘리사 안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반역을 주도하다니, 요람이 알면 살려둘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예후에게 직접 가지 않는다. 저 멀리 있는 아람의 다메섹에근 직접 갔지만 같은 나라에 살고있는 예후에게는 가지 않는다. 몰래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신속하게 행해야 하기 때문에 엘리사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 명령인데 왜 몰래해? 떳떳하게 해야지, 하나님이 지켜줄껀데 왜 눈치봐? 이게 인본적 생각이다.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면 안된다. 그런데 또 믿음은 초월적이다. 그래서 어렵다.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이 상황마다 분별이 필요하다. 이 일은 정치개혁이 아니다. 더 좋은 명분 찾고 권세를 위한 정치싸움이 아니다. 이 일은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돌이켜보려고 온갖애를 다 쓰시는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이다. 그러므로 가기도 어렵고 가기 싫은 이방의 다메섹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사역에 도움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직접 갔어야 했다. 얼마나 아람의 나아만 장군도 고쳐주고.. 그러나 직접 가고싶고 가는게 쉽기도 한 자기 나라 길르앗 라못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인무완수에 오히려 방해가된다. 여기는 직접 가지 말아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엊그제 죽이는 모의가 시작되니 들어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엘리사가 어떻게 하는가? 제자 중 하나를 골라낸다. 여기서 제자는 원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단지 학생이 아니라 같이 살면서 돌보고 섬기는 자식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엘리사도 그냥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엘리야가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워보일 때가 있었다. 아합과 잘 살고있는 이세벨이 죽이고자 했을 때 엘리야는 자기 편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선지학교가 부흥해서 제자들이 많아졌다. 이 여러 제자 중 하나를 엘리사가 부른다. 게하시가 떠오르지만, 그 이름은 안나온다. 게하시는 제자라는 말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사환으로 소개되었다. 물론 제자중 수제자라 엘리사를 옆에서 수행하는 비서가 되었겠지만, 게하시를 선지자의 아들같은 존재라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는다. 게하시는 능력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다. 그러니까 사환이 되었겠죠.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게하시가 나병 치리도 받고 많은 큰 일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나병걸린 상태에서 회개도했고 큰 공도 세웠다. 요람왕에게 큰일도 좔좔 설명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왜인가?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특별한 사환이었지만 거기서 멈췄다. 선지자의 제자, 선지자의 아들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나다! 이게 게하시의 태도였다. 그러면 누가 선지자의 제자, 아들인가? 여러 제자들 중 하나로 그냥 있는 사람이다. 늘 그자리에서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묵묵히 있는 사람이다. 자식이 왜 귀한가? 자식은 그 자식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만으로도 귀한 것 아닌가? 첫째 둘째 셋째가 부모입장에서 차별이 어디 있겠는가? 차별이 있으면 문제부모이다. 믿음이 없어서 다 차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세상에서 내새끼는 그냥 모두 귀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그냥 그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귀하다. 세 자녀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다 된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특별하려고, 자녀들이 싸우고 무시하면 너무 속상한거죠 부모된 입장에서. 나의 차별당함이 혹은 차별함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청년국의 청년이 초6에 따돌림 당한 것 때문에 20살이 넘었는데 열번째 음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9년만에 낳은 아이라고 한다. 그래서 야망으로 믿지 않는 시댁에 보일 것이 있게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대가 너무 커서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사랑을 했다고 부모님이 회개하신다. 참으로 평범한 집인데 이 가정이 이딸로 인해 칼날 위의 물방울같은 훈련을 받고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차별당한다고 끝없이 생각하는게 문제이다. 그러니 이 아이로인해 이 가정은 하나님이 상급이 되는 거룩한 가정이 되어가고 있다. 이 아이를 거치는 교사들도 한결같이 회개한다. 이 아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하는지 모른다. 우연은 없다고 하시니 이 가정에 기쁨이 넘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란다. 평범하지만 부모님도 아이도 모두 말씀이 잘 들린다. 이번 큐페에 와서 은혜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줄 믿는다. 이세상에서 힘들어도 다들 목적지는 확실히 도착할 줄 믿는다.
