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주일설교
주라면
이성훈 목사님
욥기 5장 1절 - 27절
<김양재 담임목사님>
아무리 설명을 해도 팩트와 정확한 영상과 기사와 이런것들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영화가 나왔지만 아무도 협찬이 없어서 2억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거를 보면서 이런 지난번에 실수를 했어요 논 픽션 늙어서그렇습니다. 바로잡습니다. 그러니까 논픽션 리얼 다큐 가지고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울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예수믿은 과정을 다 겪었습니다. 조선의 왕족이기에 나라의 사랑이 내나라 자기가 왕이 될 사람이지만 100년전에 한 이야기가 땅에 떨어진것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보니까 감히 따라가지 못하지만 눈물이 나는거에요 여러분의 구속사가 들리는 사람이 은혜를 받을 것이고 구속사가 안들리는 사람은 팩트체크는 되는 거에요 자기 믿음을 점검해보세요
이런 자유 민주주의를 그거를 모두가 일제 36년을 살면서 그야말로 글을 아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심취했어요. 5명중 4명의 지도자는 사회주의에 심취했어요.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은 설명이 안됩니다. 그분이 어떤 것도 거짓을 할 수가 없는게 예수를 믿었고 전할려고 했기에 그러니까 오늘 4.19가 일어났을때 부통령이 당선되지 못할것 같으니 일을 벌였지만 아사도 성군이었다가 병이들었으니 의원을 찾았다고 했잖아요 행위로 판단하면 살아나고자하는 자가 누구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어도 믿음이 다르잖아요.
근본적인 것은 예수믿게 해준게 감사하고 그것을 알게된 이승만 대통령이니 정말 외로웠을것 같습니다.
우리는 평등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택한나라들이 가난하게 되고 우리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이제 내일 휴일하루 남았는데 다가서 보시고 눈물이 나면 진짜고 이거는 예수믿는데 수고는 했군 잘못알고 있었는데만 해도 좋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성훈 목사님 말씀 전하시겠습니다.
찬양합니다.(왕이신 나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나라면 외치다가 인생 망하지 않고 주라면 고백하고 살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여주시옵소서 아멘.
어려분 설 명절 살아난 이야기 잘 나누셨나요? 원치 않은 이야기 듣고 상처받은 사람도 있을것 같습니다. 우리의 래파토리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몸이 뚱뚱했어요 부페를 가면 12접시를 먹어치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량아 중에 우량아 였습니다.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르신 한분 중에서 이름도 안부르고 오~ 뚱뚱~!! 오 뚱뚱~!! 만날때마다 외쳐주시더라고요 친한 가족이었기에 앞에서는 웃고 넘어갔는데 뒤를 돌아서면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도모르게 그런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흥부편이었습니다. 흥부가 착해서 그렇지만 크면서 생각해보니 흥부같은 사람과 살면 모살것 같습니다. 착하긴 착한데 게으르고 무능하고 책임감 없고 놀부는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크면서 놀부가 났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라마 소설을 보는것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욥기도 여러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님도 나오시고 천사 사탄 욥의 아내 자녀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제 묵상했지만 대부분의 절반이상의 내용이 욥과 세친구들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무슨 스토리를 들을때 편을 듭니다. 편을 들면서 이야기 하기때문에 온전한 묵상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사 도덕책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으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사건들이 실제 인물 실제사건이라고 믿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것을 넘어서서 그 사건들이 상징이다.
태극기를 보면 태극기는 자체로 보면 그림이면 그것이 의미가 있는것은 우리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옵니다. 성경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인물들과 사건들을 사용하셔서 지금 나에게 말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상징할까요? 우리 자신입니다.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성격 본성을 상징하고 그 인류에 속해있는 내 자신을 상징합니다. 게하시 여호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내눈에는 한심에 보이는 사람을 올려 세울수가 있냐고 하면서 화를 냅니다. 묵상이 하나도 안되는 거시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인물을 통해서 내 모습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대표해서 보여주고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관심이 그 사람들을 다 등장시키셔서 우리에게 너 들으라고 저와 여러분 들으라고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알고 그것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상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고난당하는 모습 해석이 안되서 힘들어하는 모습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훈수두는 교만한 모습을 보면서 그 본문이 상징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여러각도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묵상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큐티입니다.
