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삼박자
본문: 민수기 30:1-16
설교: 장충만 목사님
목장참석: 고유미. 김정은. 유은정. 한지원
민수기는 한자어로 백성민의 가닥수 셀 수 자를 쓴다.
민족의 수요를 세는 책, 영어로는 넘버스라고 한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베미드바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베미드바르의 뜻은 숫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뜻이다. 바로 '광야에서'이다.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보냈던 추억을 기록하고 있다.
그 광야 생활 40년의 광야 생활을 기록한 건 아니고 출발 2년과 그리고 도착 직전의 2년 그러니까 광야 생활의 출발과 마지막 다시 말해, 우리가 광야 생활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의 노예 생활을 떠나서 이제 그들의 본격적인 광야 생활에 시작할 때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하나님께서 다 알려주시는 게 민수기고 그리고 그들이 광야 생활이 마치고 새로운 삶,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우리가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책이 민수기라는 것이다.
우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지혜를 하나 얻을 수 있다
내 인생의 광야의 길, 시작과 마지막은 민수기와 함께 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매 순간 광야 길과 같은 우리의 인생에서 내가 새로운 사건과 직면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할 때 민수기를 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어떻게 인도하시고 매일 무엇으로 먹이셨는지 우리는 민수기를 통하여 답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 되기를 소망한다.
민수기 30장은 서원과 서약에 관한 명령이다.
서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조건이 있다라는 것이다.
본문 말씀의 등장인물을 이렇게 등장인물을 분류해 보면 서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서원을 받는 하나님이 계신다.
서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허락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세 부류가 하나의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때 그 서원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은 매우 연약한 사람들의 서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3절 말씀 보면 어린 여자들의 서원, 6절 말씀을 보면 새 신부, 이제 갓 시집을 간 새신부의 서원, 그리고 9절 말씀을 보면 과부와 이혼당한 여자들의 서원,
사회적으로 힘없고 연약한 자들의 서원이 하나님께 이루어질 지기 위한 그런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민수기는 계수하는 책이다.
근데 여자들 여기서 서원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계수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누구도 이들의 이야기, 누구도 이들의 꿈, 누구도 이들의 소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평생 나의 소원과 원함에 대해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데 그 어린 여인들과 아내들과 과부들과 그 이혼당한 여자들 하나님께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연약하고 작은 자들의 귀에 그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간, 왜 이 자리에 부르셨을까?
우리도 누군가의 그 나보다 작고 나보다 연약한 자에 요청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약한 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서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반드시 그 가장, 남편 혹은 아버지 가장의 허락, 가장의 동의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1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어떠한 서원과 결심과 서약들도 그 아버지, 즉 그의 남편, 즉 그의 가장의 허락 여부에 따라서 그 서원이 이루어 가족들의 서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혹은 무효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원하는 자와 서원을 받으시는 하나님 이 둘을 연결하는 열쇠가 가장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크게 실수하신 것이다.
그 열쇠를 가장에게 주었다면 아무리 많은 서원을 해도 이루어질 게 몇 개 있겠습니까?
'여보, 이번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안 돼 안 돼 어디서 지금 교회 목장 모임 가는데 무슨 부흥회 같은 소리 안 돼.
'여보, 이번 겨울에 아웃리치'
안 돼 무슨 아웃리치 집도 집 비우고 어디 갈려고 그러냐고
'여보, 이 사람 불쌍하지 않아?'
무슨 넌 아직도 모르겠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해.
이런 남편을 모시고 우리가 무슨 신앙생활하며 하나님께 무슨 서원을 하냐는 거예요.
만약에 서원이 이루어지는 열쇠를 아내들에게 주었거나 여자들에게 주었다면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의 결단과 고백이 있을 때마다 족족들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근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 열쇠를 남자에게 그것도 가장에게 주셨냐는 거예요.
하나님 진짜 손해 보시는 것 같아 보인다.
하나님께서 뭔가 잘못 말씀하신 게 아닐까?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들의 서원을 통해서 가정을 세워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 있다.
여자들의 서원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믿음 없는 남편은 점점 소외되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서원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가정이 서고 가장이 서는 모습을 하나님께선 그리시는 것이다.
서원을 하는 여자들과 서원을 받으신 하나님 그 서원의 열쇠가 되는 남자, 즉 가장.
이 삼박자가 하나가 될 때에 서원은 이루어진다고 말씀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민수기 26장과 27장 두 번째 인구조사와 그리고 그 인구조사 숫자에 의해서 사람들의 기업을 분배한다.
