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의 집 길]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가족 신화
열왕기하 8:25-29
김양재 목사님
[들어가며]
철학자 플라톤은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길에서 우리가 방황을 길게 하기 쉽습니다.
이사야 53장 2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자 제 갈 길을 가거늘.이라고 고백합니다.
저마다 잘살아 보겠다고 신중하게 열심히 그저 잘 설계하고 인생길을 따라가지만, 결국 사람은 악하잖아요.
그래서 결국 각각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제 길로 가서 멸망으로.
실제 주인공은 남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 왕인데, 그들을 다윗의 집이 아닌 아합의 집으로 말해요. 아합의 이름이 그들만큼 등장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주인공 아하시야에 대해서 아합의 집 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오늘은 우리가 절대 밟지 말아야 할 아합의 집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
[본문]
1. 불신결혼의 악을 떠나지 않습니다.
25-26절.
여호람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창자에 중병이 걸렸다고 했어요.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어요.
여호람 11년에 아하시야는 아버지 여호람을 도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1년 만에 여호람이 죽고, 단독 통치를 시작하죠.
그때가 이스라엘 요람 제 11년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유다의 아하시야는 22세로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여기서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격동시켜 여호람 아들들이 다 죽죠.
상상도 못 하던 왕이 되었는데, 그릇이 안 되니까 1년 만에 죽습니다.
앞서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결혼했다고 했죠.
그 이름이 나오는데, 아달랴입니다.
그의 어머니를 기록하는 이유는, 항상 어머니가 신앙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어서. 여호람을 바알 숭배로 이끈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어떻게 교육했겠습니까?
아달랴를 아합의 딸이라 하지 않고, 오므리의 손녀라고 합니다.
아합 가문을 전체 등장시킵니다.
이 가문이 총체적 문제임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므리에서 시작된 악이 아합의 때에 폭발했고, 그것이 딸 아달랴를 통해 유다 왕조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 여호람도, 아들 아하시야도, 유다의 왕이잖아요.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다윗의 후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역사에 등장할 때마다 무슨 명찰을 답니까?
다윗도 아니고, 솔로몬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라는 긴 명찰을 달고 있어요.
악의 전염성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 우리의 본성이 악해서, 선한 영향력은 너무나도 미약해요.
우리는 악하고 음란해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전염되는데,
선행은 아무리 가르쳐도 되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QT 시키고, 예배에 오게 하고, 듣게 하고 보게 하고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이렇게 하다가 흘러 떠내려갔어도 반드시 어렸을 때 들은 것들을 기억해서 돌아올 줄 믿습니다.
오므리 집안의 악이 왜 이렇게 유다 왕들을 잠식했나요?
27절.
지금 한 절에 아합의 집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아합의 집 사위가 되어서. 다윗의 후손인데 왜 아합의 집 사위가 되냐고요.
아합의 집 외손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서,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모인지 사촌 동생인지 아합의 집안 딸 중에 하나와 결혼했다는 거예요.
겹사돈을 넘어 겹불신결혼을 했어요.
하나님이 왜 불신결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까?
믿지 않은 배우자와 결혼하면 믿음을 지키기 너무나 어려워서.
일차적으로 그렇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불신결혼은 결혼할 목적을 거룩이 아닌 행복으로 두는 선택.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상급이라 여기지 않고,
내 소유, 명예, 성공, 만족, 쾌락을 인생의 상급으로 여기는 선택.
이 모두를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이에요.
이 땅의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아름답고 선해도, 성품이 착해도, 그건 선이 아니라는 거예요.
불신은 악이에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입니다.
아합의 집이 세상 성공과 부귀, 안녕과 평화를 보장해 주는 집이거든요. 경쟁자가 없는 1등.
그러니까 다른 집을 찾을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나를 더 높은 자리로 올려줄 것 같은 집안.
그래서 겹불신결혼을 마다하지 않아요. 게다가 아합의 북이스라엘이 요셉의 후손이잖아요.
사돈 관계가 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엣바알의 딸로 북이스라엘을 바알 섬기는 왕의 딸을 아내로 데려왔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세벨의 입장에서 보면, 친정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아들도 왕.
그 딸도, 아달랴도, 어머니를 닮아서, 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게다가 아들도 왕이에요.
그야말로 로얄 패밀리 아닙니까? 그 결과 무엇이에요?
모두 아합의 집 길을 따라갔어요.
아합의 불신, 그 세속적 가풍과 행복을 목적으로 한, 세상 방식을 따라갔습니다.