엘리사는 제자 자체가 감사하여 여러 제자 중 하나로 평범하게 살아가고있는 한명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자기가 완수해야할 마지막 사명을 맡긴다. 허리를 동이라고 한다. 무장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막중한 사명이다, 몸도 영도 긴장해서 준비하고 깨어있으라,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병을 건네준다. 이 병을 손에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했다. 이것처럼 이 가정도 늘 깨어있게 하심이 그 약재료의 기름병을 가지고 사명 감당할 길르앗 라못으로 가셔야할 줄 믿는다. 오늘 허리를 동이고 기름병을 가지고 가야 할 길르앗 라못이 어딘지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2-3절
뭘 명령하는가? 길르앗 라못은 요람이 가족신화때문에 싸우러 갔던 곳이라고 했다. 위대한 아버지 아합이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람도 거기서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로 후퇴한 상황이다. 그런데 주력부대는 여전히 그곳을 치려고 주둔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총사령관 예후가 다른 장수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장수들은 예후와 함께 생사를 함께한 형제같은 전우였다. 엘리사는 무명의 제자 한명을 예후에게 보내며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라고 한다. 그리고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한다. 그리고 곧 문을 열고 도망가라고 한다. 기름부어 예후를 왕으로 삼는 것이 목적이니 다 했으면 돌아와라! 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전쟁 중에 군대장관들이 다 모여있는 가운데 청년 하나가 갑자기 와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니가 왕이다! 말하면 곧이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혹시 반역하여 북이스라엘의 요람을 제압한다고 해도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 본국의 왕족들이 남아있다. 두 국가가 혈연으로 뭉쳐있는 가운데. 남북이 연합해도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통일이 되어도 큰일이다. 북한이 살아갈만큼 뭐가 준비되고나서 통일되어야지. 반역한다는 것은 두 나라의 왕족간에 싸움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너를 왕으로 임명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거 반역아니야?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그 말을 전한 사람을 사로잡아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거나 혹 배후자를 캐내기위해 고문을 가할 것이다. 그러니 이 제자와 엘리사는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백전노장도 아니고 새파란 청년을 보냈는데.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일을 제자중 하나를 불렀다. 그는 그저 선지자의 제자중 하나이다. one of them이다.가장 평범한 한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평범한 한사람이 엘리사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사명을 맡아 완수하는, 가장 비범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자기 자리를 one of them이 되어 여전한 방식으로 비비고 닦고 문지르며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평범한 인생을 비범한 인생이 되게 하신다. 다들 아픈아이 부모로 살 때, 또 내가 아플때, 돈이 없을때, 망할때, 인간관계로 힘들 때 그때 하나님이 불러주신다. 그때 잘 살면. 평범한 사람을. 그런 고난을 잘 감당하고 있으면 불러주신다.
이 일이 굉장히 위험한 만큼 큰 대가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예후를 왕으로 세운 선지자가 되는 일이니, 그러면 새 왕으로부터 큰 선물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무조건 여기 도망가야한다. 유혹도 있고 너무나 어려움도 있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특별해지려고 하다가 다 무너진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을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내야하는데. 늘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맨날 비범만 꿈꾸다가 갸롯유다같은 가짜제자로 끝난다. 끝까지 제자의 이름, 아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사환 게하시로 끝나는 것이다.
엘리사도 평범하게 밭에서 소몰며 일할 때 불러주셨다.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잘 살고 있을 때 사명의 자리로 불러주시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가은 엘리야 선생님의 사명을 엘리사가 이어받아 제자가 된 비결은 엘리사의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이었다. 자기자리 잘 지킨 평범함. 아내 남편 학생의 자리. 평범이 비범이다.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선지자의 제자가 된다.
적용
가족 중 한 사람, 지체 중 한 명으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애씁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 슬픕니까?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까?
나눔
불신결혼 할뻔했는데 우리들교회 아웃리치 THINK TRIP에서 남편을 만나 신결혼했다. 제가 무슨 복이 많아 신결혼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남편과 말이 통하는게 감사하다. 교제 시작하고 10개월만에 결혼했는데 공동체에서 자기고백하는 남편의 진솔함이 너무 멋있었다. 그런데 남편을 쟁취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얘기하면 천연기념물같은 소리라고 말하고싶다. 그래도 우리 외부에서 찾아오면 데려와서 양육받게해야한다. 그러면 불신딱지 떼어주겠따. 둘이 그래도 엔돌핀 나오는 시기니까 그것까지 할 수 있어야한다. 오라고했는데 안오면 딱 끝내야한다. 그래도 그때가 사랑할때이다. 사랑할 때 와서 양육받게 해야한다. 결혼하고는 절대 안받는다. 연애할때 반드시 목장가고 양육받아야 싸워도 목장에서 해결해준다. 평범한 삶을 잘살면 비범함이 된다. 결혼해서 잘사는게 얼마나 비범한것인가. 비범한 결혼했는데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2. 절대 순종합니다.