그들의 새 땅을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받고 그리고 28장과 29장 그 새 땅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이 매년 지켜야 할 알람을 설정해 주신다.
매일 드리는 제사, 매주 드리는 제사, 매월 드리는 제사, 그 다음에 유월절, 무교절 그다음에 칠칠절 그다음에 나팔절 초막절 이러한 절기를 통해서 '야 너희 아무것도 없이 이끌어낸 이 하나님을 기억해라.' 마치 창세기 때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중앙의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떠오르게 했던 선악과를 세우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26장 27장, 계수하고 그 땅을 기업을 주시고 28장 29장, 그 예배와 제사를 통하여 은혜를 베풀어 준 하나님을 기억해라, 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갑자기 느닷없이 30장에, 여자들의 소원 뭡니까?
지금 이제 36장이면 광야 생활이 끝나는데 그럼 진짜 중요하고 꼭 가르쳐줘야 될 게 너무너무 많은데 갑자기 그 작고 연약한 여인들의 서원이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이 말씀을 또 우리 삶의 거울로 삼아 곱씹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딱 머릿속에 떠올랐던 한 장면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1장과 2장 아름다운 천지를 창조하시고 3장에,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다.
그 죄를 범한 인간의 첫 번째 나타난 현상은 가정이 파괴된다.
허물없이 지냈던 아내의 모습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가리구 그리고 그에게서 난 자식들이 형제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열 받는다고 형이 동생을 죽여 버린다.
그리고 4장에 넘어오면 갑자기 쌩뚱 맞게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소식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예배를 통하여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건 예배구나.
창세기 4장의 결론, 사장의 마지막 25절과 2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의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3,4장의 큰 패턴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깨어지고 부셔진 관계 속에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회복하셨고 그리고 가정의 회복을 이루셨다.
예배 회복은 가정에서 열매가 맺혀진다.
오늘도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을 향한 가족원들의 서원이 가장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그 삼박자의 회복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하나님, 가장, 가족, 이 삼박자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기 위해서
첫째, 가장은 가족을 책임져야 됩니다.
13절 말씀 다시 보면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그러니까 그 서원이 이루어질지 그것이 무효가 되는지의 열쇠는 가장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는 올 때마다 저의 새로운 죄패를 발견하고 있다.
처음에 제가 발견했던 죄패는 자기 의라는 죄패였다.
모태신앙이고 목사님 아들이고 태어났는데 목사님 아들이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부모님은 목사님이 되셨다.
그리고 신학생이고 유학까지 갔고 사역을 지금 19년째 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독교 풀옵션 아닙니까?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몰래 짓는다.
정말 능청스럽고 태연하게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한 척 너무 잘한다.
제가 띵크 양육 하면서 매주 제 얼굴에 있던 그런 철가면을 벗기는데 힘썼다..
그리고 얼마 전에 목욕탕 세미나 잠깐 왔다.
저를 소개하는데 저는 뭐 이런 간증 나누려고 했는데 옆에 계신 목사님들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 거예요
들으면서 '난 진짜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러면서 난 여태까지 잘하는 척 잘난 척 깨끗한 척 의로운 척 거룩한 척, 저를 척척목사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오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저는 다섯 식구를 지키는 가장으로서,
나의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서원이 단 한 개도 없는 아빠였음을 고백한다.
저는 저의 삶을 하나님을 위한 서원은 가득한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제가 가장으로서 저에게 맡겨주신 서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목사로서 하나님을 위한 서원이 가득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 잠도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자요, 몸을 다 부셔가면서 막 아파가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목사님 원하십니까?
아니면 집에 가서 아이들 졸업식도 가고, 입학식도 가고, 아우 지금 우리 집안일이 있어가지고 그런 목사님 원하십니까?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비전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저는 지난 19년 동안 사역했던 모든 경험들을 다 들먹이면서 장황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내가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한 나의 모든 모습을 털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여인의 남편이고 세 아이의 아빠로서 그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그 가족을 위한 서원이 있으면 무엇입니까? 라고 말하면
우리 가족에게, 단 한 개도 없다.
극심한 일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태어나서부터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제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유학 가기 전까지,
분명히 저는 아버지와 다른 집에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집에서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몇 번 없다.
항상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사역지로 떠나셨고요, 그리고 잠들면 돌아오셨고 항상 사역하느라고 평생에 단 한 번도 오롯이 우리 네 가족 지금 네 명이 다 목사가 되었다.
우리 네 가족이 네 가족만 오롯이 여행을 갔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의 가족 여행은 이런 거예요.
