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4 고친이는 예수라 (요한복음 5:1~15) 정정환 목사님
모임인원: 소지은, 이은혜H, 고성원
모임장소: 휘문 근처 cafe 로쥬
인기얻었던 한류드라마 오징어게임, 최종 이긴자가 상금얻는 죽고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돈과 출세의 헛된 소망에 사로잡힌 자들
자기가 살기위해 상대를 죽이는 인간성의 실종을 느끼며 괴로워함 오늘날 우리사회의 축소판인듯하다.
자비를 말하지만 자비가 없는 무자비한 곳 행복추구 행복은 없는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공간, 성공하고싶어 몰려든 사람들, 우리들의 자화상인듯 하다.
오늘 살펴 볼 베데스다 연못의 풍경이기도하다. 아무도 관심없는 38년된 병자가 누워있고 그를 찾아와 고쳐주시는 예수님이 등장하신다.
이시간 나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은 어떤분이실까?
1. 나의 누운 것을 보시고 먼저 찾아오십니다.
1-3절)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유대인의 명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자비의 집' 이란 뜻이다. 이 연못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맨 처음 들어가는 병자의 병이 낫는다고 전해짐.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먼저 들어가기위해 치열한 경쟁의 장소
자비의 집이라고하는데 자비는 전혀 없고 오직 선착순의 논리만 지배하는무자비한 전쟁터였다. 미신과 요행을 바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기약없이 기다림, 여기에 오랜 질병으로 인생의 소망을 상실한 한 사람이 누워있다.
5절)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38년을 병으로 누워있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나.. 절망, 외로움, 아픔, 공허함 속에서 하루하루 누워있던 자
무력하고 희망을 상실한 자, 예수께서 이38년된 혈기많은 자에게 다가오심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이 38년된 병자를 보고계셨다. 그리고 그의 병이 오래된 것도 알고계셨다. 그리고 질문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한 질문을 왜 하시며 이 질문을 받은 병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 병자로하여금 회복되고픈 마음이 일어나도록 의도하신것이다. 아무런 소망,가망없는 병자가 구원받아야할 존재인것을 말씀하신것
내가 너의 구원자이다라는 첫시작이다.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받아서 쓰러져있는 나, 이 세상에서 하는일마다 번번히 실패하면서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린 나, 죄와 중독에 찌들릴대로 찌들어서 이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널브러져 있는 나... 38년된 병자를 보고계셨고 알고계셨던 예수님은 오늘 지금 이런나를 주목하고 계신다.
주님은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계신다. 이 병자의 절망과 깊은 외로움을 체휼해주신 주님은 오늘 내 마음을 체휼해주신다. 나의 외로움,절망,고독,슬픔,연민,수치심,죄책감,고통, 열등감 이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은 나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베데스다 연못만을 바라보고있는 나의 시선과 관심을 이제 예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고 내 안의 모든것들을 주님께 드러나게 하심으로써 이제 나 스스로를 직면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것을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치유의 시작, 구원의 시작인것이다. 너를 고쳐 줄 사람은 바로 나란다, 너의 구원자는 바로 나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신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이 나에게 찾아오신 사건이다.
그 사건은 주님께서 먼저 말걸어 오시고 나에게 질문하시는 사건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반응이 신앙의 시작이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질문에 답하기위해 Think 한다. 이것이 말씀묵상, 큐티이다. 내가 붙들고 온 인생의 이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Q.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 주저 앉아있는 자리, 널부러진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는 어떤 베데스다에서 나의 갈망과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까?
돈, 건강, 학벌, 행복, 스펙, 성공, 외모, 사람 등 어떤 베데스다 입니까?
2.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든몸을 가진 자의 절망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피해의식과 자기연민 세상에 대한 비관과 번번히 자신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사람에 대한 원망
육신의 병도 깊었지만 마음의 병, 영적 병도 깊고 중했을 것이다.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은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 하지 않으셨다. 일어나라고 하셨다. 병자가 연못으로 들어가도록 돕지 않으셨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일어나 라고 하는 명령은 예수님의 부활에도 쓰인 단어, 병자가 일어난다는 것은 그에게 부활의 사건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은 회복,생명,구원이다.
