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깨끗하게 되었더라
본문: 열왕기하 5:9-15
설교: 김양재 목사님
목장참석: 고유미, 김정은. 유은정. 한지원
1.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아만을 고치기 위해 어린 소녀가 안주인에게로, 안주인이 나아만에게로, 나아만이 아람 왕에게로, 아람왕이 이스라엘 왕에게로 그리고 엘리사로 이어지는 우연 같은 만남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것은 준비된 우연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장중 아래 있고 내 인생은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다.
여기에 내 생각이 들어갈 틈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무엇인가 이룬 사람들은 악한 내 생각이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믿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셔야 되는 것이다.
모든 사건들이 양육인 것이다.
나아만이 여호람 왕에게 갈 때는 은 10달란트와 금 6000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갔다.
도움을 청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를 찾아가는 나아만의 모습은 이스라엘 침략했던 점령군 사령관의 모습으로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선지자의 집 문 앞에 섰다.
나아만은 벌써 사람을 차별하고 하나님 자리에서 하나님을 자기 병이나 고쳐주는 분으로 오해하는 '내 생각'이 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된대요~ 하는 그 '내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나아만은 자기처럼 중요한 인물이 오면 엘리사가 맨발로 뛰어나와 환영해 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나아만은 그런데 말을 탄 채로 대문 앞에서 버티고 있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특별 대우하지 않았다.
여전한 방식으로 사자, 곧 비서를 보낸다.
나아만의 '내 생각'에는 문전박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 푸대접을 한다.
더 나아가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살이 희어져서 깨끗하리라고 예언한다.
나아만은 분노했으며 엘리사의 집 문 앞에서 몸을 돌이켰고 떠난다.
나아만의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내 생각'으로 모든 것에 분노를 가져온다.
어디에 분노했을까? 세 가지를 보겠다.
첫째로, 선지자 자신이 직접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분노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선지자의 처방도 너무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처방의 내용이 너무 찌질 했기 때문이다.
나아만이 요단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북쪽 갈릴리 호수부터 남쪽 사해에 이르기까지 흐르기 때문에 한 360킬로 정도로길다.
지형상 그 물은 흙이 많이 섞여서 색이 누렇다.
더러워 보일 뿐 아니라 신비하거나 영험할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반면, 나아만의 고향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흐르는 아바나와 바르발은 서쪽 산지에 흘러나오는 강이라서 맑고 깨끗하다.
전체 길이는 요단강보다 짧아도 훨씬 생명력이 있어 보이는 강이다.
나아만 입장에서는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단강에 들어가는 게 전부라면 굳이 내가 적국 깊숙한 곳까지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집 옆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이 요단과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좋기 때문이다.
요단에 들어가면 나을 것이라는 처방은 나아만에게는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찌질한 치료법이다.
하나님 자리에서 하는 내 생각은 이제 분노만 일으켜 떠나는 것이다.
나하만은 내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거만할 수밖에 없는 군대 장관이다.
이런 거만한 나하만에게 엘리사의 태도나 그가 전한 말씀은 속을 확 상하게 하는 공격일 뿐이다.
거만하면 들어야 할 말씀이 들리지가 않는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줄 말씀인데 이 말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고, 근데 태도가 어떻고, 내용이 어떻고, 이런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생각에 강하다는 것이다.
나아만이 나병이라는 고난이 있으니까 자기 집 여종이 전한 말을 들었다.
왕에게 부탁했다. 직접 이스라엘 왕에게 왔고 또 그가 알려주는 대로 엘리사의 집까지 왔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그가 낮아질 수 있는 내 생각의 한계이다.
엘리사가 자기를 맞는 태도를 보고 그가 내린 처방을 듣자 그만 참았던 화가 압력솥이 터지듯 한 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바로 이게 성품의 한계인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잘하고 잘하려고 해도 누르고 눌러도 눌리지 않는 내 생각의 거만함이 있는 것이다.
거만하면 잘난 사람들만 갖는 태도가 아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 Low 말고 Up, 낫다고 여기는 마음이 우린 다 종류별로 있다.
나아만의 거만함은 나만 잘났어라는 생각이다.
근데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한다.
빌립보 교회 개척 멤버는 자주 장사 루디아, 귀신 들렸던 여종, 감옥을 지키는 간수 이다.
