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1. 이성훈 목사님 주일 설교
[나라면...을 넘어 주라면! 합시다]
욥기 5:1-27
성경은 누가 옳고 그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누가 틀렸다 하는 역사책도 아니고 도덕책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그 모든 인물들을 동원하여 들어라, 하시는 것. 우리는 이러한 인물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생각하며 화내서도 안 되고 내가 무시하는 사람을 왜 이렇게 띄워주느냐 할 일도 아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모습, 고난 당하는 내 모습, 해석이 안 돼서 죽고 싶어하는 모습, 전혀 공감 못하고 옳은 소리만 던지는 엘리바스 같은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묵상하고 생각하는 것이 큐티이다.
오늘 본문 5장은 4장부터 이어지는 엘리바스의 조언이 계속 된다. 엘리바스는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하나님은 승리하신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엘리바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싶은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의 특징은 정금, 승리자, 이기고 이기는 경험이 많은 사람, 고난은 없이 이 땅에서 잘 누리는 것 같은 금수저다. 욥의 세 친구들 중에서 제일 대사가 많은 사람, 장황하게 설명하는 설명충이 바로 이 엘리바스이다.
엘리바스의 조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라면만 외치며 작은 일 설명하다가 끝난다. 그래서 큰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람을 살리려면 우리가 이 나라면을 넘어서 이제 주라면, 하나님이라면 해야 한다.
나라면에서 멈추면 훈수로 끝나지만 주라면이 되어서 사람 살리는 간증이 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면 참 좋겠다. 그래서 오늘은 나라면...을 넘어서 주라면!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옳고 그름이 아닌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1-7절)
엘리바스의 말은 사실 부르짖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부르짖어도 들을 사람 없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로운 사람이 없으니. 미련한 자는 결국 멸망한다. 엘리바스가 진짜 하고싶은 말은, 그 미련한 자가 결국 너다. 그러니 억울하다고 힘들다고 하지 마라. 정금 같은 승리만 누렸던 엘리바스가 욥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엘리바스도 나도 내가 옳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한다. 내 말이 전부 정답이다. 내 말이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정답을 알아도 태도가 교만해서 상대방에게 빛을 못 주는 것. 설득을 못하고 은혜를 못 주는 것. 그래서 사실 미련한 자는 욥이 아니라 엘리바스인 것이다. 욥의 상황은 정말 특별한 상황,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 고난의 특별함은 고난의 크기에 있지 않다. 고난의 특별함은 그 고난이 구원을 위한 것일때 특별해진다. 나보다 훨씬 더 센 고난을 겪으신 분들이 살아난 이야기를 들으면 입이 다물어지고 나를 사로잡던 고난이 객관화되고 대상이 되어 말씀이 들리는 것. 결국 내가 내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되는 것. 이것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엘리바스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고 나만 특별해서 주변에 특별한게 하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밖에 할 게 없음. 칼빈은 욥의 세 친구를 돌팔이 의사에 비유한다. 좋은 약은 다 가지고 있는데, 옳은 말은 다 아는데, 그 질병이 얼마나 복잡한 질병인지 환자가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아내가 우울하다고 하는데 세로토닌 어쩌구~ 장황하게 썰을 풀어내면서 설명하다보면 아내가 사라져버린다.