문제는 아합의 집 길은 너무나 넓고 곧은 탄탄대로.
도착지가 지옥이라는 게 안 보여요. 길이 너무나 화려하고, 꽃길이고 비단길이라서.
그래서 떠나기 어렵습니다.
불신결혼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경고를 시끄럽게 울리셔도, 빨강 신호등을 켜셔도,
아합의 집안사람이 되는 것이 좋아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가족이 찰떡같은 화목으로 똘똘 뭉쳤는데,
이세벨은 그 남편과 잘 살면서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던 어머니.
유다로 시집온 그 딸은, 또 남편과 하나가 되어 엘리야를 넘어서 예수 씨, 왕족을 다 죽이려고 했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집이 너무 부럽습니다.
(적용)
가. 불신결혼이 악이라는 것이 이해됩니까?
나.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다. 내가 너무 좋아서 떠나기 싫은 악은 무엇입니까?
2. 가족 신화를 지키려고 계속 싸웁니다.
28절.
여호람과 요람과 구분해줬으면 됐는데,
아합의 아들이라는 이름표를 빼지 않아요.
아합의 악을 잊지 말고 조심하라고, 그곳에 들어서지 말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아하시야에게 아합은 외할아버지, 요람은 외삼촌.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 길르앗 지방의 중심 성읍.
원래 북이스라엘 영토였지만, 아합의 부친, 오므리 왕 때 아람에게 빼앗긴 듯 해요.
그런데 아합이 아람을 물리치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 아람 왕은 오므리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람 왕이 위기를 면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약속을 안 지켜요.
절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고 군대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아합이 전사해요.
나가지 말라고 미가야 선지자가 얘기했습니다. 뺨을 때리면서.
아합이 전사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에요.
믿음이 하나도 없는 요람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걸 인정하겠습니까?
요람에게 한이 맺힌 곳. 후계자인 자신이 반드시 복수해서 수복해야 할 땅이에요.
그래서 군대를 일으키는데 혼자서 벅찬 거예요. 하사엘이 능력 있어서.
끈끈한 결혼 동맹으로 한 집안이 된 조카, 아하시야를 부릅니다.
아하시야에게도 길르앗 라못이 사연 있는 곳.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죽을 뻔했던 곳.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죽을 뻔했던 곳.
어렸을 적 일이지만 들어서 알 것.
자기 땅도 아닌데.
북이스라엘 땅인데.
결국 군대를 이끌고 처들어가고 싶은 땅은 아니지만, 군말 없이 외삼촌 요람과 함께 출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다윗의 집 보다는 아합의 집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커서.
아합의 집이 더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외가, 처가니까.
요람이 어려운 부탁했는데도 바로 달려갔어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오점은 있을 수 없다고.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바로 가족신화라는 거죠.
집집마다 신화.
말씀이 안 들리니까 원수를 갚아야 하는 거예요. 피해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천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이처럼 가족 신화에 사로잡혀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게 아합의 집 길이에요.
원수를 갚고, 한을 풀고 오명을 벗고 오점을 지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요.
여기에 누가 물이 들었습니까?
다윗의 후손, 아하시야가 이 악에 잔뜩 물들었어요.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올 때,
예후가 왕에게 나와 말했어요.
왕에게 선한 일도 있지만,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습니까?
진노하심이 마땅히 임하리다.
경고했어요.
이걸 심판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가, 외가이자 처가인 아합의 집이 너무나 좋아서.
처가의 말을 듣고, 아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하니까, 이제 그 길에서 딱붙어서 떠날 수가 없어.
자기 싸움도 아닌데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요.
힘과 시간을 낭비하여, 가족 신화, 효자, 열부 다 모여서 나라를 거덜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모양이든 가족 신화를 가지고 있어요.
잘 나가는 집안일수록 가족 신화가 아주 두꺼운 책이죠.
우리 가족은 성공해야 하고, 돈 잘 벌어야 하고, 사고도 치면 안 되고,
온갖 항목으로 신화를 씁니다. 달달 볶습니다.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것은 자식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가족 신화를 지키려고 열심히 싸운 결론은, 부상만 당하다.
아합의 집 길 끝에는 상처만 남아요.
하나님이 아합의 집 길을 위해 싸우는 싸움에는 절대로 승리를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식구들끼리 너무 좋은데 그것이 어떻게 바깥으로 나가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한계 상황을 보라고,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주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
(적용)
가. 우리 가족은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 가족 신화 때문에 끊임없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입니까?
