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4 고친 이는 예수라
요한복음 5:1-15 정정환 목사님(게하시 정)
몇 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한류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 게임에서 이기고 최종으로 남는 사람이 상금을 갖는 내용. 456억 원을 위해 456명이 서로 경쟁하며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돈과 출세를 위한 헛된 소망에 사로잡힌 참가자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임. 점점 인간성 실종되고 고통스러워함. 이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듯함.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행복이 없는 적자생존의 공간. 그럼에도 성공하고 싶어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화상. 베데스다 연못의 풍경이기도 함. 이 연못에는 어느 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누워있는 38년 병자가 있음.
이 시간 나를 고쳐주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나의 누운 것을 보시고 먼저 찾아오십니다. (1-3절)
유대인의 명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심. 여기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음. 자기의 집이라는 뜻. 수많은 병자들이 앉아있고 누워있음. 천사가 가끔 내려와 뭇을 움직이게 하는데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음. 물이 움직이면 서로 제일 먼저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장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나오면나머지 대부분의 병자들은 얼마나 허탈할까. 자비의 집이라 하지만 전혀 자비를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전쟁터. 미신과 요행의 근간, 잘못된 믿음으로 기약 없는 생활을 살고 있었고 소망을 잃은 사람이 누워있었음.
5절. 38년을 병으로 누워있는데 절망과 외로움과아픔과 공황 속에서 하루하루 숨만 쉬고 있었음. 목사님의 아버지는 16년 동안 중풍을 앓고 계셨음. 본문의 혈기 마른 사람. 긴 시간 동안 병을 앓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자식으로 바라보는데 마음이 아팠음. 오랜 시간 병은 사람을 무력하게 하고 희망을 잃게 만듦.
바로 그때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38년 된 병자에게 먼저 다가오심
6절. 예수님은 38년 된 이 병자를 보고 계셨음. 그의 병이 오래된 것도 알고계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심. 당연한 질문을 왜 하실까? 병자의 마음은 이 뻔한 질문을 왜 하고 계실까 했을 것. 그러나 예수님은 병자로 하여금 회복되고 싶은 마음을 유도하신 것. 병자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그래서 질문은 내가 너의 구원자라는 첫 시작. 우리 또한 이런 시간을 보낼 때가 있음. 오랜 시간 육신과 마음의 질병으로 누워있고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받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나.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나. 널브러져 있는 나. 38년 된 병자를 보고 계셨던 예수님은 오늘 이런 나를 주목하고 계심. 주님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고 계심. 병자의 절망과 외로움을 체휼하셨던 주님은 지금 나의 마음을 체휼하심. 나의 외로움과 절망, 연민, 수치, 죄책감, 아픔, 고독, 열등감 ... 모든 걸 아시는 주님은 나에게 오셔서 물으심.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날마다 베데스다 연못만 바라보고 있는 나, 연못 물이 움직이기만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을 예수님으로 돌이키라는 것. 나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시는 것. 암이 생겼다면 그 부위를 드러내는 것이 치료의 시작. 나의 상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치유와 구원의 시작. 너의 구원자는 바로 나란다. 그걸 깨닫게 하시는 것.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사건. 그 사건은 주님이 나에게 먼저 말 걸어오시는 사건이고 질문하는 사건. 그 질문에대한 나의 반응이 신앙의 시작. 주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띵크함. 이것이 바로 말씀묵상, 큐티.
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
(목사님 대학 학과가 맞지 않아 힘들었던 얘기)
-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 주저앉아있는 자리, 널브러진 자리는 어디입니까?
- 나는 어떤 베데스다에서 나의 갈망과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까?
- 돈, 건강, 학벌, 행복, 스펙, 성공, 외모, 사람 등 어떤 베데스다입니까?
나를 고치시는예수님은
2.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병자는 대답합니다.
7절. 그의 대답에는 병든 몸을 가진 현 상항에 대한 절망이 오롯이 묻어남. 피해의식도 있었을 것. 연못에 들어갈 수 없으니. 38년의 시간 동안 병을 앓아왔기 때문에 자기 연민과 세상에 대한 비관도 있었을 것. 영적인 병도 깊고 중했을 것. 이런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심.
8절. 예수님은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지 않고 일어나라고 하심. 연못으로 가도록 돕지 않으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심. 일어나라는 명령은 예수님의 부활에도 쓰인 단어. 따라서 병자에게 부활의 사건이기도 함. 예수님의 말씀엔 능력이 있고 회복 생명 구원임.
병자는 말씀 그대로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됨. 피해의식으로 몸부림칠 때, 낙심 중에 있을 때, 깊은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헛된 소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 말씀하심.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나를 고쳐주시고 구원해 주심.
9절.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병자로 하여금 자비의 집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 그분 자체가 자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으로 고쳐주심. 그분의 말씀이 생명수이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심. 말씀이 새로운 생명을 낳으심. 내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남. 우리가 날마다 읽고 듣는 이 말씀이 날 치유하고 구원함. 이 말씀이 곤고한 내 삶에 육신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 따라서 내가 할 일은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 순종하는 것 밖에 없음. 나의 존재를 맡기고 의탁하는 것 밖에 없음. 병자는 누추한 자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면 되는 것. 고쳐주신예수님을 간증하며 살면 됨. 스스로 연못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아닌 말씀으로 고쳐주심. 이것이 은혜이자 진정한 자비. 베데스다 연못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자비. 지금 내 앞에 있는 저것만 가지면 내 인생이 좋아질 것 같은데. 펴고 행복할 것 같은데. 저 사람만 만나면 안식을 누릴 것 같은데. 그것이 자비의 집이 아님. 예수 그리스도가 자비의 집임. 나의 절망과 아픔, 욕망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바로 자비의 집 베데스다임.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연히 참가한 집회가 끝나갈 무렵..
