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23-10-08 주일예배 고쳐주소서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미국 코넬 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실험을 했습니다. 직장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상사가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도록 했답니다. 한 그룹은 도움을 청하는게 부끄럽고 무능력해보이더라도 전혀 개의치 말라했고 다른 그룹은,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부끄럽더라도 부탁을 더 많이 했다고 하네요. 부탁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부끄러움입니다.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까봐 걱정합니다.결국 부탁도 마음이 겸손해야 잘 할 수 있네요? 부부간에도 겸손하게 항상 내가 더 모른다, 도와달라, 하는 마음으로 할때 무시하지 않습니다. 부부의 생산성을 위해서 물어보는 것은 별로입니다. 부부는 일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오늘 나아만이 자신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부탁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가는데, 나아만 같은 유명한 사람에겐 어려운 부탁인데 고쳐주소서 해야 고침받습니다. 오늘 말씀을토대로 고쳐주소서! 기도하며 모두 고침받길 기도해요.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람은 다윗왕이 점령해 오래간 힘을 못 쓰는 곳이었습니다. 유다 왕 아삽 때,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다급한 아사는 아람왕 벤하닷 1세에게 큰 재물과 함께 동맹을 맺었습니다. 유다왕 아삽은 선한 왕인데.. 형제끼리 불화는 이처럼 되는 일이 없게 합니다. 선한 왕이 아람에게 재물바쳤습니다. 그때부터 북이스라엘의 적국이 됩니다. 아람왕 벤하닷은 후에 사마리아를 포위하기까지 합니다. 여러차례 전쟁을 치루는데, 아람과의 전쟁중 아합은 전사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때 가장 강성할 때 - 상아궁 지을 때입니다. 지금의 시리아인 아람은, 지금 이스라엘보다 더 강했기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태입니다. 가장 공이 많은 장군이에요. 아람을 구했을 정도로 크고 존귀한 장관인 나아만입니다.
지난 주 레위기에 제사 5개를 기억했듯이, 나아만은 나만 안다고 나아만 이라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쳐줬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할 일이 없기 때문에 알려드려요~
위대한 승리는 하나님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을 1절에서 열왕기 기자는 밝힙니다.
나병도 하나님만이 낫게하실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1절의 시작과 끝이 그래서 있습니다. 최고의 명예를 얻은 나아만은, 그 속의 마지막 말은 나병환자입니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속 사람은 나병환자라는 사회적 편견과 저주의 인식을 달고 사는 처지였습니다. 이 병 하나의 무게가 찬란한 앞의 수식어보다 훨씬 무거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한 결과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쓰여진 것이 열왕기 상 하입니다. 왜 잡혀갔는지를 설명하는 책이죠?
하나님은 왕이고 이스라엘은 큰 용자인데 불치병 나병환자다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뒀어도 밑동 잘린 나무일 뿐입니다. 모든 인류는 그래서 구원받아야할 존재입니다. 너무 잘난척하니까 나아만에게 옮긴 것이죠. 질투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그렇게 앞에 찬란한 수식어를 붙입니다.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이 이끄는 아람군은 이스라엘을 처들어가, 노예로 쓸 사람들을 당연히 많이 확보해뒀겠죠. 그 중 총명해보이는 아이를 몸종으로 삼았습니다. 어린 소녀라고 계집종으로 쓰였는데, 나이가 적을 뿐만아니라 작고 보잘 것없다는 뜻이고 이름도 없습니다. 크고 존귀한 나아만과 정반대. 나아만은 왕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장군이나, 소녀는 그냥 몸종이고 수종들 뿐입니다. 나아만은 강자, 어린 소녀는 약자인데 누가 누굴 동정해야 할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어린소녀가 나아만을 불쌍히 여깁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아만의 빨래를 해주다가 나아만의 갑옷으로 철저히 감췄던 나병 진물을 봤겠죠.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나아만에게 수치가 있었던 것이죠. 그 고통이 오니 딱 생각나는 한 사람 - 여러분은 내 옆에 고통당할 때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나요? 바로 엘리사예요.