엘리바스가 상징하는 내 모습. 힘들다고 외치는 아내에게 결국 내 자랑만, 내 지식만 늘어놓는 설명충이다. 듣는 사람 자리를 뜨게 하는 설명충을 벗어나 공감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Q. 내가 유달리 잘 보는 상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문제에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이것만큼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내가 100%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8-16절)
나라면 너처럼 안 하고 이렇게 할거야. 훈수두는 것. 근데 엘리바스의 훈수가 너무 다 옳은 말이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옳은 말, 좋은 약이 맞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잘 정리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나라면 이 한 마디에 모든 문제가 담겨있다. 결국 나의 지식, 나의 믿음, 나의 지혜라는 것이다. 엘리바스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틀린 것. 아무리 올바른 신앙을 가졌어도 그 말에서 주인공은 엘리바스 자신인 것. 성경이 내 자신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100프로 죄인이라는 것. 100프로 죄인임을 모르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실도 아는 것이 아니다. 진짜 큰 죄를 짓지 않고서는 내가 100프로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다. 목사님도 머리로는 알겠는데, 느껴지는게 잘 없다. 그것이 슬프다. 양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100프로 아닌 것 같고 10퍼센트 죄인 같은데, 성경에서 말하는 건 양적인 개념이 아니다. 질적으로 이해를 해야한다. 우리의 드러난 행위나 말이나 생각 가지고 벌점을 매겨서 죄인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 이래 타락한 우리의 존재 자체, 생각의 구조 자체, DNA 자체가 죄인이라는 것. 그것이 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죄인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아무리 올바른 삶을 살고 모범적으로 살고, 심지어 욥이라고 해도 그 스스로 존재의 힘으로는 자기 자신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낼 가능성이 0.0001%도 없다. 제로다. 0퍼센트다. 우리 스스로 일어날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100프로 죄인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나만 특별하기 때문에)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 것 좋아하지 않고 간섭하는 것, 훈수두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데 찾아가는 서비스까진 안한다. 누가 더 엘리바스일까, 엘리바스 원본을 넘어설 수 있을까 넘어서더라구요. 엘리바스는 뼛속 깊은 교만함을 말함으로서 드러내고 있다. 만천하에 드러나서 비판 받으니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나처럼 교양과 체면으로 똘똘 뭉쳐서 속으로는 온갖 생각하면서 겉으로 얘기하지 않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다. 교정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죄 가운데에서 그 dna 가지고 살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Q. 제 꾀에 넘어간 적이 있습니까? 내가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에게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또는, 참아야할 말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100% 옳으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17-27절)
정말로 드러나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 복이다. 징계를 잘 받으며 회개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살려주신다. 문제는 이 당부를 엘리바스가 자기 자신이 아닌 남에게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군다나 지금 고난 당하고 있는 나의 가족, 나의 지체에게 아무 생각 없이 던져버린다면 그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아름다운 소식이 될 수 없다. 위로는 커녕 마음의 문을 더 꽁꽁 닫게 만들 뿐이다. 엘리바스는 미래에 대해 듣기 좋게 장담한다. 이런 말이 욥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이미 10명의 자녀를 잃었고 무덤에 들어갈만도 못한 다 망한 삶이다. 욥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약올림이 될 뿐이다. 엘리바스가 하나님이 100프로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큰 일인 구원조차도 내 생각 안에서 판단하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 그렇게 단정짓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내가 바라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인생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이다. 엘리바스는 그 똑똑한 머리로 내가 원하는 방식,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바스가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잘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구원이라는 기복 신앙을 말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4장에서는 인과응보의 가치관, 5장에서는 기복신앙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100퍼센트 옳으시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인간의 지혜의 한계이다. 나라면을 넘어서 주라면이 되어야 한다. 주님만이 정답이시라고 고백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 문제, 이 고난 앞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해야 한다. 날마다 말씀으로 질문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답을 구해야 한다.
남의 문제는 너무 잘 보는데 내 자신의 문제는 너무 못본다.
Q. 오늘 내게 닥친 문제에 대해 나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 문제에 대해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은가요?
욥도 엘리바스도 빌닷도 소발도 누구나 다 소망 없는 인생이다. 100프로 죄인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어느 상황에서나 하나님 만나는 인생이 되면 된다.
<목장 기도제목>
가
1.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아멘! 치료 잘 받을 수 있도록
2. 회사 관련 지혜, 용기 주시도록
3. 신교제, 신결혼, 가족구원
나
1. 유튜브 보는거 자제하도록
2. 아빠와 여동생이 예배를 회복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3. 공황장애 증상 개선되도록
다
1. 큐티인 나눔부분 읽어보기
2. 이번주 적용질문 3가지 생각해보기
라
1. 공동체에서, 집에서 너무나 엘리바스 같았던 내 모습 보기
2. 100퍼센트 옳으신 하나님께 매일 구하고, 매일 만나기
3. 오빠가 다시 하나님 찾길
4. 우리 가족 영육간 건강, 구원
마
1. 학원 잘 알아보고 잘 운영하기
2. 엘리바스와 같이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이야기하기
3. 신교제. 신결혼. 가족구원
바
1. 가족을 잘 섬길 수 있게, 그치만 나 자신이 1순위가 되도록
사랑하는 우리 목장 식구들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같이 기도해주세요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