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주소서
열왕기하5:1-8
김양재 목사님
1. 첫째,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한다. (1-3절)
아람은 다윗 왕이 점령한 뒤 오랫동안 힘을 쓰지 못했는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뒤 유다 왕 아사왕 때 이스라엘 왕 바아사 유다를 공격했다. 그러니까 다급한 아사는 아람왕 벤하닷 1세에게 큰 재물을 바치고 동맹을 맺었다. 그때부터 아람이 북이스라엘의 적국이 된다. 그래서 아합왕 때는 아람 왕 벤하닷 2세가 침략하여서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기까지 하는데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굉장히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아합은 결국 그 아람과의 전쟁 중에 전사를 한다. 이때가 이스라엘은 그 오므리 왕조 때로 상아궁 짓고 가장 강성할 때였다. 근데 지금의 그 시리아인 아람은 그 이스라엘군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이건 조금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근데 나아만는 바로 이 벤하닷 2세 때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람이나 나아만 자신은 몰랐지만 그 아람이 이긴 것은 사실 하나님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을 지금 1절에서 열왕기 기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말은 그러니까 나병도 하나님만이 낫게 하실 거라는 걸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1절에 시작과 끝이 다 있다.
나아만은 이렇게 장수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얻은 큰 용사였지만 그의 마지막 소개 말은 나병환자이다. 고칠 수 없는 질병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편견을 피할 수가 없고, 저주를 받았다는 인식을 지금 이제 달고 살아야 하는데 이 병 하나의 무게가 앞에 나온 모든 찬란한 수식어의 무게보다 이제 훨씬 무거운 것이다. 몸을 치는 것보다 무서운 게 없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몸을 치기 전에는 안 돌아온다는 얘기가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한 결과 지금 이제 포로로 잡혀간 이방 땅에서 그 이유를 지금 설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도 큰 용사인데, 너 나병 환자다 지금 이 얘기를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아무리 대단하게 모든 것을 쌓아놓았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이 죽을 인생이라는 것이다. 밑동 잘린 나무라는 것이다.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아만이 이끄는 아람 군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쳐들어가서 노예로 쓸 사람을 또 많이 잡아 왔을 것이다. 근데 그중에 아주 총명해 보이는 한 어린 소녀를 나아만 자신의 그 아내의 몸종으로 삼았다.
나이가 적다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계집종이라 이름도 없다. 크고 존귀한 나아만과 정반대이다. 게다가 나아만은 왕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장군이지만 이 소녀는 사로잡힌 노예이다. 나아만는 많은 군대를 호령하지만, 소녀는 여주인에게 수종든다. 한마디로 나아만은 강자고, 어린 소녀는 약자이다.
나아만의 빨래방에서 나아만이 갑옷으로 철저히 감추고 너무나도 숨기고 싶은 그 주인의 나병을 알게 되었다. 나아만이 그 나는 새도 정말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그 고통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이 소녀는 그걸 봤다. 근데 이때 한 이 소녀가 딱 한 사람을 생각했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바로 엘리사이다. 아마도 수넴 여인의 그 아들 살린 일을 알았던 것이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선지자인데 나병쯤 못 고치겠나, 소녀는 그런 믿음이 있는 것이다. 만난 적이 없어도 한 성령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믿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에게 나아만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을 납치해 온 원수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기 보는 앞에서 다 아람 군대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다. 나병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여겨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아무리 어린 소녀이고, 여종이라도 내가 주님을 만나면 뭘 알아지냐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거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원수 사랑 이야기이다. 원수의 죄보다는 디모데전서 1장 15절처럼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이제 알게 되면 내가 가장 극형을 당해야 될 사형수인 것이다. 그러니까 경범죄자를 용서하는 거는 그건 당연한 것이다.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전파되려면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할 때 예수가 전해지고 그리고 치유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근데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이 말을 들을 때 맹렬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몸종으로 사로잡힌 소녀가 이 위대한 장군을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다. 살길을 알려준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나병으로 지옥을 살던 나아만 부부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해준 것이다. 복음이 위대하기 때문에 그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진짜 위대한 사람이다.
▪ 적용
Q. 크고 용사이지만 감추고 싶은 나병은 무엇입니까?
Q. 나는 사형수라고 생각합니까, 경범죄라고 생각합니까?
Q. 이런 말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옵니까?
Q. 여러분은 내 처지가 초라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2. 두 번째는 나병 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4-5절)
어린 여종이 전한 복음을 들은 부인이 나아만에게 그 복음을 전했다. 그 복음을 들은 나아만은 왕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 선지자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당시 강대국 아람의 모든 의술이며 주술을 다 동원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인데 그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적국 이스라엘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믿기 힘든 말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이 말을 왕이나 모사가 아닌 자기 집 빨래방에서 일하는 여종이 해준다.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게 너무 어렵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그렇게 루게릭병에 평생 시달려도 그 사람이 예수 못 믿었다. 부인이 예수 믿었는데도 그 부인하고 이혼했다. 그러니까 용사라고 그래서 믿는 게 아니다.