수넴여인의 아들 살린 일을 알았던 것 같아요. 나병은 당연히 고치겠죠. 만난 적이 없어도 한 성령은 믿어지는 게 있어요. 나를 위해 고쳐주시는 구속사가 안 믿어지는 사람은, 이런 게 믿어지지 않죠. 원수의 몸종으로 잡혀가도 구속사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네요.
이 소녀에게 나아만은 사실, 자기를 납치해온 원수예요. 어쩌면 부모가 자기 보는 앞에서 죽었을 처지일지 몰라요. 나병보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죠. 그러나 아무리 어리고 보잘 것 없어도 주님을 만난 사람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요. 성경의 어디 얘기도 원수사랑 얘기입니다. 결국 믿음의 결론은 내가 죄인 중 괴수임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사형수인데, 경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는 건 당연한거죠. 그는 예수를 모르고 믿음이 없잖아요?
사도 바울은 죽기전 죄인 중 괴수라고 했습니다. 거룩해져갈 수록 괴수입니다. 용서못할 사람이 없는거에요. 나의 죄를 이 세상에 윤리적 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맞고 너는 용서받으면 안돼! 합니다. 이 땅의 옳고그름으로 복수해야합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없어요.예수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할 때 전파되는 것이에요. 내가 사랑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치유는 나에게 일어나요. 주님과의 만남 역시 맹렬한 분노가 일어나죠. 니가 나를 알아? 이게 주제가입니다. 온 나라가 상대 진영을 죽여라합니다. 우리 나라의 주적은 북한인데, 나라 안 상대진영이 주적처럼 보입니다. 북도 우리의 주적이나 총구를 겨누면서도 사랑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렇다고 총구를 내려놓으면 안됩니다. 분별이 정말 어렵습니다.
*** 18살 소총도 쏠 줄 몰랐던 분인데 6/25 전쟁, 용문산 전투까지 겪었던 박집사님 나눔
20년이 되었는데도 나라에서 주인공으로 영상까지 찍었는데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전쟁은 이겨야 하지만 전쟁의 상잔은 너무 슬픕니다. 그때 총 안쏘고 가만히 있으면 공산화 됐겠죠. 총구는 겨누되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깨어있어야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몸종으로 사로잡힌 소녀가 위대한 장군을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살 길을 그렇게 알려줍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해줍니다. 감추고 싶어도 감추어지지 않는 나병때문에 나아만 보다 큰 사람에게 살 길을 알려주는 작고 보잘것없는 소녀. 아이러니합니다. 소녀 자체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복음으로 산다는 믿음. 심지어 원수에게도 차별없게 전해주는 믿음. 그 복음이 위대해서 그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크고 용사이나 감추고 싶은 나병은 무엇입니까?
나는 사형수입니까? 경범죄자 입니까?
죄 얘기하면 맹렬한 분노가 아직도 올라옵니까?
내 처지가 힘들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있게 소개하시겠어요?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복음을 들은 나아만은 선지자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아끼는 자녀들의 말도 우리가 얼마나 무시합니까? 당연하죠, 아이니까요. 하물며 아이인데 여종입니다. 믿겠습니까?
그것도 보통 말이 아닙니다. 그 당시 강대국 아람의 모든 의술 주술을 다 동원해도 고칠 수 없던 나병인데 그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적국에게 있다고합니다. 믿기도 힘들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네요? 이 말을 더군다나 왕같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집 여종이 말합니다. 복음이란 그런거에요.
집사때 얘기를 제가 할때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죠. 저 여집사가 신학도 안했으면서, 집에서 걸레질이나 한 주제에 누가 믿겠어요? 저는 성경에 나온 소녀는 다 저 같습니다.
나아만 부부는 이 말을 믿습니다. 참 믿음이 좋아보이죠? 그런데, 믿음이 있어서 믿겠어요. 생각해봅시다.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이방 아람인인데다 군대 장관입니다. 믿음을 논할 상황이 아닌데, 이 어린 소녀의 복음을 어떻게 믿겠어요? 사람은 높지 않습니다. 바로 나병이란 고난때문입니다. 나병때문에 안해본 것 이 없는 겸손한 상태다보니, 이제는 이 말도 지푸라기처럼 잡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마음으로 일하니까 상사의 말이 들립니다. 조금 배가 부르면 내가 이따위 돈 받겠다고 상사를 순종할까!? 합니다.