4절
엘리사가 불러보낸 제자 한사람을 청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지자의 청년이라고 두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한다. 청년이 사실 사환이라고 번역한 단어와 같다. 사환 하면 게하시인데. 제자중 한사람을 불러 보낸거니 사환이 아니다. 말그대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제자 한사람이라는 뜻이다. 만일 게하시를 불렀다면 아니 제가 왜갑니까? 잡히면 어쩝니까? 말이 많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여러 제자중 한 사람, 무명의 청년이다. 선생님 말씀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순종한다. 가라고 하니까 그냥 간다. 절대순종이다.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독재야 뭐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구속사가 아니면 매일같이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말이다.
5절
길르앗 라못에 도착했고 장군들이 앉아있다. 부하들이 멈춰 세우니 아마 소리를 지른 것 같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병사들이 붙잡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 청년은 계속해서 외친다. 이 제자는 선지자 스승님 말씀대로 실행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그럴땐 체면 부끄러움 위험도 개의치 않는다. 미친사람 취급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인가? 선생님이 부탁하신 사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어떤 것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우선인 것이 없다는 확고한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의 선생님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제자이다. 선생님 가르침대로 하는 사람이다. 앞에서는 듣는척ㅇ하고 좋아하고 존경하는척 하다가 돌아서면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다. 자기가 주인이고 선생이다. 결국 자기 생각이 정답인 사람은 제자가 되지 못한다. 최고의 제자는 배울 수 있는, 배울 줄 아는, 배우고싶어하는 제자이다. 배우려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기 어렵다. 배우길 아는 사람은 곧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다른사람 말을 들을 수 있는 만큼 배운다. 많이 아는 똑똑한 제자도 좋지만 가장 훌륭한 제자는 이미 많이 아는 제자가 아니라 잘 듣는 제자, 잘 배우는 제자이다. 그래서 임윤찬은 한예종에서 손선생님께 배우다가 그 선생님이 잉글랜드로 교수가 되어 가셨다. 그랬더니 임윤찬도 선생님 따라 거기에 갔다. 이미 얘는 거장이 됐는데도. 진짜 배움은 아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다. 정보와 지식으로 끝나면 온전한 지식이 아니죠. 실천해야한다. 적용해야 진짜 내것이 된다.
따라서 진짜 배움은 절대 순종이다. 상대순종이 아니다. 조건부 순종이 아니다. 무조건 순종이다.
한 청년 목자가 나눔했다. 올해 다시 목자로 불러주셨는데 나는 멀리 이사가면서 목원들에게는 교회 근처에 집을 구하라는 이상한 목자임이 깨달아졌다. 이제 이사를 안하려는 적용을 하려는데 아파트의 처분에 매매할지 말지 목장과 공동체에 묻고있다.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작다는 말씀처럼 예상되는 금전적 손해가 돈우상의 노예된 삶을 살았던 죄보다 작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처분하고나면 지난 4년간 잃은건 없고 병만 남은 것 같아 속상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귀한 시간을 헛되이 쓴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는다.
미리미리 산전수전 겪어 신결혼의 주인공들이 되기 때문이 이혼을 안하는 것이다. 이게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인줄 믿는다. 청년 시절에 돈도 잃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봐야지. 애들도 학원으로 돌려가지고 그러면.. 애들은 유리에도 찔려보고 하면서 이걸 안하게 되어야지, 음 유리병에 찔리면 아프다고 책에서 배우면 유리병을 조심하겠는가? 어려서는 놀려야한다.
절대 순종해서 예후에게 외친 제자는 어떻게 되는가? 6절
자신을 부른다는것을 안 예후가 다가갔겠죠.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이 시킨대로 예후를 골방으로 따로 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청년은 선생님이 주신 기름병을 예후에게 기울여 붓는다. 이것도 정상은 아니다. 새파랗게 어린 청년 선지생도가 와서 이스라엘 총사령관을 따로 독대하겠다고 불러내더니만 머리에 기름까지 부으니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믿음은 상식이다. 그리고 믿음은 초월적이다. 이게 다 믿어져야한다. 제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한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옳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최소한 자기보다 옳으시기 때문에 저는 제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선생님 말씀대로 무조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순종하는 믿음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제자이다.
적용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싶습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의 권면을 잘 듣나요,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하나요?