다. 가족 신화로 가족들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결국 제자리 걸음으로 끝납니다.
29절.
싸움에서 부상 당하고 패하는 사건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QT 해야죠.
말씀을 펴고 이 사건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해석 받고,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하잖아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그러면 상처가 별이 되고 약재료가 되잖아요.
그런데 아합의 집 길에는 이런 회개의 유턴은 없어요.
오직 가족 신화와 자기 확신만 있어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 부상 당한 요람이 돌아온 곳은 어디에요.
이스르엘이에요. 여기가 어딥니까? 아합이 별궁을 짓고 제2의 수도로 삼은 곳.
굉장히 지형적으로 비옥한 교통의 요지.
그런데 이 좋은 곳에서 아합과 이세벨 부부가 한 짓이 뭐냐?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뺏었습니다.
아합의 집 탐욕과 교만이 폭발한 곳.
정해진 땅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
하나님이 가문별로 나눠주신 땅의 소유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이잖아요.
그런데 아합은 이미 하나님 위에 있어서, 사람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거예요.
가족 신화를 지키려고 싸움을 벌인 요람이 싸움을 져서 돌아온 곳이 이스르엘이에요.
결국 제자리걸음이에요.
구속사를 모르면 다 삼천포로 가는 거예요.
이스르엘에 가면 다 치유할 수 있다. 그렇게 외쳤을 거예요.
절대로 자신의 죄가 안 보여요.
자기 잘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패했는데 회개할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엘리사를 여러 번 만난 요람이에요.
게하시가 설명한 큰 일도 들었어요. 수넴 여인의 간증도 들었어요.
그런데 12년 동안 왕노릇을 했어요. 수많은 기적을 보여줬용.
근데 소용이 하나도 없어요.
기가 막히지 않아요?
왜요? 치료해줄 것 같은 이스르엘이 아직 있어서. 그러나 그 부상은 치료됩니까?
마지막에 치료되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병이 되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하시야도 요람과 똑같이 움직여요.
전쟁에서 졌으면 빨리 군사를 정비하고 나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런데 외삼촌 요람을 보기 위해, 자기도 이스르엘로 내려가는 거예요.
이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내려가는 길이에요.
다윗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아합의 집 길로 추락하는 선택이에요.
둘다 예후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여러분 이스르엘에 가서 나봇과 그 형편없는 토지를 빼앗은 게 뭔가? 대단한 나라가 있는데.
사소한 것에서 우리 목숨이 날아갑니다. 사소한 것에서 우리 인생의 전체적인 걸, 이룬 모든 걸 하루아침에 뺏길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반면교사 삼으라고 읽으라고 써주신 거예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심판하셨어요.
열왕기상 21장.
이 말씀을 어디서 주셨나요? 이스르엘에서 주셨어요.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직후에 말이죠.
이것을 요람이 몰랐을까요?
아하시야도 당연히 알았죠.
그런데 그 말씀을 믿지 않아요.
겉으로 화려해보입니다. 겉으로 자기가 제일 의로워요.
그러나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끝나는 길이에요. 그래서 르헤미야가 가장 처참한 불신결혼의 예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솔로몬이 처음에는 십일조, 안식일 신앙, 성전 짓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다가,
말할 수 없는 지혜와 돈을 주시고, 무역을 통해 세계 강국을 이루게 하시니까, 딱 달라졌어요.
여자에 미쳤어요.
여호와를 떠났어요.
하나님이 두 번이나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고 진노하시고 갖은 말씀으로 돌이키라고 하셔도,
솔로몬이 돈과 권력이 생기니까 아무 말씀도 안 들려요.
심지어 예루살렘 앞산에 이방 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어서 여자들에게 바쳤습니다.
솔로몬이 이러면서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잠언을 썼어요.
자기는 안 들으면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고 썼어요.
아들 르호보암에게 보여준 삶은 천 명의 여자를 바꿔가며 거느린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문제아가 안 나오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못볼 꼴을 보고 자란 사람이 르호보암입니다.
은쟁반의 옥구슬같은 기가막힌 말을 해도, 삶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국 나라를 못 지켰어요.
열두 지파를 잃어버렸어요.
남북이 갈라지고 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모든 원인이 올라가다 보면 솔로몬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솔로몬에게 다윗의 등불을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옳고 그름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이 구속사가 들려야 합니다.