낮고 낮은 마음을 갖게 될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던 나아만 부부입니다. 이 땅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하였더라
친서를 써서, 내 신하 나아만을 보내니 고쳐주소서! 하며 벤하닷 2세는 아합과 끊임없이 싸웠던 사람입니다. 아합이 죽은 것도 아람과의 전쟁이었는데, 벤하닷 2세는 당연히 이스라엘로부터 2번 패배했으니 감정이 좋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아만을 살리려니까, 나아만을 이스라엘에 기꺼이보냅니다. 그냥 보내지도 않고 옷 10벌 은 십달란트, 금 육천개를 보냅니다. 오늘날 한 100억 정도 되는 예물을 싣고 갑니다. 아람왕은 또 믿음에서 이랬겠어요?
벤하닷 2세가 의리가 있어서 그랬겠어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람왕에겐 나아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를 위해서는 뭐든 해줘야 자기가 안전한거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자존심이 상하고 몸이 고장나고, 육이 무너지는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볼 수 없어요. 나는 부자다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난을 당해야,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내가 한계가 있다는 것, 내 생각과 의지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가난한 마음이 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그렇게 낮은 마음일 때 복음을 듣습니다.
나아만에게 나병이 있어서,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선지자를 찾아가려 했듯, 아람 왕도 나아만이 아까우니 낮은 마음으로 바리바리 원수국에 예물을 챙기는 것이에요.
아무 문제없이 편안하기만 바라는 마음. 내가 교회나오니 편하다. 나는 그게 목적인 사람.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눈이 밝아져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입니다. 이것만 먹으면 눈이 밝아지리라! 하나님처럼 되리라!
요즘 묵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입니다. 끈질기게 반역하는거에요.. 한 사람의 악이 250명의 지도자를 반역하는 마음으로 번지고,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공격하니 가족에게서 공격당하면, 가족들이 그림자를 보고 사는데 다 이상한 것 아니야? 하며 동조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전염을 시키나 모릅니다.
팔복이 축복인데, 가난하고 애통하고 화평케하고 청결케하고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복이있습니다. 편안하고 잘먹고 잘사는 게 복이 아니라고 하네요. 나는 교회만 다니면 고난이 없으리라 하는 생각은 고쳐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얘기가 듣기싫습니다. 생각도 못한 고난이 올 때, 어찌하여! 하며 화가 나고 슬퍼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 약먹을 시간이 되면 약을 먹어야 아픔이 유예됩니다. 어떤 고난도 영적인 약을 먹어야할 시간임을 알리는 알람인 줄 알아야합니다. 약을 안 먹으니까, 염증이 심해집니다. 그렇게 암을 주는 거죠.처음에 먹었으면 나을 것을, 안먹고 병을 키우니까 구약과 신약을 먹으라고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네요.
고난이 축복이라는 고백이 있으세요?
모든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분별합니까?
나아만이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병이 있어서임을 동의하세요?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여호람은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람왕 벤하닷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냅니다. 자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왕한테 고쳐달라그럽니다. 왕의 부하, 수하들에게 있으니 왕보고 고쳐달라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도 아는 일을 왕이 모를리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엘리사라고는 생각도 못합니다. 그냥 전쟁의 명분을 쌓는줄로만 압니다. 완전 시비거는 것처럼 느껴서 옷을 찢습니다. 학벌 스펙이 좋으면 뭐해요? 강대국의 왕인데.
왕이 생각하는 게 전혀 구속사를 모르니까 이렇게 오류가 생깁니다. 전쟁하자는 걸로 받아들이니 안해도 될 싸움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격동을 드러내는 옷을 찢는 행위를 합니다. 머리를 잡아뜯고, 난리부르스를 치는 모양새입니다.
나아만의 집에서 수종드는 어린 소녀와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듣고 깨달아야하는데, 왕이 되서 여호람은 꿈쩍도 안합니다. 이제는 정말 찾을 때가 되어보입니다.. 엘리사의 소문이 여호람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한 결과가 전쟁 명분 삼으려고 한다고만 합니다. 아는 게 없네요.