빌립보는 그 로마의 인정을 받는 대단한 도시였지만 거기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전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빌립보 사회의 무시와 조롱을 받으며 복음을 지켜 교회를 세웠는데 결국 이 사람들끼리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인간은 누구든 본성적으로 내가 남보다 낫다고 하는 거만함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악한 내 생각은 어디서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나는 내가 이렇게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난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겸손하게 보이는데 그 생각 자체가 얼마나 교묘하게 자신을 남보다 높이려고 하는 존재인지를 증명해 주는 말이다.
'나는 거만 하지 않은데?' 이것이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최고의 금자탑이다.
'난 당신보다 거만하지 않은데?' 그 사람이 최고로 고등교만이다.
내 생각에 거만함을 인정해야 한다.
거만함은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커지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결코 깨끗하게 될 수 없다.
영적인 복의 가장 첫째가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아만은 충성심 있고 권세 있고, 아내 말 들을 줄 알고, 계집종의 말도 듣는 그야말로 최고의 남편감이고 그냥 상관감이고, 근데 바로 이 나아만의 내 생각의 자기 성품인 것이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 뱅그리온은 그 청년 리더 시몬 페레스를 눈여겨보고 이제 도와달라고 했고 20년 가까이 잡아두면서 의지를 했다.
뱅그리온에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시몬을 믿어요?'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첫째가 그 청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리고 그 청년은 다른 사람의 흉을 보지 않아, 또 청년은 내 방에 올 때마다 대부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찾아와요. 라고 함.
한 사람의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바로 이 시몬페레스 같은 사람을 말할 것 같다.
80만 명으로 1948년 시작된 이 나라에 이런 지도자를 이렇게 주셨다.
AD 70년에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유대인이 다 망했다.
그때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2000년 동안 나라를 못 찾으니까 유대인이 다 없어지고 80만 명,
얼마나 예루살렘에 오고 싶고 탈환하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모두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전부 다 거기가 성지하고 함.
모두 거기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돌 위에, 뭐가 모스크가 세워지고 .....
이제 사회주의로 이스라엘도 시작이 됐는데 이걸 자본주의로 바꾼 사람이 페레스이다.
일생 그래서 자본주의로 바꿔서 지금 전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
이스라엘이 일생을 테러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팔레스타인하고 이스라엘의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어서 1992년도에 노벨상까지 받았다.
그 한 사람의 아이디어 때문에 이스라엘이 건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분의 생각은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역사하셨을 테니까. 하나님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을 버리고, 남을 낫게 여길 때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고 흉보지 않게 된다.
내가 최고라는 고집을 버리니까 늘 백성을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피해의식으로 혹은 권세로 혹은 집착으로 혹은 옳고 그름으로 다들 내 생각을 부르짖기에 집이고 교회고 나라고 이렇게 죽자고 싸우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대단하다.
1000만밖에 안 되는 이들이 미국의 가장 부자들이 유대인이고 러시아의 가장 부자들이 유대인이다.
그러나 아직도 선민의식이 하늘에 닿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안 믿어서 지금 고난이 끝나질 않는다.
이스라엘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세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해석을 하고 가야 한다.
하바드 학생들이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하바드에 이사인 세계 최고의 부자는 유대인인데 그래서 이사를 사표 냈다.
지금 다 내 생각이 가득 차가지고 다 각자 자기가 옳은 대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큐티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찾고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은 내 생각을 바리는 훈련이다.
다들 문제가 안 풀리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하면서 QT하며 질문하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알게 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적용)
-내 생각으로 분노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의 자존심, 자부심, 특별대우 등등)
‣목장나눔: 낮은 자존감/ 아빠 생신 계획에 대한 분노/ 언니가 신앙생활하지 않는 것에 분노/ 회사, 가정에서 받는 분노
-더 나아가서 말씀 듣고 분노해서 예배나 목장의 자리를 박차고 떠났던 적은 있나요?
-나는 적어도 거만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나의 고등교만, 고등거만이 있을까요?
-가족, 직장, 목장을 향해 내게 이 정도는 해줘야 되는데?... 라며 거만하게 기대하는 내 생각은 무엇입니까?
2. 벌떼처럼 나아와 해석해 주는 지체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들과 병거들을 몰고 온 나아만 행렬은 분노해서 왔던 길로 돌아서 가고 있다.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힘과 시간을 들이면서 온 길인데 병을 고치지 못하고 지금 헛걸음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났다.