엘리바스는 이름의 뜻이 나의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나의 하나님은 승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바스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싶은 인물이 있습니다. 정금 승리 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엘리바스를 보니까 저는 힘쓰지 않아도 엘리바스가 이해가 되어서 뭐지 싶었습니다. 욥은 이해를 잘 못하겠지만 엘리바스가 막 떠드는데 대사가 많은 사람은 엘리바스 입니다. 설명충이 엘리바스이고 아무 고난 없이 금수저 처럼 산 사람이더라고요 내가 그런사람이라서 엘리바스가 이해가 잘되는 구나 그래서 화요일 설교 끝나고나서 엘리바스가 설교하는지 이성훈이 설교하는지 구분이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큰일을 설명하라 하셨는데 지난번에는 대머리가 올라왔잖아요 큰일을 설명하라 해서 설명충이 올라왔는데 아시는데로 금수저이기 때문에 큰일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이 알기 쉽게 설명하는 설명절로 생각하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리바스의 조언은 나라면 이라는 것입니다. 큰일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려면 나에게서 벗어나서 주라면 하나님이라면 해야하는데 우리말이 나라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훈수가 되지만 거기서 벗어나서 주라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옳고 그름이 아닌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욥은 지금 너무 괴로워서 죽겠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그런 부르짓음을 그만하라고 합니다. 왜그러냐 니편없다는 것입니다. 욥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부르짖은 존재가 아무도 없고 천사들도 그럴 수 없기에 너도 마찬가지다 억울하다 외쳐봐야 소용없다고 합니다.
미련한자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 없다는 것을 모른채 고난만 당하면 분노하고 시기하다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내용만 보자면 맞습니다. 엘리바스는 이런 미련한자는 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평하지 마라 라는 것입니다. 욥은 동의할수 없습니다. 설득이 하나도 안됩니다. 고난없이 누렸던 엘리바스가 고난받는 욥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자기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말 생각이 모든 상황에 적용될수 있다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교만처럼 큰 오류가 없습니다. 태도가 문제입니다.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고 사용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엘리바스가 당해본게 없어서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련하자는 옳은 훈수를 두는 엘리바스 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억울한것인지 하나님이 까메오로 등장해서 보여주십니다. 보통 고난이 아니라 자기 목숨 빼놓고는 잃어버리는 고난입니다. 억울한 사람이라도 욥 앞에서면 할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특별함은 고난의 크기에 있는게 아니라 구원에 있습니다. 특별한 고난은 구원을 위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특별한 고난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입니다.
욥은 이런 특별한 고난을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도 힘들어서 목장에 나왔는데 목장에서 나의 고난을 압도하는 살아나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 집니다. 내 고난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본 고난을 들은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죄가 보이고 그러면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이런 특별함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 제일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옳고 내 주변에는 멍청한 사람만 있을까 이럽니다. 엘리바스 뿐만 아니라 빌닷과 소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은 이 세친구가 돌팔이 의사같다고 합니다.
이 세친구의 대사는 우리에게 읽게하시는 주님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읽을때도 생각해야 합니다. 들을 필요 없는 사람은 욥입니다. 욥이 지금 그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세친구의 공격을 하나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생각하고 호소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다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더 그 말씀을 더 들을면서 질문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엘리바스 여러분 여러분이 아는 것이 제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자입니다. 모두가 옳고 그름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죽이는 결론이 아니라 모두 살리는 구원의 결론입니다. 제 아내는 일년 중에 겨울을 무서워합니다. 제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리를 뜨게 하는 설명을 멈추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언어를 써야겠다 쓰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내가 유달리 잘 보는 상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문제에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이것만큼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내가 100%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바스가 나라면 말이지 나때는 말이지 라고 합니다. 라떼 여러분들은 라떼를 마시면서 멈추어야 합니다. 라면을 먹을때마다 나라면 하면서 나의 교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너같이 하겠다 합니다.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이훈수가 내용이 뭐라고 반박할수 없습니다. 내일을 사람에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위탁하겠다고 합니다. 토를 달 수 없습니다.좋은 약이 맞습니다.