장성한 자의 분량에 이르러야 할 왕이, 자기 이익/이기심에서만 근거한 생각으로 의심하는 게 깊이 생각함의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감사드리고 미안하고 적용으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인데, 예민하고 의심만 하게됩니다. 나 위주로 생각함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여호람이 강성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습을 하다보니 온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제사장과 달리 왕은, 세습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망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호위호식하고 왕자로 자라다보니 완전 말아먹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들이 고르는 아내와 남편감은 이런 여호람같은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래도 스펙이 좋고 학벌이 좋겠죠.
이왕이면 좋겠으나, 고난을 겪어서 이 것을 가져야 빛이납니다. 그러기는 하늘의 별입니다. 어린 소녀 여종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로또입니다.
목사님은 물질에 대한 유혹은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유혹을 가지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집살이도 드러내지않고 고난으로 전 세계 고난받는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다는 것. 그것도 검증기간이 되어 인증받는다는 생각이 든다고합니다. 지금 목사님의 고난이 전세계 고난받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게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인증기간이라고 합니다. 나도 검증 되어야 한다 생각했는데, 우리가 검증되는 부분은 참아내고 부부로서 사는 부분, 보편적 틀에서 살아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일상을 살아내는 부분, 결혼식 장례식에서 굉장히 평범한 모습. 이게 검증받는 모델이된다고 합니다. 모태를 내려오다보면 믿음보다 당연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고난이 소소한 시집살이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좋은 게 그 소소한 시집살이가 검증이되어 가는 곳마다 열매가 있습니다. 아주 분석을 잘하셨어요 이런 분은 이스라엘 왕보다 훨 나으네요!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적국의 장관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요? 알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엘리사는 그런데, 주변 국이 하나님을 알아야한다고 하네요.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곳은 다 선교지라고 합니다. 불치병이 낫는 모습을 보여 믿게해야겠는데, 니가 무시하는 적국의 나아만이라도 낫게해서 하나님을 알리고자 할거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을 이렇게 왕을 야단치면서 가는 길이 얼마나 좁은길인가요.
밑동 잘린 우리는 다 죽을 인생임을 알고 하나님이 없는 나아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합니다. 이번에도 여호람은 엘리사를 생각지도 찾지도 않았는데, 엘리사는 옆에서 그 얘길 듣습니다. 항상 관심이 있습니다. 왕이 좋아서가 아니라, 절대적 영향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 위정자를 세워달라고 기도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파악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이래야합니다. 모든 목적은 구원이에요!
나라의 대통령,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직장 가정생활을 잘해야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가정도 예배도 없어요!
그런데 이런 여호람을 볼때마다 안타까워요. 이런 여호람에게 누가 말할까요? 그러나 부하가 정말 한트럭일텐데. 나아만한테도 100억을 쓸 정도인데. 이 나아만을 믿게한다는 것은 정말 별따기입니다. 나는 성경만 안다고 복음적이에요? 대법원장 아는 사람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6년동안 모르더라구요.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은 알텐데 나병을 고칠 사람이 있음을 알고왔으나 이제는 경험하게 될것이라는 약속을 합니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뭐라고? 이렇게 반응합니다. 아람왕만 제껴달라고 합니다. 믿음없는 여호람이 옷을 찢는 탄식에도, 귀를 기울여 구원을 약속하며 응답하십니다. 여호람을 이뻐할 이유는 없습니다. 벌써 심판으로 죽게해도 그만인 악한 왕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여호람의 탄식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으니까요. 구속사의 계보를 부정하고 떠난 북이스라엘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래도 약속의 땅안에 있습니다. 백성입니다. 바로 이 이유때문에 향방없는 여호람의 탄식을 들으시고 응답합니다. 목장을 나온 우리는 정말 기다리길 바랍니다. 그 탄식을 응답받기까지 기도해줘야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붙어있는게 중요합니다. 목장에서 떠나지만 않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탄식을 듣고 반응하는 날이 찾아옵니다. 행위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연약한 우리를 때마다 고쳐주십니다. 우리는 고쳐달라고 날마다 기도하면 됩니다. 불평과 외침에도 찬찬히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져도 붙어있기만 하세요.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께 묻는 결론이 되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하려다 옷을 찢으며 절망하는 일은?
나 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으세요?
공동체에서 탄식했을 뿐인데 응답받은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