근데 택자가 돼서 나아만 부부가 이 말을 믿는다. 나병이라는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병이야말로 낫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는 이 부부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라도 믿을 수 있게 하는 그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고 하는 그 낮고 낮은 마음을 갖게 했다. 나아만이 여기까지 낮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벤하닷 2세는 아합과 끊임없이 싸웠다. 두 번이나 크게 패했고, 그중 한 번은 아합에게 거의 항복하다시피 목숨을 구걸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합이 죽은 것도 아람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니 벤하닷 2세가 이스라엘을 향해 감정이 좋았겠나. 하지만 아끼는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있다는 보고를 들은 아람 왕은 나아만을 이스라엘에 기꺼이 보낸다. 근데 그냥 보내지 않는다. 옷 10벌만 아니라 은 350kg, 금 50kg을 보낸다. 이렇게 금 가치로만 따져도 40억이 넘는데 지금으로 치면 약 한 100억 정도 되는 예물을 바리바리 싣고 보냈다. 친서를 동봉해가지고 적국 왕에게 '우리 나아만을 살려달라'고.
아람 왕에게 나아만은 너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해줘야 된다. 지금 나라의 반이라도 줘야 된다. 아람이 존재하고 있는 거는 나아만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람 왕이 비록 왕이지만 나아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게 없었다면 아람왕이 뭐 하러 생각하기도 싫은 이스라엘 왕에게 그 엄청난 선물을 보내 부탁을 하겠나? 끝까지 우리는 내가 잘할 건 끝까지 잘하지만은 분별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 인간은 100% 죄인이다.
자기가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돈이 없어지고, 자존심이 상하고, 몸이 고장나고,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이런 육이 무너지는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볼 수가 없다. 나는 부자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난을 당해야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또 내가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내 능력에 한계가 있고, 내 생각과 내 의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게 축복이다.
가난한 마음이 축이라고 그러잖아요. 이렇게 고난을 당해 낮은 마음이 될 때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나아만에게 나병이 있었기에 그 소녀가 알려준 복음을 듣고 선지자를 찾아가려고 했듯이, 아람 왕도 나아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이스라엘 왕에게 주며 도왔다.
우리도 이제 나병 같은 고난이 있을 때, 낮은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힘든 사람, 또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또 이제 그 복음을 듣는 마음과 귀가 열리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아무 문제없이 편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나는 고난도 없이 그냥 예수만 잘 믿었으면 좋겠어, 그거는 내가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마음이다. 인간이 100% 죄인인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 고난 없이 예수 잘 믿기를 바라겠나. 내가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거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다. 요즘 우리가 민수기에서 묵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삶을 원하고 바라는 마음의 이 뒷면이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고 반역하는 마음이다. 이기적인 마음이다. 이타적으로 살기 싫다는 것이다. 고난 없이 나는 혼자 예수 잘 믿겠다는 거, 이게 얼마나 반역하는 마음인지 모른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그것이 찾아오면 그냥 영적인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인 줄 아시기를 바란다. 무슨 약? 구약과 신약. 하나님의 말씀의 약. 이거 먹으라고 이 고난이 왔구나, 큐티할 시간이다. Question Time이다.
▪ 적용
Q. 고난이 축복이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Q. 모든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분별하십니까?
3. 세 번째는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6-8절)
아람 왕은 이제 이스라엘 여호람에게 많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낸다.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한다. 아람 왕은 '당신의 나라에 있다는 선지자를 불러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람에서는 주술을 베푸는 제사장들이 다 왕의 부하이고 수하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도 아는 일을 왕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죠. 근데 모른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여호람은 아람 왕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를 못한다. 엘리사 선지자를 생각도 못한다. 그저 아람 왕이 불가능한 요구를 자기에게 던지며 전쟁의 명분을 쌓는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어떻게 고쳐? 이거 완전히 시비 거는 거잖아!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이렇게 외치면서 그냥 그 좋은 새 옷을 박박 찢는다. 옷을 찢는 것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여호람의 이 탄식조차 들어주신다.
적국의 장관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가. 수없이 이스라엘 사람을 잡아가는 아람이 지금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국가가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모든 영혼은 다 선교지이다. 불치병을 고치는 하나님을 보여야 하는데 이스라엘 왕이 사명은 하나도 없고 탄식만 하고 있으니 '네가 무시하는 적국의 나아만이라도 믿게 해서 내가 너에게 하나님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이렇게 왕을 야단치며 가는 길이 얼마나 좁은 길인가? 늘 생명을 내놔야 되잖아요. 내 옆에 나아만이 곳곳에 있다. 다들 영적으로 죽은 나병 환자고, 다 밑동 잘린 나무처럼 다 죽을 인생인 것이다. 아무리 군대 장관이래도 그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 이렇게 불쌍한 영혼인 것이다.
엘리사가 끊임없이 왕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우리가 나라를 위해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이래야 되는 것이다. 모든 목적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여호람에게는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왜 옷을 찢나. 나아만의 나병 고치는 일은 네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하나님의 선지자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고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일인데 손 떼고 내게 맡겨라. 하나님께 맡겨라' 이런 뜻이다. 할 수 없는 일을 왜 혼자 짊어지고 그렇게 있으면 이제 옷 찢을 일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믿음 없는 여호람의 옷을 찢는 탄식도 하나님은 귀 기울여 들으시며 응답하신다.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으로 응답하세요.
구속사의 계보를 부정하고 떠난 북이스라엘이지만 그래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래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다. 바로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여호람의 향방 없는 탄식조차 들으시고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줄 믿는다.
▪ 적용
Q. 내 힘으로 하려다가 옷을 찢으며 절망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Q. 나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Q. 공동체에서 탄식했을 뿐인데 응답받은 적은 있습니까?
(기도제목)
은우언니
- 나병 같은 (나,가족,회사,지체)들의 문제가 축복인 것을 알고 서로의 구원 위해 기도하도록
지윤
-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나병환자가 나임을 인정하고,
믿음 없는 자의 탄식도 귀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하고 공동체에 물으며 나아갈 수 있도록