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4 주일설교 <고친 이는 예수라>
본문 요한복음 5:1-15
- 정정환 목사님
어젯밤 설교 준비를 마치고 기도를 하는데 왜 저에게 주일 설교를 맡기실까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담임 목사님께서 엘리사에 대한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 중 게하시도 나오는 것처럼 게하시 같은 제가 죄고백을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몇년 전 전세게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한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있었습니다. 게임에서 이기고 최종으로 남는 사람이 상금을 모두 갖는 내용이었습니다. 465억원을 위해 465명이 싸움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점점 인간성을 잊어가고 괴로워합니다. 딱 요즘 세상의 축소판 같아서 다들 더 공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적자생존인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본문의 베데스가 연못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를 찾아온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1. 나의 누운 것을 보시고 먼저 찾아오십니다.
(1-3절) 베데스다 라는 뜻은 자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연못에 가끔식 천사가 내려오는데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은 허탈했을 것입니다. 자비의 집이라고 하지만 무자비한 전쟁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잘못된 믿음으로 기약없는 시간만 보냈습니다.
(5절) 38개월도 아니고 38년을 누워있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제 아버지도 긴 시간 중풍으로 누워계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자식으로서 보는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처럼 오랜시간의 병은 희망조차 상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도 혈기가 많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십니다.
(6절) 에수님은 이 병자를 보고 계셨고 그의 병이 오래된 것을 알고 그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냐 묻습니다. 왜 뻔한 질문을 하실까 싶지만, 에수님은 이 병자로 하여금 회복의 마음을 다시 갖도록 하기 위해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아야 할 존재임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38년된 병자처럼 우리도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육신과 마음의 질병으로 누워있고, 관게에서 받은 상처로 쓰러져 일어지지 못하는 나, 죄와 중독에 찌들릴 때로 찌들려 널부러져 있는 나, 38년된 병자를 찾아오신 것처럼 이런 우리를 주목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병자의 절망과 외로움을 체휼하셨던 주님은 지금 나의 마음을 체훌해주고 계십니다. 나의 외로움과 연민과 수치와 죄책감, 열등감, 그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내게 오셔서 낫고자 하냐 물으십니다. 그저 헛된 것만 바라보던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직면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사건입니다. 나에게 말걸어오시는 사건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반응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think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 묵상이자 큐티입니다.
이에 답을 하면서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이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보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 목사님 나눔
#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 주저 앉아잇는 자리, 널부러진 자리는 어디입니까?
# 나는 어떤 베데스다에서 나의 갈망과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까?
# 돈, 건강, 학벌, 행복, 스펙, 성공, 외모, 사람 등 어떤 베데스다 입니까?
2.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7-8절) 예수님은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 말씀하시지 않고 일어나라 하십니다. 그가 연못으로 들어가도록 돕지 않으십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십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은 부활에도 쓰인 단어입니다. 이는 그에게 부활의 사건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고 이는 회복이자 생명이자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니 병자가 할 일은 이 말씀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절망하고 낙심 중에 있을 때 헛된 소망의 미련의 버리지 못할 때 우리에게 찾아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일어나라 하십니다.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하십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이 말씀의 끝으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9절) 예수님의 방법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가 자비이시기에 생명의 말씀으로 병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말씀이 새로운 생명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이 곤고한 내 삶에 육신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기 때문입니다. 병자는 자기의 누추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쳐준 예수님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스스로 연못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의 집이신 것입니다. 저것만 가지면 내 인생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내 인생의 안식을 누릴 것 같은데 하며 그게 베데스다 처럼 느껴지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비의 집이십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자비의 집 베데스다 입니다.
* 목사님 나눔
# 내 속에 있는 절망과 원망, 상처, 자기연민,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 나는 베데스다에 누워 무엇을 보고 듣거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문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3.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10절) 안식일에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에 문제가 됩니다. 생명보다 율법이 먼저인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자녀가 배가 고프다고 할 때 밥을 차려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배고프다는 자녀를 꾸짖는다면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딸이 아프다고 하면 그 딸을 데리고 병원을 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유대인들은 병자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체휼도 없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이웃사랑이나 율법의 정신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가 걸어가는 것, 병을 고쳐준 것 그 자체에만 꽂혀 있습니다. 38년된 병에서 회복되었다면 기뻐해야 할 일인데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너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냐 따집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죄라며 잣대를 들이대고, 오로지 안식일을 어긴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알맹이가 아닌 온통 껍데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생명이 아닌 전통에만 관심이 있으니 판단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질을 외면하면 일평생 비본질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진정한 안식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정말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병자인 것입니다.
* 목사님 나눔
편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눈치보게 만들었음.
영적인 질병이 있었음.(위선, 탐욕 등)
예수님께서 병 고친 이를 다시 만나십니다.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러 다시 오셨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상실한 병자에게 남은 구원을 이루어가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변화된 삶, 거룩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을 살아가라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분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침 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병 때문에 만난 예수님께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회개하며 살아가고 구원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공동체 나눔
죄많고 찌질한 게하시와 같은 나를 끝까지 견인하시고 품어주시는 공동체의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공사중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되었다함이 없는 인생이다보니 저는 여전히 공사중입니다. 다 지어진 것 같은데 비가 오면 줄줄 새고,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그러니 여전히 공사중입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도 찾아와 말씀해주십니다. 이제는 더 심한 것이 생가지 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엄중한 명령으로도 느껴집니다. 또 신실한 약속으로도 느껴집니다. 오늘 이 본문의 38년된 병자도 유대인들도 모두 아픈 사람들입니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제게 또 다시 찾아와 말슴해 주십니다. 구원 받은 자의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라 하십니다. 베데스다에서 내 인생의 깊은 갈망이 채워지고 고대하던 행복이 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내 눈에 보기 좋은 그 사람을 만나면 내가 안식과 만족을 누릴거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아직도 베데스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헛된 희망을 던지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진짜 베데스다는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 주님께서 나의 생명이자 전부가 되심을 믿습니다. 그러니 그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오늘도 내 곁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허락하신 길을 그분과 함께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내가 또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할 죄,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기도제목
사랑
1. 말씀보고 그대로 적용하는 교만하지 않은 한주를 보내길
지은
1. 수업 욕심 내지 않기
2. 목감기 언능 낫기를
3. 집도 성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찬희
1. 금주한다는 마음으로 절주하기
2. 영어학원 빠지지 않고 잘 다니기
3. 우선순위를 항상 하나님으로 두고 잘 묻자와 하면서 한주 살아내도록
혜명
1. 국어학원 알바 지혜롭게 잘 준비할 수 있길
2.현장실습 잘 준비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