- 내 속에 있는 절망과 원망, 상처, 자기 연민,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 나는 베데스다에 누워 무엇을 보고 듣습니까? 사람들의 소문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3.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은 날은 안식일. 유대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10절. 유대인들은 무언가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포함해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를 분류함. 병자는 그중 하나를 위반했기에 율법을 범한 것으로 간주됨. 예수님 또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쳣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것..
이 유대인들은 생명보다 전통이 더 중요. 지독한 율법주의적 태도.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라는 말이 있음. 상대방이 아프면 나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 사랑.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가 밥 차려주는 게 사랑. 엄마가 너는 허구한 날 배고프냐 배속에 거지가 들었냐 하면 사랑이 아님.
엄마는 아들의 딸의 아픔을 체휼하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음. 병자의 아픔에는 1도 관심 없는 유대인. 체휼도 없음.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데 율법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이들이 정작 율법의 정신에는 외면하고 있음.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고쳤다는 것에 꽂혀 있음. 병자를 같이 기뻐하고 축하할 일인데.
12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누가 고쳤는지 따지고 잣대를 들이밀고 있음.예수님이 이 일을 왜 하셨는지에 관심 없고 안식일을 어긴 것에만 관심이 있음. 알맹이는 관심 없고 껍데기에만 있음. 생명은 관심 없고 전통에만 관심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옳고 그름으로 판단만 함. 자기 기준으로 판단질함. 본질을 외면하면 일평생 본질에 꽂혀 인생을 낭비함. 안식을 누리지 못함.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으니 사람을 살리지 못함. 종교적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영적 나병에 걸려 자기의 심각성을 모르니 이들이야말로 심각한 병자들. 중증 환자.
(목사님의 자기애 얘기)
목사님도 그랬음. 자신의 틀 잣대로 언제나 사람들을 판단하고 재단함. 그러다 보니 편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저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음. 38년 된 병자처럼 주님을 만나 구원받긴 했지만 자기 기만, 위선, 탐욕.. 내 마음 내 몸 편한 게 우선이다 보니 환경과 조건이 갖춰지지 못하면 온몸으로 불편함을 드러내거나 회피하곤 했음. 사역하다 치리 받기도 했음.하나님이 쓰시기에도 내가 얼마나 불편할까..
14절.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병자를 다시 만나서 하신 말씀. 병자는 병 고침 받았으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 지난주 4명의 나병환자처럼 아무런 수고도 노력도 없이 구원받았으나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있어 찾아오심. 게하시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은 38년 된 병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심.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상실한 병자에게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고 남은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말씀하심. 이제는 변화된 삶,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아가라 말씀하심. 너는 나로 인해 새사람을 덧입게 되었으니 새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하심. 고침 받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병 때문에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을 감사하고 오늘을 회개하며 살아내는 것.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을 증거하고 전하는 증인으로 나아가야 함.
목사님이 이 설교로 새벽 설교를 하셨음. 집사님의 부모님.
종의 기쁨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 게하시같은 나를 구원해주시고 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이렇게 전하게 하시는구나 감사.. 돌아보면 유대인처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았고 사역을 통해 높아지려 했던 목사님..
(목사님 영접기도)
이 땅에서 육적 수치를 드러냄으로 영적 수치를 가려주시는.... 은혜..
죄많고 지질한 게하시같은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인생으로 끝가지 참으시고 견인해 주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유대인이 병자들도 다 아픈 사람. 공사 중인 사람. 구원이 필요한 사람. 예수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가망 없는 인생. 한쪽은 원망 절망 속에서 한없이 자신을 비난하다 끝날 인생. 한쪽은 세상과 사람들을 비난하다 망할 인생.
네가 구원받았으니 합당한 인생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을 살아가렴.. 말씀하심.
나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모든 삶을 주목하고 계셨고 나의 결핍과 부족과 아픔을 다 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베네스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함. 절망의 자리 헛된 소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늘도 내 곁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믿고 나의 죄악된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랍니다. 내게 허락하신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길 바랍니다.
-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내가 또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할 죄,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기도제목]
A
- 큐페 스텝 섬기는데 생색 내려지길
- 큐페에서 은혜 충전하고 와서 일년 잘 보낼 수 있기를
- 기숙사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인데 말씀보고 잘 결정하기를
- 진로 인도해주시기를
- 신교제
B
- 직장 적응 잘 하고 정규전환 할 수 있도록
- 직장에서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애쓰지 않도록
- 남자친구 뇌하수체 혹 없어지도록
- 아빠 교회로 인도되시도록
- 언니 결혼 주례 문제 잘 화합되도록
C
- 직장 정규전환을 우상삼지 않고 기도로 구하며 갈 수 있도록
- 한 주도 생활예배 잘 드리기를
- 수스텝 은혜로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 아빠 구원
- 부모님 건강
-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