수행하던 종들도 너무 노하신 장군님 눈치 보느라 말도 못 하고 가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는 아니다. 생각이드는 것이었다.
종들 여럿이 함께 벌떼처럼 장군에게 나온다.
여기서 나아오다 는 말 나가시는 가까이 가다는 뜻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로 나아가는 걸 말한다.
기분이 많이 안 좋은 장군님을 잘 설득하려 기분이 더 상하시지 않기를 바라면서 꼭 들으셔야 하는 말씀을 올리려고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생각을 많이 하고 나아가는 태도이다.
종들은 내 아버지여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주인을 향해 가장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 나아만을 설득한다. 공손하게 그러나 벌떼처럼 설득을 했다.
구원을 위한 이런 태도가 너무 중요하다.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처방하는 방식과 내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다.
마음이 높아서 그 말씀이 들리지 않고 튕겨져 나간다.
나아만이 내 생각으로 귀가 막혀서 듣지 못하는 말씀을 그의 종들은 들었다.
종들은 이스라엘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주인의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 비천한 환경에 있는 종들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낮은 환경에 있어 마음이 상하고 낮았기 때문에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순종한다.
평소 당한 게 많기에 분노하는 주인도 너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요단강에 들어가기도 너무 쉬워 벌떼같이 나와서 외치는 것이다.
말씀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요. 화를 내실 일이 아니라고요.
이거 하면 절대로 손해나는 일이 아니에요. 눈 딱 감고 말씀대로 한번 해보세요.
이 어려운 선지자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해석해서 외친다.
이것이 우리들교회 목장이 하는 일이다.
벌떼처럼 나와서 해석해 주는 지체가 있을 때 말씀대로 들어가 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순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깨끗해지게 되고 거룩해지고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겉으로 거만해 보여도 속으로는 살 수가 없이 힘들고 아무리 강해 보여도 속은 다 연약하다.
벌떼처럼 나와서 말씀을 해석해 주는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이혼도 막아지고 자살도 막아지는 것을 우리들 공동체를 통해서 열매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다 연약하지만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불러주신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벌떼공동체가 가장 강한 공동체인 줄 믿는다.
적용)
-말을 잘 듣는 편입니까? 일단 아니 그게 아니고! 부터 하는 편이에요?
‣목장나눔: 언니에게 너나 잘해! 아니!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 가족에게는 아니라고 하는데 직장에서는 순종을 잘하는 상황 나눔/ 사람을 차별하며 달라지는 태도 나눔.
-벌떼처럼 나아와 외치는 지체들의 말을 들었더니 어느덧 깨끗함을 얻은 경험이 있습니까?
-공동체가 맹신주의라고 생각이 됩니까?
-지체들과 함께 나아가 공감해주고 해석해 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못 이기는 척하고 아람으로 가던 발걸음을 유턴해서 요단강 쪽으로 내려간다.
내 생각으로 할 때는 분노했는데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니 내려가게 된다.
우리는 뭐든지 인정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실제로 실천하기는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처음 몇 번은 몸을 씻을 수도 있다.
한두 번 했을 때 자기 몸에 어떤 변화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순종할 것인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말에 대한 진실성에 의심을 품고 다 하던 일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강에 들어가서 고쳐준다면 그게 주술과 다름없다.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제안과 편지와 대화가 오고 갔지만 실제 치료는 너무 간단하게 끝마쳐졌다.
요단강 속에 물속에 자신을 완전히 잠글 정도로 내려갈 뿐 아니라 7번 반복했다.
아울러 성경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주로 죽음을 상징한다.
죽어지는 이 순종은 십자가의 겸손을 의미하고 회개를 의미하고 그것이 이제 깨끗해지는 길이다.
물속에 몸을 전부 집어넣는다는 건 타발 동사인데 엘리사가 10절에 명령할 때는 라하츠 동사를 썼다.
타발은 라하츠보다 더 철저하게 몸을 씻었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말한 거보다 더 훨씬 진실 되게 씻었다는 것이다.
몸을 잠그다란 의미의 타발은 성경에 16번밖에 사용되지 않는 단어인데 주로 제사의 의식이나 정결의식을 행할 때 피나, 물에 담그는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깨끗하다란 의미를 지닌 타하르의 미완료 형이 결합된 형태가 14절인데 해석을 하면
나병에 걸린 나아만의 흉측한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된 일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요단강에 7번 몸을 잠근 직후에 바로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여리고에서도 13바퀴 지날 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무너지는 거는 단번에 일어났다.