지금 가정에서 절대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 저는 골수라고 할만큼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이제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것만 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셨는지. 진짜 선은 영혼구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만이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라고 생각이 든다. 비판하던 나 자신을 내려놓고. 정치유튜브 보던 것도 정리했다.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잘라내는 적용을 했다. 요즘 사두개인도 예수를 죽이는 일이 시작된다. 그런데 예수의 길이 있따고 했다. 남편과 아내가 이혼하려고 하면 서로가 옳다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누가 말려주는가? 양가도 내가 옳다고 하는데 평생 이 싸움이 끝나는가? 그런데 이 부부를 윟애 이번 주일에 장로님이 설교하셨다. 이 부부를 위해 목자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그랬더니 목원들이 다 무릎꿇고 빌어주어 이혼을 말렸다고 한다. 이게 예수의 길이다.
3. 들은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6-10절
엘리사가 제자에게 하라고 한 말은 3절 이었다. 그런데 제자가 예후에게 실제로 한말은 6-10절까지 다섯절이나 된다. 그러면 제자가 선생님 말씀에 절대순종하지 않고 많이 보태서 한것인가? 그러나 자기 생각을 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선생님께 들은 말씀, 듣고 기억한 말씀으로 예후에게 더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 평범한 한 제자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6절에서는 예후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분명히 한다. 예후 너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네 왕이신 하나님이 너를 자기백성의 왕으로 세우신다. 영적인것을 하나도 모르는 예후에게 확실히 말한다. 7절에서는 예후를 아합의 집 죄악심판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처음 이 세가지 임무를 주실 때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셨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했다. 나봇같은 사람을 죽이고 자기 욕심을 채웠다. 이 죄악을 갚는 심판의 도구로 예후 널 왕으로 세웠다! 그러니 다른생각말고 임무를 다해라! 이 뜻이다. 엘리사가 보낸 제자는 자기 생각을 아무렇게나 더해 말하는게 아니라 선생님께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예후에게 딱 맞게 전한 것이다.
8-10절은 나봇사건 이후에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내린 심판의 말씀을 세절로 간추렸다. 아합의 집은 이미 멸망하기로 작정되었다. 돌아올 기회를 하나님이 주실만큼 주셨고 기다리실만큼 기다리셨다. 이제 기회는 없다. 아합 이전에 있던 여로보암왕조, 바아사 왕조가 멸절된 것처럼 이제 아합의 집을 멸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예후에게 확실히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그들의 집처럼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예후도 나중에 그렇게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제자는 예후장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 말을 덧붙인게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예후 수준에 맞춰 잘 전한다. 임무를 완수했다. 말씀을 전한 다음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곧 문을 열고 도망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선물 좀 안주나? 기웃거리지 않는다. 말씀을 전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는 것은 끝까지 자기를 특별히 여기지 않는것이다. 끝까지 절대순종하는 것이다. 이게 진짜 제자이다. 이대로 하면 성경이 얼마나 이타적인 정치와 경영과 교육 등의 교과서인줄 아시겠죠? 그래서 큐티를 해야한다. 그런데 이기적인 정치를 시작하니까 늘 정치한다고 하고 분이 나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항상 내편 네편을 가르니까. 뭐든지 이타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적용해서 들어야한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할줄 아는것이라고는 시키는대로 무조건 순종하는 어찌보면 바보같은 이 사람이 어떻게 엘리사가 제자가 되었을까? 어떻게 이 마지막 사명, 그러나 막중한 사명을 완수하는 제자가 되었을까? 그것은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 선생님으로부터도, 엘리사 선생님으로부터도 말씀을 들었다. 듣고 그냥 잃어버리지 않았다. 들은 말을 되새기고 기억했다. 그랬기 때문에 예후 앞에서 필요한 말씀을 딱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인생이 비범한 사명의 인생 되게하는 비결은 오직 말씀 뿐이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주인공인 선지자의 제자 한명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완벽한 한 팀이 되어 대를 이어 사명을 완수해갈 수 있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만 그런게 아니다. 교회도 진짜 교회로 존재하려면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야하고 한몸이 되어야한다. 가정도 그렇다. 피가 아무리 진하다고 해도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감정때문에 나뉘고 돈때문에 싸우고 가족신화때문에 갈라지고. 좌건 우건 우리로부터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으로 부부가 하나가 되고 가정이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야 구원의 사명으로 나아가는 진짜 가정이 되는 것이다. 무명의 제자 한사람이 엘리야도 엘리사도 직접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완수했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삶을 겸손하게 잘 살았던 것이기에 절대순종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이사람의 환경이나 성품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육의 계절이 돌아왔다. 양육을 통해 말씀이 들리는 기적이 임하길 원한다. 그다음 양육에서도 말씀이 들리는 복이 임하길 축복한다. 들은 말씀이 우리 삶을 가장 귀한 사명의 삶으로 바꿔놓을 줄 믿는다.