이방 여인을 취한 것이 범죄 중에 범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적용)
가. 문제 자녀의 방황이 불신결혼의 결론인 것을 깨닫습니까?
나. 말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세상 성공의 가치관을 온몸으로 보여 주며 자녀의 불신결혼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면 다윗의 길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처럼 남긴 말입니다.
열왕기상 2장.
하나님의 말씀이 곧 길이에요. 십자가를 길로 놓는 순종을 말해요.
이것을 다윗의 길이라고만 하지 않고, 이 길을 내 길이라고 하세요.
열왕기상 3장.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에게도 하셨어요.
다윗의 길이 하나님 아버지의 길이에요.
그런데 다 듣지 않아요.
여로보암의 길, 아합의 집 길, 다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내 길을 가는 거예요.
인생은 내가 원하는 길로 가려다가 제자리걸음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말씀 듣고 지키는 길을 가면, 우리 인생을 제자리걸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 길을 길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 불신결혼을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레헤미야 13장.
레헤미야가 어떻게 불신결혼을 막았는지 봅시다.
성전을 짓고 이제 왕국에 갔더니,
당시에 불신결혼에 예외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25절.
레헤미야는 그 모든 귀인들, 모든 사람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머리털을 뽑았어요.
불신결혼을 막을 사람은 레헤미야 한 사람밖에 없는 거예요.
유다 귀인,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대제사장까지 원수와 혼인으로 동맹을 맺고,
레헤미야가 목숨 걸고 막고 있는 거예요.
불신결혼은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으로 주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가서 잘 살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죽고 나서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어서 막아야 되는 것.
돈이 더 좋으니까 십일조를 안 하죠.
돈이 생기니까 안식일을 또 안 지켜요.
당연히 불신결혼 하죠. 돈 많은 사람끼리 결혼하죠.
각각 사안은 달라도 영적으로 똑같은 죄인인 거예요.
적용)
가. 이스르엘처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치료해 줄 것 같은 곳은 어디입니까?
나. 그런 이스르엘이 없어서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다. 내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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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 예배 참석 인원 : 4명
Q1. 청년국 QT Festival 어땠나요?
A :
가장 좋은 길,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또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직장 환경 때문에 맡은 일이 안 끝나면 언제든지 못 갈 수 있어서 당일까지 참석이 불확실했다.
어떻게든 일을 다 끝내 보겠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수련회에 가서도 잠이 부족해서 내 힘으로 도저히 뭘 할 수가 없었다.
또 가진 것은 이 몸뚱이 하나라 궂은 일을 맡으면서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평생 춤 춰본 적이 없는 내가 무대에 서게 되니 더더욱 곤고한 마음으로 은혜만 구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자연스럽게 억울함과 생색이 전혀 올라오지 않게 해주셨다.
B :
둘째 날 오전에 결혼식을 잠시 다녀와서 피곤했던 터라 프로그램을 제대로 즐기기 못해 아쉽다.
하지만, 기도하는 시간들이 너무 은혜롭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
C :
어렸을 적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데, 기도하는 시간에 그 시절이 떠올라 통곡하며 눈물 바다가 되었다.
선택 강의가 좋긴 했지만, 진로에 관하여 궁금한 게 많았는데 신교제, 신결혼 주제밖에 없어서 아주 살짝 아쉬웠다.
D :
조원들이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마웠다. 개강하기 전에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는데 많이 좋아졌다.
특히 조원들과 솔직하게 나의 죄패(음주)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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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제목]
A
- 혼전임신으로 결혼하는 친구를 계속해서 설득하여, 결혼 전에 교회에 한 번 데리고 올 수 있또록
- 이번에 신교제 관하여 많은 깨달음을 주셨는데, 잘 정리해서 매일 배우자에 대한 기도할 수 있도록
- 청년국 큐페 스텝 피드백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B
- QT 잘 하면서 공동체에 잘 붙어가기를
- 친형 진로의 길이 열리고 인간 관계가 편해지기를
- 친동생이 조교 생활 마치고 쉬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지막 학년을 잘 마무리하면서 진로를 결정하기를
C
- 감전 사고로 인해 팔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데, 금방 낫고 회복할 수 있기를.
- 회사 생활을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힘들어도 무기력하지 않게 QT 할 수 있도록
- 아토피가 계속 심한테 나을 수 있도록
D
- 개강이 시작되더라도 걱정과 위축되는 마음을 묵상할 수 있도록
- 비교 의식과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 아무리 사이가 맞지 않는 친구들과 팀이 되더라도 친절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