아버지가 부흥회를 가시면 그곳이 물에 좀 가깝다 그럼 우리가 가는 거죠.
그러면 가족이 왔으면 뭔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저희 아버지는 늘 호텔 방에 계시면서 '나는 말씀을 준비할 터이니 너희들끼리 다녀와라.' 벌써 기운 다 빠진다.
나름 저는 유치원도 졸업했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저의 입학식과 졸업식 단 한 번도 아버지께서 오신 적이 없다.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와의 대화는 1주일에 딱 한마디였다.
저는 나중에 절대로 아버지처럼 일 중독자가 되지 말아야지 나는 집안일도 좀 돕고 자녀들과 여행도 다니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자라나서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제가 평생 다짐했던 것처럼 저는 정말 집안일도 좀 돕고 자녀들과 여행도 다니고 대화도 하고 잘 놀아주는 일 중독자가 되었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사역 생각, 여행 가면서도 사역 생각, 맨날 전화하고 상담하고 사역 생각,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계속 사역 생각, 아이들과 놀아줄 때도 사역 생각, 항상 사역 생각하는 사역 중독자가 바로 저입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파트타임 사역을 할 때, 다녔던 학교 그러니까 저희 기숙사는 보스톤 지역 북부에 있었고 그리고 사역하는 곳은 뉴욕에 있었고 또 머물렀던 집은 뉴욕에서 한 30분 들어가면 롱아일랜드라는 곳에 살았다.
집과 저의 학교 기숙사의 거리는 편도 400키로였다.
파트타임 전도사가 400키로 편도, 일주일에 1000키로씩 운전을 한 것이다.
그렇게 3년 사역하면서 마일리지를 계산해 보니까 20만 키로 운전했다.
파트타임 전도사가 그렇게 열심히 사역을 했다.
잠도 안자고 그렇게 무리를 하다 보니까 몸에 이곳저곳에서 저에게 힘들다는 사인을 보냈던 것 같다.
목회 한 3년차 4년차인가? 뇌에 좀 이상이 왔던 것 같다.
지금 하는 말과 다음 할 말이 생각나서 쭉 지나가야 되는데 머리가 그냥 필름이 뚝뚝 끊겼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지?' 다음에 어떤 말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 것이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이상하다 싶어서 또 병원 신세를 지고
이렇게 자신을 죽어가면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서원과 충성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하나님께선 기뻐하실 거야. 난 주를 위해 서원한 충성자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예배 회복은 가정의 회복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들의 서원을 위해서 가장은 그것을 지키게도 하고 무효하게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책임이 가장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가족원들을 돌아보지 못한 채, 오직 하나님을 핑계로, 나의 성공과 나의 인정과 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모든 관심과 서원을 가족과 분리된 하나님, 반쪽짜리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걸 쏟아 부었던 죄인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저는 평생을 사역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평신도 가정에서 항상 가정이 우선이고 딸의 부탁이라면 과일까지 깎아서 친히 입 속에 넣어주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저의 와이프는 저에게 늘 외로움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저는 저의 가족이 저의 와이프와 저의 자식들이 사역에 걸림돌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더 열심히 사역을 해야 되나 늘 방해가 되는 아내, 그 자식들
더 많은 시간을 교회에, 하나님께 쏟아야 되는데 쏟지 못함을 아까워하면서 가정에서도 항상 사역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성도에 대한 그런 이야기만 계속 나누는 것이다.
내 아내의 마음속에 담겨진 정말 많은 수많은 이야기보따리들이 있었는데
저는 단 한 번도 그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그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준 적도 없고 좀 더 정직히 말하면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어떻게 꺼내야 되는지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생 한 번도 아빠가 엄마 마음속에 있는 그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결국 그 이야기보따리가 썩어서 문드러져 썩고 곪아서 터지고 말았다.
저와 와이프하고 이렇게 대화를 하는데, 너무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저희 와이프가 '제발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지금 난 뭐하고 있는 것 같냐고, 나 지금 네 이야기 듣고 있잖아.'
너무너무 참다못한 와이프가 앞에 있는 접시를 깨뜨렸어 빵 깨뜨렸다.
근데 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럴 때일수록 위기의 순간일수록 그런 사명자의 피가 들끓어 올랐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깨진 유리조각을 이렇게 주우면서
'이야 이제 갈 데까지 갔구나 너, 야 거기 있는 거 다 깨도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얼마나 답답했으면 접시를 던졌을까? 라는 현실이
저에게는 '이 여자는 정상이 아니구나'라고 해석이 되었다.