저는 우리들교회의 평범한 성도들이 이런 사명을 감당한다고 생각한다. 성도님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엘리사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사명을 무명의 제자가 한것처럼 목자님들도 그렇겠지요? 어떻게 부르시는가? 아이낳는 적용으로, 힘든 아이 돌보는 삶으로, 망한 집 살아내기로, 외도 배우자 용서하기 등등으로 하나님은 부르셨다. 그래서 가장 비범한 삶을 살아내시고 있는줄 믿는다. 그러니까 세상이 여러분을 감당을 못한다.
적용
들은 말씀으로 살아난 경험,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 가정은 말씀으로 하나가 되고 있나요?
요즘 말씀이 잘 들립니까?
안 들린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목자님이 글로벌 기업의 CEO면접을 봤는데 글로벌 기업이니 외국 CEO도 다 들어왔단다. 다각도로 면접을 보는데 어떤 질문을 받았냐면 회사에서 가장 놀랄때는 언제인가? 라고 한다.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문제가 보이면 놀라서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안보이면 문제라고 영어로 말했더니 외국 면접관이 놀라면서 받아적더라고. 압도적인 점수로 합격하셨다고 한다. 이 면접을 위해서 평소에도 자주 듣지만 지난 주는 주일설교를 15번 들었다고. 이분이 지금도 CEO이다. 그분이 한가해서 15번 들었겠는가? 늘 주일설교 들은 것 가지고하면 회사에서도 늘 잘 써먹는다고 한다. 이분에게 맡겨진 일이 교회에도 많다. 평범한 일을 잘 감당하니까 모든걸 잘 감당하신다. 자꾸자꾸 올라간다. 늘 교회에서 들은말로 회사가서 써먹고 승진좀 하세요. 제자되실 줄 믿는다.
[기도제목]
아름
1. 일의 업무가 많은데 우선수위를 잘 정리하고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2. 제품 만드는 것에 있어서 공동체에 묻고 준비해나갈 수 있도록
3. 기도하면서 신교제&신결혼의 때를 잘 기다릴 수 있도록
4. 목장식구들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붙잡아주시고 평범한 일상을 잘 누릴 수 있도록
현주
1. 봄이 되서 조울증이 재발될 수 있는데 약먹고 마음안정하며 잘 버틸 수 있도록
2. 아빠와 오빠가 예수님믿고 새신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3. 엄마가 부목자로써 목장보고서 쓰는걸 힘들어하는데 지혜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주시길
4. 목장식구들 건강과 말씀 잘 보고 갈 수 있도록
5. 신교제, 신결혼 희망합니다
설희
1. 원래 일하는 근무지도 토요일도 근무하다보니 1주일에 주일 하루 쉬고있습니다. 그마저도 주말 14시간 일하는 새벽 편의점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물류센터에 새벽알바를 다녀왔는데 아직도 월에 갚을돈이 부족합니다. 6월말까지는 숨만쉬어도 부족해서 이것저것 가지고있는 물건들도 판매한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물질고난이 조속히 해결되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알바할 체력을 허락해주세요.
2. 물질고난으로 자괴감과 우울함으로 눈을뜨고 울면서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는데 아침에 수련회 부터 울지는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에 주차되어있던 제 차를 누가 밀어서 차 사고가 있었는데 종결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울한 마음을 지켜주세요.
3. 저희 언니가 다음달에 결혼하는데 준비하는 과정가운데 은혜와 진리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서로 순종하며 거룩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둘의 마음의 목적과 행위가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삶이 되도록 둘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지혜와 방향을 굳건히 지켜주세요.
4. 가족들과 목장식구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세요. 함께하지 못하고있는 은정자매님의 환경과 마음에 여건을 허락해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세요.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5. 신교제/신결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라가 없어지지 않게 하여주옵시고 목장식구들에게 정말 딱 맞는 짝을 시기에 맞게 허락해주세요. 평범함이 곧 비범함임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비범한 사람이되고 비범한 짝을 만나게 해주세요.
이번주 목장모임은 로쥬에서 이뤄졌고 목사님께서 귀한 시간 내어주시어 심방을 와주셨습니다. 맛있는 빵과 음료가 가득한 풍요로운 모임을 만들어주신 목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1분 1초를 지켜주시고 말씀만 붙들며 은혜가운데 살아가며 평범함이 비범함임을 기억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