신학적으로 너무 올바른 진술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만 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이해하고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가요? 나라면 이 한마디에 다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이해도 나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내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정답이다 특별하다 결국 이 말입니다.
이 태도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무리 바른 신론을 가졌어도 거기에 나오는 신론을 통해서 찬송해야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랑일 뿐입니다. 성경이 우리자신에 대해알려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제일 중요한것 한가지는 무엇일까요? 구원받았다는것? 내가 잘될거? 사랑을 받아다는것? 그것도 맞습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 진짜로 느끼고 개닫고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백프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백프로 죄인인가? 이것을 문자적으로 들으시면 안됩니다. ㅎㅎ
우리가 양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하고 내가 똑같다는게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양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질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죄인이라고 말씀하시는것은 행위 생각이나 우리의 말이나 이런것들 드러나는 현상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신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백프로 죄로 오염된 것입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스스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백프로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와 판박이인 엘리바스의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제가 자녀교육에 대해 나라면 이렇게 가지고 있는 교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에 대해서는 분명히 가르쳐야 할것이 있습니다. 제가 내아버지라면 아무말 안하셨겠지 나라면 잔소리 하지 않고 잘해주셨지 라고 하면서 가족 우상 신화에 잡혀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필요한 잔소리와 훈육을 하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제 꾀에 넘어간 적이 있습니끼ㅏ? 내가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에게 오늘 나는 무슨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또는 참아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3.하나님이 100% 옳으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너무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징계받는 것이 복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복으로 회복시켜주실 줄 믿습니다. 이당부를 자기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욥에게 죄인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지만 고난당하고 있는 욥과 진정한 공동체인 우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말씀으로 깨달아서 스스로 해야할 고백입니다. 엘리바스의 입을 통해서 우리가 읽으면서 나의 고난을 해석하고 회개를 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축복이 아닐수 없습니다.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던저벼리면 아름다운 소식이 될수 없고 상처를 주어 문만 닫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가 미래에 대해서 장담을 합니다. 화목하게 살것이라고 평안함을 알것이라고 장수하게 될것이라고 희망찬 미래에 대해 장담하지만 이 말은 욥에게 무슨 위로가 됩니까? 무덤속에 있는것도 못한 처지입니다. 엘리바스가 듣게 좋은 말을 하지만 욥의 마음을 아아프게 하는 약올림입니다. 엘리바스가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생각 내 머리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안에서만 구원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땅에서는 밑동 잘린 인생이기에 날마다 날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공급받으면서 조금씩 살아내는 과정일 뿐입니다.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는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결국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배푸시는 구원이라는 것은 잘못되는 것입니다.
정금 같은 승리자 엘리바스가 자랑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가치관과 기복신앙의 가치관입니다.
인과응보의 사고와 기복신앙을 자기가 연구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 백프로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백프로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그 고백이 온전히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면을 넘어서 주라면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정답이라는 자존적 교만을 넘어서 주님이 정담이라는 것까지 가야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주라면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떻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어떻게 순종하는 것을 원하실까 THINK 해야합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나라면 이것을 넘어서 주라면의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오늘 내게 닥친 문제에 대해 나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 문제에 대해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고 하실 것 같은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라면..
옳고 그름이 아닌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백프로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100% 옳으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은 설날 명절로 목자형의 가족여행으로 인하여 부목자가 대신 목장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참석인원 : 김태규 / 주예성 / 신동우(새가족)
기도제목
김태규
1.여자친구와 신결혼을 부디 인도해주시고 반대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의 마음 또한 허물어주시고 설득해주시기를
2.동생의 군생활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3.자기개발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주예성
1.명절에 가족들이랑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기를
2.가족들이랑 잘 지낼 수 있기를
신동우(새가족)
1.무탈하게 지낼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