병자가 할일은 그 말씀그대로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이 병자처럼 내가 절망가운데 있을 때 피해의식으로 몸부림 칠때 낙심속에 있을 때깊은 죄악중에 있을때 헛된 소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오신다.'얘야, 내가 다 보고있었어, 내가 다 알고있어, 이제 일어나라.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말씀으로 나를 고치신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나를 구원해주시는 것. 이 말씀이 끝나면서 38년된 병자에게 어떤일이 일어났는가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예수님의 치유방법은 이 병자로 하여금 자비의 집이라고 하는 이 베데스다 연못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하는게 아니였다. 그 분 자체가 자비이기에 자비의 말씀으로 고쳐주신것
베데스다 연못물이 생명수가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이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살리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을 일으킨다. 말씀이 새 생명을 낳는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가 받아들일 때 내안에서 새로운 창조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이 말씀이 나를 치유하고 나를 구원한다. 이 말씀이 곤고한 우리의 삶에 육신으로 찾아오신 예수그리스도 이기때문이다.
내가 할일은 나에게 찾아오신 이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 이외는 없다. 그분의 긍휼과 사랑과 인애와 자비의 나의 모든 전제를 다 맡기고 의탁하는 것 외에는
없는것이다. 예수님이 이 병자를 고쳐주시는 방법은 그에게 어떤 힘을 주셔서 스스로 이 베데스다 연못으로 들어가게 하신것이 아니었다. 말씀으로 고쳐주셨다.
이게 은혜이고 자비이다. 베데스다 연못이 자비의 집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자비의 집입니다. 지금 내눈앞에 보이는 저것만 더 가지면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은데..
저곳에만 들어가면 내 인생이 좀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저사람만 만나면 내가 더 만족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 그것을 자비의 집 베데스다라고 아직도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 곁에 찾아오신 예수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자비의 집이다.
나를 오랫동안 주목하고 계셨고 나의 모든것을 알고계시고 나의 절망과 아픔과 외로움과 상처와 욕망,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모든것을 알고계신 주님이 바로 자비의 집이다.
(찬양가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 주저않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내 너를 도우리 (정정환 목사님의 눈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어나고 싶지만 도무지 혼자 일어날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저에게 주님이 이렇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정환아 내가 다 보고있었어. 내가 다 알고있어 이제 일어나라 내가 너를 도울거야. 내가 너를 고칠거야. 일어나 걸으렴. 일어나라.'
그렇게 저를 만나주셨다. 그 주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그 찬양집에 담긴 그 말씀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그 말씀으로 상한 마음과 감정을 만지시고 고쳐주셨다.군대로 복귀하셨을때 생긴 두가지 확신이 생겼는데 첫째는 황량하고 삭막한 내 인생의 베데스다에서도 예수님이 나를 보시고 알고계셨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바로 그분을만나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예수님을 만난 감격은 그 무엇과도 비할 것이 없었다. 나의 회복과 구원을 주님이 더 원하셨고 나보다 더 먼저 바라고 계셨다.
그리고 부대로 다시그돌아와 그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제가 만난예수님을 전하게 되었다. 영접하고 싶은 사람 10명이 손을 들었고 영접기도를 드림. 38년된 병자인 저를 일으키셨고 구원의 은혜를 그 지체들에게도 베풀어 주신것. 제대 후 예상치 못한 적성에 가장 잘 맞는 곳으로 인도해주셨다.
Q. 내 속에 있는 절망과 원망, 상처, 자기연민,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베데스다에 누워 무엇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문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3.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이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게된 날은 안식일,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유대인들이 듣게되었는데 그 유대인들의 반응은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은 뭔가를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옮기는 일을 포함하여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 종류의 일을 분류했다. 이 병자는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옮겼기때문에 율법을 범한 셈이다. 예수님도 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셨기때문에 율법을 범하신것으로 간주되었다. 생명보다 전통이 더 중요했다. 지독한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 상대방이 아프면 나도 그 아픔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 사랑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가 밥을 차려주는것이 사랑,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는데 엄마가 너는 허구헌날 배가고프냐 니 뱃속에는 거지가 들었냐 그렇게 야단을 친다면 그게 사랑이겠는가 딸이 아프다고하면 딸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는것이 사랑이다. 딸이 아프다고하는데 너는 맨날 그렇게 아프다고 징징거리냐한다면 이것은 사람이 아니겠죠
이 아픔을 체휼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
오늘 나오는 이 유대인들은 병자의 아픔에는 1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데 무슨 체휼이란게 있겠는가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인데 율법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자들이 정작 이 율법의 정신은 외면하고 있다. 병자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 예수님이 이 병을 안식일에 고쳐줬다는 이 자체에만 꽂혀져 있다.