결국 우리 둘은 대화가 되지 않아서 우리 옆집에 계신 목사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저희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을 한다.
'목사님, 사모님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날개를 꺾고 오셨네요.'
참고로 저희 와이프는 미국에서 치과 의사이다.
14년 유학해서 치과 자격증을 따고 비자 문제로 잠깐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저를 만났고
결혼을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의사로서 14년 공부하고 의사 가운입고 1년도 채 실습하지 못하고 저희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다.
제가 어머니를 위해서 뭐 영주권 뭐 이런 거 다 포기하고,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다 포기하고 돌아왔다.
지난 11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와 개척교회 사모와 도피성 교회 그 힘든 사모의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건
'목사님, 사모님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실 때 자신의 날개 꺾고 오셨네요?
그리고 목사님은 이 가정의 가장이시네요? 그러면 사모님을 업고 다니셔야 됩니다.'
사실 그 말 와이프가 저한테 수십 수백 번 이야기했다.
'그래도 당신은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야 나도 힘들어. 내가 이거 좋아서 하는 거 같아?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거야. 사명이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저희 와이프는 울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 이 말을 들을 때면 '나 그 얘기 수십 번 들었다고. 다 안다고'
오늘 민수기 30장 말씀을 읽을 때까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가장이 되어 보니 곪아터진 아내가 있었고 아빠만 바라보는 세 명의 자녀들이 있더라구요.
그 가장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서원했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그러한 핑계로 가정을 위한 어떠한 서원이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사역만 집중했던 사역 중독자의 죄인이었다.
오늘 말씀은 이야기한다.
하나님과의 어떠한 서원과 결심과 서약이 있더라도
모든 서약은 그의 가장이 그것을 지키게 할 수도 있고 무효하게 할 수도 있다.
가장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모든 가족원들의 서원을 지키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가장이다.
가장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품어야 한다,
예배 회복을 통한 가정의 회복의 뜻, 하나님과 서원자와 그 가장 이 삼박자가 하나 될 때,
하나님을 향한 서원이 이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의 영적 가장으로서 그 가정을 세우기 위한,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러한 가정을 위한 서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
오늘 이 시간 말씀을 우리의 삶에 거울로 비추어 보길 원한다.
나는 나의 가정을 위해 무엇을 서원했나?
가정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과의 약속, 그 서원이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세워지길 소망한다.
적용)
-나는 나의 가정을 위해 무엇을 서원하십니까?
<기도제목>
♡고유미
1.관계에서 유독 대접받고자 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는데, 내가 먼저 생색과 혈기 없이 잘 대접하는 자가 되길
2.영육의 전쟁 중인데, 나의 구더기들이 잘 제하여질 수 있도록 거룩한 된장으로써의 역할 감당하는 내가 되어질 수 있길
3.목장식구들 영육간의 건강위해: 대면예배와 목장 참석이 어려운 그 한 사람 위해 주님이 찾아가 주시길
4.돕는 배필로 준비되어지기 위해 내가 가지치기해야 할 고정관념 처절히 직면하는 한 주 되길
♡유은정
1.아버지와 제 주위(가정,교회,직장,병원)의 모든 권위에 순종할수 있도록
2.목장식구들 주님 안에서 하나 되고 말씀의 은혜 누릴 수 있도록 만나주세요
3.십일조 훈련을 잘하므로 물질 관리의 참지혜주시고 성령의 절제 부어주세요
4.양교 숙제하며 기쁨이 넘치고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5.남동생과 어머니관계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인도해주세요
6.회사업무 능력과 실행력,아 이디어와 기름부어주세요
7.모든 중독과 통증 고쳐주세요
8.이번 주 부모님께 큐티책 드리고 홍성애 동료언니에게 큐티책과 간증 전할 수 있는 타이밍 지혜주세요
♡김정은
1.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서 쉽게 서원했던 지난날을 회개하는 시간 갖기
2.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예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같은 마음으로 알아보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3.어려운 업무로 불안한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잘 감당하도록 그리고 잘 감당한 그 일이 나에게 성숙의 과정과 열매 맺는 시간들이 되도록
4.전문성을 위해 시간, 물질 낭비하지 않고 내가 꼭 가야할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도록
5.오빠네 가정에 평안이 있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서 복음을 듣고 세상적인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주님 안에서 평안과 감사누리도록
6.큐티할 때 집중하고 깨달음이 있어 적용까지 나아가길
7.내가 있는 환경(교회.직장.가정)에서 지혜롭게 온유하게 역할 감당하며 영혼구원에 늘 힘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