타하르 동사는 병의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레위기 14장 문맥에서 보면 타하르는 단지 이제 깨끗하다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나아만은 진심으로 회개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나아만을 육적으로 치료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결과 그 살이 어린아이처럼 되었다는 것은 나아만도 2절에 어린 소녀가 가졌던 믿음을 같이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복을 체험한 후에 엘리사에게 돌아온다.
15절에 돌아옴을 의미하는 이 슈브 동사는 거의 영적인 회심을 수반하는 특징을 가졌다.
나아만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아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치료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 능력을 갖고 있다.
결국 깨끗한 자는 살아난 자이고 살아난 자는 겸손한 자이고 겸손한 자는 남을 낫게 여기는 자, 이것이 깨끗한 자이다.
내가 고침 받아서 남을 낫게 여겨야 되는 것이고 살려야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 고침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병 낫기가 목적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이 목적입니까?
‣목장나눔: 동생 병 낫기가 목표였는데 동생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곱 번 몸 담그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됨./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알고 있지만 아직 병 낫기에 머물러 있다는 나눔/ 병 낫기와 하나님의 백성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병 낫기만을 기도했던 모습이 떠올랐음.
7번 물에 잠기는 죽음에 이르는 순종은 세상에서도 주인이나 주인의식을 가지면 하게 된다.
예수 믿는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정권대사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순종을 해야 한다.
광해군 때문에 반정을 일으킨 인조 왕하고 광해군을 비교를 하면 광해군은 그 모든 실정을 뛰어넘는 실적이 있었다고 한다.
개혁을 일으킨 인조 때는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이제 거덜이 났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지경에서 계속 전쟁이 나고 인조가 도망을 가니까 백성들이 도망가지 말라고 배를 숨겼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없는 지경에서 인조가 조선왕조에서 전무후무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스스로를 낮추고 나의 죄를 운운하면서 백성들에게 머리를 숙인 왕은 없었다.
그 전에 있었던 선조 때 임진왜란 때도 선조가 도망가면서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에서 쓰는 사과의 언어를 썼다.
목장에서 사과하고 집에서 사과를 하면 자손 대대로 남겨질 줄 믿자.
<기도제목>
♡고유미
1.내 생각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작품임을 망각하고 매일을 살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2.함께 하는 목장식구들 영육간의 평안 위해
3.요단강에 일곱 번씩이나 내 수치를 드러내고 순종(공감, 위로, 리액션, 표정 등)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한 주 되길
4.거룩한 가정을 위한 겸손한 배필로 준비되어지기 위해 가지치기해야할 내 안에 치우친 편견과 기준들 살펴보는 한 주 되길
♡유은정
1.내 생각과 고정관념 편견 버리고 주님과 공동체에 잘 묻고 나아가길
2.목장식구들 주님 안에서 하나 되고 말씀의 은혜 누릴 수 있도록 만나주세요
3.십일조 훈련을 잘하므로 물질 관리의 참지혜주시고 성령의 절제 부어주세요
4.양교 숙제하며 기쁨이 넘치고 주님 만나주시길
5.아버지우울증 무기력증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부모님화평/동생부부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주세요
6.회사업무 능력과 실행력, 아이디어와 기름부어주세요
7.모든 중독과 통증 고쳐주세요
♡한지원
1.부모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기를
2.매일 큐티설교 들을 수 있도록
3.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기를
4.직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김정은
1.내 생각으로 가득차서 힘들어하지 말고 거만한 행동, 말 하지 않기
2.어려운 업무로 불안한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잘 감당하도록 그리고 잘 감당한 그 일이 나에게 성숙의 과정과 열매 맺는 시간들이 되도록
3.전문성을 위해 시간, 물질 낭비하지 않고 내가 꼭 가야할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도록
4.진로(독립.결혼.직장) 선하게 인도함 받길
5.오빠네 가정에 평안이 있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서 복음을 듣고 세상적인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님 육적.영적 건강하시도록
6.큐티할 때 집중하고 깨달음이 있어 적용까지 나아가길
7.내가 있는 환경(교회.직장.가정)에서 지혜롭게 온유하게 역할 감당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