이 병자가 38년된 병에서 회복되었다면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줘야하는데
12절)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병자에게 너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냐고 따지고 있다.
안식일에 병고쳐주는것은 이건 죄라고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너무 숨이 막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왜 이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예수님이 안식일 어긴것만 관심이 꽂혀있다. 알맹이에는 관심이 없고 껍데기에만 관심이 있다.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전통에만 관심이 있다.
옳고그름으로 판단질만 하는것, 자기기준으로 사람을 잡는것, 본질을 외면하면 일평행 비본질에 첨삭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 유대인들은 진정한 안식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모르고있다. 그러니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있다. 영혼구원에는 관심이없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지못한다.
종교적인 열심은 있지만 그 열심으로 안식일의 참 주인되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듭니다. 영적인 나병에 걸려서 자기문제의 이런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다보니 이들이야말로 정말 중증 환자들이다. 38년된 병자보다 더 심각한 병자인것. 가지고 있는 틀, 가지고 있는 잣대로 언제나 사람들을 재단하고 판단했다. 그러다보니 편한사람이 되지 못했다.
다른사람들이 눈치를보게 만들었다. 38년된 병자처럼 주님을 만나서 구원은 받았지만 이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질병이있으니 바로 그것은 자기애와 자기기만 위선과 탐욕이다. 나 편하자고 나만의 경계를 치는 그런 내적인 완고함이 있다. 한편으로는 좋은사람인것처럼 보이고싶어서 아닌척 있는척 위선을 떤다. 바로 이것이 자기기만이다.
내가 유대인이면서도 이 유대인인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정말 육적인 사람, 인본적인 사람의 전형이다.그러니 옆에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나님도 나를 쓰시기에 불편하시겠다. 주님의 일에 게하시처럼 걸림돌이 되고있지는 않은가 또 그런생각이 들면 자기연민에 빠지곤한다. 이런 저에게 예수님은 오늘 본문 14절말씀을 주신다.
14절) ...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이 고쳐주신 이 병자를 다시 만나서 해주신 말씀이다. 이 병자는 병고침을 받긴했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다. 지난주 설교 4명의 나병환자들처럼 아무런 수고도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여전히 회개의 삶을 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또다시 그를 찾아오신것이다.
게하시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은 오늘 이 본문에 38년된 이 병자도 포기하지않으셨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상실한 이 병자에게 너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남은 구원을 이루어가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가 은혜로 얻게 된 이 생명의 감사하면서 이제는 변화된 삶,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인생의 목적으로하는 삶을 살아가라 명하시는 것.너는 새사람을 덧입었으니 그 신분에 합당한 인생으로 살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38년된 병에서 고침받은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병때문에 만난 예수그리스도, 그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이 구원에 감사하고 그 구원을 받은 자로 오늘을 회개하면서 살아내는것이다. 그리고 나를 살리신 이 복음의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증거하고 전하는 증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쁨은 온 천하를 얻는 것 보다 더 크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 또한 이 기쁨을 알게되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사함이 넘쳤다.
이 땅에서 육적인 수치를 드러냄으로 영적수치를 가리워주시는 축복이있다. 정말 게하시같은 저를 위한 주님의 나팔소리로 깨달아졌다.
큐지컬의 주인공이 죄많고 찌질한 이 게하시라는 것이 충격이자 위로였다. 게하시같은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회개하는 인생으로 견인해주시기 위해서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사랑에 눈물이 났다. 저는 공사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되었다함이 없는 인생이기때문에 여전히 저는 공사중이다.지었다 싶은데 비가오면 또 줄줄새고 바람이 불면 또 여지없이 흔들린다. 잘 지어졌다 싶은데 태양이 또 작렬하게나면 허물어지는 인생이다. 그래서 여전히 아직도 공사중이다.
이런저에게 오늘 주님은 말씀해주신다. 너가 공사중이더라도 내가 너의 구원자잖아. 너가 나를 의지하고 이제는 더 심한것이 생기지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마렴.오늘 주님의 이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엄중한 명령으로 들리기도 한다. 내 삶을 끝까지 지켜주시겠다는 주님의 신실한 약속으로 들리기도 한다.
