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 내 힘을 믿고??!
본문: 열왕기하 6:1-7
설교: 김양재 목사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거주할 처소를 세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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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있어야 합니다.
1절: 처소가 좁다. 부흥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 죽은 가난한 과부와 남편과 통하지 않는 부자 수넴여인. 엘리사의 수제자 게하시는 분별을 못하고 스승의 지팡이로 권세를 휘두르고 스승을 팔아가며 돈을 번다. 평신도보다 수제자가 더 골치덩어리이다. 성도들을 인도해야 하는 사역자들이 경건을 이익의 제도로 쓰려 하니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모습. 게하시의 탐심을 엘리사가 나병으로 치리하니 공동체가 부흥한다. 치리하는 이 공동체는 믿을 만 하니 평신도 사역자 모두 치리를 한다. 양육, 말씀적용이 제대로 되니 부흥이 된다.
우리가 함께 거주하는 이곳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엘리사앞에 제자로 앉아 가르침 받는 신학교이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곳이다. 예수님도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셨다. 잘 가르쳐야 전파가 되고 치유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함께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배움의 기본, 양육의 시작. 듣기만 하는게 아니라 말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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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선생님이 승천하시기 전, 엘리사 선생님을 걱정하는 질문을 한다. 엘리사 선생님한테 대책이 있는지 걱정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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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또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으로 강을 건넌 직후에 2장에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라며 걱정에서 감탄의 외침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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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흉년에 굶다가 들호박국을 끓였는데 독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독이 있나이다! 라며 두려움의 외침의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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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절.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 좁으니까 요단강 근처에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는 제안의 말을 한다.
현실의 문제 앞에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감탄하던 제자들이 커서 이제는 제안을 한다. 부흥을 하니 추가로 건물세우자는 자랑스런 제안을 한다. 엘리사를 회사 사장급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충성해 아무말 못하면 양육은 실패한것이다. 악한 왕 여호람의 통치 아래 살 길 캄캄한 암흑속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만나게 하시고 제자가 늘게 해주신다. 하지만 승계가 이루어져도 같이 믿는다면서 엘리사 공동체는 사회적 소수였고 이스라엘에서 왕따였기에 생존이 고난인 공동체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한다. 경천동지할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게하시의 치리와 맞물려 거주하는 처소로는 학생들을 다 데리고 있지 못할 만큼 부흥이 일어난다. 요단강에 새로운 채플을 만들자 하는 것. 사람들이 살아났기에 부흥한다. 교회의 목적= 사람을 살리는 구원. 살아나는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성장하고 구원의 메세지가 풍성해지는 것, 양육이다. 우리가 말씀으로 양육받는 이곳이 거주할 곳을 세우게 된다.
[적용질문] 말씀으로 양육 받아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까? 내 교회를 사랑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야 한다.
2-4 절 전국적인 가뭄 때문에 그나마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요단에 가 처소를 세우자 한다. 엘리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은 제자들은 선생님이 없으면 갈 수 없다 하며 같이 가자 한다. 함께 하는 우리 공동체가되어 모두가 함께 목재를 구한다.
5절 철기시대 초기, 돌 도끼, 청동도끼, 쇠도끼가 귀한 시대에 쇠도끼가 날아가는건 흔하다. 잘 확인 해야 했었다. 도끼가 날아가며 다행이 사람을 치지 않고 요단강에 빠지지만 물이 좀 찬 요단강에서 도끼를 찾기엔 불가능 했다. 사역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노비가 되야하는 상황이다. 이 선지생도에게 도끼가 떨어진 사건은 인생이 떨어지는 사건이다. '이것만 있음 할 수 있어!' 내 힘을 신뢰하게 해주는 도끼를 떨어뜨린 것. 얼마나 열심히 휘둘렀으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한 것이면 하나님이 잘 되도록 책임져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사건이 오면 내 인생 망했다. 한다. 배우자와의 신뢰가 떨어지는 사건이 오면 이혼해야 한다. 한다. 도끼가 떨어진 건 인간의 종말을 상징. 한명의 실수가 전체를 좌우한다. 한명의 믿음이 전체를 살린다.
사람이 지은 것은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힘으로는 처소를 짓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 인것이다.
[적용질문] 내가 돈과 건강 관계 재능 자리 등 쇠도끼처럼 의지하고있는 사람(대상)은 누구(무엇)입니까? 그것이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 사건이 사랑으로 느껴집니까?
3. 사명의 십자가를 손 내밀어 잡으면 됩니다.
6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할수 있는 게 없는 상황임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엉뚱하게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쇠도끼가 떠오른다. 나무를 물에 던지려면 나무를 베어 던져야 하는 것인데 일상에서 십자가를 던지면 쓴 물도 달아지고, 가라앉은 도끼도 떠오른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나뭇가지는 무엇일까. 사명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결혼 지키는 비결인가 내 자신을 직면하게 되니 지키게 된다.
7절 떠오른 쇠도끼를 집는다. 꿈이야 생시야. 죄와 사망에 메인 옛 사람은 떨어뜨려 버리고 주님이 살려주신 새 사람은 들어올려야 한다.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말고 나를 살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 올리라는 것.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지라 하는 것이다. 들어올릴 수 없는 사명의 십자가를 맡기실 때 나는 도저히 못해요 하며 주저앉지 말고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라고 하신다. 내가 내 힘 믿고 교만하게 나대다가 떨어진 것. 내 눈앞에 떠오르면 상처 라며 도망가고 싶어하지만 도망가려 하는 것은 여전히 내 힘이 남아있는 것이다. 환경을 도피하고 싶어하는데 피하고자 하는 사명 보여주시며 들어올리라 하실 때 손을 내밀어 잡는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높이 들어올려주신다.
[적용질문] 주님이 내게 '집으라' 고 명령하시는 사명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피하고 있습니까, 손을 내밀어 잡고 있습니까?
A
적용: 일주일중 큐티영상 최소 한번이라도 보기.
기도: 한국 가기 3주 남았는데 별 탈 없이 막학기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B
적용: 목장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들 때마다 큐티/귀티 하면서 나에게 주신 후한선물임을 기억하기, 게임하는 시간 줄이기 (맥시멈 2시간)
기도: 풀타임 잡을 시작했는데 배우는 과정속에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명의 십자가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