오늘 이 본문에 등장하는 38년된 병자, 유대인들도 모두 다 아픈사람들이다. 공사중인 사람들이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양쪽 모두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가망이 없는 인생들이다. 한쪽은 한없는 고통과 원망과 절망속에서 세상에서 자기를 비관하다가 끝날 인생, 또다른 한쪽은 끝없는 교만과 정죄속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비난하다가 망할인생
바로 저 자신도 이 둘처럼 그렇게 살다가 끝날 인생이었겠지만 우리 주님은 또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해주신다. 니가 구원 받았으니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자로 하나님의 자녀된 인생으로 살아가렴. 혹시나 지금도 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잘못된 믿음과 거짓된 희망에 사로잡혀 앉아있는지. 그 베데스다에서 이 깊은 갈망이 채워지고 세상소망과 욕심이 채워지고 그 고대하던 행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나, 좋은 학교 , 이름있는 직장에 취업하면 성공할 것 같고 더 많은 투자받아 사업하면 대박날거라는 그런소망.. 보기좋은 그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면 안식을 누릴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진 않은가... 아직도 그 베데스다를 떠나지 못한채 연못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면서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처럼 헛된 세상신화에 나를 던지고 있는가,,, 진짜 베데스다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나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모든 삶을 주목하고계셨고 나의 결핍과 부족과 아픔과 고독과 슬픔과 모든것을 알고계신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베데스다이다. 그 주님께서 나의 생명이자 나의 전부가 되신다. 그래서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한것이다. 바라기는 오늘도 내곁에 찾아오신 그 예수님의 말씀을듣고 그 절망의 자리, 헛된 소망의 자리, 아픔과 무기력의 자리,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 중독의 자리,그리고 나에게 허락하신 이 길을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Q.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또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할 죄,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제가 목보 쓰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아 겨우겨우 금토중에 올렸는데 이제는 월화중으로 목보를 써보겠다고fighting 넘치게 월요일날 오전에기도제목을 요청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제깍 주셨는데 이렇게 늦게 올려 넘넘죄송한 마음입니다. 여러모로공사중인 저를 보게됩니다...
이번주 예수님이 곁에오신 사건으로 해석하지 못하고주저앉아 있다가금요일 중보요청과 함께 기도 덕분에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중보의 힘을 다시한번 실감합니다. 목장식구들 넘넘 감사드립니다. 빚진마음 가득안고늦게나마 올려요...ㅠ
우리들의 짧은 근황:
첫주목장은 목자님께 추천받은 아포가토를 먹으며 오붓하게 나란히 앉아 깊은 나눔을 진행하였습니다^^
첫목장때 시골내려가시느라지난주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시게 된 노진수 형제님
첫 목장때 여행으로 지난주 몸이 좋지 않으신 관계로불참하시게 된조창민 형제님 사유 남겨주셔서 감사드리며
건강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려요...
박찬호 형제님도 곧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성원 자매님 첫주에 동생과 함께 한 해외여행을 안전하게 마치시고지난주 함께 나눔하게 되어 넘넘 반가웠습니다.
12월 보석상자때 같은조로 만났었는데 같은 목장으로 만나게되어 더욱 반가움이 컸어요~~^^
기도제목
고성원
1. 아빠의 구원
2. 신교제, 신결혼
3. 매일매일 말씀붙잡기
소지은
1. 수련회 준비 부족함 가운데 순종함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가득 채워주시길
2. 엄마 영육간의 건강과 사업장 운영에 도움의 손길, 지혜주시기를
3. 언니 가정의 회복과 형부의 구원을 위해/ 언니의 마음 만져주시고 평안주시기를
4. 신교제 신결혼의 소망함
(+ 첫주기도제목)
수련회 스텝으로 섬기게 되었는데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잘 섬길 수 있기를
사업장 운영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지혜롭게 잘 사용하고 운영할 수 있기를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 지켜주시고 예배 사모하는 마음 주시기를
언니가정의 회복과 형부의 구원을 위해
신교제, 신결혼 겉모습보다 그 안에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과 마음 주시기를
이은혜
1.내 삶의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주님 인도함 잘 받고 순종하도록
2.당장 눈에 보이는 잘됨과 안됨으로 판단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3.변하지 않는 말씀 붙들기를
(+첫주기도제목)
남은기간 업무 성실히 잘 마치고 이력서 준비 잘 하도록
시간엄수의 훈련이 되도록
되었다함이 없는 내모습 기도제목으로 내어놓고 도우심 구하기를, 나의 약함과 수치를 잘 드러내도록
돕는 배필로 준비되어지도록
조창민
1. 건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2. 예배사모하는 맘 주시기를
(+첫주기도제목)예배 사모하는 마음 주시고근무하면서 시력 나빠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